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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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대성
Koo Dae-Sung
질롱 코리아 No.15
Koo Dae-Sung.jpg

한화 이글스 시절의 구대성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69년 8월 2일(1969-08-02) (49세)
출신지 대한민국 대전광역시
신장 185 cm
체중 84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좌투좌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93년
드래프트 순위 1993년 1차 지명(빙그레 이글스)
첫 출장 KBO / 1993년 5월 1일
대구삼성전 구원
NPB / 2001년 3월 24일
MLB / 2005년 4월 4일
ABL / 2010년 11월 6일
마지막 경기 KBO / 2010년 9월 3일
대전삼성전 선발
NPB / 2004년 9월 27일
MLB / 2005년 8월 20일
ABL / 2019년 1월 19일
획득 타이틀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WBC 2006년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선수
남자 야구
올림픽
2000 시드니 야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구대성(具臺晟, 1969년 8월 2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투수이자, 현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질롱 코리아의 감독이다.

선수 시절[편집]

아마추어 시절[편집]

친 형이 야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자신도 야구에 흥미를 느꼈다. 대전신흥초등학교 3학년 때 캐치볼 같은 걸 가볍게 했는데 이 때부터 야구에 관심을 가졌고, 이듬해 대전신흥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정식 야구 선수가 됐다. 대전신흥초등학교, 충남중학교를 거쳐 1986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대전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내어 1987년 2학년 재학시절 제 42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소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1989년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에 입학했다. 한양대학교 관광학과 시절 1년 선배인 정민태와 함께 국가대표팀에 뽑히면서 '좌대성 우민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1] 한양대학교 관광학과 1학년 때인 1989년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린 대륙간컵 대회에 참가, 일본전에 선발 등판하여 10회까지 던졌다. 비록 이 경기에서 1점차로 졌으나, 그는 이 때부터 '일본 킬러'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무렵 아마추어 최고의 왼손 투수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89년 국제 야구 연맹 회장배 쟁탈 국제야구 대회 경기에서 미국전 2완봉승을 거두기도[2] [3] 했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시절[편집]

1993년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그러나 한양대학교 관광학과 시절 혹사 당한 어깨 상태로 프로에 입단하여 바로 부상을 당해 데뷔 첫 시즌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듬해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데뷔 시즌이었던 1993년은 2승에 그쳤지만, 1994년에는 7승 8패,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1996년 18승(2선발승) 3패, 24세이브로 다승(선발 최다승으로 치자면 주형광이 18승(모두 선발))과 구원 부문을 동시에 석권하면서 정규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전천후 투수로 활동했다. 그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39이닝을 소화했는데, 이로써 현재까지 KBO 리그에서 활동했던 투수 중 그와 송진우신윤호 등 단 세 명만이 이룩한 다승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 기록을 달성했다. 1999년까지 7시즌을 치르며 55승 50패, 129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999년 창단 14년 만에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특히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총 5경기에 나와 1승 1패, 3세이브를 거둬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4] 이듬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두면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해 정규 리그에선 6승 7패, 21세이브,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마운드를 이끌었다. 그 해 시즌 후 일본 퍼시픽 리그로 진출했다.

일본 프로야구 시절[편집]

2000년 시즌을 마치고 일본 프로 야구 퍼시픽 리그팀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했다. 초반에 부진하다가 2년차부터는 쏠쏠한 활약을 해서 방어율 2위를 찍기도 했지만, 그 당시 팀이 하위권이었을 때라 그다지 빛을 발하지는 못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에서 4년 동안 뛰며 통산 24승 34패, 10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04년 시즌 중 그의 소속 팀인 오릭스 블루웨이브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의 합병이 확정되었고 다음 시즌인 2005년부터 오릭스 버펄로스 소속으로 활동했다. 그 당시에 퍼시픽리그 선수들과 퍼시픽리그 팬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의 모기업인 긴키 닛폰 철도가 재정악화로 야구단을 운영하기 힘들어지자 오릭스와의 합병의지가 강했고, 결국은 합병이 확정되었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최종전인 2004년 9월 27일 Yahoo! BB 스타디움 오사카 긴테쓰 버펄로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승리를 거두며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이름으로 승리한 마지막 투수로 기록되었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편집]

