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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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Jeong Choi
SK 와이번스 No.14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7년 2월 28일(1987-02-28) (29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기도 이천시
신장 180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3루수
프로 입단 연도 2005 시즌
드래프트 순위 2005 시즌, SK 와이번스로부터 1차 지명
계약금 86억 원
연봉 11억 원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AG
2010 광저우 AG 중국 광저우
WBC
2009 WBC 미국 LA

최정(崔廷, 1987년 2월 28일 ~ )은 프로 야구 선수이다. 현재 KBO 리그 SK 와이번스 소속이며 주 포지션은 3루수이다. 그의 친동생은 군대에 입대한 내야수 최항이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운 팔로우 스로우와 안정적이고 신속한 수비가 특징이다. 펀치력이 강하고, 주력도 수준급이다.

원래는 1987년 출생으로, 2006년이 되어야 20살이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서 뛸 수 있다. 그러나 최정은 2월 출생으로, 일명 빠른 1987년생이다. 따라서 실제 동갑인 친구들보다 1년 빠른 2005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딘다.

프로 데뷔 이전[편집]

대일초등학교, 평촌중학교, 그리고 유신고등학교에서 팀의 에이스 투수 및 4번 타자로 활약하며 초고교급 선수로 떠오르게 된다.

특히, 제 38회 대통령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는 150Km/h에 가까운 공을 던질 수 있을 정도의 파이어 볼러로서, 당시 휘문고에 재학 중이던 김명제 투수, 신일고에 재학 중이던 서동환 투수와 함께 초고교급 투수로 불렸다. KBO 스카우트뿐만 아니라 MLB 스카우트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았을 정도였다.

타격에서도 타구를 컨트롤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린 선수답지 않은 노련함에 파워는 물론이었고, 주력도 나쁘지 않은 수준으로 호타준족 타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고등학교 선수 중 가장 약점을 찾기 힘든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3년 고등학교 대회에서는 타격 부문 7관왕을 달성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갖추었고, 당시 성남고에 재학 중이던 박병호와 함께 많은 스카우트에게 최고의 고등학교 타자로 평가받게 된다. 더불어 이들과 함께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차출되어 활약하기도 하였다.

3학년 시절에는 봉황대기 고교 야구 대회 청원고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투수로 출전하여 그랜드 슬램을 맞은 이후, 바로 다음 타석에서 끝내기 그랜드 슬램을 때린 경기도 있다. 또한 선린상고와의 8강 경기에서는 우익수로 출전하여 반 보만 밟은채 3루에 정확히 원 바운드 송구를 쏘는 등 경기를 관람하던 관중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요 고교 야구 대회에 투수 겸 3루수로 15경기에 출장하여 49타수 23안타, 타율 0.469를 기록하면서 2004년, 고교 졸업을 앞두고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다.[1]

  • 2004년, 대붕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최다 도루 부문 수상
  • 2004년,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최다 홈런 부문 수상
  • 2003년, 화랑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최다 도루 부문 수상
  • 2003년 미추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MVP, 우수 투수상, 최다 안타 부문 수상
  • 2003년 · 2004년, 봉황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에서 2년 연속 최다 타점 부문 수상

프로 데뷔 이후[편집]

SK 와이번스[편집]

2005 시즌[편집]

유신고를 졸업하고 SK 와이번스의 1차 지명을 받게 된다. 계약금 3억원, 연봉 2천만원을 받고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딘다. 하지만 최정은 고작 45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며, 프로의 벽을 실감하게 된다.

2005년 5월 21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냈다. 만 18세의 나이에 프로에서 홈런을 때려낸 선수로는 해태에서 뛰었던 홍현우에 이어 두 번째다.

2006 시즌[편집]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다. 2006년 6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다. 특히 9회초에는 구대성을 상대로 역전 스리런을 쳐낸다.

그런데 홈런을 쳐냄과 동시에 최정의 배트가 부러졌고, 이에 구대성 투수는 최정의 홈런이 믿기지 않는다며 부정 배트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부러진 배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 때문에 두산 베어스의 심정수가 가지고 있던 "소년 장사"라는 별명은 이제 최정의 몫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을 맡았던 조범현 감독은 외국인 선수 시오타니와 피커링 대신 최정을 4번 타자로 기용하기도 했었다. 팀의 4번 타자로 육성해보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런 감독의 바람대로 최정은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뽑아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2]

이렇게 뛰어난 타격 센스로 인정받기도 했지만, 최대의 문제는 수비력이었다.

