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 문서에서는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에 대해서 다룬다. 외교에 있어서 특필해야할 점은 현재 분단국가인 중화민국 정부가 스스로를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하여 "중국의 정통 정부"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중화민국은 냉전 구도 하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친서방 진영에 편입되어 있었다. 국공 내전으로 인해 영토의 대부분을 잃게 되었지만 연이어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인민지원군을 불법으로 조직해 한국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구원함으로써, 오히려 궁지에 몰렸던 중화민국은 국제연합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가 부각되며 소생하였다. 그러나, 1971년 10월 25일에 국제 연합 총회 2758호 결의로 국제 연합 내 상임이사국 지위와 의석을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빼앗기면서 중화민국의 외교적 고립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의 헨리 키신저가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해서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가졌고,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 간의 정상회담이 이뤄진 이후부터 중화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비주류로 물러나고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밀리게 되었다. 장제스 사망 후 1979년 최대의 우방이었던 미국과 단교하는 등 자유 진영과의 결별을 맛보아야 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중화민국은 불리한 위치로 추락하게 되었다

수교국[편집]

현재 중화민국아프리카 3개국,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중남미 12개국의 총 22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나라 이름 우측상단의 별표는 타이완 현지에 대사관이 설립된 국가를 나타낸다.)

아프리카 (3개국)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중앙아메리카 (6개국)


카리브 제도 (5개국)


남아메리카 (1개국)

할슈타인 원칙[편집]

현재 분단국가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천명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나라는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외교 관계에 국한된 것이며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1] 특히, 미국일본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지금도 중화민국과의 교류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였다. 특히,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다음날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중화민국이 국제 연합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던 1971년 10월 25일국제연합총회 2758호 결의안 채택을 전후하여 많은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1971년 6월 11일 리비아가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국(당시 63개국)과 중화민국의 수교국(당시 62개국)의 수가 역전되었다. 이후 1972년에는 일본, 1979년에는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수립함으로써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계속 감소하였다.

1992년 8월 23일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됨으로써 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 4월,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은 수교국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2]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사실상 이에 동의했다.

2013년 11월 15일, 감비아중화민국과 외교를 단절했다.[3]

미수교국[편집]

중화민국은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으로 인해 분단되기 전까지 중국 정부로서 국제 사회에서 외교관계를 행사하는데 걸림돌이 없었다. 그러나 분단 국가가 된 이후부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점차적으로 수교국을 중화인민공화국에게 하나 둘 빼앗기기 시작했다.

양안 모두 미수교국[편집]

이 문단에서는 모든 미수교국을 나열하지는 않고,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및 중화민국 양안과 모두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국가들을 소개한다.

중화민국과 수교한 적이 없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국[편집]

  •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70년에 에티오피아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 아일랜드 아일랜드: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79년에 아일랜드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 싱가포르 싱가포르: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92년에 싱가포르는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다.

각국과의 관계[편집]

대한민국[편집]

1992년까지 대한민국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었다. 양국의 관계는 분단국가인 상황을 공유하여 반공 운동에 협력하였고 둘 다 제2차 세계 대전일본 제국에게 피해를 입은 등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한국 전쟁 때,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인민지원군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도왔고, 반대로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을 원조하였다. 이로 인해 냉전 동안 양국은 강력한 동맹을 과시하고 있었다. 국부천대 이후부터 1992년에 외교가 단절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통상적으로 중공(中共)이라 부르고, 중화민국을 자유중국(自由中國)이라고 부르며 구분하였다. 그러나, 1992년대한민국 외무부중화인민공화국과의 수교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양국의 외교관계는 자연히 단절되었고, 1993년 비공식 관계를 재개하여 현재는 타이베이 대표부를 통해 사실상 외교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외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간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쑹산~김포 간 항로가 부활하였고, 투자보장협정 체결 논의도 진행 중에 있다.[4] 대한민국의 대(對)중화민국 수출은 148억 3049만USD, 중화민국의 대(對) 대한민국 수출은 136억 4708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 6위의 수출국, 제 8위의 수입국이다. [5] 2012년 중순부터 한국인에 대한 중화민국의 무비자 입국 허용은 30일에서 90일로 연장되었고 워킹홀리데이제도도 2011년부터 적용되어 양국간 활발한 민간외교가 진행 중이다. 중화민국 내의 한국 교민 사이트는 '대만 하늘채(www.hanulche.net)'이고 다음과 네이버에도 비슷한 인터넷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편집]

