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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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Bae Yeong-Soo
한화 이글스 No.33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1년 5월 4일(1981-05-04) (36세)
출신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신장 184 cm
체중 90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2000년
드래프트 순위 2000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2000년 4월 9일
잠실LG
계약금 2억 5,000만원
연봉 5억 5,000만원 (2017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WBC 2006년 샌디에이고
월드컵 2001년 대만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배영수(裵英洙, 1981년 5월 4일 ~ )는 KBO 리그 한화 이글스투수이다. 김상엽, 김진웅에 이어 전 삼성 라이온즈의 우완 강속구 투수 계보를 이은 에이스 선발 투수이자 전통 프랜차이즈 스타로 일컬어졌다.[1]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별명은 푸른 피의 에이스였으며, 김시진삼성 투수 역대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였다. 2017년 현재는 130승을 기록하며 부상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편집]

대구 출신으로 칠성초등학교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학년 때 이미 최고 구속 147 km/h의 공을 뿌렸지만, 경북고등학교 3학년 때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이에 언론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당시 대구상고의 우승을 이끈 투수 장준관을 지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는 그를 1차 지명하였으며, 1999년 11월 삼성 팀 고졸 역대 최고 계약금인 2억 5천만원을 받아 입단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01 시즌[편집]

2001년 2년차에 13승을 거두며 삼성 라이온즈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02 시즌[편집]

2002년 6승으로 주춤하였으나,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여 우승을 맛보았다.

2003 시즌[편집]

2003년 다시 13승을 거두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04 시즌[편집]

삼성 라이온즈선동열을 수석코치로 영입한 해인 2004년에는 17승 2패, 평균자책점 2.61로 다승과 승률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선발 투수로는 14년 만에 정규 리그 MVP로 선정되었다. 특히 당시 팀타율 1위(0.275)인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으로 던졌지만[2] 타선이 무득점에 그쳤고, 연장 11회에 권오준으로 교체되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05 시즌[편집]

개막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무사사구 완봉승[3] 을 거두며 쾌조의 스타트로 전반기에는 좋은 성적을 올렸으나, 7월 제주도에서 열린 경기에서 왼쪽 발목을 다친 이후로 하락세를 보이며 전년도에 비해 떨어진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3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고, 147개의 탈삼진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였으며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팀을 정규 시즌 1위로 올리는데 공헌하였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6 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승리의 밑거름을 만들었다.

2006 시즌[편집]

유독 부족한 타선지원과, 불펜진의 난조로 인해 8승 9패에 그쳤지만 평균자책점 2.92로 2000년대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들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2점대 방어율을 달성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팔꿈치 부상을 안고도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활약하며 2승 1세이브 1홀드를 올렸다.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당시 삼성 라이온즈선동열 감독의 권유로 데포메드롤[4] 이라는 강한 진통제를 맞으며 경기를 해야 했다.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151 km/h의 직구를 던졌다. 삼성 라이온즈 구단을 우승으로 이끌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쳤으나 진통제를 다량으로 복용하며 투혼을 보여 줬던 것이기에 그의 팔꿈치는 만신창이가 되어 선수 생명이 자칫 위험할 정도였다. 시즌이 끝난 뒤 그는 11월 수술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2007년 1월 27일 LA 컬란조브 외과 병원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른바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5][6][7][8] 팔꿈치 수술로 인한 재활 훈련으로 2007 시즌에는 단 1경기에도 출전할 수 없었다. 팔꿈치 수술 전 직구 최고 구속은 2006년 8월 2일 대구에서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기록한 155 km/h이고 슬라이더는 144 km/h이다. 수술 전 정규 시즌 직구 평균 구속 145 km/h를 상회하는 유일한 투수였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그의 구위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토미 존 서저리 수술 이후 회복 속도는 다른 선수들보다 빨랐다. 보통 2년을 재활 후 복귀하지만 재활 1년만에 마운드에 복귀했다(보통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하면 2년차에 자신의 구위를 회복한다고 한다).

2008 시즌[편집]

2008년 시범 경기에는 최고 구속 146km까지 던졌지만, 2008 시즌이 가면 갈수록 직구의 구위는 좋지 않았다. 시즌 중반기는 최고 구속이 138km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올림픽 브레이크 이후 주 무기인 슬라이더와 변화구로 맞춰 잡는 피칭으로 시즌 컨디션이 최상을 기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직구 평균 구속 138~140km를 회복했고 최고 구속은 145km를 기록했다. 수술 복귀 후 첫 시즌 9승을 달성하여 토미 존 수술 1년차로 믿기지 않는 회복 속도를 보였다.[9]

2009 시즌[편집]

전문가와 야구 팬들의 예상 및 기대와는 달리 1승 12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너무 빠른 복귀로 인해 수술부위에 무리가 갔고, 구속은 140km도 나오기 힘들었다.

