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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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
張美蘭
Weightlifting pictogram.svg
Jang Mi-Ran from acrofan.jpg
2012년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 당시의 장미란
기본정보
생년월일 1983년 10월 9일(1983-10-09) (35세)
출생지 강원도 원주시
170cm
스포츠
국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종목 역도
체급 최중량급
소속팀 고양시청

장미란(張美蘭, 1983년 10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여자 역도 선수이다. 종교는 개신교(예장합동)이며,[1] 고양시청 소속으로 활동했다.[2]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때부터 국가 대표로 뛰기 시작해 2008년 올림픽 금메달,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4연패(2006~2009년) 등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성장 과정[편집]

장미란은 1983년 10월 9일 강원도 원주에서 장호철과 이현자의 2녀 1남 중 맏딸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체중이 5.9㎏였던 그는 상지여중 3학년 초까지 평범한 소녀로 자라났다. 학교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했고, 피아노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큰 체격만큼이나 식욕이 좋아 어머니로부터 너무 많이 먹는다며 자주 구박을 들은 것 정도가 다른 점이었다고 한다.[3]

역도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1998년 겨울 방학 무렵으로, 공부에 흥미를 잃고 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뒤늦게 시작한 역도였지만 장미란은 금방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바벨을 잡은 지 열흘 만에 출전한 강원도내 중학생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그녀는 본격적으로 역도 선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역도를 시작한 지 4년째 되던 해인 2002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3][4]

태극 마크를 달고[편집]

장미란은 처음 태극 마크를 단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여자 최중량급(+75㎏)에서 은메달을 시작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같은 체급에서 은메달을 땄다. 이후 2005년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여자 +75㎏급 용상과 합계 금메달, 인상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5]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여자 역도 +75kg급에서는 인상에서 139kg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운 중국무솽솽에게 합계 4kg을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다.[6]

장미란은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특수재능 보유자 체육특기자로 합격하여 2005년 입학했다.[7] 2007년 2월 20일에는 강원도 원주시청에서 경기도 고양시청으로 소속팀을 옮겼다. 계약금 1억7천만 원, 연봉 1억 원 등 3년간 총 4억7천만 원의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으며, 이는 한국 역도 사상 남녀 선수를 통틀어 최초의 연봉 계약이었다.[8] 그러나 소속팀 변경 직후 옛팀이었던 원주시청이 대학생 신분으로 실업팀에 소속되어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장미란의 선수자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여, 한때 부득이하게 고려대학교 자퇴를 선택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7] 그러나 이후 장미란 선수가 인권위에 낸 진정서 등으로 대한체육회가 일명 '장미란 룰'로 불리는 규정 개정을 단행하여 고려대 학생 신분은 유지되었고, 결국 2010년에는 졸업할 수 있었다.[9]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장미란은 8월 16일 오후 베이징 항공항천 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 용상 186 kg, 합계 326kg을 들어 올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공동 세계 랭킹 1위였던 라이벌 무솽솽은 올림픽에 불참했다.[10]

교통 사고를 당한 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훈련하다 허리부상을 당해 정상적인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11] 임에도 불구하고 참가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75kg급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하계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모두 한 번 이상 우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12] 당시 경기에서 장미란은 중국의 멍수핑과 접전 끝에 311kg의 동일한 합계 중량을 기록했으며, 이에 따라 체중이 780g 더 가벼웠던 장미란이 우승을 차지했다.[13]

2010년 2월 4일 고양시 덕양구에서 개관한 국내 최초의 역도 전용 체육관은 장미란 선수의 이름을 따 ‘장미란 체육관’으로 명명되었다.[14]

장미란은 2012년 하계 올림픽에도 출전하였으나, 여자 75kg 이상급 경기에서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으로 4위에 머물러 메달권에 들지는 못하였다.[15]

하지만, 도핑으로 인하여 동메달을 승계하였다.

