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니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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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니퍼트
Dustin Nippert
Dustin Nippert at Doosan Bears in 2015.jpg

두산 베어스 시절의 니퍼트

기본 정보
국적 미국의 기 미국
생년월일 1981년 5월 6일(1981-05-06) (36세)
출신지 웨스트버지니아 주 휠링
신장 203 cm
체중 102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2년
드래프트 순위 15라운드 459순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첫 출장 MLB / 2005년 9월 8일
KBO / 2011년 4월 2일
잠실LG전 선발
마지막 경기 MLB / 2010년 10월 3일
KBO / 2017년 10월 30일
잠실KIA전 선발
획득 타이틀
계약금 100,000달러
연봉 2,100,000달러 (2017년)
경력


더스틴 데이비드 니퍼트(Dustin David Nippert, 1981년 5월 6일 ~ , 웨스트버지니아 주 휠링)는 미국 출신의 야구 선수이자,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투수이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1981년 5월 6일, 웨스트버지니아 주 휠링의 한 병원에서 출생했으며, 작은 마을인 오하이오 주 빌스빌에서 자랐다.[1] 아주 어릴 때부터 늘 스포츠를 하거나 자연에서 놀았고, 리틀 리그에서 뛰었으며, 빌스빌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농구 팀에 속해 있었다.[1] 고등학교 졸업 후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이 끝난 여름에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했고, 그 때 그의 투구를 지켜본 그 대학교 감독의 제안으로 2001년 가을 학기에 그 곳으로 전학을 갔다.[1]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편집]

2002년 메이저 리그 드래프트 15라운드 전체 459순위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지명되었다. 2002년 시즌, 그는 애리조나의 루키 리그 팜 팀인 파이오니아 리그의 미줄라 오스프레이에서 프로 첫 시즌을 보냈고, 55⅔이닝동안 4승 2패, 1점대 평균자책점, 77탈삼진을 기록했다.[2] 2003년에는 싱글 A로 승격되어서, 미드웨스트 리그의 사우스벤드 실버호크스에서 95⅔이닝 동안 6승 4패, 2점대 평균자책점, 96탈삼진을 기록했다.[2] 2004년, 더블 A로 승격되어 텍사스 리그 엘파소 디아블로스에서 뛰다 그 해 여름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1] 그 해 성적은 71⅔이닝 동안 2승 5패, 3점대 평균자책점, 73탈삼진을 기록했다.[2] 2005년 시즌 여름 다시 더블 A로 복귀했고, 서던 리그 테네시 스모키스에서 118⅓이닝동안 8승 3패, 평균자책점 2.36, 97탈삼진을 기록했다.[2] 그리고 그 해 9월 3일, 더블 A에서의 활약으로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고,[3] 9월 8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홈 구장인 PNC 파크에서 선발로 등판해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5이닝 5피안타 2볼넷 3실점으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4] 9월 16일,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홈 경기에서 첫 선발 등판했으나 4.2이닝 동안 4피안타 6볼넷 5실점으로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4] 9월 26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LA 다저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동안 1피안타 5볼넷 6탈삼진으로 메이저 리그 데뷔 첫 승을 거두었다.[4] 2006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그는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선정한 전체 67위, 애리조나 내에서 7위의 유망주로 뽑혔다.[5] 2008년 3월 28일 텍사스 레인저스의 호세 마테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출처 필요]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편집]

2010년 7월 19일 코메리카 파크에서 치러진 디트로이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그는 6회에 상대 타자 오스틴 잭슨의 타구에 머리를 맞고 마운드 위에 쓰러졌고, 타구는 3루수를 넘으며 2루타가 되었다. 그는 그 즉시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헨리 포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CT 검사 결과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6][7] 하지만 팀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그를 15일 부상자 명단에 올렸다.[8] 2010 시즌 후 텍사스에서 논텐더 방출되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2011년 시즌[편집]

2010 시즌 후 일본 프로 야구로 떠난 히메네스를 대신할 투수를 찾게 된 두산 베어스와 총액 30만 달러(계약금 10만 달러, 연봉 2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였다.[9] 4월 2일, LG 트윈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데뷔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10] 7월 1일에는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11] 9월 13일에는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완투승을 거두었다.[12] 10월 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했고, 이로써 팀의 시즌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에 모두 선발 등판해 승리를 따낸 투수가 되었다.[13] 그는 2011년 시즌 팀의 1선발로 자리잡으며, 이닝 2위, 다승 3위,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 2위, 승률 3위를 기록했으며, 특히 퀄리티 스타트 19회로 리그 1위를 기록해, 팀의 에이스로서 안정감 있는 투구를 했다.[14] 2011년 11월 21일에는 계약금 10만 달러와 연봉 25만 달러, 총 35만 달러에 재계약했다.[15]

2012년 시즌[편집]

2012년 시즌 초의 모습.

