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 총괄 기구 | 세계 태권도 연맹 |
|---|---|
| 유형 | 격투 스포츠 무술 스포츠 |
| 기원 | 대한민국 |
| 경기 인원 | 1명 (개인전) 2명 (품새 복식) 3명 이상 (단체전) |
| 경기 장소 | 실내 |
| 주요 장비 | 호구 |
| 채택 대회 | |
| 최상위 대회 |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 |
| 올림픽 | 채택 (2000년~현재) |
| 월드 게임 | 제외 (1981년~1993년) |
| 청소년 올림픽 | 채택 (2010년~현재) |
| 패럴림픽 | 채택 (2020년~현재) |
| 데플림픽 | 채택 (2009년~현재) |
| 아시안 게임 | 채택 (1986년~현재) |
| 아프리칸 게임 | 채택 (1987년~현재) |
| 유러피언 게임 | 채택 (2015년~현재) |
| 팬아메리칸 게임 | 채택 (1987년~현재) |
| 퍼시픽 게임 | 채택 (1995년~현재) |
태권도(跆拳道, 영어: Taekwondo, 약칭: TKD)는 맨손 방어와 발차기 기술이 특징인 한국의 무예이다.[1] 1945년 해방 이후 이른바 5대관이라 불리던 도장들에서 출발하여[2] 1961년 대한태권도협회가 설립되면서 정형화되기 시작하였다.[3]
무기 없이 맨손으로 격투를 하는 기술은 전세계 대부분의 문화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저마다 독특한 기술을 지닌 무예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역사에서도 수박, 택견 등의 고유 무예가 있지만 현대의 태권도 기술과는 거리가 있다.[4] 태권도의 기술은 특히 가라데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었고[5] 이후 독자적인 품새와 기술, 경기 방법 등을 발전시킨 현대 스포츠이다.[6] 태권도는 정립과 발달 과정에서 중국의 우슈를 비롯한 여러 무예도 참조하여 융합하였다.[7]
대한민국은 태권도를 민족주의와 결부시켜 집중적으로 육성하였다.[7] 이 과정에서 가라데와의 연관성은 부정되거나 축소되었고, 택견과 같은 조선의 전통 무예가 부각되었다.[6] 1960 - 70년대 박정희 정권은 적극적인 스포츠 외교를 통해 대한민국을 알리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전세계에 태권도 지도자들이 파견되었다.[8] 당시 태권도의 보급은 민족주의적 배경에 따른 종주국주의를 보였다. 1972년 11월 준공된[9] 국기원은 태권도 보급의 중심지로 활동하였다.[8]
1966년 태권도 세계 보급을 위해 설립된 국제태권도연맹은 1972년 총재 최홍희가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반대하며 캐나다로 망명한 뒤 대한민국과 결별하게 되었고[10]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태권도계는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새로 설립하였다.[11] 한편 최홍희는 1982년 무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태권도를 보급하였고 이후 태권도는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남북 스포츠 외교 경쟁의 수단이 되었다.[12]
1988년 태권도는 서울 올림픽에서 올림픽 경기 종목 중 시범 종목으로 지정되어[13] 세계적인 도약의 기회를 맞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태권도 세계 보급이 지도자 파견과 도장 운영이라는 민간 차원에 머물렀던 것에 비해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서 각국이 국가 대표를 육성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다.[6] 각종 국제대회의 규칙이 세계태권도연맹을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경쟁 단체인 국제태권도연맹의 것은 비주류가 되었다.[12] 국제태권도연맹은 2004년 다시 한국지부를 열고 대한민국 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1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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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이전
[편집]근대화 이후 동서양 모두에서 전통적 무예는 스포츠로 재편되었다. 한때 실제 결투의 기술로 익혔던 펜싱이 점수를 겨루는 스포츠가 된 경우를 사례로 들 수 있다.[15] 맨손 무예의 경우 레슬링, 권투 등이 스포츠로 편입되었다. 동아시아는 먼저 근대화를 이룬 일본이 무예의 스포츠화에도 앞서 있었다.[16] 한국의 경우 택견과 같은 전통 무예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맞으며 자체적인 스포츠화에 실패하고 잊혀져 가는 무예가 되었다.[17] 한편 일본에서 들어온 새로운 무예 스포츠가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930년대 말 이후 일본에 유학간 학생들 사이에서 가라데 붐이 있었다.[18] 이 시기 가라데에 입문하여 극진회관을 설립한 오야마 마스타쓰(최영의)는 1960 - 70년대까지도 국내에서 태권도인으로 소개되었다.[19] 당시 가라데를 배운 사람들이 해방 이후 도장을 설립하며 자신의 무술을 "공수", "당수", "태수"와 같은 명칭으로 소개하였고[18] 도복, 띠, 교육과정 등에서 가라데의 영향이 컸다. 가라데는 1924년 유도의 것을 차용하여 승급에 따른 띠 색갈 구분을 시작하였고, 훗날 성립된 태권도 역시 이러한 제도를 따랐다.[7]
