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균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황재균
Hwang Jae-Gyun
kt 위즈 No.10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87년 7월 28일(1987-07-28) (31세)
출신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신장 183 cm
체중 96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3루수, 1루수, 유격수
프로 입단 연도 2006년
드래프트 순위 2006년 2차 3라운드(현대 유니콘스)
첫 출장 KBO / 2007년 4월 21일
사직롯데
MLB / 2017년 6월 29일
AT&T 파크콜로라도
마지막 경기 MLB / 2017년 8월 2일
오클랜드–알라메다 카운티 콜리시엄오클랜드
획득 타이틀
계약금 6,000만원
연봉 12억원 (2018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 2018년
프리미어 12 2015년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14년 인천 야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야구
프리미어 12
2015 일본•대만 야구

황재균(黃載均, 1987년 7월 28일 ~ )은 KBO 리그 kt 위즈내야수이다. 그의 어머니인 설민경은 전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1]

아마추어 시절[편집]

사당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야구공을 잡았다.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당시 경기고등학교 감독이었던 곽연수의 지도 아래 야구에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다. 그러나 2005년 전국 대회인 대통령배 고교야구 대회에서 크게 부진했다.[2] 이 때문에 경기고등학교 시절 프로 야구단들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2006년[편집]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3라운드로 지명되어 계약금 6,000만원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2군에서만 활동했다.

2007년[편집]

2007년 시즌 초반에 2군에서 뛰던 중 4월 2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데뷔 첫 경기를 치렀다. 처음에는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 등 백업 요원으로 뛰다가 시즌 막바지에 주전 유격수로 기용되면서 활약하였는데, 그 해 성적은 3할 타율, 2홈런, 12타점을 기록했다.

넥센 히어로즈 시절[편집]

2008년[편집]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면서 현대 선수단을 인계하고 새로 창단한 넥센 히어로즈에서 그는 2008년 시즌에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5월 초까지만 해도 그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면서 공-수 양면에서 부진했다. 이 무렵에 입단 동기이자 동갑내기 내야수인 강정호에게 유격수 자리를 넘기고 3루수로 전업하였다.

2009년[편집]

2008년 시즌 후, 같은 소속 팀이자 고참 선수인 3루수 정성훈이 FA를 선언하여 LG 트윈스로 이적하자 이에 따른 공백으로 3루에 완전히 정착하였다. 2009년 시즌 초반부터 그는 3루수로 꾸준히 기용되면서 풀 타임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이 해에 그는 133게임 시즌 전 경기 출장을 소화하며 2할대 타율, 18홈런, 30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 해에 그는 생애 처음으로 감독 추천을 통해 올스타전에 뛰는 영광을 얻었다. 그는 호타준족형 선수로 향후 넥센 히어로즈에서 같은 소속 팀이자 동갑내기 유격수 강정호와 더불어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였다. 이현승, 이택근장원삼의 트레이드 파동 때에도 강윤구강정호와 더불어 넥센 히어로즈에서 트레이드 불가라고 말했을 정도로 괜찮은 실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아 왔었으나 팀이 4강 싸움이 한창일 때 20-20을 하려 했으나 익숙치 않은 거포 스윙과 초구병으로 4강과 20-20을 둘 다 놓쳤다.

롯데 자이언츠 시절[편집]

트레이드 파동[편집]

넥센 히어로즈에서 2010년 시즌 초부터 컨디션 난조와 손목 부상 여파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7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내야수 김민성, 투수 김수화를 상대로 롯데에 트레이드되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그를 영입하게 된 주 원인은 당시 3루수는 이대호가 맡고 있었고 3루수 특성상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에 부담을 줄여주고자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고 있었는데 3루수에 적합한 선수들을 못 찾았다. 그때 마침 넥센 히어로즈에서 유망주였던 그가 트레이드로 나와서 적극적으로 영입에 추진했었다. 이미 넥센 히어로즈 측은 2009년 시즌에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였던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 마일영 등을 각각 2010 시즌 시작을 앞두고 삼성, 두산, LG, 한화에 현금 트레이드 내지는 선수 + 현금 트레이드한 전력이 있었는데, KBO에서는 이와 같은 트레이드를 선수 팔기로 보아, 2010년 말까지 현금 트레이드는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넥센 히어로즈 이장석 대표는 공공연히 "팀의 유망주인 그와 강윤구, 강정호는 팔지 않겠다." 고 말한 바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트레이드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었고, 넥센 측과 롯데 측은 정당한 전력 보강용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 트레이드라고 주장하였으나, 뒷돈이 오고 갔을 것이라는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 건은 넥센 히어로즈의 팬들은 물론 당시 감독이었던 김시진 조차도 배제된 채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한 7월 24일의 올스타전을 앞두고 이루어진 이 트레이드는 다른 문제를 낳게 되었는데, 그는 올스타전에서 서군 3루수로 이미 선발되었었고 동군에 속하는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게 될 경우 어느 팀의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지가 문제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물론 일본 올스타전에서도 전례가 없었던 초유의 사건이었다. 2010 시즌 후 고원준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면서, 2011년 트레이드 마감일에 있었던 박병호의 트레이드 영입 이전까지 넥센 히어로즈는 트레이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에 KBO 측은 트레이드가 공식 발표된 7월 20일 이후 이틀이 지나도록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다가, 7월 22일 롯데넥센 측에 트레이드에 현금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내용 증명 문서를 접수하고, 넥센 히어로즈로부터는 더이상 2010 시즌에 선수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를 승인하였다. 그리고 그의 올스타전 출전 문제에 대해서는 동군으로 출전하되, 선수 2명이 부족하게 된 서군은 감독 추천 선수를 2명 더 쓸 수 있도록 유권 해석하여 해결하였다. 이에 당시 올스타전 서군 감독이었던 조범현은 내야수 김선빈오지환을 추가로 지명하여 선수 트레이드와 올스타전 출전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트레이드가 승인됨에 따라 트레이드 대상 선수들은 당일 1군 경기에 뛸 수 있게 되었고 그와 김민성은 트레이드 승인이 떨어지자마자 당일에 각각 롯데넥센의 당일 선발 라인업에 들어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2010년[편집]

