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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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혹은 세계사(世界史)는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구상 모든 인류의 경험과 활동을 기록한 역사이다.[1] 넓은 의미에서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같은 원인(原人)에서부터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진화 과정 전체를 다루기도 한다.[2]

인류의 역사는 생활 양식에 따라 선사 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와 같이 시기를 구분하며, 지역과 문화에 따라 서양사, 유럽사, 중동의 역사와 같이 구분하기도 하고, 한국사, 일본의 역사, 미국의 역사와 같이 나라별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계사는 이러한 시기와 지역 및 나라별 역사에 대하여 "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적인 연관성을 지닌 세계의 역사"[3]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선사시대[편집]

인류의 발생과 이동

선사 시대문자 기록이 있기 전 인류의 역사이다. 문자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당시 사용하였던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선사 시대는 구석기 시대, 중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같은 석기 시대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던 지역의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 시대를 포함한다.

현생 인류는 100,000-50,000 년 전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현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당시 지구는 제6빙하기 전의 온난기로 아프리카 대륙에는 이미 나일 강이 있었고 현재의 사하라 사막 등 아프리카의 사막은 녹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5] 인류는 마지막 빙하기 무렵 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에까지 퍼져나가게 되었으며 빙하기가 끝나는 기원전 12,000년 경에는 빙하가 덮지 않은 지구상 모든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 당시의 인류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 농업이 시작되면서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움집과 같은 거주지가 생기고 이들이 모인 촌락이 형성되었다. 신석기인들은 장례와 같이 공동체의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 인류는 금속을 사용하게 되었고 강력한 권력을 갖춘 지배 집단이 형성되었다. 또한 인류 최초의 도시, 국가, 문자, 도서관, 상업, 종교, 신화, 철학과 같은 지금까지도 인류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분야들이 생겨났다.

구석기 시대[편집]

뗀석기의 제작과정

구석기 시대의 주요 도구는 뗀석기와 같은 석기였다. 뗀석기는 먼저 원석을 일차적으로 다음어 거북등 모양의 석핵을 만든 후 석핵의 모퉁이를 가격하여 석편을 떼어내 사용하는 방식으로 매우 경제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방식의 구석기 유물은 프랑스의 르발루아 근교에서 처음 발견되어 흔히 르발루아 방식의 석기로도 불린다.[6]

구석기 후기에는 석기 제작과정이 보다 정교하게 발전하여 정과 모루를 이용한 돌날 방식의 석기를 제작하였다.[7] 한편, 중국에서 발견된 약 28,940년 전 구석기 후기 시대 유물로 흑연으로 만들어진 구멍뚫린 돌구슬과 같이 구석기 후게에는 여러 가지 장신구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이 시기에 인류가 이미 정교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8] 유명한 동굴 벽화인 스페인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프랑스라스코 동굴 벽화 역시 구석기 시대의 것이다.[9] 한편, 레스퓌그의 비너스와 같이 가슴, 엉덩이, 생식기 등이 과장된 여성상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다산숭배를 보여준다.[10]

한반도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의 구석기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구석기인 유골로는 평양에서 발견된 역포인, 1983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발견된 흥수 아이 등이 있다.[11]

중석기 시대[편집]

구석기 시대 이후 신석기 사용이 있기 전까지의 석기 시대를 중석기 시대라 한다. 부싯돌과 같은 돌을 사용하여 구석기 시대에 비해 단단한 도구를 제작하였다.[12] 유럽에서는 대략 소빙하기가 끝난 후 신석기가 시작되는 기원전 5000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인류는 와 같은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였으며 을 사용하였다.[13] 북유럽의 경우 중석기 시대는 기원전 4000년 전까지 계속되었다.[14]

중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토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15]

신석기 시대[편집]