2007 시즌[편집]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SK 와이번스 3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혹독한 훈련을 통해 3루수로서 수비적 안정감을 점차 완성해간다. 그의 실력은 훈련을 통해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특히 이전 시즌에 비해 타구 처리와 정확한 송구, 핸들링 기술력이 좋아졌다. 또한 러닝 스로 및 땅볼 처리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또한 김성근 감독은 최정에게 목표 의식을 심어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끔 NPB의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코치로 일하고 있던 이마에 도시아키에게 특별히 부탁해 글러브를 얻어다 최정에게 선물하는 등, 애제자에 대한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공 · 수 양면에서 한층 성장한 모습을 갖추면서 2008 베이징 올림픽 3차 예비 엔트리에 최연소 야수로 이름을 올려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명단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2008 시즌[편집]

차기 시즌을 위한 연봉 협상에서 전 시즌 대비 164.7%가 인상되어, 팀 내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2006 시즌 정근우의 150%였다. 2007 시즌에 확실하게 3루수에 자리잡은 것과 팀 내 최다 타점 부문 2위를 기록한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컸다. [3]

2008 시즌이 시작되면서 최정은 팬들에게 또 한번 성장된 모습을 선보인다. 전반기엔 .327의 높은 타율과 정교하고 정확한 타격을 선보이고, 6월 한 달 동안은 6개의 홈런을 몰아치며 자신의 장타력을 과시했다. 거기에 수비까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2008 KS 3, 4차전에서는 결승타를 기록했고, 5차전에는 쐐기를 박는 적시타를 때려내며 최연소 (21세 8개월 3일) KS MVP로 선정되었다. [4]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그는 진정한 완성형 3루수로 성장해간다.

2009 시즌[편집]

2009년 6월 25일, 최정은 이날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12회말에 6번째 투수로 등판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0 IP 1H 1WP 1R (0ER) 을 기록하며 이날의 패전투수가 되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투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최정의 이날 최고 구속은 시속 146Km/h였을 정도로, 투수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이어볼러의 기질은 아직 남아 있었다. 경기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는 '지고 싶지 않았는데 아쉽다'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최정이 출전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SK 와이번스가 사용 가능한 모든 중간계투를 소진해버렸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결정적이다.

지금 (2016 시즌 기준) 은 무승부는 전적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그저 무승부일 뿐이다. 즉, 4승 1무 2패를 기록한 팀의 승률은 .667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승부가 패전으로 기록되었다. 즉, 승률 계산 방식이 '승수 / 전체 경기 - 무승부 경기' 가 아닌 '승수 - 전체 경기 (무승부 포함) ' 였던 것이다. 고로 4승 1무 2패의 성적을 거둔 팀은 당시의 승률 산출 방식을 거치면 .571의 승률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최정이 등판한 상황은 12회말, 즉 마지막 이닝이었고, KIA 타이거즈의 공격 차례였으며, 동점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SK 와이번스가 무슨 수를 써도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최정의 등판은 어떻게 보면 팬 서비스라고도 말 할 수 있다.

2010 시즌[편집]

2010 KS, 삼성 라이온즈와의 2차전에서는 KBO KS에서 연타석 홈런을 터트린 다섯 번째 타자가 됨과 동시에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날 MVP는 당연히 최정의 몫이었다.

지난해 두산 베어스와의 PO에서도 4차전 마지막 타석과 5차전 첫 타석에서 연타석 홈런을 터트리며, 역대 KBO PS를 통틀어 연타석 홈런을 2차례 기록한 타자는 최정이 유일하다. [5]

팀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시리즈 스코어 4 : 0의 스윕 승리를 거두며 세 번째 우승을 달성하게 되고, 그의 전성기는 이때부터였다.

2011 시즌[편집]

시즌을 시작하면서 최정은 더욱 강한 타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위험 부담을 안고 타격폼의 변화를 감행했다. 그 결과 스프링 캠프 연습 경기에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시즌 개막 이후 일주일 동안 타율 .08 미만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적이 나오게 되었다.

