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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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Park Jin-Man
SK 와이번스 No.74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6년 11월 30일(1976-11-30) (39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신장 176 cm
체중 78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유격수
프로 입단 연도 1996년
드래프트 순위 1996년 고졸우선지명(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1996년 4월 13일
인천LG
마지막 경기 KBO / 2015년 9월 10일
대전한화
획득 타이틀 * 골든 글러브(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상
계약금 2억 원
연봉 1억 5,000 만 원 (2014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 시드니, 2008 베이징
WBC 2006년
아시안게임 2002 부산, 2006 도하
아시아선수권 2003년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2008 베이징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야구
2006 도하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박진만 (朴鎭萬, 1976년 11월 30일 ~ )은 전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SK 와이번스 수비코치이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으며 1996년 데뷔부터 팀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현대에서 팀을 4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2005년 FA자격으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 다시 2005, 2006년 2차례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국제 큰 활약을 하며 '국민 유격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0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해 5년 동안 뛰었다. 유격수로는 골든글러브를 수상 횟수(5회)를 기록했다.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1996년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2억 8,000만 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19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는데, 입단 첫해부터 주로 하위 타선으로 출장해 0.286에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듬해 1997년에 풀 타임 출장해서 0.185의 타율을 기록,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었고, 1998년에도 빈약한 타격을 보였다. 그러나, 꾸준히 출장하면서 타격 실력은 자연히 향상하게 되어 1999년에 0.263를 기록하였고, 이듬해 2000년에 2할8푼8리의 타율을 기록한다. 그러나, 2000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 병역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박진만 선수의 아버지와 담당 의사는 불구속 기소되었고, 박진만은 재검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1] 그러나 곧바로 시드니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 동메달을 획득하여 정식으로 병역 면제를 받았다. 이듬해 2001년에는 유격수로서는 쉽지 않은 3할 타율에 22홈런을 쳐 자신의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을 기록하였다. 2002년시즌에 타격에서 크게 부진하여 0.219를 기록하였으나,2003년2004년에 2할 8푼대 타율을 꾸준히 기록하여 유지했다. 타격보다 수비에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기에 수비에서 평가가 높은데, 현대 유니콘스 시절 동안 그는 소속 팀에서 4번의 우승을 경험했고 팀에 많은 기여를 한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후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간 39억 원에 FA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이 때 삼성에서는 입단 때 기대주였으나, 부상과 병역 비리 등으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투수 이정호를 박진만의 보상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보냈다.(심정수에 대해서는 보상 선수를 받지 않았고, 보상금만 지급했다.)[2] 그러나 2005년에는 시즌 시작 전부터 부상에 겹쳐 시즌 중반이 돼서야 겨우 복귀할 수 있었고, 이 해 0.249를 기록한다. 이때 그를 대신하여 김재걸유격수 자리에 있었다. 이듬해 2006년에 부상에서 완치되어 풀타임 출장을 하였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공-수 뛰어난 활약을 보여 2006년 한국시리즈 2연패에 기여하였고 MVP에 선정되었다. 2009 시즌에는 주장에 선임되었으나, 잦은 부상으로 1군 76경기에 그쳐 시즌 후 강봉규에게 넘겼다. 2010년에도 부상 후유증으로 부진하여 1군 46경기에 그쳤다. 주전 유격수 자리를 후배 내야수 김상수에게 넘겨 주면서 출장 경기 수가 줄어들었고, 2루수나 3루수로 출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삼성과 결별하기로 결심하여 시즌 후 방출을 요청하여 2010년 11월 11일 보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3]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삼성에서 떠난 후 여러 구단에서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주전 유격수 나주환공익근무요원 입대로 인한 전력 공백이 생긴 SK 와이번스가 가장 적극적으로 영입을 시도하였고, 때마침 박진만의 고향이 인천이라는 점 등과 맞물려 SK 와이번스와 계약하였다. 2011년 4월 28일서재응에게 140km대의 직구 사구을 맞고 부상을 입었고 재활을 끝내고 활동중이면서 가끔 1루수로 출전하기도 한다. 2014년부터는 전 시즌 팀의 주장이었던 정근우가 FA로 팀을 옮기며 주장이 공석이 되었기 때문에 선수단내에서 투표를 실시하였고, 같은 최종 후보인 조인성을 두 표차로 앞서 선출되어 팀의 주장을 맡고 있다.[4] 하지만 2014년 4월 12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우측 무릎 십자인대 파열으로 약 6개월을 재활했다. 2014시즌 이후 FA자격을 얻었으나 FA 신청을 하지않고[5] SK와 25% 삭감된 1억 5000만원에 재계약하였다.[6]

출신 학교[편집]

아쉬운 은퇴[편집]

박진만은 2015년 9월 10일 대전 한화전에서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뒤 다음 타자 타격 때 1루로 귀루하는 과정에서 무릎 부상을 입었다. 그 이후에는 재활에 매진하였으나 결국 2000경기까지 단 7경기를 남기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편집]

박진만은 은퇴 후 2016시즌부터 SK 와이번스의 1군 수비보조코치로 선임되어 후쿠하라 미네오 일본인코치를 보좌하게 된다.

