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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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수
Cho Chang-Soo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49년 4월 20일(1949-04-20) (70세)
출신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외야수
프로 입단 연도 1983년
경력

감독 경력


조창수(趙昌洙, 1949년 4월 20일 ~ )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외야수)이자, 전 KBO 리그 코치이다. 부인은 배구인인 조혜정이다. 코치 시절 고 김동엽 해태 타이거즈 창단 감독이 시즌 중 성적 부진과 코치진과의 불화로 시즌 초에 물러나자 감독 대행을 맡아 38승 42패 6개 팀 중 4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으며 1984년 시즌 후 해태와의 계약이 종료된 뒤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자리를 옮겼는데[1] 1987년 시즌 후 계약이 종료됐다가 그 해 말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2]. 이후, 1990년 LG 트윈스에서 수석코치를 맡았으나 1년 만에 물러났고 1993년부터 고향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를 역임했으며[3] 프로 원년 이 팀 코치 물망에 한때 거론됐지만 해태 코치로 발탁되어 불발됐고 조창수 외에도 김성근 유백만 등이 코치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다른 팀에서 스카우트하여 좌절됐으며 난항 끝에 서영무 초대감독의 경북고 감독 시절 애제자였던 임신근을 투수코치[4], 서영무 감독의 고교(대구상고) 후배 우용득을 선수 겸 배터리코치로 간신히 영입했다. 이후, 1997년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이었던 백인천 감독이 시즌 도중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자 감독 대행을 맡았으며 정규 리그 4위를 마크하였다.(66승 53패 7무) 1997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당시 김성근 감독의 쌍방울 레이더스를 2승 1패로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2승 3패로 밀려 아깝게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그 뒤 서정환에게 감독직을 넘긴 후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다가 롯데 시절 감독(85~86)으로 인연을 맺었던 강병철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2년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로 부임했는데 팀 분위기 쇄신을 통한 팀 전력 극대화를 위하여 같은 해 8월 12일부터 2군감독으로 보직이 변경됐으며[5] 강병철 감독이 그 해 말 물러나자 자연스럽게 팀을 떠났고 그 이후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전임
김동엽
해태 타이거즈 감독 대행
1982년
후임
김응용
전임
백인천
삼성 라이온즈 감독 대행
1997년
후임
서정환
  1. “楊相汶(양상문),자이언츠 입단 타이거즈 趙昌秀(조창수) 코치도”. 동아일보. 1984년 12월 28일. 2019년 10월 10일에 확인함. 
  2. “롯데 趙昌秀(조창수)코치와 재계약”. 동아일보. 1987년 12월 26일. 2019년 10월 10일에 확인함. 
  3. “스포츠 短信(단신)”. 경향신문. 1992년 10월 14일. 2019년 10월 10일에 확인함. 
  4. “스포츠 短信(단신)”. 경향신문. 1982년 3월 4일. 2019년 10월 10일에 확인함. 
  5. “<프로야구소식> SK,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연합뉴스. 2002년 8월 12일. 2019년 10월 10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