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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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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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 |||
생년월일 | 1954년 6월 27일 | (70세)|||
출신지 | 부산광역시 | |||
선수 정보 | ||||
투구·타석 | 좌투좌타 | |||
수비 위치 | 투수 | |||
프로 입단 연도 | 1982년 | |||
드래프트 순위 | 원년 멤버 | |||
첫 출장 | 1982년 | |||
마지막 경기 | 1989년 | |||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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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호(千昌浩, 1954년 6월 27일 ~ )는 롯데의 원년멤버이자 좌완투수이다. 데뷔전이었던 1982년 3월 31일 구덕 OB전에서 완봉승을 거두어 프로야구 두 번째 완봉승 투수로[1] 기록됐다. 경남고등학교 출신으로 팀을 이끌었다. 유명한 1984년 삼성의 게임에 진동한과 맞대결을 벌였고 이후 빙그레 창단멤버로 양도되어 활약한 투수였음에도 빙그레에서의 3년 동안 1선발승(87년)으로 기대에 못 미쳤으며 빙그레는 믿었던 본인(천창호)의 부진 뿐 아니라 1986년 영입한 재일동포 좌완 박오가 그 해(1986년) 한 차례도 뛰지 못하여[2] 1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가 쓸만한 좌완투수 고갈에 시달렸다. 게다가, 1988년 1차 지명자인 송진우가 올림픽 때문에 프로 입단이 유보되어[3] 말 그대로 "설상가상" 신세가 되자 1988년 부임한 소위 '일본통'이었던 김영덕 감독이 재일동포 선수들의 대부인 장훈의 주선을 통해 김홍명을 입단시켰다. 결국 1988년 시즌 후 김한근과 함께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됐으나[4] 이렇다할 성적을 보이지 못한 채 1989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출신학교
[편집]각주
[편집]- ↑ “★퀴즈: 마지막 프로 데뷔전 완봉승 투수는?”. OSEN. 2013년 1월 11일. 2018년 9월 13일에 확인함.
- ↑ 박희송 (1986년 11월 11일). “스카웃 過熱(과열)경쟁‥‥在日(재일)동포선수「몸값」껑충 특급投手(투수) 최소 4억원요구”. 조선일보. 2022년 3월 6일에 확인함.
- ↑ 고동현 객원기자 (2007년 9월 2일). “'20년 이끈 에이스' 송진우…'20년 이끌 에이스' 류현진”. 마이데일리. 2022년 3월 6일에 확인함.
- ↑ “"大魚急求(대어급구)"태평양,各(각)구단에「SOS」”. 조선일보. 1988년 11월 22일. 2022년 3월 6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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