태권도의 형성 이후 민족주의가 강조되면서 국기원, 세계태권도연맹, 세게태권도지도관연맹 등에서는 태권도의 기원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전통의 무예에서 찾고 있으나[20] 이와 달리 국제태권도연맹은 가라데의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초대 총재 최홍희의 역할을 강조한다.[21] 현재 태권도학계에서는 태권도 형성 과정에 미친 가라데의 영향을 부정하는 것을 지나친 민족주의로 경계하면서도[7] 태권도 형성 이후의 독자적 발전 역시 강조하는 분위기이다. 일부는 가라데 자체가 오키나와의 것으로 일본 본토의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지만 그리 큰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18]
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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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을 전후해 대한민국에 여러 개의 무술 도장이 생기게 되었고 그 가운데 이른바 "5대관"으로 불린 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이 가장 유명하였다. 당시에는 자신들의 무술을 "공수", "당수", "태수" 등으로 불렀고 각 도장은 설립자가 배운 유파에 따라 기술이나 수련 과정도 제각각이었다. 이후 설립된 4 곳의 도장이 더해져 "9대관"으로 불리던 도장들은 체계적인 제도 정비에 공감하여 자신들의 무예를 "태수도"로 부르기로 하고 1961년 9월 대한태수도협회를 창설하였다. 1965년 태수도의 명칭이 다시 "태권도"로 바뀌게 되면서 협회 역시 대한태권도협회가 되었다.[3]
명칭
[편집]태권도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명이 분분하다. 최홍희는 한국전쟁 중 육군 제1훈련소가 있던 제주도 모슬포에 온 이승만 앞에서 "당수" 시범을 보였고, 무예에 문외한이었던 이승만이 이를 "태껸"으로 인식하자 태권도라는 이름을 새로 고안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최홍희는 육군 29사단의 사단장이었다. 한편 태권도문화연구소 소장이었던 이경명은 최홍희의 주장이 자화자찬을 위한 왜곡이라고 보고 전쟁 이후인 1954년 청도관의 주도아래 태권도라는 이름이 고안되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23] 분명한 것은 1965년 대한태수도협회가 태권도로 이름을 바꿀 때 최홍희가 주도하였다는 점이다. 훗날 최홍희는 군사 정권 치하였던 당시 분위기에 육군 소장이었던 자신의 주장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어 그렇게 된 것이라 회고하였다.[24]
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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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대한태수도협회는 첫 통합 승단심사를 치렀다.[25] 그러나 협회 설립 이후에도 각 도장은 별도의 수련 과정으로 저마다 독자적인 단증을 발급하였다. 각 도장은 각자의 중앙도장 최고 책임자를 관장이라 불렀고 전국에 지부를 내면서 본부장, 사범 등을 두었다.[26] 9대관 관장들은 보다 통합적인 제도 정비를 위해 중앙도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국기원 설립을 추진하였다. 1971년 착공하여 1972년 준공된 국기원은 이후 단증의 발급을 전담하고 태권도 품새와 기술, 경기 규칙 등을 총괄하는 중앙도장이 되었다.[27] 재단법인으로 운영되던 국기원은 2016년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공원 조성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법률에 따라 운영되는 특수법인이 되었다.[28] 승단심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간간히 이와 관련한 비리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29]
1970년대부터 태권도는 "국기 태권도"를 표방하여 왔지만, 실제 태권도가 국기로 인정된 것은 2018년의 일이다. 국기(國伎)라는 명칭은 한 나라의 대표적 무예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씨름과 같은 다른 스포츠와 국기라는 명칭을 두고 경쟁할 수 밖에 없었다.[30] 또한 국기원은 그 명칭부터 태권도 보급에 종주국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을 내보인다. 민족주의가 짙게 깔린 이러한 시각은 태권도가 세계적 스포츠로 발전한 최근에 들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종주국이란 표현 대신 "모국"(母國)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주장이 있다.[31]
