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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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우
Jeong Keun-Woo
한화 이글스 No.8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2년 10월 2일(1982-10-02) (36세)
출신지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신장 172 cm
체중 8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2루수, 유격수, 1루수, 우익수, 좌익수
프로 입단 연도 2005년
드래프트 순위 2005년 2차 1라운드(SK 와이번스)
첫 출장 KBO / 2005년 4월 2일
수원현대
획득 타이틀
계약금 1억 4,000만원
연봉 7억원 (2018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년
WBC 2009년, 2013년
프리미어 12 2015년
아시안게임 2006년, 2010년
월드컵 2003년
대륙간컵 2002년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8 베이징 단체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로스앤젤레스 단체전
아시안 게임
2006 도하 단체전
2010 광저우 단체전
프리미어 12
2015 일본-중화민국 단체전

정근우(鄭根宇, 1982년 10월 2일 ~ )는 KBO 리그 한화 이글스내야수이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부산고등학교 시절 동갑내기인 추신수, 이대호, 김태균과 함께 제 19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국가대표팀으로 함께 발탁되어 우승을 이끌었다.[1] 부산고등학교 시절 부상으로 인해 3차례나 팔꿈치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그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으로 인해 고교 졸업 후 프로 구단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지 못해 당시 고려대학교 야구부 이종도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발이 빠르고 재치가 좋아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재학 시절에도 주로 상위 타선을 맡으며 대학선수를 대표하는 여러 대회의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활약했다. 제 15회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2]35회 야구월드컵 대회,[3][4] 제 2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등 많은 국제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향상시켰다.[5][6][7]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5년 시즌[편집]

2004년 6월에 열린 2005년 SK 와이번스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4,000만 원, 연봉 2,000만원에 입단하였다.[8] 입단 첫 해 당시 감독이었던 조범현은 그가 톱 타자로서의 자질이 있다며 상무 야구단에서 막 복귀한 조동화와 함께 기대를 걸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연습 경기때부터 빠른 발과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 거기다 공격력까지 겸비한 플레이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때 당시 SK 와이번스는 기존 3루수 안재만을 FA를 선언하여 이적한 김재현의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에 보냈기 때문에 3루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해 입단 동기로 고교야구 최고 선수, 팀의 거포 타자로 기대를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던 최정과 함께 3루를 놓고 경쟁을 펼쳤다.[9] 시즌 초에 1번 타자로 활약을 했지만 시즌 중반부터 주춤하면서 그 무렵 컨디션이 좋았던 김민재와 타순을 바꾸며 주로 하위 타선에 배치되었다. 2005년 5월 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당시 두산 베어스 소속이었던 나주환이 팀 사정으로 포수로 출장하면서 2루 도루를 시도하다가 완벽한 송구로 아웃당한 적도 있다.[10]

2006년 시즌[편집]

시즌 초에는 외야수로 전업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주전 2루수 정경배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시즌 중반부터 2루수로 기용되면서 점차 자리잡게 되었다. 특유의 근성, 재치있는 발빠른 플레이로 팀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런 모습에 감독의 신임을 얻었다.[11][12] 이 해 열린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게 되었지만, 동메달에 그쳤다. 프로 2년차에 2루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여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시즌 내내 이종욱과 도루 경쟁을 함으로써, 2년차임에도 불구하고 45개의 도루로 리그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이렇듯 신인으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면서 연봉이 150% 인상되어 팀 최고 인상률을 기록하였다.[13]

2007년 시즌[편집]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성근 감독은 주전, 비주전이 아닌 "전원 야구"와 끊임없는 내부 선수들간의 '무한 경쟁'을 바탕으로 이른바 'SK 야구'를 실현시켰다.[14] 이 시즌에서 그는 자신의 포지션인 2루수에서 유격수로 변신을 꾀하면서, 방해석이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격수비 자세가 익숙치 않은 탓에 자주 실책을 범했고, 그로 인해 수비 지적을 외부에서도 많이 받기도 하였다. 수비 불안으로 한동안 대타 및 지명타자로 출장하였지만 감독은 그런 그를 꾸준히 기용하면서 3할을 넘는 타율로 팀의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15] 규정 타석을 채우면서 이현곤과 함께 타격왕을 두고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프로 데뷔 이후 처음 3할대(0.323)의 타율을 기록하였고,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유격수 및 2루수로 출장하여 한국시리즈 1, 2차전의 8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모습에서 3차전부터 톱타자로서의 제 몫을 해주었다. 6차전에선 역전 투런 홈런을 날리며 그 경기 'MVP'가 되면서 데뷔 후 첫 팀 우승을 이루어냈다.[16] 이 해 팀 선배 박경완에 이어 타자 중 연봉 고과 2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우승 직후 결혼식을 올렸으며 주례는 김성근 감독이 맡았다. 애제자의 앞날을 축복하는 마음이 담긴 주례사 일부이다.[17]

