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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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Jin Kab-Yong
대한민국 No.96
Jin Kab-Yong.JPG

2007년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4년 5월 8일(1974-05-08) (45세)
출신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신장 182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포수
프로 입단 연도 1997년
드래프트 순위 1997년 2차 1순위(OB 베어스)
첫 출장 KBO / 1997년 4월 12일
대전한화
마지막 경기 KBO / 2015년 6월 6일
마산NC전 대타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프런트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1996년, 2008년
WBC 2006년, 2013년
아시안게임 1994년, 1998년
아시아선수권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8 베이징 단체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단체전
아시안 게임
1994 히로시마 단체전
1998 방콕 단체전
아시아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단체전
유니버시아드
1993 버펄로 단체전
1995 후쿠오카 단체전

진갑용(陳甲龍, 1974년 5월 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포수이자, 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배터리코치이다.

선수 시절[편집]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그러나 1999년 홍성흔의 입단으로 주전에서 밀려 2군을 전전했고 결국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과 구단 사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팀에서 이를 받아들여 그 해 트레이드 마감 기일이었던 7월 31일 포수가 필요했던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 이상훈을 상대로 한 현금(4억) 트레이드로 이적했다.[1]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당시 팀에서 김영진정회열이 배터리를 맡았지만, 포수진이 허술해 애를 먹고 있었다.[2] 특히 김영진의 경우 1997년 연속 경기 때의 낫아웃 오판 사건으로 인해 팀에서 2001년에 내야수 김승권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할 정도였다.[3] 원년 프랜차이즈 포수 스타 이만수1994년 1루수로 전향 후[4] 수준급 포수가 장기간 부족했던 팀 사정상 기회를 얻어 단비와 같은 존재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오랫동안 팀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아갔다.[5][6] 1990년대 내내 포수난을 겪었던 탓에 트레이드로 그를 데려온 뒤에도 곧이어 LG 트윈스의 포수였던 김동수를 FA 계약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팀에서 부진해 2001년 말에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됐다. 반면 그는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의 조련을 받아 당당히 주전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주전 자리를 굳혀 나갔다. 그의 트레이드는 팀의 성공적인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힌다.[7][8] 팀이 2002년 정규 시즌 및 2002년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그 해 데뷔 첫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2003년 시즌 후 주장 자리를 물려받아 2008년 시즌까지 팀을 잘 이끌었다.[9] 특히 2005~06 시즌 연속 우승을 일궈 냈고, 2008 시즌까지 구단이 1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10][11][12][13][14] 2008 시즌 후 박진만에게 주장 자리를 물려줬다.[9] 2009년 7월 11일 SK전에서 선발 투수 송은범의 투구에 맞아 좌측 척골 골절상을 입으며 시즌 아웃됐다. 그 해 그를 비롯해 양준혁, 박진만, 조동찬, 박석민, 오승환, 권오준, 안지만 등 주전 선수들의 대거 부상으로 전력이 급격히 약화되며 13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다.[12][13][14] 부상에서 돌아온 그는 2010년 시즌에도 여전히 주전 포수로 활약했으나 잔부상과 체력 저하로 예전에 비해 경기 출전 수가 줄었다.[15][16] 2010년에 부진했던 강봉규를 대신해 2011년 팀 주장 자리에 복귀했으며,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거쳐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그 해 아시아 시리즈까지 우승했다.[17] 2012년까지 주장을 맡았고, 시즌 후 2013년에는 최형우에게 주장을 넘겨줬다. 2015년에도 팀의 안방을 지켰으나 6월 8일에 2군으로 내려갔고, 그 해 8월 6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2015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을 맡았고[18] 2017년부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연수코치로 활동했다.

국가대표 경력[편집]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2학년 때 출전했던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을 계기로 국가대표팀에 입문했고,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했다.[19] 그 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첫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1승 6패로 최하위를 기록했고, 시드니 올림픽부터 프로 선수의 출전이 허용됐다.[20] 애틀랜타 올림픽 후 그는 오랫동안 국가대표팀을 거쳤으며 그가 병역 문제를 해결했던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국가대표팀의 베테랑 주전 포수로 여러 차례 활약하며 3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베이징 올림픽의 경우 대회 중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대표팀 주장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좋은 활약을 펼쳐 대표팀이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는 데에 크게 공헌했다.[10][21][22]

약물 복용[편집]

2002년 아시안 게임 대표 선발 중, 도핑에 적발되자 고려대 후배이자 같은 포수인 김상훈에게 대표팀 자리를 넘겨주려 소변에 약을 탔다고 주장했으나 도핑 검사를 맡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분석한 결과 약물 복용이 확실하다고 밝히자 이후 주장을 번복하고 약물 복용을 인정함에 따라 팬들의 많은 비난과 여론을 받았다.[23]

별명[편집]

그의 이름 중 '갑'과 이름의 '용'을 영어로 한 '드래곤'을 합친 '갑드(래곤)', 약물 복용 사건으로 인해 '약갑용', '약드(래곤)'이라고 불린다.

