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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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Lee Sang-Hun
LG 트윈스 No.47 (임시 결번)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0년 3월 11일(1970-03-11)(54세)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영등포구[1]
신장 180cm
체중 90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3년
드래프트 순위 1993년 1차 지명(LG 트윈스)
첫 출장 KBO / 1993년 4월 10일
광주해태전 구원
NPB / 1998년
MLB / 2000년
마지막 경기 KBO / 2004년 5월 23일
문학삼성전 구원
NPB / 1999년
MLB / 2001년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해설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002년 부산

이상훈(李尙勳, 1970년 3월 11일[2]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투수이자 현 야구 해설가로 현재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고려대 4학년 시절 성균관대 타자들을 상대로 14타자 연속 탈삼진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LG 트윈스 시절[편집]

1993년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1994년에 18선발승(최다)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나 최다승[3] 이외의 타이틀을 획득하지 못해 정규시즌 MVP 경쟁에서 탈락했다. 1995년KBO 리그 역사상 유일하게 국내 좌완 20승 투수가 됐지만 9월 부진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 탓인지[4] 정규시즌 MVP 경쟁에서 밀려났으나 그 해 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2014년 밴 헤켄, 2017년 양현종이 그 기록 타이를 이루었으며[5] 밴 헤켄 양현종 외에도 1985년 김일융이 거둔 단일 시즌 좌완 선발 최다 승 기록과 타이). 1996년에 손가락 혈행 장애와 척추 분리증으로 인해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했다. 1997년에 37세이브로 당시 KBO 리그 세이브 신기록을 세웠다. 1997년 말 해외 진출을 선언하여 메이저 리그 사무국에 포스팅 공시를 신청했으나, 최고 응찰액이 60만 달러(약 6억 5,000만원)에 그치며 메이저 리그 진출을 포기했다.

일본 프로 야구 시절[편집]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편집]

메이저 리그 진출이 좌절되자 이를 철회하고 일본 프로 야구로 눈을 돌린 그는 1998년 4월 14일 LG 트윈스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주니치 드래건스 간의 임대 계약 협상을 통해 이적해[6] 1999년까지 활동했다. 당시 등록명은 그의 별명을 딴 '삼손 리'(Samson Lee)였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편집]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메이저 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주로 활동했다. 메이저 리그에는 9경기를 등판했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편집]

LG 트윈스 복귀[편집]

2002년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새크라멘토 리버 캣츠로 이적했으나, 그 해 4월에 방출되었다.[7] 방출 후 한국 복귀 의사를 전했고, 당시 LG 트윈스 감독이었던 김성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2002년 5월 18일 KIA전을 통해 복귀했다.[8] 그 해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이승엽에게 동점 3점 홈런을 허용하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고, 이로 인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머무르는데 빌미를 제공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그럼에도 2003년에 30세이브를 거두면서 마무리로 굳건했던 그는 당시 감독이었던 이순철과의 갈등으로 시즌 직전인 2004년 1월 14일 외야수 양현석과 투수 오승준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되었다.[9] 그러나 성적 부진에 빠진 그는 승리 없이 3패, 3세이브,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심리적인 부담으로 2군에 내려간 후, 그 해 6월 2일 당시 감독이었던 조범현에게 은퇴 의사를 밝혔다.[10]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가수 시절[편집]

은퇴 후에는 로커로 데뷔하였고,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한때 야구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2004년 록 밴드 '왓!'을 통해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2010년 10월 3일 록 페스티벌 공연 중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해 공연이 중단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논란이 일었다.[11] 2009년에는 게임사가 온라인 야구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은퇴 선수의 퍼블리시티권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은퇴 선수의 권리 사수에도 주력했다.[12]

코치 시절[편집]

2009년 7월에는 LG 트윈스의 프런트로부터 코치 제의설이 들렸으나 무산됐고, 거기에 자신의 인격권퍼블리시티권을 구단에서 무단 도용했다며 2010년 4월에 LG 트윈스의 팬 게시판에 올려 파문을 크게 일으켰다.[13] 아직까지 그를 잊지 못한 LG 트윈스 팬들은 잠실 더비 때 구단에 항의하는 뜻으로 그를 응원하는 현수막을 올리는 등, 팬들 사이에서도 큰 파장이 일었다.[14] 현수막 사건 이후 그는 한 발 물러섰고, 팬들에게는 현수막을 내리라는 뜻을 전한 후 구단과의 종전을 선언했다.[15] 그럼에도 야구에 손을 놓지 않았던 그는 LG 시절 함께했던 투수 출신인 전승남과 함께 2011년 경기도 하남시 초이동에 야구 클리닉을 오픈하여 운영했다.[16] 이후 LG 복귀 때 함께했던 당시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부름을 받아 2012년 11월 6일고양 원더스의 투수코치로 부임하며 8년 만에 야구계에 복귀했다.[17] 고양 원더스 해체 후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이동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18] 그리고 두산 베어스에 갓 취임한 김태형 감독의 부름을 받아 두산 베어스의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됐다.[19] "좌완 투수 불모지"라고 불렸던 두산 베어스에서 한 명이라도 쓸 만한 좌완 투수를 육성하기 위하여 그를 불러들였으며, 투수코치로 두산 베어스 팬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20] 2015 시즌 후 LG 트윈스의 부름을 받아 정식으로 코치 계약을 맺고 친정 팀에 복귀했다. 유망주 투수들의 체계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LG 트윈스 구단 자체에서 이천 2군에 개설한 피칭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을 맡았다.[21]

해설자[편집]

2018시즌이 끝나고 LG 트윈스의 피칭 아카데미가 사라지고 이상훈 코치도 사임을 한 후에 2019년 시즌부터 MBC 스포츠플러스의 야구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또한 코치 사임 이후 차명석 LG 단장이 47번을 비워 놓을테니 언제든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별명[편집]

긴 머리와 역동적인 투구폼 때문에 '야생마'라고 불린다.