미국과 중화민국은 1912년에 수교하였으며, 미국은 국공 내전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전(全) 중국의 합법정부로서 중화민국을 지원하였다. 1979년 1월 1일부터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전격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양국은 자연히 단교되었으나, 미국은 국내법인 타이완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에 대한 안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단교된 이후에도 중화민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계속 제공되고 있고, 미국재대협회를 통한 비공식적인 협력 관계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화민국 간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만 단절되었을 뿐, 현실적으로는 밀월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편집]

일본은 1972년에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중화민국과 단교하였으며, 중화민국과는 민간 차원의 이익대표부를 설치해 교류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에게 남은 영토의 대부분인 타이완청일 전쟁의 결과로 일본에 할양된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 간 일제 통치 시기를 겪고 근대화의 초석을 닦았던 곳이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중일 전쟁의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 후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승전하여 1945년부터 중화민국이 타이완을 지배권 안에 두게 되었고, 1949년부터는 국공 내전으로 인하여 중화민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중일 전쟁의 적국이었지만, 전쟁 후에는 미국을 주축으로 한 반공 진영에 함께 속하게 되었다. 1952년 4월 28일 양국은 중일화평조약(또는 타이베이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1972년에 일본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중일화평조약도 사실상 폐기되었다. 안보에 있어서는 중화민국은 타이완관계법을 배경으로 미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미일 동맹을 가진 일본과도 간접적인 협력 관계에 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서로 센카쿠 열도(일본이 실효 지배)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종종 분쟁이 발생했지만 아직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양국은 단교 이후에도 지리적으로 인접한 까닭에 경제적·문화적으로 어느정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중화민국은 일본 외의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일본의 신칸센고속철도 기술에 반영했다. 중화민국의 대중 문화는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일본 대중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005년에 일본 정부가 중화민국 국민에게 90일간의 단기 방문 사증 면제를 시행한 이후 양국간 인적 교류가 크게 늘고 있다. 중화민국에는 중국 국민당민주진보당의 양대 정당이 있는데, 타이완 본성인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는 민주진보당이 다른 정당보다 일본에 우호적인 정당이다.

파라과이[편집]

현재 파라과이남아메리카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다. 지난 1947년부터 2008년까지 파라과이 국정을 독점했던 우파 성향의 콜로라도당 정부는 중화민국과 전통적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8년에 좌파 성향의 페르난도 루고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에 대한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중화민국은 대(對) 남미 외교에서의 교두보 상실을 우려하였고 파라과이 루고 대통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화민국은 파라과이와 단교될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현재까지 외교 관계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6]

바티칸 시국[편집]

현재 바티칸 시국유럽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다. 1922년 로마 교황청의 첫 중화민국 대표가 베이징 시에 부임했으며, 1942년에 양국은 공식 수교하였다. 1946년 중국 교구가 설정되면서 난징 시에 주중 바티칸 대사관(라틴어: Nuntiatura Apostolica in Sinis)이 개설되었다. 국공 내전의 영향으로 1949년 10월 중국 대륙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며, 중화민국 정부는 타이베이 시로 옮겼다. 당시의 주중 바티칸 대사 안토니오 리베리 주교는 1951년까지 중국 대륙에 계속 주재하다 대륙을 장악한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해 추방되어 동년 9월 6일 영국령 홍콩으로 갔으며, 이듬 해에 타이베이 시로 갔다. 1942년 이래 바티칸은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타이베이에 주중 대사관을 재개설하였다. 1967년 천주교중국주교단(현 천주교타이완지구주교단)이 타이베이에서 결성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중화민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몽골을 제외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동아시아에서 중화민국과 수교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적 우방이라는 점에서 양국의 교류는 미미하였으나, 1992년부터는 무역, 관광 등의 민간 교류가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0년에 대만 기업 중 미사일 부품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수출한 기업이 적발되기도 하였다.[7]

러시아[편집]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몽골의 독립을 지원하기도 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시기에는 중국 국민당과 우호 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독립을 지지하는 바람에 적대 관계가 되었다.

중화민국은 현재 러시아(러시아 연방)가 지배하고 있는 강동육십사둔, 탕누우량하이 등을 자국의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나, 아직 서로 문제삼지는 않고 있다. 현재 양국은 양국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해 교류하고 있다.

몽골[편집]

1911년 10월 우창의 봉기에서 시작한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지자, 외몽골은 그 해 12월 봉기하여 중화민국으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913년 티베트우르가에서 몽장 조약을 체결하였고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자 1920년에 국민당이 외몽골의 자치를 철폐시켰으나, 그 해에 反중국·민족해방을 목표로 몽골 인민혁명당이 결성되었다. 1921년담딘 수흐바타르가 인민혁명군을 조직하여 재차 봉기하여 외몽골의 독립을 성취하였다.