2010 시즌[편집]

4월 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선발승을 거두었으나, 2010년에도 6승 8패에 그쳤다. 그러나 두산 베어스와의 포스트시즌 4차전에서 1 ⅓이닝 동안 무안타 무실점의 투구로 1점 차 세이브를 따내고 승리를 지켜내었다.

2011 시즌[편집]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구위가 저하되어 결국 6승 8패의 저조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편집]

지난 3시즌 간 부진했던 그는 2012년 삼성이 용병 미치 탤벗브라이언 고든을 선발 투수로 영입하여 선발 투수로서의 입지가 흔들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며 스프링캠프 때 일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오래 남아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하며 시즌을 대비하였다. 결국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제 5선발로 낙점됐다. 4월 14일 첫 선발 등판 경기인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며 좋은 출발을 하였으며, 8월 19일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승리하며 2012년 시즌 첫 번째 전 구단 상대 승리 투수가 되었다. 또한 8월 26일 LG 트윈스 전 선두 타자 오지환을 상대로 역대 25번째의 1,000 탈삼진의 기록을 세웠으며, 이날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역대 23번째 100승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12년(12시즌) 만의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9월 26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 자신의 최다 투구수인 140구를 던지며 9이닝 6탈삼진 3실점으로 역투하였으나, 상대 투수 윤석민완봉으로 인해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특유의 맞춰 잡는 피칭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2번의 완투를 하는 등 긴 이닝을 소화하게 되었다. 마지막 등판 경기인 10월 2일 LG 트윈스 전을 8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시즌 12승을 거두며 정규 리그를 마무리하였다. 완급 조절과 뛰어난 제구력을 바탕으로 한 투구로 12승 8패 3.2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수술 이후 첫 3점대 평균 자책점과 두 자릿 수 승리를 거뒀으며, 통산 100승과 1,000 탈삼진의 기록도 동시에 세우며 부활하였다. 가을에 특히 강했던 그는 2012년 10월 28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등판하였으나 3이닝 3실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우승 이후 아시아 시리즈 1차전인 라미고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5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호투하였으나, 타선이 무득점에 그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2013 시즌[편집]

5년 만에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되었으나, 만루홈런을 두 번이나 허용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다음경기인 NC 다이노스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특히 8월 8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6⅔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 승리투수가 되며 김시진삼성 투수 통산 최다승 기록을 경신하였다.[10] 또한 9월 7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5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선발승을 거둬 팀의 1위 자리를 지켜냈으며, 9구단 체제가 도입된 이후 최초이자 이 시즌에 유일하게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었다.[11] 전년도에 비해 컨디션이 들쭉날쭉한 모습을 많이 보였으나, 타선의 활약과 특유의 노련함으로 SK 와이번스의 용병 크리스 세든과 함께 14승을 거두며 2004 시즌 이후 9년 만에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2013년 10월 28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였으나 제구난조로 1⅓이닝 2실점으로 강판되었고, 삼성 타선이 1득점에 그쳐 패전투수가 되었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 시도[편집]

2010년 FA 자격을 얻자 일본 프로 야구 진출도 시도했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2년간 최대 1억 7,000만 엔(23억 원)에 입단할 예정이었으며, 입단 테스트까지 성공적이었지만 메디컬 테스트 결과 간 수치가 문제되어 부적격 판정을 받아 야쿠르트와의 계약이 무산되었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와 2년 간 계약금 6억 원, 연봉 2억, 옵션 3억에 계약하여 잔류했다.

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2014년 12월 3일 타구단 협상 마지막 날에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부름으로, 계약기간 3년, 총 21억 5천만원(계약금 5억원, 연봉 5억 5000만원)으로 FA 계약을 체결하였다.[12]

2015 시즌[편집]

시즌 전 기대와는 달리 정규시즌에 선발투수로써 마운드 위에서 불안감을 노출하며 이 시즌 최종 4승 11패, 7점대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재기에 실패하였다.

2016 시즌[편집]

2016년 8월 1일 KIA 타이거즈 전에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나, 부상을 이유로 다시 하루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이 시즌에 1군 등판기록은 없다.

국가 대표 경력[편집]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국가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다.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사토자키 도모야를 슬라이더로 3구 삼진을 잡으면서 호투했다. 당시 직구 구속이 143 km/h 정도로 약간 느린 구속으로 직구로 일본 타자들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자신감으로 일본 타자들을 아웃시켰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는 투구 밸런스를 제대로 잡지 못해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대신 이 대회로 병역을 해결했고, 일본과의 경기 때 이치로의 엉덩이를 맞춘 히트 바이 피치트 볼로 국민들에게 "배열사"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13]

에피소드[편집]

스즈키 이치로가 '30년 망언'을 해 그가 스즈키 이치로의 둔부에 빈볼을 던진 이후로 '배열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 2014년 5월 30일경북대학교의 첫 명예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14]
  • 2017년 4월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보크 논란이 일어났다. 이후 7월 17일, 8월 20일 등 유독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부정 투구 행위가 잦았고, kt 위즈전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부정 투구 행위가 발각되는 등 프로 선수 답지 못한 행동을 보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15][16] 결국 2017년 8월 22일에 KBO로부터 로진을 옷에 묻히는 행위가 부정투구라고 판정됐고 추후 이 부분이 또 발각되면 징계를 내린다고 해 네티즌들로부터 그 동안의 부정투구는 봐 주는 것이냐며 비난을 받았다.