내게는 ‘8’이 행운의 숫자였다. 내가 SK 감독직을 맡은 날이 작년 10월 8일이고, 정규리그 우승을 한 날은 올해 9월 28일이다. 또 한국시리즈 6차전에 역전 홈런을 친 선수가 바로 등번호 ‘8번’의 그였다.

2008년 시즌[편집]

2007년에 이어 3할 타율을 유지하며 40도루를 하였고, 불안했던 수비가 좋아지면서 원래 포지션인 2루로 돌아와 주전 2루수로서 내야의 중심을 잡게 되었다. 2008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이종욱의 안타성 타구를 잡아 병살 처리를 하며, 매 경기 호수비를 통해 팀을 다시 정상으로 올려놓는 데 일조하였다. 또 이 해에 열린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는 데 큰 활약을 하여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도하 참사의 아픔을 씻어 내며 병역도 해결하였다.[18]

2009년 시즌[편집]

시즌 초 발목이 좋지않아 어려움이 있었으나, 곧 회복되어 시즌 중반까지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며 김현수와 함께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3할 5푼의 고타율과 함께 득점 1위, 도루 2위, 최다 안타 2위를 기록하며 팀에선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각광받았고, 이 기록들은 SK 와이번스 역사상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7 시즌부터 3년 연속 3할대 타율, 2008 시즌부터 2년 연속 최다 안타 부문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 타자임을 증명하였다. 3월에 열린 WBC에도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보여주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이 해 팀은 시즌 성적 2위로 플레이 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하였으나 아쉽게 KIA 타이거즈에 석패하며 우승 3연패는 달성하지 못하였다.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내부 평가 덕분에 야수 연봉 고과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2006년에 이어 두 번째로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19]

2010년 ~ 2011년 시즌[편집]

적재적소에 도루를 하고 상대팀의 추격의 흐름을 끊는 호수비로 팀 우승에 기여하였고,[20]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범위, 더불어 특유의 점핑 송구는 지난 시즌에 비해 월등히 좋아져 2루에서의 실책을 줄였다. 이를 바탕으로 2010년 아시안 게임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우승에도 기여하여 도하에서의 나쁜 기억을 완전히 털어 냈다.[21] 더불어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타자 연봉 고과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1년에는 끊임없는 부상에 시달리며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시즌 초반부터 공에 머리를 맞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고, 7월에는 왼쪽 늑골 통증으로 4년만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 복귀 후에도 허리 통증이 재발해 8월 한 달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와 준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1번 타자로 나서며 공격을 이끌고, 팀을 플레이오프로 직행시켰다. 더불어 팀 사상 첫 5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도 이끌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17타수 9안타 타율 0.529를 기록하며 준PO MVP로 선정됐다. 그의 포스트시즌 MVP는 데뷔 이래 처음이다.[22]

2013년 시즌[편집]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는 작년에 이어 재신임되었던 박정권이 주장 역할로 인해 스프링 캠프와 시범 경기에서 개인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해 그의 부담감을 덜어 주고자 하였고, 이에 따라 그가 주장직을 이어받았다.[23]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14년 시즌[편집]

