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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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Kim Jae-Hyun
대한민국 No.88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5년 10월 2일(1975-10-02) (42세)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77 cm
체중 79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좌익수, 지명타자
프로 입단 연도 1994년
드래프트 순위 1994년 고졸 자유 계약(LG 트윈스)
첫 출장 KBO / 1994년 4월 9일
인천태평양
마지막 경기 KBO / 2010년 10월 19일
문학삼성
획득 타이틀
계약금 9,100만원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해설자 경력

  • 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 (2013년 ~ 2014년)
  • SPOTV 야구 해설위원 (2017년 ~ 현재)


김재현(金宰炫, 1975년 10월 2일 ~ )은 전 KBO 리그 SK 와이번스외야수, 지명타자이자, 현 SPOTV 야구 해설 위원이다. 빠르고 강력한 스윙을 바탕으로 한 타격 때문에 '캐넌 히터'라는 별명이 있다.

선수 시절[편집]

LG 트윈스 시절[편집]

성동초등학교, 신일중학교,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약금 9,100만 원의 조건으로 1994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 개막전에서 홈런을 기록하였다. 신인으로는 처음으로 홈런과 도루를 20개씩 성공하면서 20-20 클럽(21홈런, 21도루)에 가입하여 서용빈, 유지현과 함께 팀을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LG 트윈스의 주전 외야수로 꾸준히 활약했다. 그러던 중 2002년 7월 8일 그의 왼쪽 고관절에 '고관절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일종의 희귀병이 발병했다. 이 병은 고관절이 썩어 들어가는 병이다. 그 이후부터 그는 지명타자로만 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팀의 간판 선수로 화끈한 타격을 보여 주어 그 해 개인 통산 1,000안타를 기록했고, 투혼을 발휘하여 부상에도 200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대구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였던 6차전 때 권용관의 대타로 출장하여 안타를 기록해 타점을 올린다. 2루타성 타구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절뚝거리며 겨우 1루를 밟고 교체되는 모습에 LG 팬뿐만 아니라 야구 팬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LG 트윈스는 9회 말 이승엽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을 맞아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이 해의 한국시리즈는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다. 투혼을 보여 주었지만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오른쪽 고관절에도 괴사증이 발견되어 그는 경희대학교 의료원에 입원, 12월 13일 수술대에 올랐다.[1] 이 수술은 양쪽 무릎 부분을 거의 떼었다가 다시 붙일 정도로 선수 생명을 건 대수술이었다.[2] 이럼에도 불구하고, LG 트윈스에서는 2004년 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리게 되는 그에게 "병으로 인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내용의 각서를 그가 수술을 마치고 재활 중이었던 2003년 초에 요구했다. 결국 그는 이 각서를 받아들이고 2003 시즌 연봉 계약을 하였으며, 재활을 마치고 2003년 7월 29일 KIA전을 통해 4타수 3안타를 기록하여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3] 이후 이듬해 그는 수술을 집도한 담당 박사로부터 수비 훈련을 해도 좋다는 정상 진단을 받았고, 의사의 소견을 바탕으로 2004년 1월 15일 구단에 각서를 파기할 것을 요구했으나 LG 구단에서는 수용을 거절했다. 이상훈이 그 무렵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된 지 얼마 후의 일이라 시즌 초부터 LG는 굉장히 시끄러웠으며,[4] 이에 선수협에서도 공정한 계약이 아니라고 반발[5] 하였으나 구단에서는 부상 재발의 우려를 이유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재현은 이에 연봉 삭감 및 트레이드도 불사하겠다고 했으나 각서와는 별개로 삭감된 연봉에 재계약했다.[6] 하지만 2004년 시즌 중반에는 이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스스로 2군행을 자처하기도 했다.[7] 이 각서 파동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FA를 선언하고 10년 간 몸담았던 LG 트윈스와 4년 22억 원의 조건으로 우선 협상을 하였으나 FA 계약 2번째 시즌에 규정 타석과 타율 0.280을 넘지 못할 경우 다시 협상한다는 조건으로 인해 이견을 보였다. 결국 그는 이 조건에 실망하여 등돌린 후, 2004년 11월 21일 SK 와이번스와 4년 간 계약금 8억원 등 총액 20억 7,000만 원의 조건으로 FA 계약을 맺고 이적하게 되었다.[8]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2005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그는 팀의 고참으로서 솔선수범한 모습과 중심 타선으로 활약한다. 그로 인해 그 해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최다 득표로 지명타자 부문을 수상하였다. 2007년 시즌에는 자신의 야구선수 생활 처음으로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MVP에 등극하는 등 SK 와이번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어내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하였다. 이후 SK 와이번스의 간판 타자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2009년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기자 회견에서, 2010 시즌 이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수 생활 마지막 해가 된 2010년에, 그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09년 9월 8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곽정철로부터 고의 4구를 얻어내며 개인 통산 1,000 사사구를 기록하였다.[9] 개인 통산 1,000 사사구는 양준혁박경완에 이은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다음 타석에서는 상대 투수 오준형으로부터 만루 홈런을 뽑아 내었는데, 이 만루 홈런으로 개인 통산 1,600 안타(역대 9번째)와 2,500 루타(역대 14번째)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10] 2010년 8월 2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상대 투수 김수완으로부터 200홈런(105m 솔로 아치)을 쳐내며 프로야구 사상 15번째 200홈런을 달성했다.[11] 그리고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의 우승으로 자신의 한국시리즈 4번째 우승을 이뤄 내면서 프로 무대 데뷔 년도 우승/은퇴 년도 우승이라는 사상 첫 기록을 세웠다. 이후 미국 MLB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싱글 A 팀인 그레이트 레이크스 룬즈에서 코치연수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6월 25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LG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하려고 했으나, 장마와 태풍으로 무산되어 2011년 10월 1일 SK 와이번스의 2011 시즌 마지막 홈 경기인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야구 해설자[편집]