다시 폼을 수정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신감이 저하된 최정에게 김성근 감독은 이례적으로 면담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부여한다. [6] 이런 이례적인 감독의 사랑에 그는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을수 있게 되었다. 4월 한 달 동안은 타율 0.329, 2홈런, 13타점을 기록했다. [7] 그러나 5월에 들어서며 또 다시 타격 폼이 흐트러지며 17타수 무안타로 애를 먹는다. 그러자 그는 지독한 반복 훈련과 끈질긴 노력으로 극복하면서 6월에는 타율 0.447, 5홈런, 20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타격 성적을 기록하며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또한 7월에는 팀이 연패에 빠지고, 전체 팀 타선이 침체되었음에도 홀로 고군분투하며 최정 와이번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팀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8]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4번 타자로 나서면서 4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9월 초까지 리그에서 득점권 타율 1위를 기록하면서 클러치 능력까지 과시한다. 2011 시즌에서 4번 타자로 출전한 경기에서는 타율 0.333을 기록하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현 NC 다이노스 코치이자, 전 SK 와이번스의 주루 코치였던 이광길 코치로부터 [야구 천재] 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을 정도로, 타고난 능력과 노력으로 이뤄낸 그의 실력은 어마어마했다. [9]

이렇게 꾸준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2년 연속 3할의 타율을 기록했고 20홈런을 쳐냈으며, 수비에서도 한층 발전된 플레이를 보였다. 그렇게 그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법칙을 다시 한 번 시전한다. 2011 시즌 골든 글러브 3루수 부문에서 206표라는 몰표를 받으며, 생애 첫 골든 글러브를 거머쥐게 되었다. 본인에게도 첫 수상임과 동시에, SK 와이번스 팀 창단 이래로 3루수 부문 첫 수상이기도 했다. [10]

하지만 이 시즌 도중 자신을 최고의 3루수로 육성해 준 김성근 감독이 해임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했다.

2012 시즌[편집]

김성근 감독이 해임된 이후 이만수 감독이 부임하게 되었고, 이후 이만수 감독은 최정을 3번 타자로 고정적으로 기용한다.

시즌 초중반까지 강정호와 홈런왕 경쟁을 펼침과 동시에 3번 타자다운 클러치 능력도 과시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수비에서도 '3유수' 라는 A급 수비 범위와 수비력을 선보이며 전체적으로 더욱 발전했다. 현대 히어로즈의 외국인 3루수 퀸란의 수비 범위가 비슷했다고 한다. 시즌 후반, 아홉수에 한 달이 넘도록 발목을 잡혀 홈런왕 경쟁에 밀려났지만 곧 20홈런을 쳐내면서 결국 2012 시즌에는 개인 최다 홈런인 24개의 홈런을 쳤다.

2012년 10월 6일에는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SK 와이번스 창단 이래로 최초이자, 프로 데뷔 최초로 20홈런 - 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3루수 선수 부문 역대 3번째, 15년만에 나온 기록이었다. 2005 시즌 프로 데뷔 이후 타율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최정은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3루수로 우뚝 섰다.

2012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최정은 2013 시즌 선수 등록 마감 시한을 이틀 앞두고 SK와 재계약을 맺었다. 2억 8000만원에서 2억 4000만원이 오른 금액인 5억 2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인상률은 무려 85.7%이고, SK 와이번스 선수 중 5억원 이상의 연봉을 기록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팀내 두 번째로 높은 연봉과 동시에 3루수 부문 전체 연봉 1위, 팀 선배 정근우와 함께 같은 인상폭으로 프로야구 역대 8위의 인상 금액 기록도 남기게 되었다. [11]

2013 시즌[편집]

"개막이 얼마 안 남았으니 몸 관리 잘 하자. 시간 약속 등 사소한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되면 다들 예민해진다. 시범경기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우리가 잘해서 형들을 도와주자."

팀내 고참급 선수들과 신인 선수들 사이의 위치에 있는 최정은, 후배 선수들에게 놓쳐서는 안 될 조언을 전하면서 2013 시즌을 시작한다. 전반기 내내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팀이 혼란스러웠던 시기에도 최정은 묵묵히 팀의 중심을 잡고 홀로 이끌었다. 어린 선수들이 함께 프로에서 뛰어 고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는 그는 시즌 내내 각 부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8월까지 박병호와 함께 치열하게 홈런왕 경쟁을 펼쳤다.

전반기 내내 득점권 타율은 4할에 육박했으며, OPS는 리그 타자 중 가장 높은 1.064였다. 또한, 조정 OPS도 가장 높은 187.08 이었고, 2013 시즌 전체 타자 중 RC/27은 8.66으로 리그 2위였다.

그 외에도 4년 연속 3할의 타율과 20홈런, 2년 연속 20홈런 - 20도루 클럽 가입, 4년 연속 9할 이상의 OPS 기록, 3년 연속 3루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삼성 라이온즈의 박석민, LG 트윈스의 정성훈보다 한 수 위인 대한민국 최고의 3루수임을 입증했다.