분열
[편집]1966년 3월 설립된 국제태권도연맹의 총재였던 최홍희는 1972년 3월 박정희 독재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캐나다로 망명하였다.[24] 대한태권도협회 등은 최홍희의 망명으로 충격을 받았으나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을 새롭게 설립하였다.[11] 이후 세계의 태권도 연맹은 두 곳으로 분리되어 서로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상황 속에서 국제태권도연맹은 점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1980년 최홍희의 방북이후[24] 조선태권도위원회가 설립되었다.[32] 남과 북은 태권도를 통한 스포츠 외교에서도 서로 경쟁하였다.[12] 국제태권도연맹은 한 동안 대한민국 내에서는 활동하지 못하다가 2004년 한국지부를 설립하였다.[14] 오늘날 세계태권도연맹과 국제태권도연맹은 용어, 경기 규칙, 품새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33]
세계화
[편집]1960년대 태권도의 초기 해외 전파는 미국 등 북아메리카 중심이었다. 한창 이소룡과 같은 동양 무술 영화가 유행이던 당시 태권도는 "코리안 가라데"와 같은 이름으로 소개되었다.[8] 박정희 정권은 태권도를 스포츠 외교로 적극활용하였다. 베트남전쟁이 일어나자 민사작전의 일환으로 태권도시범단이 파견되기도 하였다.[34] 1970년대에는 세계 곳곳에 태권도 사범이 진출하여 도장을 세웠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대한태권도협회와 세계태권도연맹은 1975년 국제경기연맹에 가입하여 정식적인 국제대회 개최 자격을 얻었다.[35]
1988년 열린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시범 경기로 선정되었고 이어 열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시범 경기가 열렸다.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인지도 상승을 얻은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되었다.[6] 전세계적으로 태권도 인구 1억 명을 상회하게 된 태권도는[36] 겨루기 외에도 품새 경기를 개발하고[37]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시범단을 선보이며 대중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36]
기술과 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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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기본 동작은 서기, 지르기, 막기, 차기이다. 태권도는 이 가운데 여러 가지 차기를 주요 기술로 사용한다.[38] 품새는 이러한 동작들을 연결한 것으로 태권도의 다양한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본 동작
[편집]태권도의 기본 동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38]
- 서기: 준비, 주춤서기, 넓혀서기, 기타
- 막기: 아래막기, 몸통막기, 얼굴막기, 손날막기, 금강막기 등
- 지르기: 몸통바로지르기, 몸통반대지르기 등
- 차기: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등
이외에도 손끝으로 찌르기, 손날이나 등주먹으로 치기 등의 공격기술이 있다.
가라데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태권도는 기본 동작 역시 가라데와 매우 흡사하다. 따로 설명하지 않은 채 일반인에게 시범을 보인다면 둘을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만 가라데의 경우 보다 보폭을 넓게 가져가 몸의 중심을 낮춘 상태에서 지르기를 사용하는 데 더 특화되어 있고 발차기의 경우 하단 공격을 허용하는데 비해, 태권도는 발차기 위주의 기술로 몸통과 얼굴을 공격한다.[39] 태권도에서 허벅지를 포함한 허리 아래의 공격은 반칙이다.[40]
품새
[편집]품새는 기본 동작을 연결하여 공격과 방어를 혼자서 수련할 수 있도록 짜여진 기술 체계이다.[41] 태권도 초기에는 각 도장마다 수련하는 품새가 달랐으나 1968년 대한태권도협회의 품새제정위원회에서 팔괘에 바탕을 둔 초심자용 품새와 보다 고난도의 유단자용 품새를 제정하였다. 당시 최홍희가 제안한 창헌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는 대한태권도협회와 최홍희 사이의 불화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처음 만들어진 팔괘 품새는 초심자가 단계적으로 배우기에는 난이도 조절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고, 1972년 태극품새가 새로 만들어진다.[42] 여기에 고려나 금강, 태백 등의 품새가 더하여져 지금의 "공인품새"가 완성되었다. 단계적으로 수련하는 공인품새 외에도 스스로 창작하는 "자유품새"가 있다.[43]