4월 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서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등판을 했지만, 5.1이닝동안 5실점을 기록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16]

2013년 시즌[편집]

페넌트레이스[편집]

3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등판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1회 정형식에게 3루타, 최형우에게 적시타, 박석민에게 2점 홈런을 맞으며 1회에만 3실점했지만, 오재원, 김현수의 만루 홈런에 힘입어 2년 만에 개막전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는 2013년 시즌의 유일한 개막전 선발승이었다. 2013년 시즌 투수 중 유일하게 전반기 10승 투수가 되어 전반기 다승 1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후반기가 시작되는 날 등근육 석회화 증상으로 인해 1군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2달 가랑 등판하지 못하다가 9월 20일 LG 트윈스전에 복귀하였다. 후반기 2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포스트시즌[편집]

10월 8일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로 등판 하였고, 6이닝 동안 6피안타 3실점 하며 호투하였으나 승리요건을 채우지 못했으며, 팀이 끝내기 안타로 패배하여 노디시전을 기록했다. 그 후 10월 12일에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팀이 1점차로 이기고 있던 8회에 구원 등판하여 1피안타, 1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하여 팀의 승리를 지켜냈고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10월 14일에 열린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도 팀이 3점차로 이기고 있었던 9회 구원 등판하였다. 하지만 9회말 박병호에게 동점 3점 홈런을 헌납하여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팀이 승리하여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 후 10월 19일에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5.1이닝동안 3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후 10월 25일에 열린 한국 시리즈 2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동안 무실점읋 기록했으나 승패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 후 10월 31일에 열린 한국 시리즈 6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6.2이닝 동안 6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포스트 시즌 동안 1승 1패 1세이브를 기록했다.

2014년 시즌[편집]

페넌트레이스[편집]

2014년 5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9이닝 2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확실한 삼성 라이온즈 킬러임을 재확인했다. 이 완투승은 올 시즌 리그 첫 완투이자 완투승이었다. 2014년 5월 3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였다. 2014년 6월 1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최형우, 박석민에게 백투백 홈런을 맞는 등 7이닝 4실점을 하였으나, 8회초에 호르헤 칸투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6월 1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회 박용택의 타구를 맨손으로 잡으려다 손에 직접 맞은 후 5회까지만 투구하고 내려갔다.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모든 불펜진들이 부진하여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7월 11일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패하자 투수조 미팅을 소집하여 '상황이 어렵지만 안타를 맞더라도 마운드에서 당당해지고, 동료들을 믿자'는 내용의 발언을 하였고, 관련 기사가 나간 후 타 팀 팬들도 그의 인성에 찬사를 쏟아냈다. 7월 12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7회 초에 등판하여 첫 홀드를 기록했다. 이 날은 15일 열리는 NC 다이노스 전에 앞서 투구 조정을 위해 불펜 피칭이 있는 날이었는데, 팀이 1점차로 간신히 리드를 유지하자 승리를 위해 자진해서 등판을 요청했다. 전 날 투수조 미팅에서 보여줬던 팀에 대한 책임감을 이 날의 투구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경기 이후 화요일 경기에도 선발로 등판한다고 하여 팬들은 걱정하였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며 당시 감독이었던 송일수를 비난했다. 8월 4일 등 근육통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사실상 선발에서 제 역할을 하던 유일한 선수란걸 감안하면 팀에 최대의 위기가 왔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부상 당하기 전 12경기 중 5경기를 등판하는 쌍팔년도 투수 운영으로 그의 부상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2014 시즌 WAR 4.08로 KBO 리그 전체 투수 중 3위를 기록하고 있던 에이스의 부상으로 코치진의 머리가 무거워졌다. 그를 열흘 만에 마운드에 다시 올리겠다고 선언하면서 팬들은 송일수를 비난하였다. 8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내려갔으나 9회 초 이용찬의 부진으로 순식간에 1점차로 쫓기게 되었지만, 마지막 타자인 이승엽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14년 9월 2일 베어스포티비에서 내년에도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넥센 히어로즈에 설욕하고 싶다는 의욕도 보였다. 2014년 9월 11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5이닝 6실점(5자책)으로 부진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아 시즌 12승을 기록하였고 KBO 리그 외국인 선수 중 단일팀 최다승 신기록(50승)을 달성하였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휴식기가 끝난 뒤 첫 경기인 10월 1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김병현과 명품 투수전을 벌인 결과 6이닝 1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를 내려갔고, 뒤를 이은 불펜 투수들이 깔끔하게 무실점으로 남은 이닝을 막아 시즌 13승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였다. 4일 휴식 후 10월 6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등판하여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였던 J.D. 마틴과 6이닝 101구 1실점 4피안타 3사사구 3탈삼진까지 똑같았다.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으나 11회 초 정수빈임창용을 상대로 3타점 결승 3루타에 힘입어 승리하면서 본인이 등판한 삼성 라이온즈전 7경기 전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하였다. 10월 12일 LG 트윈스 전에서 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를 치렀고,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시즌 14승을 기록하였다. 4일 휴식 후 10월 17일 시즌 최종전인 NC 다이노스전에 등판하여 15승을 하지 않을까 하는 팬들의 기대도 있었으나, 수훈선수 인터뷰를 통해 "오늘이 마지막 시즌 등판이었는데, 팬들이 끝까지 응원해주셔서 고맙다"라는 말을 하면서 10월 12일 경기가 2014 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이라고 밝혔다. 2014년 12월 29일 총액 15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맺어 2015년 시즌에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015년 시즌[편집]