2014 시즌[편집]

3년 연속 야수 고과 1위 등 빼어난 성적으로 꾸준하게 팀을 이끌어준 최정이다. SK 와이번스는 2014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최정에게 지난 시즌의 연봉이었던 5억 2000만원에서 1억 8000만원이 오른 금액인 7억원을 제시했다. 인상률은 34.6%.

연봉 7억원은 프로야구 비 FA 선수 역대 최고 연봉이자 SK구단 역사상 최고 연봉이기도 하다. 종전 기록은 2003년 이승엽과 2011년 이대호가 기록한 6억원, 그리고 SK 와이번스 구단 역사상 정근우가 받았던 최고 연봉인 5억원이라는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이렇게 최정에게 최고급 대우를 해 주는 SK 와이번스의 속내는 이렇다. 만약 타 구단이 최정을 FA로 영입을 시도하고자 한다면, 현재 FA의 가치로 보아 계약금으로만 80억원 이상을 소진해야 할 것이며, 거기에 14억의 이적료와 보상 선수 or 21억의 이적료를 지급해야 한다. 즉, 최정이라는 선수 하나를 영입하기 위해 100억을 소진해야 될 것이다. 타 구단에게 이런 부담감을 형성하기 위해 7억원이라는 거금을 챙겨 준 것으로 보인다.

최근 FA 시장에서 내부 선수들을 모두 놓친 SK 와이번스는 최정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잡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해외 진출을 한다면 모를까, 국내 구단과의 싸움에서는 질 수 없다는 비장함이다. 이런 구단의 지극정성에 최정은 인터뷰로써 감사를 전했다. [12]

하지만 시즌 중에 허리에 부상을 당하며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하고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프로 데뷔 이후 첫 FA 권리 행사[편집]

SK 와이번스는 최정이 지금까지 밟아온 행보와, 이제 고작 29세밖에 안 되는 젊은 나이에 대한 미래의 기대감을 보고 4년 86억원으로 SK와 재계약했다. [13]

2015 시즌[편집]

거액의 FA 계약을 체결한 후 첫 시즌이었다. 시즌 초에는 제 몸값을 제대로 한다. 특히 4월 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는 만루 홈런도 치는 등 8타점 경기까지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2014 시즌에 이어 부상이 재발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시즌에 체중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 부상의 주요 원인으로 낙점되었다. 결국 81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며 명예 회복은 2016 시즌에 하는 것으로 기약하게 되었다.

2016 시즌[편집]

올스타전 출전[편집]

2008 올스타전에 프로 데뷔 최초로 출전한 것에 이어 2010 ~ 2012 4번의 올스타전에서는 모두 감독 추천 선수로 출전하였다. 그리고 2013 올스타전에 출전하며 4번 연속 올스타전에 선발 출전하게 된다.

그런데 2013 올스타전은 이전의 올스타전 출전보다 특별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팬 투표에 의해 베스트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최정은 2013 올스타 동군 3루수 부문에서 삼성 라이온즈 박석민, 두산 베어스 김동주, 롯데 자이언츠 황재균과 경쟁을 하게 되었고, 인터넷 및 모바일 합산 1,035,449개의 표를 받으며 당당히 올스타전의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다.

최정은 처음으로 팬들의 투표로 선택 받은 것에 대해 인터뷰를 통하여 고마움을 표현했다. [14]

특징[편집]

  • 본래 좌타석에서도 능숙하지만 프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2005, 2008 시즌 초반, 사이드암과 언더핸드 투수에게 약점을 보이며 좌타석에 들어선 기록이 있다. 하지만 스위치 타자로 활약하기엔 버거운 점들이 많아 우타석에 전념하게 되었다.
  • 야구에 있는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이다. 일명 올라운드 플레이어, 만물 박사이다. 프로에서의 주 포지션은 3루수이다.
  • 펀치력이 뛰어나고 손목 힘이 좋다. 팔로우 스로우 동작이 매우 이상적이고 타구 방향은 좌측으로 많이 올려치는, 즉 당겨치는 스타일이다.
  •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등 투수가 던지는 기본적인 구종에 모두 강하다. 하지만 포크볼에 매우 약하다.

국제 대회에서의 활약[편집]

2009 WBC[편집]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얻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2세였다. [15] 국가대표 주전 3루수 자리를 두고 이범호와 경합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주전 유격수로 유력시됐던 박진만이 부상으로 완전히 이탈함으로써 유격수 자리는 박기혁이, 3루수 자리는 이범호가, 그리고 최정은 내야 유틸리티 선수로 국가대표의 한 자리를 채우며 엔트리를 확정지었다.

