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중화민국의 대외 관계 문서에는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베이로 천도한 이후의 중화민국 외교사에 대해서 다룬다.
대한민국은 중화민국 최후의 아시아 수교국이었으나, 1992년 8월 23일에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단교되었다.
현재 중화민국과 수교한 국가들은 현재 23개국으로, 사실상 미승인 국가의 처지로 국제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목차 |
중화민국의 수교국 [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는 나라는 중화민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에 국한된 것이며 실질적으로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나라는 거의 없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중화인민공화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지금도 중화민국과의 교류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은 아프리카 4개국, 유럽 1개국, 오세아니아 6개국, 중남미 12개국의 총 23개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나라 이름 우측상단의 별표는 대만에 대사관이 설립된 국가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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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4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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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12개국) |
외교적 고립 상황 [편집]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공산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였다. 특히,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다음날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다.
중화민국이 국제 연합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잃게 되었던 1971년 10월 25일의 국제연합총회 2758호 결의안 채택을 전후하여 많은 국가들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고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였다.
1971년 6월 11일 리비아가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국(당시 63개국)과 중화민국의 수교국(당시 62개국)의 수가 역전되었다. 이후 1972년에는 일본, 1979년에는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수립함으로써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계속 감소하였다.
1992년 8월 23일에 대한민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됨으로써 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2008년 4월, 마잉주 중화민국 총통은 수교국을 늘리기 위한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1]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사실상 이에 동의, 마잉주 정부 출범 이후 중화민국의 수교국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이다.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 양국 모두와의 미수교국 [편집]
부탄, 서사하라, 몰타 기사단, 코소보,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남오세티아, 압하스 공화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양국과 모두 외교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각국과의 관계 [편집]
대한민국 [편집]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중화민국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다. 중화민국과 대한민국간의 관계는 반공운동과 반공협력 등을 협력하였고 둘 다 일제식민지였다는 역사적 배경이 비슷하다. 한국 전쟁 때, 중화인민공화국은 군대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북한을 도왔고, 중화민국도 대한민국을 원조하였다. 냉전 기간 동안 양국은 강력한 동맹국이었다. 국부천대 이후부터 1988년 서울 올림픽 전까지 대한민국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공(中共)이라 하고, 대만의 중화민국을 자유중국이라 부르며 구별하였다. 그러나, 1992년 대한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공식적인 수교를 맺음으로써 두나라와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이런 외교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간교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있다. 한류열풍을 타고 최근 송산~김포 간 항로가 부활하였고, 투자보장협정 체결논의도 진행중에 있다.[2] 대한민국의 대(對)중화민국 수출은 148억3049만USD, 중화민국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36억4708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6위의 수출국, 제8위의 수입국이다. [3] 2012년중순부터 한국인에 대한 대만의 무비자입국허용은 30일에서 90일로 연장되었고 워킹홀리데이제도도 2011년부터 적용되어 양국간 활발한 민간외교가 진행중이다. 대만내의 한국교민사이트는 '대만 하늘채(www.hanulche.net)'이고 다음과 네이버에도 비슷한 인터넷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 [편집]
미국과 중화민국은 1911년에 수교하였으며, 미국은 국공 내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전(全) 중국의 합법정부로서 민국정부(民國政府)를 승인하고 지원하였다. 1979년 1월 1일에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양국은 단교하였지만, 미국은 대만 관계법을 통해 중화민국에 대한 안전을 실질적으로 계속 보장하고 있다. 즉, 1979년 이후에도 중화민국에 군사 원조를 계속 제공하고 있고, 미국재대협회를 통한 비공식 관계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화민국 간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만 단절되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밀월 관계가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일본 [편집]
일본은 1972년에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중화민국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중화민국에는 민간의 이익대표부를 설치해 놓고 있다. 대만은 청일 전쟁의 결과로 일본에 할양된 이래 1895년부터 1945년까지 50년간의 일본 통치 시대를 경험하고 근대화의 초석을 닦았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 중일 전쟁의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 후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대하여 승전하였음에도 중국 공산당에게 대륙을 쫓기었던 중국 국민당이 대만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중일전쟁의 적국이었지만, 전쟁 후에는 함께 반공 진영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4월 28일 양국은 중일화평조약(또는 타이베이 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관계를 회복했다. 그러나, 1972년에 일본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중일화평조약도 사실상 폐기되었다. 안보에 있어서는 중화민국은 대만관계법을 배경으로 미군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미일 동맹을 가진 일본과 간접적인 협력 관계에 있다. 중화민국과 일본은 서로 센카쿠 열도(일본이 실효 지배)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종종 분쟁이 발생했지만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양국은 단교 이후에도 경제적·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화민국은 일본 외의 국가 중에는 처음으로 일본 신칸센 시스템을 고속전철로 채택했다. 중화민국의 대중 문화는 일본 대중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2005년에 일본 정부가 중화민국 국민에게 90일간의 단기 방문 사증 면제를 시행한 이후 양국간 인적 교류가 크게 늘고 있다. 중화민국에는 중국 국민당과 민진당의 양대 정당이 있는데, 민진당이 일본에 대하여 보다 우호적이다.