2012년 올림픽 이후[편집]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이후, 장미란은 10월 대구 전국 체육 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차지하여 전국체전 10연속 3관왕 기록을 세우는 등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 듯 보였다.[16] 하지만 허리와 어깨에 부상이 찾아오고, 중국저우루우 등 신예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선수 생활 연장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 끝에 결국 2013년 1월 10일, 15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다.[16]

2012년 7월 28일 런던 올림픽에서 채취한 소변, 혈액 샘플을 재조사한 결과 11명에게서 금지약물 성분이 검출되었고 이 중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여자 역도 최중량급(75kg)에서 동메달을 땄던 흐리프시메 쿠르슈디안이 포함되면서 당시 이 체급에서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으로 4위를 했던 장미란이 동메달을 받게 되었다.

주요 성적[편집]

연도 종목 대회명 장소 순위 기록
2002년 +75㎏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부산 2위
2004년 +75㎏ 하계 올림픽 그리스, 아테네 2위 302.5 kg
2005년 +75㎏ 동아시아 경기 대회 마카오 1위
+75㎏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카타르, 도하 1위
2006년 +75㎏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 도밍고 1위 314 kg
+75㎏ 한중일 국제 초청 역도 대회 대한민국, 원주 1위 318 kg (세계 신기록)
+75㎏ 아시안 게임 카타르, 도하 2위 313 kg
2007년 9월 +75㎏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태국, 치앙마이 1위 319 kg (세계 신기록)
2008년 8월 +75㎏ 하계 올림픽 중국, 베이징 1위 326 kg (세계 신기록)
2009년 11월 +75㎏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고양 1위 323 kg
+75㎏ 한중일 국제 역도 경기 대회 대한민국, 포천 1위 305 kg
2010년 +75 kg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 터키, 안탈리아 3위 309 kg
+75 kg 제16회 아시안 게임 중국, 광저우 1위 311 kg
2012년 4월 +75㎏ 아시아 역도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평택 1위 291 kg
2012년 8월 +75㎏ 하계 올림픽 영국, 런던 3위 289 kg

각주[편집]

  1. 세계를 들어올린 장미란, 원천은 '믿음'..기도 힘 알기에 위기때 더 괴력, 국민일보
  2. “[아시안게임] 주목할 선수 (22) 장미란”. 조선일보. 2010년 11월 1일. 2010년 11월 1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3. “역도선수 장미란”.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4. “[광저우AG]'로즈란' 장미란은 세계 최고의 力士”. 뉴시스. 2010년 11월 19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5. “-세계역도선수권- 장미란, 세계 제패(종합)”. 연합뉴스. 2005년 11월 15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6. “-아시안게임-<역도> 장미란, 아쉬운 은메달(종합2보)”. 연합뉴스. 2006년 12월 7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7. “장미란, 눈물의 자퇴 “학교 계속 다니고 싶었는데…””. 중앙일보. 2007년 6월 27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8. “장미란, 억대 연봉에 고양시청 정식 입단”. 연합뉴스. 2007년 2월 20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9. [1][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0. “-올림픽-<역도> 장미란, 세계新으로 금메달(종합2보)”. 연합뉴스. 2008년 8월 16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11. “그랜드슬램 장미란의 눈물 "다들 뜯어말렸는데...". 스포츠조선. 2010년 11월 19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12. “<광저우AG>역도연맹 "장미란 그랜드슬램? 아니다". 뉴시스. 2010년 11월 19일. 2010년 11월 22일에 확인함.  장미란의 2010년 아시안 게임 역도 우승 직후 역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기사가 주를 이뤘으나,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 경력이 없으므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권 대회는 우리나라의 경우 2진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로 간판 대표선수인 장미란은 이 대회에 참가할 수준을 이미 넘어섰으므로 사실상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과 마찬가지의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13. “-아시안게임-<역도> 장미란 그랜드슬램(종합2보)”. 연합뉴스. 2010년 11월 19일. 2010년 11월 20일에 확인함. 
  14. “고양시, 국내 최초 역도 전용 '장미란체육관' 개관”. 한국지방자치뉴스. 2010년 2월 4일. 2010년 11월 21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5. [2][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16. '바벨이여, 안녕…장미란 전설로 남다',《한겨레》,2013,1,9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