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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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삼
Jang Won-Sam
삼성 라이온즈 No.13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3년 6월 9일(1983-06-09) (32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신장 181 cm
체중 81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6년
드래프트 순위 2002년 2차 11라운드(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2006년 4월 11일
수원삼성전 선발
계약금 2억 5천만 원(현대 입단시)
30억 원(FA 계약)
연봉 7억 5,000만 원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8 베이징
WBC 2009년·2013년
아시안게임 2006 도하
아시아선수권 2007 타이완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게임
2006 도하 야구
올림픽
2008 베이징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로스앤젤레스 2009 WBC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7 타이완 야구

장원삼(張洹三, 1983년 6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현재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며 포지션은 투수이다. 원삼이란 이름을 영어로 하는 원쓰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출신학교[편집]

프로 입단 전[편집]

경상남도 창원 출신으로 사파초등학교신월중학교를 거쳐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마산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경성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1]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3학년 때인 2004년 제 2회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를 통하여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 캐나다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승리 투수가 됐다. 당시 대한민국 팀은 3승 2패로 4강에 올랐지만 일본에 패해 3위를 기록했다.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시절에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루기도 했다. 경성대학교 재학 시절 김기표와 입학 동기생이다. 입단 당시 좌원삼, 우기표로 불릴만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경성대학교 체육학과 졸업 후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변화구 무브먼트와 제구력이 장점인 점을 주 무기로 12승 10패 평균자책 2.85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으나, 그 해 18승 6패 1세이브를 거두어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한 '괴물' 신인 좌완 투수한화류현진에게 밀려 신인왕 수상에는 실패했다. 데뷔 첫 해 도하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나, 동메달에 그쳤다.

2007년 시즌 초반에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으나 여름부터 갑작스런 난조와 부진을 보이면서 2년차 징크스를 겪었지만, 시즌 9승 10패 평균자책 3.63으로 팀 내 좌완 투수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히어로즈 시절[편집]

2008년 3월 10일 자금난으로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선수단을 승계하여 새로 창단한 우리 히어로즈에서 주축 선발 투수로 성장하여 2008년 12승 8패에 평균 자책 2.85를 기록했다. 그 해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장원삼은 8월 20일 네덜란드와의 예선 리그 마지막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8이닝 동안 7K를 잡아 내며 콜드 완봉승을 거두었다.[2] 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함에 따라 장원삼은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활약하였으나, 그 전 해에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와의 트레이드 파동 등과 맞물려 정규 시즌에서 후유증을 겪으면서 시즌 초반부터 심한 슬럼프와 부진을 겪었다. 이후에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2군으로 내려가서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2009년 시즌 기록은 평균자책 5.54에 4승 8패를 기록했다.

트레이드 논란[편집]

좌완 선발 투수가 부족하였던 삼성 라이온즈와 스폰서 문제로 운영난을 겪었던 히어로즈 양 구단의 사정과 맞물려 2008년 11월 14일 현금 30억 원에 좌완 불펜 투수 박성훈을 상대로 히어로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전격 현금 트레이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다른 6개 구단은 "'히어로즈의 5년 간 현금 트레이드 및 구단 매각 금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원삼을 현금 트레이드한 것은 구단 간 신의를 저버린 처사"라며 KBO에 트레이드 승인을 그 달 내 열릴 예정인 이사회까지 보류할 것을 요청했다.[3]

11월 15일 하일성 사무총장 주재로 KBO의 이사회가 열려 이 트레이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고, 11월 17일 당시 신상우 총재가 참석한 상태에서 트레이드 승인을 결론짓기로 하였으나,[4]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11월 19일 다시 이사회가 열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되었지만 결정을 11월 20일로 다시 미뤘고, 11월 20일에서도 또 다시 결정이 미뤄졌다. 11월 21일까지 결정이 총 5차례 미뤄진 끝에, 최종적으로 신상우 총재는 장원삼의 트레이드 승인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 일은 KBO 리그 27년 역사상 최초로 구단 간 트레이드 승인이 거부된 사례이다.[5] 이 사건 이후 신상우 총재는 사퇴하였다.

