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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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
Kim Seong-Rae
한화 이글스 No.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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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1년 12월 3일(1961-12-03) (58세)
출신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
신장 185 cm
체중 87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1루수, 2루수, 좌익수
프로 입단 연도 1984년
드래프트 순위 1984년 1차 3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KBO / 1984년 4월 24일
대구삼미
마지막 경기 KBO / 2000년 8월 13일
인천LG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김성래(金聲來, 1961년 12월 3일 ~ )는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메인타격코치이다. 1984년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주로 2루수로 활동했다. 1987년 22홈런을 기록하며 2루수 최초 홈런왕을 차지했다. 이후 부상으로 하락세를 걷다가 1992년에 2할대 후반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듬해인 1993년에 3할 타율, 28홈런, 91타점으로 홈런왕·타점왕·최우수 선수 타이틀을 수상했다. 1996년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된 후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했고 SK 와이번스에서 은퇴했다.

선수 시절[편집]

삼성 라이온즈 시절[편집]

1984년에 1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첫 해에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았지만 1985년에 2할대 후반 타율, 13홈런을 기록하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1986년에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고, 1987년에도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으며 22홈런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8년 9월 6일 해태 타이거즈전에서 1루수 김성한과 충돌하며 부상을 입었다. 그는 무릎 십자 인대가 끊어져서 달리거나 방망이를 휘두르거나 그라운드에서 몸을 날릴 수 없게 됐고 삼성은 김성래가 무릎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한 데다 팀내 잠수함 투수 중 가장 구위가 좋았던 김훈기가 같은 시기 허리 부상으로[1]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해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으며 1986년 11월 24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2] 삼성 감독에 취임한 박영길 감독은 부임 첫 해인 1987년 김일융의 일본 복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의 이유 탓인지 투수력이 붕괴되어[3]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한 데다 방위병 2루수 김성래가 시즌 막판 무릎 부상, 팀내 잠수함 투수 중 가장 구위가 좋았던 김훈기가 같은 시기 허리 부상으로[4] 1988년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해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적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고 이 말은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렀으며 결국 박영길 감독은 임기를 1년 남겨두고[5] 도중하차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그는 2루수 강기웅이 입단하며 입지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해로부터 3년간, 그는 두 경기 건너 한 번쯤 대타로 출전했다. 무사히 무릎 수술을 마친 후, 그가 부진했던 몇 년 사이 강기웅은 완전히 2루수 자리를 굳혔고, 체력 부담 때문에 좌익수로 옮겼다. 그는 1992년 많은 타석은 아니었지만 2할대 후반 타율을 기록했다. 1993년에는 1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후 5년 만에 3할 타율을 기록했고, 28홈런, 91타점을 기록하며 1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와 정규 시즌 MVP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번엔 허벅지 근육통을 앓게 됐고 결국 부진을 면치 못한 채 방출됐다. 그가 방출됐을 때 당시 감독이었던 백인천이 대대적으로 타자 진영에서 세대 교체를 단행했고, 이종두, 이정훈, 김성현, 강기웅 등도 방출 및 트레이드됐다.[6] 한편, 앞서 본 것처럼 1986년 11월 24일부터 3년 계약 형식으로[7] 취임했으나 부임 첫 해인 1987년 김일융의 일본 복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의 이유 탓인지 투수력이 붕괴되어[8]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한 데다 방위병 2루수 김성래가 시즌 막판 무릎 부상, 팀내 잠수함 투수 중 가장 구위가 좋았던 김훈기가 같은 시기 허리 부상으로[9] 1988년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해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적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하여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러 임기 1년을 남겨둔 채 도중하차한 박영길 감독 후임으로는 정동진 수석코치가 한때 거론됐지만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사하자 백인천을 후임 감독으로 추천했으나[10] 구단 측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편집]

그는 팀의 마지막 해였던 1999년에 5년 만에 100경기 이상 붙박이로 출전해 2할대 중후반 타율, 9홈런을 쳐 냈다.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29경기에만 출전했다. 시즌 중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 기간 동안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2001년SK 와이번스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까지 활동했다. 2009년 시즌 중 2군 타격코치로 잠깐 내려갔다. 2009년 시즌 후 2010년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10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서 먼저 타격 코치 제의를 받았으나[11] 10월에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 코치로 임명됐고, 2011년 시즌 후 수석코치로 보직이 변경됐다. 2012년에는 수석코치와 타격코치를 겸임했다. 2016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해 수석 코치에서 물러났다.[12] 이후 한화 이글스의 2군 타격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13]