2010년 7월 22일 트레이드가 승인된 당일, 그는 한화전에 선발 출장하였다. 그는 3루수를 맡았고, 그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3루를 보던 이대호는 1루수로, 김민성이 보던 유격수 자리는 문규현이 담당했다. 그리고 1루와 외야를 번갈아 보던 김주찬은 외야수를 맡아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이적 후 첫 경기에서 4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타격면에서는 손목 부상의 여파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지만, 수비면에서는 유격수3루수를 번갈아 보면서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박기혁의 부상과 정보명의 부진으로 공백이 생긴 내야진의 수비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넥센 히어로즈 선수이던 시절 서군 올스타로 선정되었으나, 올스타전 직전에 롯데로 이적함에 따라 올스타전에서는 동군 올스타 선수 엔트리에 들게 되었다. 7월 24일 올스타전에는 도중에 교체 출전했는데, 9회말 동점 상황에서 예전 팀 동료였던 손승락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쳐 내며, 동군의 1점차 승리에 기여했다. 그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올스타전 '선구회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 해 부상 등으로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여 80경기 출장에 그쳤고, 강정호에게 밀려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011년[편집]

시즌 초기에는 당시 감독이었던 양승호의 전력 구상에 따라 유격수로 출장하였으나 문규현이 유격수로 자리잡아 원래 위치인 3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특히, 주자 만루시 타석에서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해 만루 홈런만 2개를 기록했으며 만루시 타율이 5할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3] 그러나 시즌에서 많은 실책을 범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철벽 수비를 보여주면서 5차전 때 실책을 제외하고는 4차전까지 단 한 번도 실책을 보여주지 않으며 '수비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특히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느린 땅볼타구를 맨손으로 잡아 1루에 정확히 던져 주자를 아웃시키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주는 등 27개의 아웃카운트 중 무려 9개의 아웃카운트를 혼자 잡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4][5] 현재 quiet riot의 come on feel the noise를 롯데 황재균~ 롯~데 황재균 워 워 워 로 개사한 응원가를 사용하고 있다.

2012년[편집]

2012년 시작부터 좋은 활약을 보여줬는데, 특히 수비에서 허슬 플레이를 보이면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시즌 중에는 4번 타자로 잠깐 나서서 활약을 보였지만, 주로 하위타순에 나섰다. 2012 올스타전에서는 2타점 적시타를 쳤고 결승타가 되면서 생애 최초로 미스터 올스타에 뽑혔다.

2014년[편집]

2014년 팀에서 활약을 펼치며 2014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9월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대한민국이 1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쐐기 2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이 결승점으로 대한민국의 6-3 역전승을 합작하며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고, 자신 역시 병역 혜택을 얻었다. 또한, 1982년 아시안 게임 테니스 금메달리스트인 어머니 설민경 씨와 자신은 대한민국 최초로 모자 아시안 게임 출전과 함께 모자 금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또한 사직야구장 3번째 장외 홈런을 치며 힘을 과시하는 등 호타 준족의 선수상을 키워갔다.[6]

2015년[편집]

장타력 향상을 위해 비시즌 기간동안 벌크업에 심혈을 기울이며 100kg까지 몸을 불렸고 그 효과로 2015시즌 장타력이 대폭 향상되어 전반기에만 22홈런을 치며 시즌 성적 2할대 타율, 26홈런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15년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도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에릭 테임즈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 프리미어 12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 11월 30일 MLB 사무국에 포스팅을 요청하였으나 응찰 구단이 없어 실패하였다.