신석기 시대의 마제석기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16] 이전의 석기 시대와 구분되는 신석기 시대의 특징은 돌을 갈아 만든 마제석기였다는 점이다. 돌을 갈아 더 날카롭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석기에 손잡이 부분과 날부분의 구분이 명확해 지고 각 종 장식을 넣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 문화에도 커다란 발전이 있어 농사를 시작하였고 매장과 같은 장례문화가 생겨났다. 이집트 카룬 호에서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다수의 무덤이 발견되었다.[17] 이와 같은 경제, 문화적인 발전은 이전의 인류 역사와 확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흔히 신석기 혁명이라 불린다.[18]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고 움집을 만들고 촌락을 이루었다. 기원전 5,000년 전부터 기원전 4,000년 사이 번성한 이집트파이윰A 문화의 경우 당시 사용한 토기와 움집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보리, , 아마와 같은 작물이 재배되었고 나귀가 가축으로 길러졌다.[19]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1950년 평안남도 온천군 궁상리 패총 유적이 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100여 곳이 발견되었으며 대표적인 유물로는 마제 석기 이외에 빗살무늬 토기, 즐문토기 등이 있다.[20] 1998년 남강댐 수몰지역의 유적 조사에서 부산시립직할박물관의 남강유적조사발굴단은 토기를 잇대어 관으로 사용한 옹관묘를 발굴하여 신석기 시대에 옹관을 이용한 매장 풍습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21]

농업[편집]

밭갈이 하는 모습, 이집트 벽화

농업은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로 고든 차일드는 이시기의 경제 문화적 변화를 신석기 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메소포타미아수메르에서는 약 기원전 9,500년 경부터, 인도에서는 약 기원전 6,000년 경부터, 고대 이집트에서는 약 기원전 5,000년 경부터, 그리고 중국에서는 기원전 2,500년 경부터 농경이 시작되었다.[22]

한반도에서도 신석기 시대부터 농업이 시작되어 , , 수수등을 재배하였다. 당시 유물로는 평양에서 발견된 탄화된 조를 비롯하여 돌로 만든 보습, , 괭이 등이 있다.[23]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농업으로 인류는 을 중심으로한 촌락을 형성하여 정착 생활 문화를 이루었고 이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문명의 모태가 되었다. 당시 인류는 국가의 성립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드나 부족단위의 생활을 이루고 있었다.[24]

종교[편집]

신석기 시대에 출현한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는 종교이다. 기원전 5,000년 경의 이집트 분묘에서는 매장된 시신과 함께 토기, 장신구와 같은 유물과 의 뼈가 발견되어 당시 이미 내세 사상이 있었음을 알게 해 준다.[25] 당시 일반적인 숭배 대상은 태양이었으며 이러한 태양 숭배는 이집트, 인도, 중국, 한반도 등 지역에서 두루 발견된다.[26][27] 또한, 모성 숭배하늘아버지에 견주어 숭배하는 사상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28]

청동기 시대[편집]

프랑스에서 발굴된 청동검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기원전 2,500년 경 아카드 제국과 같은 문명이 출현하였다.[29] 중국에서는 상나라 시대에 이르러 청동기의 제작이 보편화 되었으며[30], 만주 지역에서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 무렵부터 청동기를 사용하였다.[31]

청동기 제작을 위한 야금술의 발명은 기원전 4,000년 무렵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우르와 같은 당시 도시 국가의 유적에서 비소구리의 합금으로 된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후 보다 견고한 주석과 구리의 합금이 쓰이게 되었다.[32] 성경, 사기 등 많은 기록에서 당시 청동기 사용을 확인할 수 있다.

블레셋 사람 진영에서 가드 사람인 골리앗이 나왔는데 그 신장은 여섯 큐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청동 투구를 썼고 몸에는 사슬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청동 5,000 세켈이었다.다리에는 청동 각반을 찼고 어깨에는 청동 단창을 맸다.
 