하지만 최정으로서는 첫 국가대표로서의 경험이었던 만큼 아주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만 했다. 예선 2라운드 일본과의 순위 결정전에서 유격수로 첫 선발 출장했던 최정은 5회까지 2타수 무안타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고, 수비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전 경기까지 국가대표 팀 타자들 중 유일하게 타석에 들어보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네수엘라와의 경기를 앞두고 이범호의 감기 몸살 증세가 악화되며 부득이하게 결장하게 되었고, 그 빈자리는 최정이 메우게 되었다. 국가대표 경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본 포지션인 3루수로 선발 출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 성적은 6경기에 출전, 7타수 무안타 1타점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거두며 프로 데뷔 이후 첫 국가대표로서의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0 광저우 AG[편집]

2010년 9월 6일, 2010 광저우 AG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16] 지난 해에 참가했던 WBC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17] 주전 3루수 자리를 놓고 당시 NPB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던 이범호와 경합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위원회는 최정의 손을 들어주었다. 11월 13일에 있었던 대만과의 예선 1차전, 그리고 그 다음 날 홍콩과의 예선 2차전에 선발 출장하였으나, 타격감이 예상 외로 떨어져 있던 점과 컨디션 조절 실패로 부진했다.

이후 11월 18일 중국과의 4강전에서는 예선에서 타격감이 최고조였던 강정호가 최정 대신 3루수로 출장하여 최정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대만과의 결승전에는 그를 대신하여 강정호가 유격수 대신 3루수로 선발 출장하였으며, 9회 초, 경기가 끝나갈 무렵 5번 타자인 이대호를 대신해 대타로 출전하여 중전 안타를 기록했다.

그렇게 그의 두 번째 국가대표 경험은 끝이 났다. 이번 대회에서는 4경기에 출장해 10타수 4안타 .400 1타점 4득점 1사구를 기록하였다.

2013년 제3회 WBC 야구 대회[편집]

개인통산 3번째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만 26세). 대표팀 2루수 정근우와 함께 유일하게 백업없이 주전 3루수로 발탁되었으며, 기술위원회와 대표팀 사령탑 류중일 감독은 두 선수가 프로 리그에서 보여준 빼어난 기량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같은 엔트리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합숙훈련기간 동안 류중일 감독은 타격감이 좋지 못했던 최정에게 이례적으로 1:1 레슨을 해주면서 그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숨기지 않았다. 2월 15일 대만 도류구장에서 수비훈련 도중 갑자기 바운드가 튄 펑고 타구에 맞아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아찔한 부상을 입었다. 검사결과 눈에는 큰 이상이 없었으며, 눈두덩이 부위를 7바늘이나 꿰매야만 했다. 이로인한 부상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 경기를 치르는 내내 수비에 대한 두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예선 1라운드 1차전 네덜란드 전에서 선발 9번타자로 나와 대표팀 타자들 중 유일하게 멀티히트를 기록하였다. 예선 2차전 호주전에서는 6번타자로 나와 2개의 사구를 얻어내며 출루하였고, 안정적인 수비도 함께 해주면서 팀 승리에 보탬이 되었지만 마지막 대만전을 앞두고 훈련도중 왼쪽 허벅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출전하지 못하였다. 2경기를 출장하여 6타수 2안타 1타점 2사구 타율 0.333을 기록했다.

다양한 통산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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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P
S
2005년 SK 45 93 85 6 21 5 0 1 29 11 0 0 1 0 5 0 2 27 3 .247 .304 .341 .646
2006년 92 304 280 25 62 11 0 12 109 40 3 2 2 1 14 1 7 90 6 .221 .275 .389 .664
2007년 122 462 408 49 109 19 1 16 178 66 8 7 9 1 33 1 11 84 3 .267 .338 .436 .774 홈런 10위
2008년 114 476 406 77 133 24 1 12 195 61 19 8 10 2 33 1 17 84 17 .328 .410 .480 .890 타율 3위, 안타 7위, 득점 8위
2009년 99 410 339 63 90 15 0 19 162 58 11 0 6 3 40 0 22 64 6 .265 .376 .478 .854
2010년 123 493 400 84 120 31 1 20 213 80 12 4 16 8 49 0 20 72 7 .300 .393 .533 .929 득점 6위, 장타율 5위
2011년 113 488 403 63 125 25 1 20 212 75 15 5 13 6 46 1 20 72 8 .310 .402 .526 .928 타율 7위, 타점 8위, 출루율 4위, 장타율 3위
OPS 3위, 골든글러브(3루수)
2012년 130 553 474 85 142 33 1 26 255 84 20 8 3 6 49 7 21 98 8 .300 .385 .538 .923 안타 5위, 홈런 2위, 타점 4위, 득점 2위, 장타율 3위
OPS 5위, 골든글러브(3루수), 20-20클럽
2013년 120 525 434 75 137 18 0 28 239 83 24 8 1 2 64 9 24 109 10 .316 .429 .551 .980 타율 9위, 안타 6위, 홈런 3위, 타점 7위, 득점 7위
출루율 3위, 장타율 2위, OPS 2위, 골든글러브(3루수)
20-20클럽
2014년 82 361 308 65 94 20 0 14 156 76 7 2 1 3 37 0 12 69 9 .305 .397 .506 .903
통산:10년 1040 4165 3537 593 1033 201 5 168 1748 634 119 44 62 32 378 21 156 743 67 .292 .382 .494 .876