2013 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하였으나 11월 16일까지 가능한 우선 협상 기간 중 3차 협상까지 이견이 생겨 협상이 결렬되었고, 곧바로 다음 날 4년 총액 70억원(계약금 32억, 연봉 7억, 옵션 7억)의 조건으로 한화 이글스에 이적했다.[24] 그러나 그 해 6위를 기록한 SK 와이번스에서 그의 보상 선수를 한화 이글스로부터 지명하려고 했지만 야구 규약 163조의 내용인 '단일 구단이 계약서상 동일한 날짜에 2명 이상의 타 구단 선수와 계약하는 경우 보상선수를 선택하는 구단의 순서는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하고, 계약 선순위 구단의 보상이 종료된 후 후순위 구단이 보상을 개시한다'는 내용에 따라 8위를 기록한 KIA 타이거즈가 보상선수 지명 우선권[25]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SK 와이번스에서도 보상 선수로 관심을 보였던 포수 한승택KIA행을 확정했다. 이로 인해 SK에서는 보호 선수 제외 명단을 검토한 결과 “한화 이글스에서 데려올 선수가 없다”며 결국 그의 보상 선수 지명을 포기하고 2013년 연봉의 3배인 16억 5,000만원의 FA 보상금만 받기로 했다.[26] 2013년 FA로 이용규와 함께 한화 이글스로 온 그는 2011년부터 기동력 자체가 없던 한화 이글스에서 확실한 기동력을 지닌 테이블 세터 역할을 해 줄 것과 두 선수 모두 한국 프로야구의 전성기 때 국가대표 출신이라 시즌 시작 전부터 팬들에게 매우 큰 기대를 모았다. 특히 그는 오키나와에서의 스프링 캠프에서도 능청스러운 익살과 장난끼로 선수단에 빠르게 녹아들었고 훈련 도중에도 파이팅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수단 내의 주전 자리를 넘겨주는 위기 의식과 경쟁심을 부추겨주면서 선수단의 사기를 이끌어주면서 FA 효과가 벌써 나타난다고 할 정도였다.[27] 2014년 첫 시범 경기에서 한화 이글스 팬들은 국가대표 2루수이자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의 리모델링으로 포수 뒷 자리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보기 위해 시범 경기가 시작하기 2~3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었고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팬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면서 환영했다. 정규 시즌이 시작되자 그는 이용규, 피에 사이에 낀 삼중 테이블 세터로 기용했는데 출루율은 높았으나 타율이 낮았다. 4월 중반부터 김태균이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응용은 그가 SK 와이번스 시절 3번 타자를 해 본 경험이 있다는걸 알고 3번에 기용하고 이와 더불어 피에도 5번에 기용하면서 그와 김태균-피에인 새로운 클린업 트리오를 결성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기동력을 갖추고 타율은 낮았으나 높은 출루율을 자랑했던 그가 출루를 하면 어떻게든 이닝을 끝내기 위해 김태균과 정면 승부를 할 수 밖에 없었고 홈런은 없지만 정교한 타격을 자랑하던 김태균으로 선취점을 얻었다.[28]

2015년 시즌[편집]

12홈런을 기록하며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역대 최초 10년 연속 20도루를 기록하였다.

2016년 시즌[편집]

2016 시즌 한화 이글스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18홈런을 기록하며 2015년에 기록한 자신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고, KBO 리그 최초 11년 연속 20도루를 기록하였다.

2017년 시즌[편집]

2017년 8월 20일 롯데전에서 통산 350도루를 달성함과 동시에 왼팔 측부 인대 파열 및 근육 손상을 입어 반깁스를 하게 되었고 이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되었다.[29]

2018년 시즌[편집]

2017 시즌 후 FA를 선언했다. 2018년 1월 24일 2+1년 35억원에 FA 계약을 맺고 잔류하였다.[30] 2018년 9월 28일 두산전에서 유재유를 상대로 끝내기안타를 쳐내며 팀승리를 이끌었다.[31]

빈볼[편집]

2014년 4월 2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정찬헌이 몸쪽 어깨에 맞는 사구를 던졌으나 선배인 그한테 사과의 제스쳐를 안 하자 아픈걸 참으면서 1루로 가던 그는 무표정으로 걸어나갔고 김태균이 유격수 땅볼을 치자 그는 1루로 가는 주자를 살리면서 병살 플레이를 막기 위해 유격수오지환한테 유니폼이 찢어지고 무릎에서 피가 보일 정도의 깊숙한 태클을 걸었고 결국 송구 실책으로 김태균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7회 초 수비를 하기 위해 한화 이글스 야수진들이 수비 위치로 이동할 때 LG 트윈스이병규가 그의 주루 플레이에 항의를 하자 사구를 맞고 사과도 못받은 그는 이에 대해 반박하였고 8회 말에 정찬헌은 그의 타석 때 맞혔던 곳을 시속 146km짜리의 직구로 다시 맞혔고 결국 양 팀은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주심은 결국 정찬헌에게 퇴장 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정찬헌은 정규시즌 1호 퇴장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3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편집]