— 사무엘상 17:4~6, 구약성서

문명[편집]

청동기 시대는 인류의 초기 문명이 출현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지금까지 인류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 도시, 정치, 법률, 문자, 철학과 같은 것들이 출현하였다. 당시의 주요 문명으로는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인더스 문명, 중국의 상나라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33]

무역[편집]

1세기 경 무역로

청동기는 유라시아 대초원을 통해 교역되었고 이때 이미 비단길의 원형이 되는 교역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국 북부에서 사용된 비소가 함유된 청동기가 발굴되어 이 지역까지 메소포타미아의 청동기가 교역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34]

철기 시대[편집]

최초의 철기는 운석등에서 발견된 을 이용한 것으로 기원전 3,000년에서 2,000년 사이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야금술을 이용하여 철광석에서 철을 분리한 철로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500년 경 아나톨리아 지역에 등장한 히타이트이다. 철기 제작 기술은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스키타이 문화로 전파되어 전 세계에 파급되었다. 중국과 한반도 등 동아시아에는 기원전 4세기경 철기가 전파되었다.[35]

고대[편집]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지역에 따라 독특한 문화를 가진 문명을 이룬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고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다른 지역과의 교역으로 세계에 대한 인식이 발전하여 지도의 제작과 지리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졌다. 한편,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인간에 대한 성찰은 철학, 종교, 윤리와 같은 문화를 낳았다. 고대 시기의 국가들은 문명에 따라 도시 국가의 모습을 띠기도 하고 제국을 이루기도 하였다. 국가의 지배를 위해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웃 지역과의 충돌로 국가간 전쟁이 일어났다. 고대 시기의 시작과 끝은 각 문화마다 그 시기가 다르다.

최초의 문명[편집]

우르의 전차
옛날 옛적 지위가 낮은 작은 신들은 노동을 하고, 큰 신들은 그들을 지켜 보며 쉬고 있었다. 홍수를 방지하고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작은 신들은 강과 수로의 흙을 파내야 했다. 노동이 점점 힘들어지자 신들은 점점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다. …… 지혜의 신 엔키는 지하수의 여신 남무에게 진흙에 신들의 피를 섞어 신들의 노역을 대신할 사람들 만들게 했다.
 
— 수메르의 인간창조신화,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에서 재인용[36]

가장 오래된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일어난 수메르 문명이다. 이들은 기원전 3,200년 경부터 도시 국가를 이루었으며, 설형문자를 이용하여 문서를 만들고 이를 보관할 도서관을 세웠다. 전쟁을 통해 영향력이 강해진 키시우르크, 라가시 등은 이웃도시를 지배라는 우두머리 도시가 되었다. 우르의 제왕 우르 남무저울과 같은 도량형을 통일 시키고 학교를 건설했으며, 백과사전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우르 남무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는 법전의 편찬으로 이 법은 훗날 함무라비 법전으로 계승되었다.[37]

주요 고대 문명[편집]

메소포타미아 이외에 잘 알려진 주요 고대 문명으로는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제국,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상나라, 마야 문명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전 세계에 걸쳐 고대 문명이 존재하였다. 만주한반도에서는 고조선 이래 삼국 시대까지의 고대 국가들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편집]

아멘호테프의 조상, 이집트 멤피스, 기원전 1360년 경 하이집트의 관리

기원전 3,100년 경 히에라콘폴리스 통치자들은 상 이집트를 장악하고 나일 강 북부의 하 이집트를 정복했다. 마지막 정복자였던 나르메르 왕은 자신의 정복을 기념하기 위해 팔래트를 제작하였다. 그의 후계자 메네스멤피스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고 이집트 최초의 왕조를 세웠다.

이후 3,000년간 고대 이집트는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으며 수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사라졌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독특한 상형문자와 제3왕조 시기의 거대한 피라미드스핑크스를 건설하였다. 이집트의 왕조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도시별로 분열되어 약화되기도 하였으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헬레니즘 문화로 편입될 때까지 나일 강 유역을 비롯하여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38]

인더스 문명[편집]

인더스 문명이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철기 유물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의 문명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3,000년 경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당대의 기록으로는 인장과 조각난 문자 몇 개가 전부이다. 인더스 문명의 유적으로는 하라파모헨조다로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성곽을 갖춘 도시 국가였으며 인더스 강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방으로 곧게 뻗은 도로벽돌로 만들어진 배수시설을 갖춘 인더스 문명의 도시 국가 유적에서는 거대한 목욕탕과 곡식 창고가 발굴되었다. 사람들은 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했고 , 상아 등으로 제작된 장신구를 사용했다. 이로 보아 인더스 문명은 농업상업에 근간을 둔 고도의 도시 문명이었다.[39]