수상 경력[편집]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편집]

응원가[편집]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박진만을(박진만을) 사랑해요(사랑해요) 삼성의 박진만 사랑해요
원곡 : 연가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 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원곡 : 뷰티풀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1996 현대 20 115 406 361 49 102 21 2 6 38 11 7 20 55 .283 .333 .402 .734 145 5 7 18 0 0
1997 21 112 398 351 29 65 11 0 5 29 7 5 20 62 .185 .245 .259 .504 91 6 8 18 1 1
1998 22 123 375 330 36 67 17 0 4 33 8 3 18 50 .203 .253 .291 .544 96 4 6 15 6 0
1999 23 128 459 395 50 104 21 2 3 42 5 6 36 63 .263 .334 .349 .684 138 9 7 19 2 2
2000 24 129 477 420 67 121 30 4 15 58 0 5 36 76 .288 .350 .486 .836 204 9 6 11 4 0
2001 25 122 449 383 72 115 13 0 22 63 9 6 47 65 .300 .380 .507 .886 194 13 4 12 3 0
2002 26 126 466 401 47 88 24 0 12 57 2 5 47 85 .219 .306 .369 .675 148 6 5 9 4 2
2003 27 129 515 421 68 119 26 0 16 48 6 5 55 66 .283 .379 .458 .838 193 14 13 22 4 0
2004 28 129 506 434 65 124 18 0 17 69 6 3 48 67 .286 .365 .445 .810 193 10 9 10 5 2
2005 삼성 29 85 333 281 34 70 16 0 7 44 5 2 32 47 .249 .343 .381 .723 107 8 9 9 2 0
2006 30 115 452 382 54 108 22 1 11 65 10 6 56 74 .283 .380 .432 .812 165 6 7 2 5 0
2007 31 100 400 333 35 104 25 0 7 56 5 3 53 38 .312 .408 .450 .858 150 5 4 5 5 2
2008 32 104 391 332 28 81 12 3 5 38 5 4 44 50 .244 .335 .343 .679 114 9 3 9 3 0
2009 33 76 258 223 22 57 11 0 6 29 2 1 25 31 .256 .333 .386 .719 86 8 3 3 4 0
2010 34 46 161 131 14 31 5 1 1 14 1 2 24 27 .237 .354 .313 .667 41 1 1 3 2 0
2011 SK 35 100 340 282 42 79 18 0 6 39 6 5 34 44 .280 .363 .408 .771 115 6 5 15 4 2
2012 36 57 161 138 12 29 7 1 5 19 3 1 14 27 .210 .281 .384 .665 53 2 0 8 1 0
2013 37 100 326 276 25 69 14 1 3 24 3 4 37 47 .250 .346 .341 .686 94 6 5 5 3 0
2014 38 19 35 32 3 8 1 0 0 2 0 1 2 8 .250 .294 .281 .575 9 0 0 1 0 0
2015 39 78 162 133 12 33 5 0 2 14 0 2 23 21 .248 .375 .331 .706 44 3 4 2 0 1
KBO 통산 : 20년 1993 7070 6039 764 1574 317 15 153 781 94 76 671 1003 .261 .342 .394 .736 2380 130 106 196 58 12

등번호[편집]

박진만은 데뷔 후부터 현재까지 등번호 7번을 고수하고 있다. 그가 등번호 7번을 달게 된 것에는 김재박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박진만은 1996년 프로 데뷔 당시 뛰어난 기량 덕분에 김재박 현대 감독의 후계자라고 불리게 됐고, 자연스럽게 김 감독의 등번호를 물려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5년 FA 계약을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에도 등번호 7번을 달았고, 201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뒤에는 등번호 7번의 주인이었던 김재현이 은퇴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7번을 물려받게 됐다.

4회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편집]

박진만은 심정수와 같이 2003년, 2004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과 2005년, 2006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총 4시즌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선수이다. 이 기록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시즌 연속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 이후 처음 달성한 기록이다.

각주[편집]

  1. 프로야구선수 박진만 돈주고 병역면제 받아 《동아일보》, 2000년 6월 27일 작성
  2. 역대 FA 최고 몸값 '헤라클래스' 심정수 - 매일신문
  3. 박진만, 자유계약 풀렸다…삼성 보류명단서 제외 《마이데일리》, 2010년 11월 11일 작성
  4. 박진만, SK 2014시즌 이끌 새 주장 《이데일리》, 2014년 01월 04일 작성
  5. FA 미신청 이유는? 현역 연장 의지 - MK스포츠, 2014년 11월 19일 작성
  6. 박진만, '5천 삭감' 1억5천에 연봉 재계약 - 이데일리, 2014년 12월 11일 작성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