태권도의 세계화, 대중화와 함께 품새 역시 경기 종목이 되었다. 세계에서는 1985년 튀르키에에서 개최된 유럽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최초로 품새를 경기 종목으로 채택하였고, 대한민국 내에서는 오히려 그 보다 늦은 1992년 태권도 한마당에서 도입되었다. 품새 경기는 수련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배우는 공인품새와 스스로가 창안한 자유품새 종목으로 나뉘어진다.[44]
공인 품새의 목록은 아래와 같다.[45]
위계
[편집]태권도는 18위계를 두어 수련의 정도에 따라 승급 심사를 하고 띠를 부여한다. 위계는 무급에서 1급까지의 급과 1단에서 9단까지의 단으로 나뉘며 1단 이상은 보통 유단자라고 한다. 다만 15세 미만의 아동은 1단 이상의 수련을 하더라도 단 대신 품을 부여한다.[46] 1단 이상의 유단자는 모두 검은색 띠를 매고 무급에서 1급까지는 급수에 따라 색상을 달리한다.[47]
| 띠 색깔 | 급수 | 수련 내용 |
|---|---|---|
| □ 흰색 | 무급 - 9 | 기본동작 |
| ■ 노란색 | 8 | 태극1장 |
| ■ 주황색 | 7 | 태극2장 |
| ■ 초록색 | 6 | 태극3장 |
| ■ 파란색 | 5 | 태극4장 |
| ■ 보라색 | 4 | 태극5장 |
| ■ 밤색 | 3 | 태극6장 |
| ■ 빨간색 | 2~1 | 태극7장 |
| ■ ■ 검정&빨강(15세 이하) | 1 - 4 품 | 태극8장, 고려, 국기원심사 |
| ■ 검정 | 1 - 9 단 | 금강 등의 유단자 품새 |
대한태권도협회의 《KTA 표준교육과정》은 입문에서 1급까지 걸리는 수련기간을 평균 18개월로 설정하고 있다.[48]
스포츠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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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각종 국제대회가 개최되는 스포츠이다. 세계태권도연맹이 주관하는 경기로는 올림픽 태권도, 아시안 게임 태권도, 세계 태권도 선수권 대회, 세계 태권도 그랑프리, 월드컵 태권도 단체전 등이 있다.[49] 국제태권도연맹도 I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있다.[50]
2024년 하계 올림픽 태권도는 60개 국가의 128명이 선수가 참가하였으며[51] 남자 80kg 이상 급에서는 이란의 아리안 살리미가, 여자 49kg 급에서는 태국의 파니팍 웡파타나낏이 금메달을 차지하는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메달을 획득하였다.[52] 태권도에서 다양한 국가에서 메달을 획득하였다는 점은 오히려 태권도 세계화의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53]
경기 규칙
[편집]겨루기
[편집]태권도 경기를 치르는 선수는 도복을 착용해야 한다. 겨루기를 하는 경우에는 보호구도 착용한다. 태권도 보호구는 머리, 몸통, 손, 발, 팔, 다리, 샅 등의 주요 부위를 보호한다.[54]
겨루기의 경기장은 12m×12m 넓이의 정방형으로 장애물이 없는 수평이어야 한다. 주심과 부심을 운영한다.[55] 대한민국 국내 경기의 경우 41kg 이하의 핀급에서 77kg 초과의 헤비급까지 11개의 체급을 운영하지만 세계태권도연맹의 국제대회는 남녀 각각 4단계의 체급을 두고 있다.[55] 겨루기 경기는 1회 3분으로 하여 3회전으로 치뤄지며 회간 휴식 시간은 1분이다.[55] 득점 부위는 얼굴과 몸통으로 허리 아래의 하체 공격은 반칙이다. 몸통을 가격하면 1점, 얼굴을 가격하면 2점이 주어진다. 몸통부위 득점은 전자보호구에 의해 자동으로 측정되고 얼굴 부위는 주심과 부심의 판단으로 점수가 부여된다.[55] 가격 세기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자 파워태권도경기가 시범적으로 열리고 있다.[56]
품새
[편집]품새 경기는 공인품새의 경우 10m×10m, 자유품새의 경우 12m×12m 넓이의 정방형 경기장에서 치루어진다. 다섯명의 심판이 선수의 품새를 평가하여 최고와 최저 점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점수의 합산으로 순위를 가른다.[57]
격파
[편집]태권도 격파 경기는 기록격파와 기술격파, 위력격파로 나뉜다. 기록격파는 격파물에 대한 타격 자세와 격파 성공 여부를 대상으로 하고 기술격파는 고난이도 격파기술을 지정하여 이를 겨루게 하며 위력격파는 보다 강력한 격파 기술을 경쟁한다.[57]
주요 단체
[편집]국제태권도연맹
[편집]1966년 서울에서 발족한 국제 태권도 연맹(ITF, The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은 초대 총재인 최홍희의 태권도 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24] 이 때문에 "틀"(품새)와 같은 독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천지. 단군, 도산 등의 독자적 품새를 기반으로 수련한다.[58] 한 때 100여 국가에 가맹 단체가 있었으나[59] 올림픽 태권도와 규칙이 달라 비주류가 되었다.