등번호[편집]

  • '5' (1984년 ~ 1996년)
  • '9' (1997년 ~ 2000년)
  • '80' (2011년 ~ 2016년)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1984 삼성 24 39 70 59 6 11 2 0 1 3 0 1 8 13 .186 .290 .271 .561 16 0 1 1 1 0
1985 25 103 359 300 40 85 16 0 13 51 5 3 41 39 .283 .390 .467 .857 140 8 13 3 2 1
1986 26 102 391 344 47 99 22 1 8 48 3 1 34 42 .288 .362 .427 .789 147 7 7 4 2 1
1987 27 99 385 334 59 111 11 1 22 70 2 5 45 38 .332 .413 .569 .982 190 8 3 0 3 3
1988 28 96 386 314 54 110 18 2 10 54 7 4 58 43 .350 .459 .516 .975 162 6 7 5 2 2
1989 29 39 87 77 7 19 3 0 2 13 0 0 6 12 .247 .314 .364 .678 28 2 2 1 1 1
1990 30 54 164 141 20 28 3 0 6 20 0 0 13 23 .199 .303 .348 .650 49 2 8 2 0 0
1991 31 30 68 51 7 8 1 0 3 5 0 1 11 10 .157 .328 .353 .681 18 2 3 1 2 0
1992 32 86 266 226 31 66 13 0 11 50 1 2 34 38 .292 .392 .496 .887 112 4 3 3 0 0
1993 33 124 521 436 64 131 18 2 28 91 2 1 69 72 .300 .395 .544 .939 237 17 5 2 9 0
1994 34 105 349 276 39 68 10 1 14 43 3 1 56 54 .246 .395 .442 .837 122 5 14 0 3 1
1995 35 44 144 124 13 32 4 0 3 17 0 2 11 26 .258 .345 .363 .708 45 1 6 2 1 0
1996 36 22 42 37 5 6 2 0 1 3 0 0 4 11 .162 .262 .297 .559 11 0 1 0 0 0
1997 쌍방울 37 99 325 266 27 68 14 0 9 45 0 1 34 53 .256 .348 .410 .758 109 10 8 9 8 3
1998 38 93 281 238 21 55 14 3 5 26 0 0 28 54 .231 .314 .378 .692 90 6 2 9 3 5
1999 39 113 401 346 43 94 19 0 9 48 1 2 41 73 .272 .363 .405 .768 140 9 10 2 2 3
2000 SK 40 29 75 64 7 17 0 0 2 8 0 0 9 19 .266 .373 .359 .733 23 1 2 0 0 0
KBO 통산 : 17년 1277 4314 3633 490 1008 170 10 147 595 24 24 502 620 .277 .376 .451 .827 1639 88 95 44 39 20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각주[편집]

  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티킷을 잡아라”. 조선일보. 1988년 10월 7일.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2. 송하칠 (1986년 11월 25일). “미니인터뷰 朴永吉(박영길)감독 三星(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단 새 사령탑”. 매일경제.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3. '87프로야구 絕對强者(절대강자)는 없다”. 동아일보. 1987년 3월 3일.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티킷을 잡아라”. 조선일보. 1988년 10월 7일.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5. 최영호 (1999년 3월 2일). “[삼성라이온즈 18년 . 3] 박영길 감독”. 영남일보.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6. <프로야구특집 Ⅱ-전력점검> ③삼성 라이온즈 - 연합뉴스
  7. 송하칠 (1986년 11월 25일). “미니인터뷰 朴永吉(박영길)감독 三星(삼성)라이온즈프로야구단 새 사령탑”. 매일경제.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8. '87프로야구 絕對强者(절대강자)는 없다”. 동아일보. 1987년 3월 3일.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티킷을 잡아라”. 조선일보. 1988년 10월 7일.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10. 최영호 (1999년 3월 5일). “[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 영남일보. 2020년 9월 10일에 확인함. 
  11. 정재우 (2011년 12월 17일). “[코치, 그들을 말한다] 김성래 코치 “93년 1루수 MVP 내 인생 최고의 해””. 스포츠동아. 2020년 2월 24일에 확인함. 
  12. 삼성, 김성래 수석코치 등 3명과 재계약 불가 통보 - OSEN
  13. 한화, "김성래 코치 영입, 김성근 감독도 원했다" - OSEN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