2004년 시즌 후 일본에서 활동했던 팀은 긴테쓰와 합병으로 오릭스 버펄로스로 구단명이 바뀌었고, 구단에서 잔류 요청을 했지만, 메이저 리그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거절했다. 그 후 뉴욕 양키스 등 다수의 팀에서 관심을 보였으나 최종 입단 팀은 뉴욕 메츠였다. 2005년 4월 5일 신시내티전에서 첫 홀드를 기록했다. 2005년 시즌에 주로 중간 계투 요원으로 활동하며, 총 33경기에 나와 승패 없이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였다.

한국 프로야구 복귀[편집]

한화 이글스 복귀[편집]

뉴욕 메츠와 맺은 계약이 끝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에이전트의 일 처리로 인해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시즌 후 원 소속 팀이었던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였다. 2006년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동하면서 3승 4패, 37세이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준우승에 공헌했다. 2009년 4월 28일 LG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했다.[5] 그 해 정민철송진우가 차례로 은퇴했고 1년 후 그도 은퇴를 선언하였다. 은퇴하면서 장종훈의 35번, 정민철의 23번, 송진우의 21번 다음으로 그의 등번호 15번이 팀의 4번째 영구 결번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당시 프런트가 영구결번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 성사되지 못했다.[6] 그는 2010년 9월 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은퇴 경기를 치렀으며, 첫 타자 조동찬을 범타 처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당시 팀 선수들은 그의 은퇴 경기에 일제히 현역 시절 별명인 '대성불패(臺晟不敗)'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하고 출전했다.[7]

호주 프로야구 시절[편집]

한국에서 은퇴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가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시드니 블루삭스에 입단했다. 그리고 2010년 11월 6일 홈 구장인 시드니 블랙타운 베이스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캔버라 캐벌리와의 리그 개막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역사상 최초의 세이브로 이 기록으로 한-일-오스트레일리아 3개국에서 모두 세이브를 기록한 유일한 투수가 되었다.

야구선수 은퇴 후[편집]

2016년부터 시드니 블루삭스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안 베이스볼 리그 질롱 코리아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출신 학교[편집]

주요 기록[편집]

기록 날짜 상대팀 장소 경기 내용 종전 기록
역대 최소 경기 200세이브(432경기)
역대 최연소 200세이브(37세 10개월 4일)
2007.7.14 롯데 대전 9회초 3-4 상황에서 등판,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김용수 (539경기)
김용수 (38세 11개월 13일)

수상[편집]

  • 국제 야구연맹회장배 야구대회 최우수선수상 (1989년)
  • 백호기 춘계/추계리그 최우수 투수상 및 체육훈장 기린상 (1989년)
  • IBA대회 최우수선수 (1990년)
  • 아시아선수권대회 금메달 (1990년)
  • 춘계, 추계리그 최우수투수상 (1991년)
  • 스페인 대륙간배 국제 야구대회 최우수투수상, 승률상 (1991년)
  • 대통령기 대학야구대회 최우수투수상 (1992년)
  • 한국 프로 야구 정규 리그 최우수선수 (1996년)
  • 한국 프로 야구 평균자책점, 구원, 승률, 다승 1위 (1996년)
  • 한국 프로 야구 평균자책점 1위 (2000년)

국제대회 기록[편집]

  • 1999년 서울 아시아 야구 선수권 : 2경기 1승 3.2이닝 13타자 13타수 2피안타 0사사구 8삼진 0자책, 평균자책 0.00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 3경기 1승 19.1이닝 75타자 65타수 11피안타 7사사구 23삼진 4자책, 평균자책 1.86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5경기 1승 8이닝 31타자 30타수 6피안타 1사사구 3삼진 1자책, 평균자책 1.13