그러나 2009년 시즌이 끝나고 투수 이현승외야수 이택근의 트레이드설이 들리면서 삼성 라이온즈에서 다시 영입을 추진하게 되었다. 2009년 12월 30일 히어로즈KBO에 구단 가입금을 완납하여 정식 구단 자격을 얻게 되자, 히어로즈는 장원삼을 삼성 라이온즈로 보내고, 삼성에서 현금 20억원을 포함하여 좌완 투수 박성훈과 우완 투수 김상수를 받아 오는 현금 트레이드를 단행하였다.[6] 이 트레이드는 넥센 히어로즈 가입금 납부 문제 해결과 맞물리면서 정식 승인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10년[편집]

2009년 다승 1위 윤성환이 부상으로 난조를 보이며 무너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은 2010년 삼성 라이온즈 선발진에서 제 역할을 했고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삼성 라이온즈 이적 후 후반기에 10승에 달성하는 등 윤성환의 공백을 완벽히 막아 주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강민호넥센 히어로즈더그 클라크, KIA 타이거즈김상현 이렇게 3명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2010년 10월 19일 대구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을 통하여 데뷔 첫 한국시리즈에 선발 등판했으나, SK의 스윕을 막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으며, 3회까지 호투하다가 4회 초에 급격히 무너져 3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7]

2011년[편집]

KIA외야수 이용규와 더불어 그도 홀수 연도 징크스[8] 를 갖고 있다는 특징이 있으며, 2011년에는 시즌 초 어깨가 좋지 않아 안지만이 그가 복귀하기 전까지 잠시 선발을 맡기도 했다. 어깨 통증으로 2011년에는 1군에 늦게 합류하여 느리게 페이스를 찾은 관계로 8승 8패 평균자책 4.15에 머물렀지만 2011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삼진쇼(5⅓이닝 동안 10탈삼진)를 보여 주며 설욕의 발판을 만들었고, 데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았다.[9]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선발로 2승을 기록, 삼성 라이온즈 최초의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MVP에 선정, 첫 개인 타이틀을 따 냈다.[10]

2012년[편집]

시즌 초반은 좋지 않았다. 특히 4월 17일 잠실 두산전에서 1이닝 8실점하며 최악의 피칭을 하였다. 그러자 류중일감독은 임시 불펜요원을 맡겼다. 하지만 불펜에서 2경기 1승 1홀, 평균자책점 0.00으로 재신임을 보인 장원삼은 다시 선발로 돌아가 좋은 활약을 보였다. 최종 승수는 17승. 결국 당시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활약했던 넥센 나이트에게 1승 차이로 생애 첫 다승왕을 수상하였다. 다승왕 등극에는 10월 4일 손주인의 역전 적시타가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점 0.69로 활약하며 시즌 종료 후에는 나이트를 제치고 생애 첫 투수 골든글러브도 수상하였다. 하지만 골든글러브 수상에 대해서는 나이트보다 평균차책점, 이닝 등에서 밀려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즌 초반 최악의 부진을 딛고 일어선 대단한 한해였다.

2013년[편집]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류중일 감독과 함께 참가했다. 2013년 8월 25일 사직 롯데전에서 10승을 거두어 홀수 해 처음으로 두자리 수 승을 거두었지만[11], 평균 자책점이 4점대로 높은 편이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호투했고, 2013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4년 간 60억 원(연봉 7억 5,000만 원, 계약금 30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잔류했다.

2014년[편집]

2014시즌은 타고투저가 극심화된 시즌이었다. 시즌 최종성적은 24경기 11승 5패, 평균자책점 4.11. 타고투저임을 가만하면 4.11이라는 평균자책점은 준수해보이지만 다른 지표들을 보면 좋지 않았다. 선발로만 24경기 등판해 129 1/3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는 경기당 약 5 1/3이닝 밖에 투구하지 못하였다. 탈삼진 갯수도 63개로 9이닝당 4.4개로 적었다. 피안타율도 3할에 가깝고, 피홈런 16개를 맞았다. 타고투저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예전만한 구위를 가지지 못하였고 구속도 많이 줄었다. 전년도에 145km까지도 쉽게 던졌던 직구 구속이 133~138km로 머무르는 등 좋지 못했지만 노련한 피칭으로 실점을 최소화하였다.

2015년[편집]

홀수해 징크스가 맞긴 한 것일까? 결국 2015시즌을 보며 맞았다고 해도 될 것같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승 9패, 평균자책점 5.80. 시즌 중반 너무 부진하자 류중일감독에게 강한 질책을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첫 경기 스타트는 좋았다. 첫 등판이었던 4월 7일 대구 롯데전에서 6 1/3이닝 1실점으로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다. 이는 역대 좌완투수로서는 2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이후 경기들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며 2군행을 요청하였고 말소가 되었다. 하지만 2군행 이후는 나름대로 괜찮았다. 후반기에는 12경기에서 5승 2패, 평균자책점 4.15였다. 놀라운 것은 평균자책에 비해 0.256의 낮은 피안타율이었다. 하지만 시즌 최종 피홈런 갯수는 29개로 피홈런 공동1위라는 불명예에 올랐다. 마지막 등판이었던 10월 5일 광주 KIA전에서 6이닝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시즌 10승과 KBO역대 5명 선발 10승투수 배출이라는 진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하지만 FA 대박 투수로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 시즌이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편집]

