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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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도(空手道) 또는 가라데(일본어: 空手 (からて))는 류큐국 (현재 일본오키나와)에서 기원한 손과 발을 이용해서 상대를 타격하는 무술이다.

역사[편집]

17세기 일본 사쓰마 번의 침략에 의해 무기를 소유할 수 없게 된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의 무인들은 중국 남권을 간략화한 당수(唐手)를 수련하게 되는데 이것이 '데(手)'의 모체다. 근대 공수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후나코시 기친(船越義珍, 1868 - 1957)에 의해 20세기 초부터 일본 본토에 전수되었고, 중일전쟁등으로 중국에 대한 감정이 나빠지자, 중국을 의미하는 '당(唐)'자는 폐기되고 같은 발음인 '공수(空手)'로 대체된다. 이는 비어있는 손이라는 뜻으로, 맨손으로 하는 무술임을 뜻하기도 한다.

유파[편집]

  • 전통 공수도 : 대련을 할때 상대가 부상을 입지 않도록 공격이 몸에 닿기 직전에 멈추는 것(슨도메)이 특징이다. 후나코시 기친이 세운 송도관(松涛館 쇼토칸), 미야기 초준(宮城長順,1888-1953)이 세운 강유류(剛柔流 고주류)를 비롯하여, 사동류(絲東流 시토류), 화도류(和道流 와도류) 등이 있다.
  • 풀 컨택트 공수도 : 전통 공수도가 실전적이지 못한 것은 비판하면서 나타난 유파로, 보호구 없이 맨 몸으로 직접 타격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영의가 창시한 극진공수도 극진회관(極眞会館)이 중심으로, 극진회관에서 분파된 아시하라회관, 원심회관 등이 있다.
  • 기타 : 글러브를 끼고 안면타격까지 허용하는 글러브 공수도(K-1을 주최하는 정도회관이 대표적), 메치기와 관절기등을 포함하여 종합격투기에 가까워진 유파들(대도숙 공도 등)도 있다.

한국에서의 공수도[편집]

일제 강점기동안 일본에서 공수도를 배운 사람들은 해방 이후 한국에 돌아와 도장을 연다. 이들 도장에서는 '당수도' 등의 명칭을 사용하며 중국에서 배운 권법이나 한국 전통 무예인 택견의 기술 등을 섞어서 지도하게 되는데, 이는 태권도로 이어지게 된다.

각주[편집]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