황하 문명[편집]

황하 유역은 신석기 시대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지역이다. 황하 문명은 중국의 고대 국가의 시초인 하나라에서부터 상나라시기까지의 문명이다.[40] 청나라 말 기원전 1,2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상나라갑골문자은허에서 출토되어 은나라의 실제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갑골문자는 거북의 등을 구워 갈라진 모양을 보고 점괘를 적은 것으로 왕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사람의 머리를 바쳐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41] 1950년에는 상나라 제6대 왕인 중정이 수도로 삼았던 상성이 발굴되어 당시의 청동기 유물과 무덤 유적이 드러났다. 또한 갑골문자의 기록으로 이때 이미 정전제와 같은 토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42]

고대 문화[편집]

고대 시대에 발생한 많은 문화 요소들은 오늘날까지 인류의 생활에 깊이 영향을 주고 있다. 고대 그리스철학탈레스이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통해 정교하게 발전하였으며 이후 유럽아랍 지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43] 춘추전국시대제자백가유가, 묵가, 한비자 등의 사상은 이후 중국과 인근 아시아 지역에 영향을 주었으며[44]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유라시아 전역에 전파되었다.[45]

청동기 시대 초기부터 있어온 동서양의 교류는 비단길과 같은 무역로를 통해 지속되었다. 이러한 교역로는 한반도의 신라에서 중동까지 연결된 세계적인 것이었다.[46]

중세[편집]

1045년 세워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역사에서 중세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기 유럽에서 자신들과 고대 사이의 역사를 암흑기로 인식하는 입장에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쓰이는 중세라는 표현은 오늘날 많은 비판이 있다.[47] 그러나, 중세는 근대 이전의 시기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의미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요한 호이징아는 오히려 르네상스를 《중세의 가을》로 표현하기도 하였다.[48] 한편, 동양의 역사에서 중세를 구분하는 것은 서양 중심의 역사 구분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49]

각 지역 별 역사에서 중세는 대략 다음의 시기를 뜻한다.

중세 유럽[편집]

유럽의 중세는 어느 한 시점에 급작스럽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유럽 중세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는 훈족의 침입, 콘스탄티누스 1세기독교 공인, 게르만족의 이동프랑크 왕국의 성립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유럽 중세의 시작을 로마 제국의 붕괴로부터 보고 있다.[56]

르네상스[편집]

유럽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시작되었다.[57] 이는 그리스, 로마 시대 세계에 존재했던 과학 지식의 재발견과, 당시 유럽의 경제사회의 발전에 있어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호기심의 문화도 만들었고, 끝에 가서는 인문주의를 이끌게 된다.[58] 바로 과학 혁명이 그것이다.[59] 또한 르네상스는 그당시의 의학, 예술, 건축학, 기술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 시대에 이루어졌던 르네상스의 산물들은 현재까지 남아 있기도 한다.

종교 개혁[편집]

이슬람 제국[편집]

이슬람의 확산은 중세 아랍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이다. 성사(聖使) 무하마드에 의해 메카메디나를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확산된 이슬람은 무하마드가 사망하던 632년무렵 이미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퍼져 나갔다.[60] 이 후 이슬람 제국은 661년 성립된 우마미야 왕조와 750년 성립된 아바스 왕조를 거치면서 중동,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61] 심지어 발칸 반도, 스페인까지 퍼져 나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그리스 시대의 지식이 유럽으로 들어와서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동아시아[편집]

중국, 한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고대에서부터 교류와 갈등을 겪으면서 역사적으로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세 국가 모두 자국의 역사 인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어 공통의 역사 인식을 도출하고 있지는 못하다.[62]

중국의 역사에서 중세는 당나라 후기에서 명나라 말에 이르는 시기이며, 한국의 경우 고려 시대를 중세로 파악한다. 한편, 일본의 역사에서는 가마쿠라 시대에서 무로마치 바쿠 시대까지를 중세로 파악한다.