주요 기록[편집]

통산 기록[편집]

Years Team ERA G GS CG SHO W L SV HLD WPCT TBF IP H HR BB HBP SO R ER AVG WHIP QS
2006 현대 2.85 29 29 0 0 12 10 0 0 0.545 743 183 1/3 146 19 63 5 142 60 58 0.223 1.14 19
2007 3.63 30 30 0 0 9 10 0 0 0.474 719 168 2/3 152 16 75 3 132 80 68 0.241 1.35 13
2008 히어로즈 2.85 27 27 2 2 12 8 0 0 0.600 674 167 1/3 145 9 57 2 126 54 53 0.240 1.21 14
2009 5.54 19 19 0 0 4 8 0 0 0.333 411 91 108 17 31 6 60 57 56 0.294 1.53 7
2010 삼성 3.46 29 28 0 0 13 5 0 0 0.722 631 151 139 13 44 5 115 62 58 0.244 1.21 12
2011 4.15 25 21 0 0 8 8 0 0 0.500 509 115 139 13 37 0 68 58 53 0.303 1.53 9
2012 3.55 27 25 0 0 17 6 0 1 0.739 649 157 143 9 38 9 127 64 62 0.242 1.15 14
2013 4.38 27 26 1 0 13 10 1 0 0.565 658 154 165 21 42 9 104 85 75 0.277 1.34 14
2014 4.11 24 24 0 0 11 5 0 0 0.688 562 129 1/3 149 16 37 5 63 70 59 0.295 1.44 11
2015 5.80 26 25 0 0 10 9 0 0 0.526 599 136 2/3 151 29 50 1 107 96 88 0.281 1.47 9
통산 10시즌 3.90 263 254 3 2 109 79 1 1 0.580 6155 1453 1/3 1437 162 474 45 1044 686 630 0.261 1.31 122

시즌 순위[편집]

  • 2006시즌 : 평균자책점 5위, 다승 공동7위, 이닝 6위, 탈삼진 공동4위, WHIP 6위
  • 2007시즌 : 평균자책점 10위, 이닝 6위, 탈삼진 5위
  • 2008시즌 : 평균자책점 5위, 다승 공동4위, 승률 10위, 이닝 5위, 탈삼진 4위, WHIP 4위, QS 공동7위
  • 2009시즌 : x
  • 2010시즌 : 평균자책점 6위, 다승 공동7위, 승률 4위, 탈삼진 8위, WHIP 3위
  • 2011시즌 : x
  • 2012시즌 : 다승 1위, 승률 4위, 탈삼진 공동7위, WHIP 4위
  • 2013시즌 : 다승 공동3위
  • 2014시즌 : 평균자책점 9위, 다승 공동10위, 승률 공동4위
  • 2015시즌 : x

통산 순위[편집]

  • 평균자책점(기준 : 1000이닝 이상 투구) : 49위
  • 다승 : 공동 17위(좌완투수 2위)
  • 이닝 : 25위
  • 탈삼진 : 22위

커리어[편집]

참조[편집]

  1. 히어로즈 왼손 투수 3인방(2) 장원삼 《스포츠 2.0》, 2008년 7월 22일 작성
  2. 거침없는 7전 7승…한국, 장원삼 7K 쾌투 경향신문, 2008년 8월 20일 작성
  3. “6개 구단 "KBO, 장원삼 트레이드 승인 보류해야". 연합뉴스. 2008년 11월 14일. 
  4. “KBO 장원삼 트레이드 승인여부 17일 결정 예정”. 쿠키뉴스. 2008년 11월 15일. 
  5. “KBO “장원삼 트레이드 불가””. 시티. 2008년 11월 21일. 
  6. “히어로즈, KBO에 대규모 트레이드 승인 요청”. 연합뉴스. 2009년 12월 30일. 
  7. 비룡군단, 삼성 꺾고 2년 만에 KS 우승 '통산 3번째 왕좌' - 뉴시스
  8. 장원삼, 아시아 시리즈 우승 '홀수 해 징크스 떨쳐' - 스포츠서울
  9. '우승 주역' 장원삼, 5년 불운 떨쳐낸 영광의 상처 - 아시아경제
  10. 장원삼 혼신의 역투..'MVP' - 연합뉴스
  11. 장원삼의 2년 연속 10승 달성이 주는 의미는 - OSEN

바깥 고리[편집]

이 전
윤석민
제32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2012년
다 음
 손승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