페넌트레이스[편집]

당초 개막전 선발투수로 예고되었으나 가벼운 부상으로 개막전 등판이 불발되었다. 이로서 리오스의 5년 연속 개막전 선발 등판 기록 타이 도전에 실패하게 되었고 대체 선수로 마야가 등판하였다. 2015년 4월 10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이닝 1실점을 기록하였다. 4월 18일 자기 성과 거의 스펠링이 비슷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시구를 지도해주기도 했다.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했다. 그동안 삼성 라이온즈에게 워낙 강했던지라 팬들은 어제의 대패를 설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6이닝 4실점으로 2012년 8월 18일 이후 1007일 만에 삼성 라이온즈전 패전 투수가 되었다. 6월 7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1회초 브래드 스나이더를 상대하던 중 어깨를 부여잡으면서 통증을 호소하였고 결국 강판되었다. 그의 나이가 어느새 만으로 30대 중반에 접어든 점, 시즌 초반에 110구를 넘기는 투구를 여러 번 보여준 점, 아픈 부위가 어깨라는 점 등에서 팬들 및 관계자들의 많은 걱정을 샀다. 일단 강판 후에 통증이 없어졌다고는 했지만 다음 날인 6월 8일 정밀검사 결과 어깨 충돌 증후군으로 밝혀졌다. 수술이나 물리치료,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강 운동이 필요하다고 진단되었다. 6월 9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6월 17일 캐치볼을 실시하였다. 7월 15일 김태형 감독에 따르면 불펜 피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였다고 하며, 어깨가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였다. 7월 26일 kt 위즈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8월 12일 선발로 복귀한 그는 그야말로 철저히 공략당했다. 최종 성적은 3.1이닝동안 7실점으로 시즌 4패를 기록했다. 최고구속은 153km/h로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제구가 좋지 않았다. 가운데로 몰린 공이 많이 나오면서 KIA 타이거즈 타자들이 비교적 쉽게 쳐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3.1이닝은 부상으로 인해 0.1이닝만 소화하고 내려간 지난 6월 7일 넥센 히어로즈 전을 제외하면 시즌 최소 이닝이다. 8월 1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4이닝동안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3회까진 아주 완벽한 모습으로 사자킬러 명성을 되찾았지만, 4회에만 4안타를 허용하며 1실점했다. 1실점 과정중에 그에게 허벅지 통증이 찾아왔고, 결국 4회에 마운드를 내려왔다. 부상의 수렁에서 겨우겨우 벗어난 그에게 또 다시 부상이 찾아왔다는 점에서 팀에 악재가 아닐 수 없었고, 당시 투수코치였던 한용덕에 따르면 그의 공백이 열흘 이상이라고 보았다. 9월 2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해 삼성 라이온즈 킬러다운 모습을 보이며 승리를 챙겼다. 시즌 막판에 보여준 좋은 모습과 위력적인 구위에 힘입어 준플레이오프 1차전 선발투수로 낙점되었다.