은퇴 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리그팀과 일본 프로 야구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2013년부터 SBS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지도자 생활[편집]

2014년 11월 11일 한화 이글스의 타격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나, 2016년 10월 17일 코치직에서 사임했다.[12]

야구 해설자 복귀[편집]

2016년 12월 6일 SPOTV의 새로운 야구 해설위원으로 영입되면서 2년만에 해설자로 복귀했다.

논란[편집]

1995년 7월 10일2003년 6월 17일에 각각 술을 마시고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를 초과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여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1995년 7월 10일에는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차와 충돌했고,[13] 2003년 6월 17일에는 음주 측정을 세 차례 거부한 바 있다.[14]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1994 LG 19 125 535 463 81 134 26 3 21 80 21 4 55 86 .289 .376 .495 .870 229 7 12 0 5 2
1995 20 116 448 381 55 97 19 3 15 56 13 9 45 83 .255 .348 .438 .787 167 6 13 3 6 2
1996 21 117 482 414 57 117 20 0 11 60 7 7 49 52 .283 .372 .411 .783 170 7 11 6 2 4
1998 23 122 541 482 70 142 31 3 16 76 8 6 47 80 .295 .364 .471 .835 227 6 7 2 3 2
1999 24 121 520 453 75 130 17 1 21 94 8 4 54 58 .287 .371 .468 .839 212 14 9 0 4 2
2000 25 131 560 464 83 143 32 2 11 62 6 6 81 73 .308 .415 .457 .872 212 11 7 3 5 5
2001 26 126 534 428 81 139 29 1 8 61 10 8 88 83 .325 .443 .453 .896 194 9 6 8 4 1
2002 27 98 370 296 50 99 14 0 16 61 11 3 54 51 .334 .462 .544 1.006 161 6 18 0 2 5
2003 28 50 166 143 13 44 8 0 6 21 0 0 17 25 .308 .392 .490 .881 70 5 4 0 2 1
2004 29 120 458 373 56 112 18 3 14 62 1 1 66 58 .300 .415 .477 .892 178 10 12 0 7 5
2005 SK 30 120 499 400 63 126 17 0 19 77 2 2 80 59 .315 .445 .500 .945 200 9 16 0 3 10
2006 31 109 441 356 42 102 16 1 8 51 5 2 76 56 .287 .418 .404 .823 144 10 6 1 2 3
2007 32 84 250 204 26 40 11 0 5 19 4 4 43 40 .196 .337 .324 .661 66 10 1 1 1 4
2008 33 108 364 297 46 92 17 3 10 60 4 3 59 40 .310 .426 .488 .914 145 12 4 0 4 2
2009 34 112 359 289 45 87 18 0 10 51 8 1 63 45 .301 .433 .467 .900 135 5 5 0 1 3
2010 35 111 328 267 41 77 17 0 10 48 7 5 51 42 .288 .404 .464 .869 124 10 3 4 3 2
KBO 통산 : 16년 1770 6855 5710 884 1681 310 20 201 939 115 65 928 931 .294 .402 .461 .863 2634 137 134 28 54 53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수상 경력[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