파라과이 [편집]
파라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중화민국의 유일한 수교국이다. 지난 1947년부터 2008년까지 61년간 파라과이 국정을 독점해온 우파의 콜로라도당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외면한 채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해 왔다. 좌파로서는 처음으로 2008년 파라과이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 개선의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중화민국은 대(對) 남미 외교에서의 교두보의 상실을 우려하고 파라과이 루고 대통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화민국은 파라과이와 단교할 가능성이 상존하지만 현재까지 외교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4]
바티칸 시국 [편집]
바티칸 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문제가 오랫동안 거론되어 왔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망 직후인 지난 2005년 4월 5일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하고 종교를 내세워 중국의 내부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바티칸 시국과 수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여 중화민국과의 관계단절을 공식적으로 요구하였다.
바티칸 시국이 중화민국과 단교를 하게 되면, 현재 중화민국과 수교하고있는 나머지 14개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들(상투메 프린시페, 스와질란드, 키리바시, 팔라우, 벨리즈, 도미니카 공화국,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파나마, 파라과이, 세인트루시아)도 바티칸 시국을 따라 단교를 할 가능성이 있어 중화민국의 국제적 고립상태는 더욱 깊어질 위기에 처한 바 있다.[5]
그러나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국천주교애국회'라는 관영 가톨릭 단체 산하의 신자들만이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데 대해 바티칸 시국 측에서 중국 내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교황청 관리하에 두어야만 수교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이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아 2010년 3월 현재까지도 바티칸 시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 논의는 진전된게 없다.[6]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경우 사실상 서방 국가로부터 내정 간섭이 우려되기 때문에 당분간은 중화인민공화국과 바티칸 시국의 수교 문제는 진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편집]
사회주의 국가로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적 우방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교류가 거의 없었으나, 대한민국과 단교된 이후 공식적 접촉을 시작하여 무역, 관광 등의 민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화민국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했지만,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수교 이후부터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출처 필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화인민공화국과 몽골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중화민국과 수교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국가이다. 2010년에 대만 기업 중 미사일 부품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수출한 기업이 적발되었다.[7]
러시아 [편집]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몽골의 독립을 지원하였으며, 소비에트 연방 시기에는 중국 국민당과 우호 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공공연히 지원하는 바람에 적대 관계가 되었다. 현재 러시아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우방국이다.
중화민국은 현재 러시아의 영토인 강동육십사둔, 탕누우량하이 등을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으나, 양국 관계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고 있다. 현재 양국은 양국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하고 있다.
몽골 [편집]
1911년에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은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고 그 해 12월에 혁명(제1차 혁명)을 일으켜 중화민국으로부터 자치를 인정받았다. 러시아 혁명(1917)이 일어나자 외몽골은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했고, 내몽골은 중화민국의 지배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의 자치구가 되었다.
1946년에 중화민국과 소련은 협정에 따라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나, 중화민국은 1953년에 해당 협정을 폐기하고 몽골의 독립 승인을 취소하였다. 그 후 중화민국은 몽골의 국제 연합 가입 신청에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이에 소련이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의 국제 연합 가입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미국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의 가입을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바꾸게 되자 중화민국은 결국 거부권 행사를 포기하고 몽골은 1961년에 국제 연합에 가입하였다.