포스트시즌[편집]

10월 10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다. 팀은 10회말 박건우의 끝내기로 승리하였다. 10월 18일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타선을 꽁꽁 묶으며 완봉승을 기록하면서 경기 MVP를 수상하였고, 포스트 시즌에서 KBO 리그 통산 3번째 외인 투수 완봉승을 기록했다. 덕분에 투수들이 휴식한 것도 팀의 상승세에 한 몫 하였다. 10월 23일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하며 믿을 불펜이 거의 없는 불펜을 대신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되었다. 10월 27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됨과 동시에 포스트 시즌 최다 이닝 무실점 신기록까지 기록하였다. 10월 31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7회에 유희관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렸지만 9회 1아웃까지 추가 실점 없이 삼성 라이온즈 타선을 막으며 우승을 확정지었고, 가을야구에서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중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도 보여주었다. 또한 5차전에서 2.1이닝을 책임지면서 자신의 무실점 기록을 26.2이닝으로 늘리면서 14년 만의 팀의 우승에 큰 공헌을 하였다. 포스트 시즌 최종 성적은 5경기 3승, 32.1이닝, 2실점, 4QS+,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2016년 시즌[편집]

2016년 1월 6일 전년도 연봉에서 30만 달러를 삭감하여 120만 달러에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이로써 한국에서 6년째 뛰게 되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인한 부진을 딛고 2014년 시즌 이후 2년 만에 10승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6년 9월 13일 KBO 리그 역대 최고령 20승(만 35세 4개월 7일), 최소 경기(25경기) 20승을 기록하였다. KBO 리그 역대 17번째로 20승 투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고, 선발 승으로는 8번째이다. 외국인 선수로는 2007년 리오스와 2014년 밴 헤켄에 이어 세 번째이며, 두산 베어스] 투수로는 1982년 박철순과 2007년 리오스 이후 역대 3번째 기록이다. KBO 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 3개 (다승왕, 승률왕, 최우수 평균자책점)을 따낸 것은 물론 정규시즌 MVP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하였다.

2017년 시즌[편집]

2017시즌을 앞두고, 전년도 연봉에서 90만 달러가 인상된 210만 달러에 두산 베어스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전년도 MVP였기에 2017년 기준 역대 외인 선수 최고 몸값의 대우를 받을 자격은 충분했다. 그는 이렇게 한국에서 7번째 시즌을 맞게 되었다. 3월 31일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8이닝 무실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를 시작으로 전반기에는 특급 투수의 위용을 제대로 뽐냈지만 후반기 들어서 주춤하였다. 평소 인성 좋기로 유명했으나 두 경기 연속으로 경기 중에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상대 선수를 지적하는 등 갑작스러운 부진에 신경이 예민해진 모습을 보였다. 정규 시즌동안 14승 5패,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진은 포스트 시즌에서도 이어졌다. 30이닝 넘게 무실점 행진을 해오던 대기록이 깨지고 상대 타선에게 난타를 당하면서 팬들에게 불안감을 노출시켰다. 두산 베어스는 계약금에 대한 부담으로 그를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시키긴 하였으나 협상을 계속 이어갔고, 2017년 12월 11일201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에이스 역할을 했던 린드블럼을 영입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두산 베어스를 떠나게 되었다.

별명[편집]

그의 이름과 하느님을 합쳐 '니느님'이라고 불린다.

에피소드[편집]