출신 학교[편집]

수상 · 타이틀 경력[편집]

아마추어 수상 경력[편집]

  • 1991년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안타상, 도루상
  • 1992년 화랑기 최우수 선수상, 타격상
  • 1994년 대학 선수권 타격상
  • 1995년 백호기 수훈상, 화랑기 수훈상
  • 1996년 대통령기 최우수 선수상

프로 수상 경력[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비고
1997 OB 0.242 95 281 21 68 7 0 4 20 2 0 20 6 44 7 6
1998 0.269 88 253 12 68 14 1 2 22 1 1 14 0 44 10 7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1999 삼성 0.212 68 156 13 33 3 0 4 17 0 2 10 2 29 7 7
2000 0.273 114 297 30 81 14 0 8 58 2 1 23 6 45 7 7
2001 0.306 89 314 54 96 25 2 7 57 2 3 23 7 37 4 4
2002 0.281 133 462 58 130 29 1 18 86 0 0 41 8 56 13 11 타점 8위, 타격 25위
골든 글러브
2003 0.290 126 435 64 126 20 2 21 53 1 1 36 10 34 13 13 타격 19위
2004 0.278 129 439 60 122 20 0 24 71 0 0 34 12 51 16 5 홈런 5위, 장타율 9위
2005 0.288 110 347 34 100 17 0 6 41 1 1 36 8 47 8 6 타격 16위
골든 글러브
2006 0.288 110 358 28 103 22 0 6 47 1 2 29 5 37 18 4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타격 10위
포수 골든글러브
2007 0.246 122 362 28 89 12 0 5 39 0 1 49 7 38 9 4
2008 0.279 105 272 34 76 7 0 11 45 1 1 30 1 41 6 3 베이징 올림픽 대표 선수
2009 0.232 57 142 10 33 3 1 3 20 1 2 15 4 23 5 2
2010 0.263 100 259 36 68 8 0 10 28 0 0 45 2 57 7 4
2011 0.273 112 286 26 78 7 0 10 42 1 0 35 3 53 10 6
2012 0.307 114 313 27 96 15 1 6 57 0 0 17 7 46 6 3
2013 0.271 101 181 22 49 9 0 6 36 0 0 12 5 28 5 4
2014 0.412 11 17 2 7 0 0 0 4 0 0 0 0 1 0 1
2015 0.324 39 68 8 22 2 0 3 10 0 0 4 0 9 3 0
통산 19시즌 0.276 1823 5242 567 1445 234 8 154 753 13 15 473 93 720 154 97

각주[편집]

  1. 매일신문 - 2007년 4월 기사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삼성의 안방 마님 진갑용"
  2. 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 - 연합뉴스
  3. 한화 내야수 김승권 삼성으로 트레이드 - 동아일보
  4. 최화경 (1994년 5월 25일). “그라운드 지키는 元年(원년)멤버 4인방”. 동아일보. 2018년 7월 20일에 확인함. 
  5. 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의 칼럼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6. "2005 한국시리즈는 ‘라이벌 시리즈’" - 오마이뉴스
  7. 마이 데일리 - 2008년 9월 기사 "‘포수 첫 2,000경기’ 김동수와 ‘역대 최초’의 인연"
  8. 데일리안 - 2009년 8월 기사 "‘화수분’ 두산… 포수 욕심의 결과는?"
  9.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삼성 선수단 주장 후임으로 박진만 선임"
  10. 마이 데일리 - 2008년 10월 기사 "베이징의 체인징 파트너 진갑용-강민호, 적으로 만났다"
  11. 조이 뉴스 24 - 2008년 10월 기사 "롯데, 진갑용을 막아라"
  12. OSEN - 2009년 9월 기사 "‘4강 탈락’ 진갑용, 힘이 되지 못해 화도 많이 났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3. OSEN - 2010년 2월 기사 " 안방마님 진갑용, 100경기 출장 위해 최선 다할 것"[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4. OSEN - 2010년 3월 기사 "진갑용, 현재 컨디션은 80점 정도"[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5. 스포츠 조선 - 2010년 8월 기사 "진갑용 회복, 26일 1군 컴백 저울질"
  16. OSEN - 2010년 9월 기사 "복귀 첫 홈런 진갑용, 1위 포기하지 않았다"
  17. 삼성 진갑용 "100경기 이상 뛰면 한국 시리즈 우승할 수도…" - 스포츠월드
  18. 진갑용, 현역 은퇴 선언… 전력분석원으로 새 출발 - 엑스포츠뉴스
  19. 아마 야구, 올림픽 대표팀 20명 선발 - 연합뉴스
  20.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그 후 12년 - 마이데일리
  21. 동아일보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허벅지 부상 어떡해!… 포수 엔트리 강민호와 단 두 명뿐"
  22. 조이 뉴스 24 - 2008년 8월 기사 "진갑용, 마지막을 장식하게 해 준 민호에게 고맙다"
  23. KBS - 2002년 8월 기사 프로야구 진갑용 약물복용 파문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