중화민국은 천수이볜 정부 시기(2000~08)에 외몽골을 대륙 지구에서 제외하고 양국 수도에 대표부를 설치하는 등 사실상 몽골을 승인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몽골을 사실상 독립국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외몽골을 중화민국의 영토로 간주하여 몽골에 대한 중화민국의 입장은 다소 모호한 상황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몽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몽골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국 내 유일 합법 정부로 간주하고 있지만 타이완 지구는 그 정부의 주권이 사실상 미치지 못함을 인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몽골과 관련된 업무는 행정원몽장위원회가 맡고 있으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중화민국의 대표부는 외교부가 관리하고 있다. (→몽골)
양안 관계 [편집]
중국 대륙과 타이완의 관계는 보통 양안문제를 말한다. 지난 중국 국민당은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에게 패배한 뒤 타이완 섬으로 도피하면서 대륙 수복과 반공 운동 정책을 실시하였다. 중화민국은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국가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 연합에 가입을 하면서 대만은 국제 연합에서 스스로 자진 탈퇴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나라들은 중화민국과 단교를 하고 있으며 올림픽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을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명칭으로 출전시키고 있다.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인하여 자국의 국가와 국기를 사용할수가 없다. 장제스와 장징궈 시대에는 대륙 수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이 너무 강해서 본토 수복을 하지 못하고 독립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천수이볜 총통 시대에는 독립운동을 추구하는 세력이 늘었으나 마잉주 총통 시대에는 대륙수복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독립운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 8월 중화민국에 있던 사람들 일부가 대륙과 교류와 편지를 교환하고 2008년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가는 해운로, 항로가 생기면서 양안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티베트 [편집]
중화민국은 티베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지만 달라이 라마의 타이완 방문을 허용하는 등 티베트 망명 정부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티베트 망명 정부는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중화민국 정부는 티베트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므로 외교부가 아닌 대륙위원회가 티베트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홍콩 [편집]
중화권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속하는 중화민국과 홍콩은 경제적·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은 중화민국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 중 하나이며, 홍콩 주민은 일본인 다음으로 중화민국을 가장 많이 방문한다.
중화민국 정부는 홍콩에 대륙위원회(大陸委員會)가 운영하는 중화여행사(中華旅行社)를 두고 있고,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타이베이(臺北)에 홍콩관광진흥청 및 홍콩무역발전국 사무소를 두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정부의 출범 이후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중화민국에 대표부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국제 기구와의 관계 [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인해,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퇴출되거나 그 지위가 격하되었다. 그럼에도 중화민국은 여러 국제 기구에서 차이니스 타이베이 등의 이름으로 회원국 활동하고 있다.
- 국제 상업 회의소(ICC) -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가입
- 국제 수역 사무국(OIE) -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가입[8]
-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UNESCO) -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인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참여[9]
-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가입
- 국제 철도 연맹(UIC) - "타이완 (중국)"으로 가입[10]
- 국제 통상 정보 협력 기구(AITIC) - "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분리 관세 지역"[11]으로 가입
- 대표없는 국가 인민 기구(UNPO) - "타이완"으로 가입
- 중미 통합 체제(SICA) - 지역외 참여국으로서 "중화민국(The Republic of China)"으로 가입[12], 본래의 정식국호로 가입한 유일한 국제기구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활용도는 떨어지고 상징적 의미가 크다.
- 세계 걸스카우트 연맹(WAGGGS) - "타이완"으로 가입
- 세계 노동 연합(WCL) - "타이완"으로 가입
- 세계 무역 기구(WTO) - "타이완, 펑후, 진먼, 마쭈 분리 관세 지역"로 가입
- 세계 보건 기구(WHO) - 중화인민공화국과 WHO가 2005년 5월 14일 맺은 양해각서[13]에 따라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으로 옵서버로 초대되어 활동[14]
- 세계 스카우트 연맹(WOSM) - "중국 스카우트"로 가입
- 아시아 개발 은행(ADB) -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가입
-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가입
중화민국의 외교 연표 [편집]
수교 연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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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교 연표 [편집]
주석 [편집]
- ↑ “마잉주, 對中 외교전 중단 선언”, 《연합뉴스》, 2008년 4월 24일 작성.
- ↑ 한국, 대만을 잊었는가?, 매일경제신문
- ↑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 ↑ “대만 "남미 유일수교국 파라과이와 관계유지 희망"”, 《연합뉴스》, 2008년 4월 25일 작성.
- ↑ “바티칸 "대만과의 단교 검토"에 대만 초비상”, 《프레시안》, 2005년 4월 8일 작성.
- ↑ "교황청, 9년 만에 중국 대표 교체"
- ↑ 이상민. “대만, 미사일부품 北수출 기업적발(종합)”, 《연합뉴스》, 2010년 9월 8일 작성. 2010년 9월 14일 확인.
- ↑ http://www.oie.int/eng/OIE/PM/en_PM.htm
- ↑ UNESCO, page2
- ↑ List of UIC members
- ↑ Separate Customs Territory of Taiwan, Penghu, Kinmen, and Matsu
- ↑ Sistema de la Integración Centroamericana SICA
- ↑ Memorandum of Understanding dated 14 May 2005 between the PRC and the WHO
- ↑ Invitation letter dated 30 April 2009 from the Director General of the WHO to the Minister for Health, Chinese Taipei
- ↑ 에티오피아는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70년은 에티오피아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한 때를 나타낸다.
- ↑ 남베트남이 패망하여 국교가 단절되었다
- ↑ 아일랜드는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79년은 아일랜드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한 때를 나타낸다.
- ↑ 싱가포르는 중화민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 단교한 적은 없다. 1992년은 싱가포르가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한 때를 나타낸다.
함께 보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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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대외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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