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덕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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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덕
Kim Yeong-D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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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36년 1월 27일(1936-01-27) (84세)
출신지 일본 교토부
선수 정보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56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국가대표팀 경력


김영덕(金永德, 1936년 1월 27일 ~ , 일본명 : 가네히코 나가노리(金彦永徳), 개명 후 가네히코 히데시게(金彦任重))은 일본 교토 태생의 재일교포 야구인으로, 대한민국의 아마추어 야구, KBO 리그 감독이었다.

1956년 난카이 호크스에 입단해 1959년부터 1963년까지 통산 69경기(158.2이닝)에 출전해 7승 9패 평균 자책 3.57을 기록했다. 이후 장충고등학교북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거쳐 OB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빙그레 이글스의 감독을 맡았다. KBO 리그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며,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통합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시리즈 없는 시즌을 기록하였고 1987년 10월 14일부터 3년 계약 형식을 통해 빙그레 이글스 감독으로 부임했으며[1]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공헌을 인정받아 1990년 말 시즌 종료 후 3년 재계약을 했고[2] 1993년 말 계약 종료와 함께 1군 감독직에서 은퇴했다. 1998년 LG 트윈스 2군 감독직 재계약에 실패해 이광은에게 2군 감독직을 넘기고 야구계에서 물러났다. 송재박, 김성근과 함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재일교포 야구인 중 하나이다.

빙그레 이글스 감독이던 1988년 4월 7일 삼성전에서 7:2로 승리해 KBO 리그 사상 첫 통산 300승을 올린 감독이 되었다.[3]

한편, 이기기 위한 팀 운영과 지나친 계산야구로 인해 잃은 것들이 많았던 데다[4] 원년 OB 시절 박철순(16선발승으로 그 해 최다 선발승)을, 삼성 시절 김시진(본인(김영덕)의 삼성 부임 첫 해인 84년(15선발승)과 85년(21선발승) 2년 연속 최다 선발승)을, 빙그레 시절 이상군 한희민(본인(김영덕)의 빙그레 부임 첫 해인 88년 14선발승을 거둔 한편 4완봉승으로 최다 완봉승을 거둬 역대 KBO 최다 선발승-최다 완봉 타이틀을 동시 기록했던 유일한 언더스로 투수) 등에게 많은 짐을 지워 선수생명을 단축시켜 "투수 혹사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는데[5] 빙그레 부임 첫 해인 1988년 개막전에서 마무리로 투입된 한희민을 다음 날 선발로 등판시킨 것이[6] 대표적이었다. 특히, 앞서 언급한 선수들 중 박철순 이후로 한동안 정규시즌 MVP 중 최다 선발승 투수가 나오지 않았다가 1986년 선동열이 17선발승으로 박철순 이후 4년 만에 정규시즌 MVP-최다 선발승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선수가 됐지만 그 해 다친 허리가 다음 해인 1987년 5월 21일 인천 청보전에서 탈이 나[7] 한동안 결장하는 등 이 해부터 3년 연속 한자릿수 선발승(87년 5선발승 88년 9선발승 89년 9선발승)에 그쳤고 그 이후 1990년 11선발승, 1991년 15선발승으로 회복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1992년 어깨부상 때문에 2선발승으로 추락했으며[8] 선동열 이후 한동안 정규시즌 MVP 중에서는 최다 선발승 타이틀 투수가 한동안 나오지 않았지만 2005년 손민한이 17선발승(선동열과 타이)으로 오랜만에 정규시즌 MVP-최다 선발승 두 마리 토끼를 잡았으나 그 이후 2006년 류현진 (18선발승) 2007년 리오스(22선발승)[9]에 의해 역대 정규시즌 최다 선발승 MVP 기록이 갱신되기도 했고 김시진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을 위해 무리하게 등판한 탓인지[10] 팔꿈치-어깨부상 때문에 1986년 16선발승으로 추락했다가 1987년 21선발승으로 최다 선발승 타이틀을 차지해 회복세를 걸었지만 1988년 9선발승으로 추락했으며 같은 해 말 롯데 유니폼을 입은 뒤 또다시 10선발승 이상과 거리가 멀었고 한희민1989년 13선발승, 1990년 8선발승, 1991년 5선발승, 1992년 2선발승으로 하락세를 걸어 1993년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투수들 뿐 아니라 프로 원년 15승(8구원승 7선발승) 11세이브를 기록했으나 선수층이 옅은 현실에서 무리한 투구를 한 탓인지[11] 다음 해 6승(5선발승)으로 추락했다가 1984년 구원전문(10승 중 6구원승)으로 변신했던 황규봉1985년 풀타임 선발(14선발승)로 돌렸지만 같은 해 김시진이 그랬던 것처럼[12] 전후기 통합우승을 위해 무리하게 등판한 탓인지 다음 해 팔꿈치 부상 때문에[13] 3승(모두 선발)으로 추락하여 1986년을 끝으로 은퇴했으며 원년 에이스 이상군1988년 팀 사정상 마무리(10승(6구원승) 16세이브)로 돌렸는데[14] 이상군은 다음 해인 1989년 전반기 때까지 마무리로 뛰었다가 후반기부터 선발로 전향하여 이 해 11선발승(5구원승 포함 16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상군1990년에 전년도의 무리한 등판 탓인지 6선발승으로 추락했고 그 이후 1991년 2선발승 1992년 5선발승 1993년 6선발승 1994년 5선발승 1995년 5선발승으로 더 이상 10선발승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본인(김영덕)의 후임이자 늙은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15] 강병철 감독이 1993년 시즌 뒤 부임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자 1996년 강제로 현역 은퇴했다가 1999년 복귀한 후 그 해 5구원승, 2000년 1선발승을 거둔 뒤 완전히 지도자로 변신했다.