한국 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오리고기'이며, 경기도에 단골집도 있을 정도다. 오리고기 외에도 웬만한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하지만 전복은 먹기 싫어한다.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2005년 ARI 25 1 0 1.000 5.52 3 3 0 0 0 0 14.2 10 1 13 0 11 1 0 1 9 9 68 1.57
2006년 26 0 2 .000 11.70 2 2 0 0 0 0 10.0 15 5 7 0 9 0 0 0 13 13 51 2.20
2007년 27 1 1 .500 5.56 36 0 0 0 0 0 45.1 48 5 16 1 38 0 0 4 30 28 196 1.41
2008년 TEX 28 3 5 .375 6.40 20 6 0 0 0 0 71.2 92 10 37 3 55 1 1 1 52 51 341 1.80
2009년 29 5 3 .625 3.88 20 10 0 0 0 1 69.2 64 7 29 0 31 4 0 2 31 30 300 1.34
2010년 30 4 5 .444 4.29 38 2 0 0 0 5 56.2 61 7 34 3 47 5 0 3 28 27 262 1.68
2011년 두산 31 15 6 .714 2.55 29 29 2 1 0 0 187.0 150 8 64 0 150 10 0 10 61 53 763 1.14
2012년 32 11 10 .524 3.20 29 29 3 0 0 0 194.0 156 15 68 0 126 8 0 3 70 69 785 1.15
2013년 33 12 4 .750 3.58 19 19 1 0 0 0 118.0 108 7 34 0 104 4 0 3 52 47 482 1.20
2014년 34 14 7 .667 3.81 30 28 1 0 0 1 179.1 186 17 48 0 158 6 0 10 83 76 760 1.30
2015년 35 6 5 .545 5.10 20 16 0 0 0 0 90.0 104 4 33 0 76 4 0 4 54 51 404 1.52
2016년 36 22 3 .880 2.95 28 28 1 1 0 0 167.2 151 15 57 0 142 9 0 8 61 55 701 1.24
2017년 37 14 8 .636 4.06 30 30 0 0 0 0 179.2 175 20 77 0 161 10 0 13 88 81 782 1.40
MLB 통산 : 6년 14 16 .467 5.31 119 23 0 0 0 6 268.0 290 35 136 7 214 11 1 11 163 158 1218 1.59
KBO 통산 : 7년 94 43 .686 3.48 185 177 8 2 0 1 1115.2 1030 86 381 0 917 51 0 51 469 432 4677 1.27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타이틀 획득[편집]

KBO[편집]

참조[편집]

  1. 민훈기 (2011년 5월 5일). “[코리언드림 27]시골 마을 최초의 빅리거 더스틴 니퍼트”. 민기자닷컴. 2012년 6월 1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Dustin Nippert Minor League Statistics & History” (영어). Sports Reference, LLC. 2012년 8월 27일에 확인함. 
  3. Steve Gilbert (2005년 9월 4일). “Notes: Nippert gets Thursday start” (영어). MLB.com. 2012년 8월 28일에 확인함. 
  4. “Dustin Nippert Stats, Video Highlights, Photos, Bio” (영어). MLB.com. 2012년 8월 28일에 확인함. 
  5. “Baseball America – 2006 Top 100 Prospects: 51–100” (영어). 베이스볼 아메리카. 2006년 2월 23일. 2012년 8월 27일에 확인함. 
  6. T.R. Sullivan (2010년 7월 20일). “Nippert day-to-day after liner to head” (영어). MLB.com. 2012년 6월 10일에 확인함. 
  7. 김형준 (2010년 7월 20일). “[오늘의 MLB] (7.20) 히메네스 6실점, 16승에 실패”. 김형준칼럼. 2012년 6월 10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8. “Nippert feeling OK but headed to disabled list” (영어). AP 통신사. 2010년 7월 20일. 2012년 6월 10일에 확인함. 
  9. 양준호 (2011년 1월 12일). “두산, ‘올인 V4’ 기틀 마련”. 한국일보. 2012년 6월 1일에 확인함. 
  10. 노재형 (2011년 4월 2일). “니퍼트, "앞으로 좀더 편해져야 한다". 스포츠조선. 2012년 6월 2일에 확인함. 
  11. 박광민 (2011년 7월 1일). '첫 완봉승'니퍼트, "코치님이 휴식 주려고 8회 올라와 웃겼다". OSEN. 2012년 6월 2일에 확인함. 
  12. 송용준 (2011년 9월 13일). “니퍼트 아깝다 완봉승.. 그래도 완투승”. 세계일보. 2012년 6월 2일에 확인함. 
  13. 박현철 (2011년 10월 6일). '눈물 글썽' 니퍼트, "팬 사랑 절대 못 잊을 것". OSEN. 2012년 8월 27일에 확인함. 
  14. 권기범 (2011년 10월 6일). “복덩어리 니퍼트! QS 1위의 특급용병”. 조이뉴스24. 2012년 8월 26일에 확인함. 
  15. 박현철 (2011년 11월 21일). '울보' 니퍼트의 뜻 깊은 재계약 성공”. OSEN. 2012년 6월 1일에 확인함. 
  16. 전성민 (2012년 4월 7일). “`개막전 선발` 니퍼트, 5⅓이닝 5실점 부진”. mk스포츠. 2012년 8월 2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이 전
해커
제36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2016년
다 음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