2016년[편집]

2016 시즌 이후 등번호가 13번에서 10번으로 변경되었고 시즌 중 주로 4번 타자를 맡았다.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짐 아두치 다음으로 2번째 20-20 클럽에 가입하면서 팀 내 토종 선수 최초로 20-20 기록을 달성했다. 2016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다. FA 협상에서 국내 잔류와 해외 진출을 놓고 고심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와 결별했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절[편집]

FA를 신청한 이후 1년 총액 310만 달러에 스플릿 계약을 했다. 몇 달 동안 메이저리그 콜업소식이 없던 그는 현지 시간으로 6월 28일에 메이저 리그에 콜업됐다.[7]그의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인 6월 28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하였다. 이 홈런은 팀에게 역전승을 가져다주는 결승 홈런이기도 했다. [8][9] 7월 1일 경기에서는 첫 2루타를 기록하였다.[10] 그 후 3루수와 1루수를 오가며 경기에 나섰지만 부진에 빠져 결국 2017년 7월 23일 다시 마이너 리그에 강등되었다. 이 후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 복귀를 선언하였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편집]

kt 위즈 시절[편집]

2017년 11월 13일 kt 위즈와 4년 총액 88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의 보상 선수로는 조무근이 지명 되었다.

등번호[편집]

출신 학교[편집]

통산 기록[편집]

















2

3



















O
P
S












4
2007 현대 20 63 171 160 19 48 6 0 2 12 2 2 5 33 .300 .323 .375 .698 60 1 1 4 1 0
2008 우리 21 117 333 306 27 73 10 1 1 18 10 7 16 56 .239 .279 .288 .567 88 8 2 7 2 0
2009 22 133 608 536 86 152 27 5 18 63 30 15 55 100 .284 .349 .453 .802 243 11 3 6 8 0
2010 넥센 23 52 199 169 26 38 5 0 2 21 12 5 22 33 .225 .315 .290 .605 49 6 2 1 4 0
롯데 23 42 154 137 15 31 9 3 4 19 6 2 10 40 .226 .289 .423 .712 58 4 2 5 0 0
'10합 23 94 353 306 41 69 14 3 6 40 18 7 32 73 .225 .304 .350 .653 107 10 4 6 4 0
2011 24 117 458 398 62 115 18 4 12 68 12 6 40 78 .289 .360 .445 .805 177 9 9 3 8 1
2012 25 133 504 448 42 122 19 1 4 51 26 8 38 81 .272 .335 .346 .681 155 10 5 11 2 3
2013 26 128 559 489 70 134 29 3 7 56 22 11 49 78 .274 .350 .389 .738 190 14 10 7 4 3
2014 27 128 550 486 66 156 33 3 12 76 17 10 53 86 .321 .388 .475 .864 231 8 3 4 4 0
2015 28 144 596 534 95 155 41 2 26 98 11 10 48 122 .290 .350 .521 .870 278 14 4 4 6 1
2016 29 127 559 498 97 167 26 5 27 113 25 10 49 66 .335 .394 .570 .964 284 10 4 0 8 5
2017 SF 30 18 57 52 2 8 1 0 1 5 0 0 5 15 .154 .228 .231 .459 12 1 0 0 0 0
KBO 통산 : 10년 1184 4691 4161 605 1191 223 27 115 595 173 86 385 773 .286 .343 .436 .779 1813 95 45 52 47 13
MLB 통산 : 1년 18 57 52 2 8 1 0 1 5 0 0 5 15 .154 .228 .231 .459 12 1 0 0 0 0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각주[편집]

  1. 어머니(설민경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리스트 출신이다. “스타에게 묻는다 롯데 황재균② 미래 롯데 감독(?) 강민호의 황당한 영입 제의”. 일간스포츠. 2012년 9월 25일. 
  2. "3학년때 큰 부진… 아버지 안고 한참 울어"
  3. '공포의 8번타자' 황재균 "내타순서 팀에 도움 주면 그뿐" - 스포츠서울
  4. 황재균, '실책 1위'에서 '수비황제'로 거듭나다 - 머니투데이
  5. PO 3차전도 수비황제 황재균의 명품 수비 경연장 - 스포츠서울
  6. ‘야구 2연패 일등공신’ 황재균, 사상 첫 母子 금메달…어머니 설민경은 누구? - 헤럴드경제
  7. 이재상 (2107년 6월 29일). '데뷔전 홈런' 황재균 "꿈을 이뤘다…결승포 믿어지지 않아". 《뉴스1》 (서울). 2017년 7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7월 5일에 확인함. 
  8. 장현구 (2017년 6월 29일). “황재균, SF 역대 17번째 MLB 데뷔전서 첫안타를 홈런으로 장식”. 《연합뉴스》 (서울). 2017년 7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7월 5일에 확인함. 
  9. 맹선호 (2017년 6월 29일). '홈런공' 받은 황재균 "안타 하나만 쳤으면 했는데…". 《뉴스1》 (서울). 2017년 7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7월 5일에 확인함. 
  10. 이대호 (2017년 7월 2일). “황재균, 또 '장타쇼'…대타로 나서 2루타 '쾅'(종합)”. 《연합뉴스》 (서울). 2017년 7월 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7년 7월 5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