선수 경력[편집]

지도자 경력[편집]

출연작[편집]

등번호[편집]

통산 성적[편집]

감독[편집]

  • 승수별
날짜 장소 소속팀 상대팀 경기 결과 결승타 승리 투수 승패 달성 당시 나이 기타 각주
300승 1988. 4. 7 대구 빙그레 삼성 4 - 2 승 김대중 첫 번째 [16]
400승 1989. 7. 23 대전 빙그레 MBC 1 - 7 승 진정필 첫 번째 [17]
500승 1991. 4. 19 인천 빙그레 돌핀스 2 - 0 승 한용덕 847경기 55세 2개월 23일 첫 번째 [18]
600승 1992. 5. 26 사직 빙그레 롯데 4 - 3 승 김홍명 1000경기 첫 번째 [19]
700승 1993. 9. 10 대전 빙그레 쌍방울 1 - 4 승 한용덕 1200경기 2무 478패 57세 7개월 14일 첫 번째 [20]
전임
배성서
제2대 빙그레 이글스 감독
1988년 - 1993년
후임
강병철
전임
이충남
제3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3년 10월 27일 - 1986년 10월 20일 (308경기 197승 109패 2무)
후임
정동진 (대행)
전임
(초대)
제1대 OB 베어스 감독
1982년 - 1983년
후임
김성근

참조[편집]

  1. “신임감독에 金(김)영덕씨 빙그레 入団(입단)계약체결”. 매일경제. 1987년 10월 14일. 2020년 9월 19일에 확인함. 
  2. “김영덕감독 6천만원에 재계약”. 한겨레신문. 1990년 12월 29일. 2020년 9월 19일에 확인함. 
  3. 김창웅, 이종남, 《1994 프로 야구 가이드 북》, (서울: 늘 푸른들, 1994) 240쪽
  4. 최영호 (1999년 2월 26일). “[삼성라온즈18년 .2] 김영덕 감독”. 영남일보.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5. “사령탑 잦은 교체”. 부산일보. 1991년 10월 16일.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6. “빙그레 OB 두「金(김)」감독"함박웃음". 경향신문. 1988년 4월 4일.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7. “’87프로야구 베어스,1이닝 11득점(得點) 신기록 사사구(四死球) 6개—7안타(安打)로 청룡(青龍)제압”. 조선일보. 1987년 5월 22일.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8. 성기선 (1992년 7월 7일). “독수리 오늘 무등골 출격 숙명적 4연전”. 충청투데이.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9. 안준철 (2016년 9월 27일). “이제는 기록…니퍼트, 리오스 넘어 MVP 향한다”. MK스포츠.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0. 정동식 (1986년 8월 18일). “金(김)시진 時限附(시한부) 은퇴”. 경향신문.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1. 김지석 (2002년 12월 13일). “땀.눈물 그리고 우승 되돌아본 21년-(15)아쉬운 84년 KS”. 매일신문.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2. 정동식 (1986년 8월 18일). “金(김)시진 時限附(시한부) 은퇴”. 경향신문.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3. 최두성 (2011년 7월 4일).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⑫1986년 해태 선수단 버스 방화사건”. 매일신문.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4. 김종건 전문기자 (2012년 12월 20일).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이상군, 전설의 제구력…“심판들에게 스트라이크존 가르쳤지””. 스포츠동아.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5. 김종건 전문기자 (2012년 12월 20일). “[김종건의 아날로그 베이스볼] 이상군, 전설의 제구력…“심판들에게 스트라이크존 가르쳤지””. 스포츠동아. 2020년 9월 27일에 확인함. 
  16. '독수리 단독 선두 - 김영덕 감독 프로 통산 300승 이뤄', 《동아일보》1988,4,8
  17. '김영덕 감독 첫 400승 감격', 《경향신문》1989,7,24
  18. '첫 1천 안타 김성한 - 김영덕 감독도 첫 500승', 《동아일보》1991,4, 20
  19. '독수리 겹경사, 《경향신문》1992,5,27
  20. '김영덕 감독, 첫 통산 700승, 《경향신문》1993,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