근대[편집]

근대라는 시대 구분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서양의 근대는 17세기 이후 일어난 구체제의 붕괴와 산업혁명을 통해 형성된 민족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의 형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일련의 흐름이다.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형성과 민주주의의 발전 등이 근대의 특징으로 일컬어진다.[63]

그러나,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제3세계에 대하여 이러한 서양의 근대 특성을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각 시기의 정권이 얼마나 이러한 기준에 도달하였는지"를 보는 것이고, 그 결과 근대의 각 요소인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분리하여 민주주의를 경제성장의 대립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경제성장을 우선시 하는 것이 "근대화"라는 몰역사적 근대 인식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는 비판이 있다.[64] 이에 따라 식민지 역시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연관된 세계로 파악하여 식민지 근대를 이룬다는 시각이 있다.[65]

한편, 이와 같은 근대의 기준과 달리 중세 이후 역사를 구분하기 위해 근세라는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를 근세로 본다.[66] 일본의 경우 16세기 이후 19세기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를 근세로 보며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및 에도 시대에 해당한다.[67]

서양의 초기 근대 사회[편집]

15세기 이후 영국의 산업발전과 고전경제학의 성립, 그리고 산업혁명은 서양의 근대가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와 더불어 대항해 시대이후 서양의 지리 인식 확장과 아메리카 식민지 및 인도의 유럽 경제 편입은 이후 제국주의 팽창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 대혁명으로 인해 구체제가 붕괴되고 국민국가가 출현하였다. 프랑스 대혁명과 영국의 명예 혁명이후 유럽에서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68]

제국주의의 세계분할[편집]

열강에 의해 분할된 세계지도.

산업혁명이후 자본주의의 발달로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추게 된 유럽의 각국은 세계 각 지역을 자국의 식민지로 만들어 갔으며 19세기 무렵에는 세계의 대부분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국가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러시아 등 이른바 열강에 의해 분할되었다.[69]

제1차 세계대전[편집]

만일 불타는 꿈속에서 / 그가 실려가는 마차 뒤를 따라 걸을 수 있다면 / ……/ 독가스 찬 폐 속에서 쿨렁쿨렁 쏟아져 나오는 피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 …… / 친구여 영광의 이야기를 졸라대는 아이들에게 / 그렇게 진심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못할 테지 / 그 오래된 거짓말 말일세 / "조국을 위해 몸바치는 것은 고귀한 영예라고."
 
— 윌프레드 오언, 《고귀한 영예》, 인류이야기 현대편 1 에서 재인용[70]


사라예보 사건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은 열강들의 제국주의와 범슬라브주의, 범게르만주의와 같은 민족주의가 작용하여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번졌다. 1차 대전은 전 지구상에서 동시에 전쟁이 일어난 세계대전이었으며 총력전, 참호전, 대량 학살이 일어난 전쟁이었다. 이 때의 전쟁으로 탱크, 독가스 등의 신무기들이 발명되었으며, 이전까지의 열강이었던 영국프랑스미국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전쟁의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었고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세워졌다.[71]

소비에트 연방[편집]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비에트 연방이 세워졌다. 이 후 소비에트 연방은 20세기 말 붕괴될 때까지 서양의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하는 양대 세력 중 하나로 존재하였다.[71][72]

대공황[편집]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시장의 붕괴가 일어난 검은 목요일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유래 없는 공황을 맞이하였다. 미국에서는 대 공황에 대한 대처로 케인즈주의와 함께 관세를 최대 48%까지 올리는 스무트-홀리 관세 법안이 통과되었다.[73] 이로써 자유 방임 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하여 케인즈의 이론에 따른 뉴딜 정책과 같은 수정 자본주의가 대두되었다.[74] 또한 이 사건으로 세계의 경제는 잠시 후퇴하였으며, 독일일본은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점점 제국주의로 흐르면서 다시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편집]

