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우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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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우
Kang Dong-Woo
두산 베어스 No.81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4년 4월 20일(1974-04-20) (44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신장 177 cm
체중 7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중견수, 우익수
프로 입단 연도 1998년
드래프트 순위 1998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1998년 4월 13일
대구롯데
마지막 경기 KBO / 2013년 9월 4일
대전두산
계약금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강동우(1974년 4월 20일 ~ )는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외야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 1루 주루 코치이다.

선수 생활[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단국대학교 4학년 때였던 1997년에는 김동주, 김선우, 조인성, 박정진, 서재응, 신경현, 유동훈 등과 함께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참가했다.[1]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1998년 시즌[편집]

경북고등학교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1998년 데뷔 첫 해의 강동우는 단연 돋보이는 신인 중 한 명이었다. 1군 123경기에 나와 규정 타석을 채운 3할 타율과 10홈런, 22도루 등 최고의 활약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의 타구를 잡다가 펜스에 부딪혀 정강이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는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출되어 있었지만 이 사고로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그를 대신하여 LG 외야수 심재학 선수(1998년 시즌 타율 0.267, 11홈런)가 참가하게 되었다. 정강이 부상을 크게 입은 이후 슬럼프에 급격히 빠졌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지만, 단 5표만 받고 현대 투수 김수경에게 신인왕을 헌납했다. 1998년 그가 신인으로 데뷔한 타자로 규정타석을 채워서 3할 타율을 기록한 이후 2014년 현재까지도 신인 타자 중 규정 타석을 채운 3할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2] 그러다가 2017년넥센 히어로즈이정후가 19년만에 신인타자 3할기록을 세웠고, 심지어 1994년 서용빈의 신인최다안타기록도 갱신하며, 신인왕을 차지하게 되었다.(2015년 삼성 라이온즈 구자욱도 0.349의 타율로 신인왕을 받았지만, 루키신인은 아니었으므로 기록에서 제외한다.)

재활 및 재기[편집]

부상 이후 초기의 페이스를 찾지 못했고 1999년에는 재활로 단 1경기에도 나오지 못했다. 김응용 감독 부임 후 부활하여, 2002년 삼성 라이온즈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을 때 재기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한국시리즈 9차전 당시 마지막 타자로 1루수 땅볼 아웃되었다.

두산 베어스 시절[편집]

2005년 삼성 라이온즈의 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하였으나,[3]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어 2006년 3월 29일두산 외야수 김창희, 강봉규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었다.[4]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는 2006년에 118경기에 출장, 활약했으나 2007년에는 김현수민병헌 등에게 주전 자리에서 밀려 1군에 25경기에만 나오고 2군을 전전하였다.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007년 11월 KIA의 좌완 투수 이윤학을 상대로 맞트레이드되었으나, 트레이드된 후에도 1군 45경기에만 나오고 2군을 전전했다.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08년 10월 20일 신종길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5] 한화로 트레이드된 이후 그는 부활하였다. 2009년 시즌 개막 이후 줄곧 선발 중견수 겸 1번 타자로 활약했다.[6] 2009년 4월 11일 대전 롯데전에서 3회말 상대 선발 허준혁 선수의 초구를 밀어쳐 좌월 투런 역전 홈런을 날렸다. 이 홈런은 지난 2007년 7월 12일 잠실 현대전 이후 640일 만에 나온 것이다.[7]

2009년 데뷔 시절과 맞먹는 맹타를 보여 주면서 완벽하게 부활하였고 2009년 한화가 최하위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베테랑답게 다이너마이트 타격진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 해 3할 2리의 타율, 10홈런을 기록하였고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얻어 한화와 1년 간의 조건으로 재계약하였다.[8] 2002년에 이어 그 해 일구회의 의지노력상을 수상하였다.[9] 2010년에는 잠시 주춤했지만, 2011년에 개인 최다 홈런을 경신하고 전 경기에 출장했다. 그러나 이후 출장 경기 수가 줄어들었고, 그의 재기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부활을 노렸지만 시범경기 때 부상을 당해 1군 26경기에 그친 채 2013년 시즌 후 방출당했다.[10] 이후에도 현역 의지를 내비쳤지만 결국 다른 팀의 오퍼를 받지 못하고 그 해 12월 23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11] 또한 그는 한화이글스 시절 외야 펜스 안전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12]

코치 생활[편집]

두산 베어스로의 복귀[편집]

2014년 1월 7일 2군 타격코치로서 7년만에 두산 베어스로 복귀한다.[13] 같은 해 그의 생일에 결혼하여 품절남 대열에 합류했다.[14]

출신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년도 타율 경기수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도루
실패
4사구 삼진 병살타 희생타 출루율 장타율
1998 삼성 0.300 123 414 124 23 8 10 30 74 22 7 43 68 5 11 0.365 0.466
2000 0.100 13 20 2 0 0 0 0 3 1 0 8 5 0 0 0.357 0.100
2001 0.251 125 347 87 15 2 6 42 54 6 1 52 44 9 3 0.348 0.357
2002 0.288 130 466 134 23 3 9 49 75 11 6 47 76 9 8 0.352 0.408
2003 0.266 130 443 118 19 4 9 57 61 8 4 58 51 17 19 0.349 0.388
2004 0.295 132 438 129 22 1 3 49 59 9 5 51 45 13 8 0.367 0.370
2005 0.240 125 367 88 15 3 6 38 61 9 1 46 68 8 16 0.322 0.346
2006 두산 0.249 118 393 98 12 2 2 34 36 8 6 49 54 9 13 0.330 0.305
2007 0.163 25 43 7 1 1 1 6 1 0 1 5 4 1 0 0.250 0.302
2008 KIA 0.100 45 40 4 1 0 0 5 8 0 1 9 6 0 3 0.260 0.125
2009 한화 0.302 128 506 153 30 2 10 48 88 27 3 70 58 6 9 0.384 0.429
2010 0.252 98 309 78 8 1 4 22 45 14 6 44 33 10 9 0.346 0.324
2011 0.288 133 518 149 13 3 13 51 83 17 15 64 71 9 ? 0.363 0.400
2012 0.252 76 257 65 16 1 2 22 35 1 2 26 21 5 5 0.346 0.324
통산 14시즌 0.271 1401 4561 1236 198 31 75 453 683 133 58 572 604 101 ? 0.350 0.377

참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