2006년 아시안 게임[편집]

신인 2년차로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기에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다. 이용규와 함께 테이블 세터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중화 타이베이(중화민국)와의 대결에서 2삼진을 포함해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그 해 국가대표팀은 2006년 최다 안타를 기록했던 이용규, 신인답지 않게 대담한 모습을 보여 주었던 괴물투수 류현진 등이 출전했지만 동메달에 그쳐 "도하 참사"라는 굴욕을 맛보았다. 당시 그는 이용규, 이택근과 함께 '국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을 기용한 게 패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 5경기 출장, 20타수 7안타, 3타점, 8득점, 3도루, 4사구 4개, 타율 0.350

2008년 하계 올림픽[편집]

미국전에서 9회 진갑용의 대타로 나와 3루수 옆을 스치는 2루타를 때려내며 출루, 동점을 만드는 홈 슬라이딩으로 극적인 역전을 하는데 일조했다. 캐나다와의 경기에서도 3회 좌월 솔로 홈런을 뽑아내며, 이 홈런으로 대표팀이 1-0으로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루를 제외한 내야 모든 자리를 맡아가며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여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고 병역을 해결했다.

  • 8경기 출장, 29타수 9안타(1홈런), 1타점, 5득점, 1도루, 타율 0.310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3월 6일 도쿄 돔에서 열린 예선 1라운드 대만전에서 6회 말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 9경기 출장, 24타수 7안타(1홈런), 2타점, 7득점, 1도루, 4사구 2개, 타율 0.292

2010년 아시안 게임[편집]

첫 경기인 대만전부터 안타를 치며 이어 동료 추신수의 홈런으로 1득점을 하였고 다음 타석에 들어서서도 역시 안타를 친 후 또다시 추신수의 홈런으로 순식간에 4점을 내는 데 기여하였다. 예선 3차전 파키스탄 경기에서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 출전하지 않고, 조동찬이 9번 타자 겸 2루수로 대신 출장하였다. 그 외 모든 경기에서 2번 타자 및 2루수로 출장하여 팀이 필요로 할 때 안타를 치고 안정적인 수비로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는 데 기여하였다.

  • 4경기 출장, 16타수 9안타, 3타점, 6득점, 1도루, 4사구 3개, 타율 0.563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3경기 출전해서, 11타수 무안타로 부진했고 특히 대만전에서는 대승을 거둬야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두 차례나 횡사를 당하여 1라운드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2015년 WBSC 프리미어 12[편집]

WBSC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데에 일조하여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수상[편집]

주요 기록[편집]

별명[편집]

땅볼을 많이 쳐서 '땅근우', 침을 많이 뱉어서 '침근우'라고 불린다.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타율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도실 볼넷 사구 삼진 병살 실책
2005 SK 0.193 52 88 11 17 2 0 0 5 4 2 4 4 13 3 7
2006 0.284 120 430 69 122 19 4 8 42 45 10 36 4 60 3 8
2007 0.323 111 341 62 110 24 2 9 44 24 10 35 6 44 6 20
2008 0.314 124 491 73 154 20 4 8 58 40 20 46 3 53 9 15
2009 0.350 127 480 98 168 29 4 9 59 53 13 67 11 55 8 16
2010 0.305 128 485 75 148 25 2 2 48 33 13 47 8 51 9 13
2011 0.307 90 326 60 100 19 0 6 40 20 9 38 4 37 10 4
2012 0.266 127 467 53 124 13 4 8 46 22 12 47 6 33 10 9
2013 0.280 112 407 64 114 19 3 9 35 28 11 50 7 48 6 6
2014 한화 0.295 125 464 91 137 28 5 6 44 32 3 66 9 56 11 12
2015 0.316 126 468 99 148 30 2 12 66 21 6 61 8 66 14 10
2016 0.310 138 575 121 178 31 2 18 88 22 6 60 9 58 14 16
2017 0.330 105 391 73 129 22 0 11 46 6 6 32 10 48 12 11
통산 13시즌 0.304 1485 5413 949 1649 281 32 106 621 350 121 589 89 622 115 147

