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1946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정동진
Jeong Dong-jin
Baseball pictogram.svg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46년 4월 23일(1946-04-23) (74세)
출신지 한국의 군정기 미 군정 조선 경상북도 대구부
선수 정보
수비 위치 포수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아선수권 1969, 1971 서울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971 서울 야구

정동진 (鄭東鎭, 1946년 4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다.

생애[편집]

대구 출신으로 국가대표팀 포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제일은행을 거쳤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물러나고 잠깐 야구계를 떠나 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7년 간 종사했다. 이후, 1984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김영덕, 박영길 감독을 보좌하였는데 당시 삼성은 본인 뿐 아니라 박영길 전 롯데 감독을 타격코치[1], 원래 MBC 청룡에서 투수코치를 맡았으나 김동엽1983년 5월 감독으로 부임하자 야구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해 6월 9일 팀을 떠난[2] 유백만을 같은 달 27일 투수코치[3], 박창용 대구상고 감독을 2군 코치로 영입하면서 코치들의 수가 늘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코치들간 알력 다툼을 막고 선수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본인(정동진)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그 뒤, 유백만 투수코치가 1985년 1군-2군을 별도로 분리함에 따라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긴 데다[4] 다음 해 MBC로 돌아오자 한동안 투수코치까지 겸임했으며 삼성은 이 같은 부담감을 덜기 위해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 황규봉1986년 시즌 뒤 투수코치로[5] 승격시켰다. 이후, 1988년 시즌 뒤 박영길 감독 후임 물망에 한때 거론됐으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감독직을 고사했고 그 대신 백인천 전 삼미 플레잉코치를 추천했지만 구단의 반대로 무산됐으며[6] 난항 끝에 박영길 감독 후임으로 최종 발탁됐고 백인천1996년이 되어서야[7] 삼성 감독을 맡을 수 있었으며 1986년 11월 24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8] 삼성 감독에 취임한 박영길 감독은 부임 첫 해인 1987년 김일융의 일본 복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의 이유 탓인지 투수력이 붕괴되어[9]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했고 다음 해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적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는데 이 말은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렀으며 결국 박영길 감독은 임기를 1년 남겨두고[10] 도중하차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8년 11월 15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11]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에 선임되어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올렸으나 큰 기대를 건 이적생 최동원이 고작 1승에 그친 데다 성준 김훈기 두 선수의 부상으로[12] 투수력이 붕괴되어 준플레이오프에서 대구 2차전만 승리했을 뿐 인천 원정(1차전 3차전)에서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원년 선수 출신의 코칭스태프가 경험 부족으로 본인(정동진 감독)을 보필하기 어렵다고 구단 측에서 판단하여[13] 유백만 전 MBC 감독을 1989년 시즌 후 수석코치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 뒤, 1990년에도 정규 시즌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스윕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데 성공했으나 쓸만한 좌완 선발투수가 성준 밖에 없어[14] 윤덕규 김상훈 등 좌타자가 대거 포진한 LG 트윈스에게 스윕을 당해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의 고질병이었던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에 깨졌다.) 아울러,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의 책임 뿐 아니라 사생활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던 황규봉 1군 투수코치의 2군행을 요구한 편송언 사장과의 마찰 탓인지[15]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채[16] 1990년 시즌 후 삼성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영입되었으며 황규봉 코치는 1989년 말 외국 유학을 떠나면서 구단과 작별했고 그 이후 프로야구계와 인연을 끊었으며 은퇴 후 개인사업을 했으나 잇따른 사업 실패 때문에[17] 가족과의 불화가 겹쳐 부산에서 홀로 지낸 데다 경상중학교 때부터 같이 선수 생활을 한 이선희 외엔 대부분의 야구계 인사들과도 연락을 끊었고 이 와중에 병을 키워 허리가 너무 아파 2015년 11월 중순 병원을 찾은 결과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으며[18] 결국 2016년 1월 18일 별세했는데 황규봉 전 코치의 빈소를 찾은 야구인은 드물기도 했고 본인(정동진)의 삼성 후임 감독으로는 1988년 9월 10일부터 3년 계약 형식을 통해[19] 태평양 돌핀스 감독을 맡았으나 소위 "임호균 각서 파동" 탓인지[20] 계약기간을 1년 남겨둔 채 물러난 김성근1990년 11월 2일부터 3년 계약으로 부임했는데 부임 첫 해인 1991년에는 본인(김성근)의 스파르타식 훈련 때문에 부상선수가 속출하여 3위로 떨어진 데 이어 1992년에는 4위로 간신히 진출한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로 탈락하여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자 임기를 1년 남겨둔 채[21] 도중하차했으며 본인(정동진)이 박영길 감독의 삼성 후임으로 추천되기도 한 백인천김성근 감독 후임 물망에 한때 거론됐으나[22] 김성근 감독과 마찬가지로 스파르타식 훈련[23] 신봉자라 좌절됐다. 