나카사키에 투하된 원자 폭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붕괴된 세계 경제는 독일나치즘이탈리아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사상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독일 나치의 지지율과 실업률 사이에는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었다.[75] 또한 독일, 일본, 이탈리아추축국을 결성하고 미국, 소비에트 연방, 영국 등이 연합국을 구성하면서 세계는 두 편으로 나뉘게 되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이유로 연합국이 추축국에 전쟁을 선언해 전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산되었으며, 이후 일본 제국동남아시아를 점령하기 위해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세계대전에 합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는 베를린 함락, 태평양에서는 원자 폭탄의 투하와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다. 전쟁의 결과 추축국인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패망하였고 세계는 국제 연합을 결성했다.[76]

현대[편집]

현대는 현재의 정치 체제하의 시대와, 현재의 국제 사회 체제하의 시대를 가리키는 역사 개념이다. 2011년 현재 "현대"의 시작은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5월 8일 독일의 항복, 9월 2일 일본의 항복), 1989년 냉전 종식 (동유럽 혁명) 중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1945년 - 1999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식민지들이 대부분 독립하였다. 이들 국가중 상당수는 냉전 시기 비동맹주의를 고수하였고 미국소련이라는 양대 강국과 떨어진 다른 세계라는 의미의 제3세계로 불렸다.[77] 제3세계라는 용어는 사회주의국가가 붕괴한 오늘날에도 남북문제와 같은 경제 관계에서 여전히 관용적으로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은 전지구적인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국제 연합을 결성했다. 최초 회원국은 51개 국이었으며 현재 193개 국이 가입되어 있다.[78]

냉전[편집]

21세기[편집]

주석[편집]