참조[편집]

  1.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한국, 호주 꺾고 결승 진출 《한국일보》 2000년 8월 13일
  2. 대륙간컵야구 출전선수 24명 확정 《연합뉴스》 2002년 10월 21일
  3. 야구월드컵 출전 선수 확정 《연합뉴스》 2003년 9월 9일
  4. -월드컵야구-한국, 콜드게임으로 첫 승 《연합뉴스》 2003년 10월 16일
  5. 세계대학야구대회 참가 국가대표팀 대만으로 《세계일보》 2004년 7월 22일
  6. <대학야구> 한국 캐나다 꺾고 예선 첫 승 《스포츠서울》 2004년 7월 25일
  7. 한국, 멕시코 꺾고 3승 1패 《스포츠서울》 2004년 7월 29일
  8. <프로야구소식> SK, 신인 정근우와 입단 계약 《연합뉴스》 2004년 8월 19일
  9. 신인들 전훈캠프 주전경쟁 후끈 《경향신문》 2005년 3월 1일
  10. '포수 대역' 나주환, 위기의 두산 살리다 《프레시안》 2005년 5월 2일
  11. 정근우, SK의 새 역사 쓰다 《오마이뉴스》 2006년 8월 24일
  12. 정근우, '작은 고추가 맵다' 《스포츠서울》 2006년 9월 28일
  13. ‘골든 글러브 수상’ SK 정근우, 연봉 150% 인상 대박 《마이데일리》 2006년 12월 20일
  14. <스타와 일촌맺기 ⑦> SK 정근우 《조이뉴스24》 2007년 1월 8일
  15. ‘발 재간 연장승 이끈’ 정근우 "감독님의 전폭적 믿음 보답" 《조이뉴스24》 2007년 8월 11일
  16. <KS6차전> 정근우·김재현 홈런폭발, SK 창단 첫 KS우승 《뉴시스》 2007년 10월 29일
  17. <도쿄메일> 첫날밤 후 생이별 정근우, 신부에‘8·8한 선물’준비 《스포츠칸》 2007년 11월 7일
  18. '타격 4위' 정근우, 대표팀 공·수 최고 멀티플레이어 《OSEN》 2008년 8월 19일
  19. <이효봉의 스타탐구> SK 정근우 “날 키운건 8할이 다르빗슈였다” 《dongA.com》 2009년 12월 9일
  20. '제 2의 MVP' 정근우, 타격뿐 아니라 수비도 일품[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스포츠서울》 2010년 10월 20일
  21. <AG> '100% 출루' 정근우, '승리 길' 닦았다 《OSEN》 2010년 11월 13일
  22. <스타 3D 분석> ‘넘버원 사나이’ 정근우, 가을을 휘젓다! 《스포츠동아》 2011년 10월 13일
  23. SK 주장, 박정권에서 정근우로 교체… 왜? 《마이데일리》 2013년 3월 19일
  24. 한화, FA 정근우 70억-이용규 67억에 나란히 영입 - 파이낸셜뉴스
  25. 정근우 보낸 SK, 보상선수 누구? '관심 집중' - 뉴스1
  26. 보상선수 포기한 SK의 한탄 “데려올 선수가 없다” - MK스포츠
  27. "정근우 보고 배워라" 한화, 벌써부터 FA 효과 - OSEN
  28. 3번 정근우-4번 김태균 홈런 빈곤에도 `공포의 시너지', 그 이유는? - 스포츠동아
  29. 한화의 악재, 정근우 팔꿈치 검진 결과 인대 파열 - 스포츠조선
  30. 정근우 한화 잔류, 2+1년 35억원 FA 계약 체결 - OSEN
  31. '정근우 10회 끝내기' 한화, 두산 꺾고 3연승 - 마이데일리
  32. 정찬헌, 정근우 연속 빈볼...한화-LG '벤치클리어링' 勃發- 한국일보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