한편, 본인(정동진)의 삼성 감독 시절과 마찬가지로 태평양 감독 시절 전임자이자 1990년 11월 3일부터 4년 임기 형식으로 태평양 감독을 맡았던[24] 박영길은 기존 코치진 유임을 밝혔으나[25] 전임 김성근 감독이 길러놓은 사람들이라 원만한 팀운영이 의문시된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박영길 감독 부임과 함께 물러난 기존 코칭스태프는 박용진 2군감독이[26] 유일했고 성기영 전 롯데 감독이 박용진 후임 2군감독으로[27] 발탁됐다. 게다가, 김진영 감독이 1989년 11월 9일부터[28] 2년 계약 형식을 통해 롯데 감독을 맡으면서 같은 달 30일부터 1년 계약으로 롯데 투수코치를 맡았지만[29] 김진영 감독이 1990년 초반 한때 상위권을 질주했음에도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당초 구상과는 달리 중반 이후 서서히 등판시키겠다던 박동희를 선발-마무리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투입시켰고 이 때문에 정작 승부처인 후반기 이후부터 힘을 쓰지 못하여[30] 시즌 도중 해임된 데다 같은 해 말 강병철 감독이 재부임하면서 소위 '김진영 라인' 지우기에 따라 퇴출된[31] 장명부 투수코치 영입도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됐으며 김진영 감독은 1990년 이후 프로야구계에 돌아오지 못했고 이선덕 전 OB 2군감독을 1군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더군다나, 박영길 감독이 기존 '김성근 사단'의 일원이었던 신용균 수석코치와 불화를 빚어[32] 태평양 전체 코칭스태프가 동요했으며 이 과정에서 박영길 감독은 계약기간을 3년 남겨둔 채 물러났고 본인(정동진)이 후임으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이선덕 1군 투수코치가 2군감독, 성기영 2군감독이 1.5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김성근 사단'의 또다른 잔류 멤버인 신용균(수석코치) 최주억 (1군 수비) 이종도 (주루) 박상열 (2군 투수코치) 김대진 (2군 타격) 이근식 (타격보조) 코치 등이 팀을 떠나야 했다. 아울러, 정동진이 태평양 감독으로 부임하는 과정에서 정동진 감독과 함께 대구상고-제일은행 시절 선수생활을 같이 한[33] 류영수 삼성 2군감독을 수석-투수코치, 오대석 전 롯데 선수를 1군 수비코치, 앞서 본 것처럼 김진영 감독이 1989년 11월 9일부터[34] 2년 계약 형식으로 롯데 감독을 맡아 이 팀 코치로 현장에 돌아왔지만 김진영 감독이 1990년 초반 한때 상위권을 질주했음에도 팀 순위 다툼이 치열해지자 당초 구상과는 달리 중반 이후 서서히 등판시키겠다던 박동희를 선발-마무리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투입시켰고 이 때문에 정작 승부처인 후반기 이후부터 힘을 쓰지 못하여[35] 시즌 도중 해임된 데다 같은 해 말 강병철 감독이 재부임하면서 소위 '김진영 라인' 지우기에 따라 퇴출된[36] 김무관 전 롯데 코치를 2군 타격코치로 영입했으며 이 과정에서 박영길 감독 부임과 함께 영입된 이선덕 1군 투수코치가 2군감독, 역시 박영길 감독 부임과 함께 영입된 성기영 2군감독이 1.5군 감독으로 옮겨갔고 정진호 2군 수비코치가 1군 주루-작전코치, 정영기 플레잉코치가 2군 수비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다만, 류영수 오대석 김무관 코치 영입 문제를 놓고 세 사람의 전 소속인 삼성롯데 측으로부터 반발을 사야 했으며[37] 한때 김시진(당시 롯데 선수) 투수코치 영입설이 있었으나 대구 출신 코치들이 많다는[38] 이유로 좌절됐다. 어쨌든 1992년 6위, 1993년 최하위로 마감했지만, 1994년에는 그동안 부상으로 신음했던 투수들이 복귀하여 정규 시즌 2위로 마감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해 태평양 돌핀스LG 트윈스에게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스윕당해 LG 트윈스가 우승했지만, 그 해 성적은 1998년 현대 유니콘스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인천 연고 야구단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 2번 경험한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모두 LG 트윈스를 상대로 스윕당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95년에는 정규 시즌 7위로 마감했고,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이 현대그룹에 매각되었을 때 잔여 계약 기간 1년을 남긴 시점에서 팀 개편에 따라 수석코치 김재박에게 감독직을 넘겨 주고 물러났다. 이후 야구 해설가, KBO 규칙위원, KBO 경기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재임 시절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김시진을 투수코치로 영입, 투수 조련에 힘써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투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1990년대 후반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전성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데 김시진1992년 본인(정동진)이 감독으로 부임할 때부터 투수코치 영입설이 나돌았지만 태평양 구단 측에서[39] 대구 출신 코치들이 많다는 이유로 반대했었다.


