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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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
Cho Yong Jun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9년 3월 17일(1979-03-17) (40세)
출신지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
신장 176 cm
체중 72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2년 (현대 유니콘스)
드래프트 순위 1998년 2차 1라운드5순위(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2002년 4월 5일
수원SK구원
마지막 경기 KBO / 2009년 9월 24일
군산KIA구원
획득 타이틀
계약금 5억 2천만 원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해설자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002 부산
월드컵 2001 대만
아시아선수권 2003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단체전
아시아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단체전

조용준(趙容浚[1], 1979년 3월 17일 ~ )은 전 KBO 리그현대 유니콘스투수이다. 종교가 원래는 불교였으나, 후에 천주교개종해서 천주교이다.

선수 시절[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백초초, 여수중을 거쳐, 순천효천고 시절 당시 감독이었던 OB베어스 출신 장호연으로부터 슬라이더 기술을 전수받았다. 1998년 순천효천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1998학번)에 진학후 1학년때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연세대 2학년 때 부터 동기동창인 채상병, 안치용, 이현곤을 비롯해 선배인 신명철과 함께 연세대를 대학리그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하였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1998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5순위 지명을 받았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입단하였다.

신인 시절 팀의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한 그는 데뷔 이후 30⅓이닝 동안 자책점을 1점도 허용하지 않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고, 이러한 활약으로 시즌 중반부터 붙박이 마무리 투수로 전업해 그 해 1.90 방어율 9승 5패 28세이브라는 기록을 세워 2002년 신인왕을 수상받았다.[2]

2003년에는 2년차 징크스를 겪으며 빈번히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그 해 평균자책 3.52, 2승 7패 26세이브를 기록했다. 2004년 시즌에는 10승 3패 34세이브 평균자책 2.28을 기록하며 팀의 마무리 투수로 빼어난 성적을 거뒀고, 그 해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7경기에 등판, 12⅓이닝동안 2실점(비자책) 호투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한국시리즈 MVP의 영광을 받았다. 당시 두번의 무승부로 인해 9차전까지 가며 펼쳐졌던 2004년 11월1일의 마지막 승부는 빗속에 진행되었는데, 조용준은 이 경기의 마무리 투수로 등장하여 마치 여름장마처럼 빗발치는 호우속에 팽팽했던 투타 싸움에서 세이브를 올리게 된다. 이 경기는 역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명장면 베스트10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히 흥미진진했을 뿐 아니라 퍼붓는 비속에 진행된 초유의 9차전 경기여서 여러 야구팬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경기였다. 프로 4년차이던 2005년 6월 8일 잠실 LG전에서 197경기 만에 100세이브를 기록하여 역대 최소 경기 100세이브를 기록했다.[2](이 기록은 2007년 9월 18일 광주 KIA전에서 180경기 만에 오승환이 경신한다.[3])

원반 같았던 특이한 궤적을 지닌 슬라이더로 유명하였고, 이를 본뜬 '조라이더'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2005년 시즌 종료 후 어깨 수술을 받았다. 이후 오랜 재활 기간과 자신의 오랜 방황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2009년 8월 16일 1,430일 만에 1군에 등록하여[2] 8월 1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등판하여 1이닝 1안타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2009년 9월 10일 두산전에서 4년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4] 히어로즈로 바뀐 이후 11경기에 등판하여 1패 1세이브 평균자책 4.00을 기록했으나, 이 해 9월 24일 군산 KIA 전의 선수 생활의 실질적인 마지막이 되었다. 2010년에도 마무리 보직으로 다시 가는 듯 했으나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 캠프 중 부상이 재발하여 경찰청에서 갓 제대한 투수 손승락에게 마무리를 넘기고 조기 귀국했다. 이에 김시진 감독은 자기관리 부족을 질타하기도 했다.[5] 손승락은 그를 대신하여 마무리로 좋은 활약을 보여 주며 2010년 세이브왕에 올랐다. 그 후 계속 재활을 반복하였으나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군에서도 구위가 나아지지 못해 결국 시즌 종료 후 같은 소속 팀 투수 신철인 등과 함께 팀에서 방출되었다. 현역 복귀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은퇴했다.

은퇴 이후[편집]

은퇴 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2011년에는 간암 수술을 받았다.[6] 간암 수술을 받은 이후 회복이 되어 2013년부터 MBC 스포츠+에서 야구 해설을 맡게 되었다.[7] 이후 2017년 신일고등학교의 코치로 임명되었다.

주요 기록[편집]

기록 날짜 상대팀 장소 경기 내용 종전 기록 기타
최소 경기 100세이브 (197경기) 2005.6.8 LG 잠실 5-1, 9회 2사 만루 등판, 삼진 조규제 (207경기) 2007년 오승환(180경기)경신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2002 현대 24 9 5 .643 1.90 64 0 0 0 28 4 109.0 80 7 38 5 116 4 1 5 32 23 448 1.08
2003 25 2 7 .222 3.52 47 0 0 0 26 1 53.2 52 4 18 2 39 1 0 1 26 21 230 1.30
2004 26 10 3 .769 2.28 63 0 0 0 34 0 75.0 67 0 22 0 56 3 0 4 19 19 301 1.19
2005 27 2 1 .667 3.27 49 0 0 0 27 0 52.1 47 6 20 1 61 3 0 2 21 19 228 1.28
2009 히어로즈 31 0 1 .000 4.00 11 0 0 0 1 0 9.0 11 1 5 0 6 2 0 1 4 4 42 1.78
KBO 통산 : 5년 23 17 .575 2.59 234 0 0 0 116 5 299.0 257 18 103 8 278 13 1 13 102 86 1249 1.20

수상·타이틀 경력[편집]

  • 2004년 제일화재 프로야구대상 최고구원투수상
  • 200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
  • 2002년 프로야구 신인왕
  • 2001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수투수상
  • 2000년 춘계리그 고교야구대회 MVP, 최우수투수상
  • 1999년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감투상

출신학교[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