등번호[편집]

출신 학교[편집]

여담[편집]

처남이 속사포 래퍼인 아웃사이더라고 한다.
두 사람은 장르가 다르지만 같은 음악인으로 나란히 활동한 적이 있으며, 아웃사이더가 LG Twins 응원가 중 한 곡인 엘(L)팬의 북소리를 만들어서 헌정했을 정도로 LG Twins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1993 LG 23 9 9 .500 3.76 28 24 7 3 0 0 150.2 129 10 75 1 131 3 2 3 65 63 635 1.35
1994 24 18 8 .692 2.47 27 27 6 2 0 0 189.2 140 9 57 1 148 1 2 2 58 52 754 1.04
1995 25 20 5 .800 2.01 30 29 12 3 0 0 228.1 150 12 48 1 142 3 2 4 61 51 867 0.87
1996 26 3 3 .500 2.54 41 4 0 0 10 0 99.1 70 8 37 4 95 5 1 2 32 28 401 1.08
1997 27 10 6 .625 2.11 57 0 0 0 37 0 85.1 56 6 25 5 103 2 0 0 23 20 336 0.95
1998 주니치 28 1 0 1.000 4.68 11 5 0 0 0 0 32.2 32 6 12 0 33 1 1 0 22 17 143 1.35
1999 29 6 5 .545 2.83 36 11 2 0 3 0 95.1 75 8 30 1 65 4 1 2 30 30 377 1.10
2000 BOS 30 0 0 ---- 3.09 9 0 0 0 0 0 11.2 11 2 4 0 6 2 0 0 4 4 49 1.29
2002 LG 32 7 2 .778 1.68 52 0 0 0 18 0 85.2 53 8 30 9 92 3 0 2 18 16 343 0.97
2003 33 4 4 .500 3.34 55 0 0 0 30 0 56.2 42 4 21 4 55 0 0 1 22 21 233 1.11
2004 SK 34 0 3 .000 5.14 18 0 0 0 3 1 14.0 11 2 9 1 15 0 0 0 8 8 61 1.43
KBO 통산 : 8년 71 40 .640 2.56 308 84 25 8 98 1 909.2 651 59 302 26 781 23 7 14 287 259 3630 1.05
NPB 통산 : 2년 7 5 .583 3.30 47 14 2 0 3 0 128.0 107 14 42 1 98 5 2 2 52 47 520 1.16
MLB 통산 : 1년 0 0 ---- 3.09 9 0 0 0 0 0 11.2 11 2 4 0 6 2 0 0 4 4 49 1.29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리그 최고 기록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동작구.
  2. 호적상 1971년 출생.[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연합 (1994년 9월 26일). “<프로야구소식>-MVP및 신인왕 후보 발표”. 연합뉴스. 2019년 3월 17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4. 김윤일 (2014년 9월 12일). '박병호vs강정호' 통한의 MVP 좌절 누구?”. 데일리안. 2019년 3월 17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5. 한용섭 (2017년 12월 30일). “양현종-헥터, KBO 최초 2년 연속 선발 20승 가능할까”. OSEN. 2018년 8월 29일에 확인함. 
  6. 이상훈, 2년간 3억 3천만 엔에 주니치 임대 - 연합뉴스
  7. 이상훈 LG 컴백 초읽기 - 국민일보
  8.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 화려한 복귀 신고… 1⅓이닝 퍼펙投트 - 국민일보
  9. 삼손 이상훈 전격 SK행…LG, 1:2 트레이드 - 동아일보
  10. 이상훈, 돌연 은퇴 선언 - 연합뉴스
  11. “공연 중 대통령 욕했다고 공연 중단시켜”
  12. 박동희의 Mailbag 확장판 - 이상훈은 왜 게임에서 사라졌나?
  13. 이상훈 "LG와 싸움 그만두고 제3의 인생 살겠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뉴시스
  14. 'LG 레전드' 이상훈 응원 현수막 걸린다 - 머니투데이
  15. 이상훈, LG 트윈스와 종전 선언 "돈 가지세요" - 머니투데이
  16. 애프터 베이스볼 야구 後 2 - 전승남·이상훈 J47 스포츠 스쿨 공동 대표[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한국일보
  17. "야신 부름에 응답했죠"[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스포츠한국
  18. 이상훈 김성근 사단 합류? "한화행 관련 소식은 오보"[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TV리포트
  19. "야생마" 이상훈, 한화 아닌 두산 코치 간다[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스포츠월드
  20. '좌완 왕국' 두산 만든 상상 그 이상의 '이상훈 효과' Archived 2016년 1월 12일 - 웨이백 머신 - STN 스포츠
  21. 'LG 컴백' 이상훈 코치 "LG에서 다시 불러 줘 감사하다" Archived 2016년 1월 12일 - 웨이백 머신 - 마이데일리

외부 링크[편집]

이전
정명원
제14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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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