1946년에 중화민국은 소련과의 협정에 따라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중화민국은 1953년에 몽골의 독립 승인을 번복하고 해당 협정을 폐기하였다. 그 후 중화민국은 몽골의 국제 연합 가입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소련이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의 국제 연합 가입에 대한 거부 의사를 시사하고 미국소련 측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의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자, 중화민국은 결국 더 이상의 반대를 포기하였고 몽골은 1961년에 국제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2000년 천수이볜 집권 시기의 중화민국 외교부는 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몽골을 사실상의 독립국처럼 대우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외몽골 지역은 중화민국의 강역으로 간주하여 몽골에 대한 중화민국의 입장이 다소 모호한 상태에 빠졌다. 물론 이것은 현재 몽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몽골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만을 합법한 중국 정부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 중화민국이 여전히 통치하는 영역에 대해서 중국 공산당 정권의 영향력이 사실상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외몽골 지역과 관련된 업무는 행정원몽장위원회가 관장하고 있으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대표부는 중화민국 외교부가 관장하고 있다. (→몽골)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는 보통 양안 문제를 의미한다. 중화민국국공 내전으로 인해 타이완 등의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한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한 이래 영토 수복과 반공에 대한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인해 중화인민공화국이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중화민국은 국제 연합에서 중요한 지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 연합에 가입하고, 국제 연합 총회 2758호 결의에 따라 중화민국의 권리가 박탈됨에 따라 국제 연합에서 탈퇴하였다.

처음에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의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관계를 맺으면서 단교했고, 점차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나라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현실적으로 중화민국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나라가 급감하여 국제사회 전반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 측 주장이 훨씬 강력해졌다. 올림픽 경기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적인 압력으로 인해 중화민국은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출전하며 청천백일만지홍기국가(國歌)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장제스장징궈가 통치하던 시기에는 영토 수복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였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세력이 너무 강성해져서 중화민국 내부에서도 본토 수복만을 열렬하게 지지하는 사람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있으며, 천수이볜이 통치하던 시기에는 타이완 지구 만으로 지정학적인 독립을 꾀하는 세력이 꽤 늘어났으나, 마잉주가 통치하는 시기에 들어서는 본토수복과 지정학적인 타이완지구 독립에 대한 사람들이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8월 이후 우편을 교환하는 등 양안의 교류가 확대되었고, 2008년 상호 해운로, 항로가 개설되면서 양안관계가 느리게나마 회복되고 있다.

티베트[편집]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의 타이완 방문을 허용하는 등 티베트 망명 정부와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타이베이 시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중화민국 정부는 외교부에서 대표부 업무를 하고, 별도로 행정원대륙위원회가 티베트 영유권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홍콩[편집]

중화권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속하는 중화민국과 홍콩은 경제적·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은 영국령 홍콩 시절부터 중화민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 중 하나였으며, 홍콩 주민은 일본인 다음으로 중화민국을 가장 자주 방문한다.

중화민국 정부는 홍콩에 행정원대륙위원회가 운영하는 중화여행사(中華旅行社)를 두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타이베이 시홍콩관광진흥청홍콩무역발전국 사무소를 두고 있다. 마잉주 정부의 출범 이후부터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중화민국과의 대표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국제 기구와의 관계[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인해,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퇴출되거나 그 지위가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차이니스 타이베이 등의 이름으로 회원국 활동하고 있다.

중화민국의 외교 연표[편집]

수교 연표[편집]

단교 연표[편집]

주석[편집]

  1. 실제로 대한민국중화민국과 약 45여년간 수교해 왔었지만,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를 중화민국까지 소급하여 셈하지는 않고 있다.
  2. "마잉주, 對中 외교전 중단 선언", 《연합뉴스》, 2008년 4월 24일 작성.
  3. "감비아, 대만과 외교관계 단절", 《이투데이》, 2013년 11월 16일 작성.
  4. 한국, 대만을 잊었는가?, 매일경제신문
  5.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6. "대만 "남미 유일수교국 파라과이와 관계유지 희망"", 《연합뉴스》, 2008년 4월 25일 작성.
  7. 이상민. "대만, 미사일부품 北수출 기업적발(종합)", 《연합뉴스》, 2010년 9월 8일 작성. 2010년 9월 14일 확인.
  8. http://www.oie.int/eng/OIE/PM/en_PM.htm
  9. UNESCO, page2
  10. List of UIC members
  11.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12. Sistema de la Integración Centroamericana SICA
  13. Memorandum of Understanding dated 14 May 2005 between the PRC and the WHO
  14. Invitation letter dated 30 April 2009 from the Director General of the WHO to the Minister for Health, Chinese Taipei
  15. 베트남 공화국이 멸망하여 국교가 자연히 소멸되었다

함께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