통산 기록[편집]





































4














W
H
I
P
1993 빙그레 24 2 1 .667 2.53 6 5 0 0 0 0 21.1 18 0 12 0 11 0 0 0 6 6 89 1.41
1994 한화 25 7 8 .467 2.60 34 9 2 0 12 0 121.0 89 8 58 8 128 4 1 3 42 35 500 1.22
1995 26 4 14 .222 3.54 47 12 6 0 18 0 155.0 127 18 72 6 161 11 0 7 77 61 660 1.28
1996 27 18 3 .857 1.88 55 2 1 0 24 0 139.0 79 7 27 3 183 6 0 2 32 29 521 0.76
1997 28 8 8 .500 3.16 47 0 0 0 25 0 102.2 65 7 41 7 134 8 0 5 38 36 417 1.03
1998 29 8 7 .533 2.55 59 2 0 0 24 0 123.2 87 5 52 6 129 5 1 5 45 35 500 1.12
1999 30 8 9 .471 3.09 55 5 0 0 26 0 119.1 95 13 48 5 138 5 1 5 44 41 503 1.20
2000 31 6 7 .462 2.77 48 7 0 0 21 0 133.1 98 13 47 2 136 8 0 4 47 41 540 1.09
2001 오릭스 32 7 9 .438 4.06 51 9 1 0 10 0 126.1 58 14 71 3 143 4 0 3 58 57 544 1.32
2002 33 5 7 .417 2.52 22 22 1 0 0 0 146.1 122 13 47 1 144 3 0 3 45 41 608 1.16
2003 34 6 8 .429 4.99 19 19 0 0 0 0 113.2 131 23 51 0 118 7 0 2 72 63 522 1.60
2004 35 6 10 .375 4.32 18 18 3 0 0 0 116.2 105 24 44 0 99 8 0 2 65 56 502 1.28
2005 NYM 36 0 0 ---- 3.91 33 0 0 0 0 6 23.0 22 2 13 1 23 2 0 0 12 10 106 1.52
2006 한화 37 3 4 .429 1.82 59 0 0 0 37 1 69.1 56 4 18 7 76 5 0 0 17 14 282 1.07
2007 38 1 6 .143 3.19 43 0 0 0 26 0 42.1 41 3 12 1 37 0 0 2 17 15 173 1.25
2008 39 2 3 .400 3.48 38 0 0 0 0 9 41.1 39 2 14 2 29 2 0 1 17 16 167 1.28
2009 40 0 0 ---- 3.72 71 0 0 0 1 8 55.2 54 5 11 1 56 3 0 1 24 23 224 1.17
2010 41 0 1 .000 9.64 7 1 0 0 0 0 4.2 7 2 3 0 3 0 0 0 6 5 25 2.14
시드니 41 2 1 .667 1.00 18 0 0 0 12 0 27.0 14 0 8 1 30 2 0 1 4 3 108 0.82
2011 42 0 3 .000 3.38 14 0 0 0 8 0 18.2 19 0 6 2 14 0 0 1 7 6 86 1.34
2012 43 0 2 .000 2.89 18 0 0 0 0 7 18.2 19 0 6 2 14 0 0 1 7 6 86 1.34
2013 44 1 1 .500 2.08 21 1 0 0 11 0 26.0 20 1 11 1 23 1 0 2 6 6 108 1.19
2014 45 0 1 .000 2.12 15 0 0 0 4 2 17.0 19 1 7 0 21 0 0 0 4 4 75 1.53
KBO 통산 : 13년 67 71 .414 2.85 569 43 9 0 214 18 1128.2 855 87 415 48 1221 57 3 35 412 357 4601 1.13
NPB 통산 : 4년 24 34 .583 3.88 110 68 5 0 10 0 503.0 416 74 213 4 504 22 0 10 240 217 2176 1.25
MLB 통산 : 1년 0 0 ---- 3.91 33 0 0 0 0 6 23.0 22 2 13 1 23 2 0 0 12 10 106 1.52
ABL 통산 : 5년 3 8 .273 2.15 86 1 0 0 35 9 104.2 91 4 38 4 107 2 0 5 28 25 463 1.23
  • 시즌 기록 중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리그 최고 기록