연도별 수비 성적[편집]

연도 포수 1루 2루 3루 유격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경기 척살 보살 실책 병살 수비율
2005 - 15 74 1 0 5 1.000 - 17 9 7 1 1 .941 -
2006 1 1 0 0 0 1.000 75 550 33 2 62 .997 1 0 0 0 0 .000 24 8 22 6 4 .833 -
2007 - - - 122 99 248 12 25 .967 1 0 1 0 0 1.000
2008 - - - 114 70 220 14 13 .954 1 1 1 0 0 1.000
2009 - - - 97 67 196 9 26 .967 2 0 2 0 0 1.000
2010 - - - 123 60 211 14 17 .951 -
2011 1 0 0 0 0 .000 2 0 0 0 0 .000 - 113 63 213 5 22 .982 -
2012 - - - 126 105 248 6 38 .983 4 2 9 0 1 1.000
2013 - - - 119 80 222 19 21 .941 -
2014 - - - 80 57 161 12 23 .948 -
통산 2 1 0 0 0 1.000 92 624 34 2 67 .997 1 0 0 0 0 .000 935 618 1748 98 190 .960 8 3 13 0 1 1.000

커리어[편집]

KBO[편집]

국제대회[편집]

주요 기록[편집]

홈런 일지[편집]

각주[편집]

  1. 유신고 최정, 이영민 타격상 수상, 《연합뉴스》 2004년 12월 16일
  2. 19세 소년, 4번 타자로 우뚝 서다, 《오마이뉴스》 2006년 7월 29일
  3. 최정, SK 역대 최고 164.7% 인상 재계약, 《OSEN》 2008년 1월 16일
  4. 김성근 감독이 평가한 최정의 실력은? ˝최고다!˝, 《조이뉴스24》 2008년 11월 1일
  5. 포스트시즌 사상 첫 2차례 연타석 홈런 친 SK 최정, 2차전 MVP, 《스포츠한국》 2010년 10월 16일
  6. 김성근 감독은 최정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이데일리 SPN》 2011년 4월 15일
  7. '부활' 최정, "여유있게, 목마르게 하겠다", 《OSEN》 2011년 4월 15일
  8. 김성근 감독 "최정,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조이뉴스24》 2011년 7월 19일
  9. (이효봉의 3D 인터뷰) SK 최정, 0.087서 0.328까지…노력하는 야구천재, 《스포츠동아》 2011년 9월 7일
  10. (골든글러브) `첫수상` 최정, "주변에 좋은 분들 덕분에 상 받아", 《매일경제》 2011년 12월 11일
  11. '5억대 진입' 최정, "더 훌륭한 선수 되겠다", 《OSEN》 2013년 1월 29일
  12. '연봉 7억원' SK 최정 "내 한계 넘어서는 시즌 만들 것", 《엑스포츠뉴스》 2014년 1월 15일
  13. 최정, 역대 최고몸값 SK 잔류 확정, 《스포츠동아》 2014년 11월 25일
  14. <올스타전> 최정 "올스타전도 실전처럼", 《조이뉴스24》 2013년 7월 19일
  15. WBC 대표팀 주전 모두 ´새 얼굴´, 《경향뉴스》 2009년 2월 23일
  16. ‘실력 위주!’ 광저우 AG 최종명단 24명 확정, 《조이뉴스 24》 2010년 9월 6일
  17. ‘4년 연속 선두권’ SK, AG 대표팀에서도 위력, 《OSEN》 2010년 9월 6일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