세계태권도연맹
[편집]1973년 창립된 세계 태권도 연맹 (WT, The World Taekwondo)는 80년대까지 국제태권도연맹과 스포츠 외교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사이였으나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체택된 이후 주도적인 위치가 되었다. 가맹 국가는 아시아 43개국, 아프리카 52개국, 유럽 51개국, 팬아메리카 45개국, 오세아니아 19개국으로 세계 대다수의 국가에 가맹 단체가 있다.[11]
관련 작품
[편집]영화
[편집]연극
[편집]음악
[편집]- 워크 오프 디 어스의 'TAEKWONDO'
각주
[편집]- ↑ “태권도의 정의, 국기원”. 2024년 11월 1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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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복규, 전통주의 태권도사 서술의 문제점, 국기원 태권도연구, 제9권 제1호, 2018년
- ↑ 태권도 vs 가라데, 한국무예신문, 2011년 11월 2일
- 1 2 3 4 태권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 2 3 4 장용규·김동식, 태권도 민족주의 담론 형성의 주체와 전략, 국기원 태권도연구, 제7권 제1호, 2016년
- 1 2 3 김주연, 태권도의 해외진출에서 민간외교 활동: 1960~1970년대 미국 내 한인 사범들을 중심으로, 대한무도학회지 제21권 제4호, 2019년
- ↑ 국기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北 태권도 대부 최홍희씨 독립유공 서훈 탈락, 경향신문
- 1 2 3 세계태권도연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 2 3 남북의 태권도와 스포츠외교, 태권도타임즈, 2018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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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태권도 세계화와 한인 사범들의 활약상, TKD BOX, 2021년 4월 27일
- 1 2 한국 전통무예 태권도가 전 세계를 홀린 이유, 사이언스타임스, 2021년 10월 26일
- ↑ 한국, 세계품새선수권대회 13회 연속 종합우승 달성, TKD BOX, 2024년 12월 4일
- 1 2 태권도 실기, 대구광역시 태권도협회
- ↑ 김명배, 한창효, 태권도와 가라데 기술의 비교 연구, 한국체육과학회지 제26권 제2호 (인문사회과학편), 2017년
- ↑ 경기규칙/각관련규정, 안산시 태권도협회
- ↑ 품새, 대구광역시 태권도협회
- ↑ 품새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TKD BOX, 2016년 11월 14일
- ↑ 열기 높은 자유품새, 태권도 기술과 대중성 함께 껴안아야, 태권도신문, 2018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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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새, 국기
- ↑ 태권도 위계, 세게태권지도관연맹
- ↑ 태권도 띠순서와 급, 연지하이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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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mpetiton Record&Stats, WT
- ↑ 대한민국, 2025 ITF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서 금메달 3개 포함, 태권K미디어, 2025년 8월 4일
- ↑ 파리 2024 올림픽 본선: 태권도 예선 진행 방식, 2024 파리 올림픽
- ↑ 파리 2024 태권도 결과, 2024 파리 올림픽
- ↑ NYT “태권도, 메달 어려운 나라들의 희망…놀라운 다양성”, KBS, 2021년 7월 26일
- ↑ 몸통 보호구, 태권도 박물관
- 1 2 3 4 경기규칙, 안산시 태권도협회
- ↑ 태권도의 스포츠화: 파워태권도 도입에 따른태권도 선수의 참여 인식과 경험, 2024년 4월 3일
- 1 2 2025년도 (겨루기, 품새, 격파) 경기규칙 자료, 전북특별자치도
- ↑ ITF 태권도의 기술과 정신 - 틀, Mookas, 2019년 5월 27일
- ↑ 태권도 연맹은 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을까요, 한겨레, 2018년 1월 11일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편집]- 국기원 공식 웹사이트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
- 세계 태권도 연맹 공식 웹사이트 (영어)
- Taekwondo Instructions 보관됨 2012-04-11 - 웨이백 머신
- The World Taekwondo Federation(WTF)
- The International Taekwon-do Federation(ITF)
- 태권도진흥재단
- WTF-대한태권도협회(KTF)
- ITF-대한태권도연맹(KITF)
- 한국여성태권도연맹
-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 보관됨 2008-02-24 - 웨이백 머신
- "Comparing Styles of Taekwondo, Taekkyon and Karate(Video)"(태권도와 택견, 가라데의 비교 비디오) TaekwondoBib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