전임
박영길
제4대 태평양 돌핀스 감독
1992년 - 1995년
후임
김재박
전임
김영덕
삼성 라이온즈 감독 대행
1986
후임
박영길
전임
박영길
제5대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9 - 1991
후임
김성근
  1. “朴永吉(박영길)감독 三星(삼성)코치로”. 경향신문. 1984년 1월 13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2. “청룡팀 감독대행 유백만씨 사표내”. 중앙일보. 1983년 6월 10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3. “삼성의 투수코치로 유백만 전청룡코치”. 중앙일보. 1983년 6월 28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4. “「타석」에 들어선'85프로야구 國內外(국내외)서 힘찬「스윙」”. 동아일보. 1985년 2월 13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5. “삼성 황규봉, 코치로”. 중앙일보. 1986년 11월 27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6. 최영호 (1999년 3월 5일). “[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 영남일보. 2020년 3월 22일에 확인함. 
  7. 최영호 (1999년 3월 16일). “[삼성라이온즈18년 .7] 백인천감독”. 영남일보. 2020년 3월 22일에 확인함. 
  8. 송하칠 (1986년 11월 25일). “미니인터뷰 朴永吉(박영길)감독 三星(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단 새 사령탑”. 매일경제.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9. '87프로야구 絕對强者(절대강자)는 없다”. 동아일보. 1987년 3월 3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10. 최영호 (1999년 3월 2일). “[삼성라이온즈 18년 . 3] 박영길 감독”. 영남일보.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11. “프로야구 삼성감독 정동진씨”. 한겨레신문. 1988년 11월 16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12. “프로야구 '89大長征(대장정) (4)”. 경향신문. 1989년 4월 5일.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13. 권오중 (1989년 11월 14일). “90년대 승리 향한 포석 끝냈다... 8개 구단 지휘부 개편 거의 완료”. 중앙일보.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14. 박건만 (1990년 10월 18일). “프로야구'90패권 수비·주루플레이에 달렸다”. 경향신문. 2020년 8월 9일에 확인함. 
  15. 최영호 (1999년 3월 5일). “[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 영남일보. 2020년 3월 22일에 확인함. 
  16. 최두성 (2011년 10월 3일). “[with 라이온즈 30년] (18) 옷 벗은 감독들”. 매일신문. 2020년 3월 25일에 확인함. 
  17. 권태호 (2016년 1월 20일). “‘원조 불사조’ 삼성 원년 에이스 황규봉 별세”. 한겨레신문. 2020년 3월 25일에 확인함. 
  18. 이재국 (2016년 1월 20일). “삼성 ‘원년 에이스’ 황규봉, 별이 지다”. 스포츠동아. 2020년 3월 25일에 확인함. 
  19. 연합 (1988년 10월 7일). “태평양,코치 진영 정비”.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0. 이상학 (2010년 12월 31일). “역대 논란이 됐던 감독교체 사례는?”. OSEN.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1. 최영호 (1999년 3월 10일). “[삼성라이온즈 18년 .5] 김성근 감독”. 영남일보.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2. 이봉현 (1992년 10월 3일). “프로야구 감독'희생양'인가”.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3. 윤희상 (1996년 2월 6일). “프로야구 "자율 야구냐 관리야구냐". 동아일보.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4. “태평양 새감독 박영길씨 취임”. 한겨레신문. 1990년 11월 4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5.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6. 연합 (1990년 12월 3일). “프로야구 코칭스탭윤곽 거의 드러나”. 연합뉴스.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7. “전(前)롯데감독 성기영(成基泳)씨 태평양 2군감독맡아”. 조선일보. 1991년 1월 21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8. “巨人(거인)—金振榮(김진영)감독 정식 계약 기간 2년에 연봉 5,000만원 수비코치엔 權斗祚(권두조)씨”. 동아일보. 1989년 11월 10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29. “장명부,롯데 투수코치로”. 한겨레신문. 1989년 12월 1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0. 권오중 (1990년 10월 14일). “올 시즌 하위 3개팀 태평양·롯데·OB 코칭 스태프 물갈이로 "재정비". 중앙일보.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1.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2. “太平洋(태평양)감독 丁(정)동진씨 3년임기 계약금·年俸(연봉) 1億(억)2千萬(천만)원”. 경향신문. 1991년 10월 15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3. 연합 (1991년 10월 24일). “돌핀스, 수석코치에 柳永洙씨 내정”. 연합뉴스.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4. “巨人(거인)—金振榮(김진영)감독 정식 계약 기간 2년에 연봉 5,000만원 수비코치엔 權斗祚(권두조)씨”. 동아일보. 1989년 11월 10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5. 권오중 (1990년 10월 14일). “올 시즌 하위 3개팀 태평양·롯데·OB 코칭 스태프 물갈이로 "재정비". 중앙일보.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6. 정의길 (1990년 11월 3일). “프로야구 무원칙'감투바꿔쓰기'성적부진·구단불화 빌미 4구단 물갈이”. 한겨레신문.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7. 연합 (1991년 11월 18일). “<프로야구 화제>-코칭스태프 재정비 활발”. 연합뉴스.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8. “다이아몬드 쌍방울,투수成영재등 2차지명”. 문화일보. 1992년 11월 24일. 2020년 9월 6일에 확인함. 
  39. “다이아몬드 쌍방울,투수成영재등 2차지명”. 문화일보. 1992년 11월 24일. 2020년 6월 17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