에피소드[편집]

고교 시절[편집]

고교 시절 연습경기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하여 고의사구로 만루를 채운 다음 나머지 세 타자들을 상대로 삼진을 잡았다.[8]

일본 킬러[편집]

그가 일본 킬러로서의 면목을 드러낸 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 4위 결정전이었다. 당시 일본의 선발 투수는 '괴물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였고, 그는 주전 포수 박경완의 부상으로 당시 신인 포수였던 홍성흔과 호흡을 맞췄다. 경기 당일 팔에 담이 걸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당시 감독이었떤 김응용의 지시로 제 컨디션을 찾도록 노력했고, 15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면서 9이닝 1실점, 11탈삼진으로 일본 타선을 꽁꽁 틀어막으며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한편 2006년 제 1회 WBC 때도 구원 투수로 출전해 일본 킬러로서의 명성을 보여줬다. 특히 일본과의 예선 경기에서 배영수에게 30년 망언을 한 스즈키 이치로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도록 지시했다. 그 후 1루 주자 이치로를 승계받은 그는 그 이닝을 책임지고 다음 이닝까지 책임진 후에 박찬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때 낮게 제구되는 직구와, 좌타자 바깥쪽 우타자 몸쪽으로 제구되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했다. 공이 감추어졌다가 나오기 때문에 일본 타자들이 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고, 자연스레 일본 타자들이 치지를 못하면서 명실상부한 일본 킬러임을 다시 확인하였다.

랜디 존슨과의 인연[편집]

2005년 5월 22일 프로 생활 17년 만에 처음으로 타자로 나섰다. 첫 타석은 3구 삼진을 당했고, 2번째 타석에 들어섰을 때 당시 상대 투수는 사이영상 수상자이자 메이저 리그의 전설적인 좌완 투수 랜디 존슨이었다. 그런데 그를 상대로 펜스를 맞히는 2루타를 뽑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뒤이어 나온 타자 호세 레예스가 보내기 번트를 시도하고 성공하자, 그는 순간 홈까지 쇄도하는 멋진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고, 결국 그 경기에서 득점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사실 비디오 판독상으로는 아웃이였으나 심판은 그의 혼이 담긴 슬라이딩을 세이프로 판정했다. 한편 마운드에서도 그는 1.1이닝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그 경기에서 "오늘의 선수"로 뽑혔다. 그 당시 그는 야구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주머니에 연습용 야구공을 넣고 있었다. 그로 인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갈비뼈와 어깨 부상을 당했고, 그것으로 인해 그의 메이저 리그 생활도 사실상 종결됐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역사상 최고의 직구, 모질게 망가지다 - 쓸쓸하게 퇴장한 '현대 왕조'의 주역 정민태 《오마이뉴스》, 2008년 12월 21일
  2. “한국,美(미) 꺾고 파죽의 3연승”. 경향신문. 1989년 11월 4일. 2018년 6월 29일에 확인함. 
  3. “한국,12년만에 國際(국제)야구 覇權(패권)”. 경향신문. 1989년 11월 13일. 2018년 6월 29일에 확인함. 
  4. "9회 아직 구대성이 필요하다", 《스포츠 2.0》 2007년 8월 13일 작성
  5. 한화 구대성 한화 불펜진의 해결사 될까 《스포츠조선》, 2009년 4월 29일 작성
  6. “디시인사이드 구대성 인터뷰 영상”. 2018년 8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4월 8일에 확인함. 
  7. ‘행복한 파이어볼러’ 구대성
  8. 구대성 이야기[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

이 전
이상훈
제15대 한국 프로 야구 골든글러브 투수
1996년
다 음
 이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