출신 학교[편집]

등번호[편집]

수상[편집]

주요 기록[편집]

통산 기록[편집]

연도 팀명 평균자책점 경기 완투 완봉 승률 타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2000 삼성 6.75 25 0 0 0 2 0 0 0.000 208 45.1 59 9 21 3 32 36 34
2001 3.77 35 0 0 13 8 0 0 0.619 750 169.2 169 11 89 8 96 82 71
2002 5.53 22 0 0 6 7 0 0 0.462 382 81.1 94 13 43 5 63 55 50
2003 4.51 30 1 0 13 5 0 0 0.722 722 163.2 174 11 77 7 99 85 82
2004 2.61 35 4 2 17 2 0 0 0.895 792 189.2 163 6 74 11 144 65 55
2005 2.86 31 2 1 11 11 2 1 0.500 713 173 148 10 48 11 147 61 55
2006 2.92 32 0 0 8 9 0 4 0.471 647 157.1 142 13 38 9 133 56 51
2008 4.55 27 0 0 9 8 0 0 0.529 492 114.2 127 15 38 3 71 59 58
2009 7.26 23 0 0 1 12 0 0 0.077 352 75.2 106 18 22 7 40 73 61
2010 4.74 31 0 0 6 8 1 0 0.429 526 119.2 136 11 37 8 64 69 63
2011 5.42 25 0 0 6 8 0 1 0.429 460 103 127 5 27 6 47 67 62
2012 3.21 26 2 0 12 8 0 0 0.600 658 160 159 7 39 3 89 64 57
2013 4.71 27 0 0 14 4 0 0 0.778 671 151 193 9 38 14 101 83 79
2014 5.45 25 1 0 8 6 0 0 0.571 597 133.2 171 14 39 5 111 87 81
2015 한화 7.04 32 0 0 4 11 0 1 0.267 469 101 124 21 39 14 56 93 79
통산 15시즌 4.35 426 10 3 128 109 3 7 0.540 8439 1938.2 2092 173 669 114 1293 1035 938

참조[편집]

  1. 스포츠 춘추 - 2008년 10월 박동희의 칼럼 "김상엽 “파워 커브처럼 낙차 컸던 내 인생”
  2. 동아일보 - 2004년 10월 기사 "팽팽한 투수전 현대-삼성 또 무승부"
  3. 배영수, 프로 8번째 개막 완봉 《조이뉴스24》, 2005년 4월 2일 작성
  4. 일명 대포 주사라고 한다. 스테로이드 계열의 금지 약물인 ‘메틸프레드니솔론’이 포함되어 있다.
  5. 스포츠 춘추 - 2010년 4월 박동희의 칼럼 "삼성 배영수, “나는 기교파 투수가 아니다”"
  6. 스포츠 칸 - 2009년 6월 기사 "임창용 “슬라이더 · 포크볼 각이 나를 세웠다”"
  7. 동아일보 - 2009년 9월 기사 "수술의 기적?… 피나는 노력만 있을 뿐"
  8. 재활 중인 삼성 라이온즈 투수 배영수 - 수술보다 우승이 하고 싶었다 《스포츠 2.0》, 2007년 5월 22일 기사
  9. 동아일보 - 2009년 1월 기사 "배영수, 첫 연봉 삭감… 오기 ‘불끈’"
  10. 배영수, 라이온즈 32년사에 큰 획을 긋다 OSEN
  11. 배영수, 9구단 시대 최초 전 구단 상대 승리 영예 MK 스포츠
  12. 한화, 배영수와 3년 21억5000만원 전격 계약 - <<OSEN>> 2014년 12월 3일 확인
  13. 데일리안 - ‘청주본즈’,‘사못쓰’…별명 알면 더 재미난 프로 야구
  14. 프로야구 삼성 배영수, 경북대 '1호 명예홍보대사' 위촉 - 한국경제
  15. “[SQ이슈] '화려한 부활' 한화이글스 배영수, 그와는 별개의 문제 '부정투구' 논란”. 2017년 4월 28일. 2017년 8월 21일에 확인함. 
  16. “[SQ이슈] 한화이글스 배영수 또 부정투구 논란, 공을 유니폼에 문질렀다고?”. 2017년 8월 21일. 2017년 8월 21일에 확인함. 
  17. 배영수, 감격적인 KS 첫 선발승 《연합뉴스》
  18. 배영수,10승-통산100승-1천탈삼진 《연합뉴스》

외부 링크[편집]

이 전
정민태
제23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2004년
다 음
 손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