  1. Blainey, Geoffery (2000). A Short History Of The World. Penguin Books, Victoria. ISBN 0-670-88036-1
  2. 만프레프 마이, 김태환 역, 청소년을 위한 이야기 세계사, 웅진닷컴
  3.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
  4. Hua Liua, Franck Prugnollea, Andrea Manicab and François Ballouxa,인류의 세계적 이주에 대한 확고한 유전적 모델, 미국 인류유전학회지, 2006년 8월호
  5. 요시쿠라 사쿠지, 김이경 역,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서해문집, 2006, 34쪽
  6. 김용환, 인류진화의 오딧세이, 가람기획, 2006, 167 ~ 168 쪽
  7. 김용환, 같은책, 176쪽
  8. 북경중앙미술학원, 박은화역, 간추린 중국미술의 역사, 시공사, 2006, 18~19쪽
  9. 윤선자, 《이야기 프랑스사》, 청아출판사(2006, 초판) 15쪽 ISBN 978-89-368-0352-0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 벽화와 함께 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품으로 알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는 기원전 3만 5000년에서 기원전 1만 년 사이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0. 윤선자, 《이야기 프랑스사》, 청아출판사(2006, 초판) 16쪽 ISBN 978-89-368-0352-0 "프랑스 구석기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유물은 레스퓌그Lespugue의 비너스 상이다. 크키가 14.6센티미터로 전체적인 모습은 다소 투박해 보인다. 유난히 커다랗게 표현된 배꼽과 풍만한 가슴, 생식기 등은 구석기들의 다산 숭배 의식을 잘 보여준다."
  11. 한영우 (2003).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전면개정판, 경세원, 59쪽. ISBN 89-8341-057-4 “1933년에 두만강변 동관진에서 구석기 유적지가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의 70여 곳에서 약 70만년 전부터 약 1만년 전에 이르는 구석기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12. Clarke, R (1935), The Flint-knapping Industry at Brandon, Antiquity, vol. IX
  13. 윤선자, 《이야기 프랑스사》, 청아출판사(2006, 초판) 16쪽 ISBN 978-89-368-0352-0 "구석기 시대가 끝나갈 무렵이 되자 소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화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신석기가 시작되는 기원전 5000년까지를 중석기 시대라고 한다. 중석기인들도 구석기인들처럼 수렵과 채집 위주의 생활을 하였지만 기원전 8000년경부터는 서서히 개와 양, 소 등을 사육하기 시작하였다.[...] 구석기 시대로부터 불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불이 중석기인 전체에게 전해지기까지 수천 년의 세월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14. Bellwood, Peter. (2004). First Farmers: The Origins of Agricultural Societies. Blackwell Publishers. ISBN 0-631-20566-7
  15. 김형준 편, 이야기 인도사, 청아출판사, 2007, 56쪽
  16. Bellwood, Peter. (2004). First Farmers: The Origins of Agricultural Societies. Blackwell Publishers. ISBN 0-631-20566-7
  17. 요시쿠라 사쿠지, 같은 책, 40쪽
  18. Gordon Childe (1936). Man Makes Himself. Oxford university press.
  19. 요시쿠라 사쿠지, 같은 책, 41쪽
  20. 박용안 외, 한국의 제4기 환경,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538쪽
  21. 박용만 외, 같은 책, 543쪽
  22. Marcel Mazoyer, Laurence Roudart, A History of World Agriculture: From the Neolithic Age to the Current Crisi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06, ISBN 1-58367-121-8
  23. 한영우 (2003).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전면개정판, 경세원, 62~63쪽. ISBN 89-8341-057-4 “청진 농포리, 평남 온천 궁산리, 부천 시도, 봉산 지탑리, 춘천 교동 등이 대표적 유적지다. 이들 중 일부 지역에서는 돌로 만든 보습, 낫, 괭이, 곡식[피] 등이 함께 발견되어 농사와 목축[돼지]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4. Basic dynamics of classic tribes
  25. 요시쿠라 사쿠지, 같은 책, 43쪽
  26. The Sun God and the Wind Deity at Kizil
  27. 한영우 (2003).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전면개정판, 경세원, 65쪽. ISBN 89-8341-057-4 “원시인들의 신앙 중에서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태양숭배였다. 우주 자연 중에서도 태양을 가장 위대한 조물주로 생각하고 이를 하느님으로 불렀다. 단군신화에 보이는 환인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믿은 하느님으로서 태양신을 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후손 단군(檀君)이 나라를 세웠으므로 우리민족은 하느님의 후손이 된다고 믿었다.”
  28. Some Critiques of the Feminist/New Age "Goddess" Claims
  29. 아카드 제국
  30. 인성핑, 김양수 역, 신권의 일천년, 시공사, 2006, 62쪽
  31. 한영우, 같은 책, 66쪽
  32. 요요 마, 전원경 역, 요요 마의 실크로드, 시공사, 2008, 155쪽
  33.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 휴머니스트, 2007
  34. 요요 마, 같은 책, 158쪽
  35. KBS HD 역사스페셜, HD 역사스페셜 1(한국사, 신화를 깨고 숨을 쉬다), 효형출판, 2006, 109 쪽
  36. 전국역사교사모임, 같은 책, 35쪽
  37. 전국역사교사모임, 같은책, 36 - 38쪽
  38. 타임라이프북스 편집부, 나일강의 사람들:고대이집트 (타임라이프 세계사 01), 가람기획, 2006
  39. 김형준 엮음 , 이야기 인도사, 청아출판사, 2006
  40. 박영규,교양으로 읽는 중국사 1(삼황오제에서 춘추전국시대까지), 웅진싱크빅, 2006
  41. 이효성, 한권으로 읽는 세계사, 지경사, 2006, 33쪽
  42.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1(이야기 역사 시리즈), 청아출판사, 2008, 58 - 59쪽
  43. 박해용,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 두리미디어, 2006
  44. 신동준,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다(공자와 그의 제자들 2), 한길사, 2008
  45. 김영기 편, 역사 속으로 떠나는 배낭여행, 북코리아, 2006, 63쪽
  46. 조법종, 이야기 한국고대사, 청아출판사, 2008, 352쪽,
  47. 이경재, 중세는 정말 암흑기였나(살림지식총서 25), 살림, 2006
  48. 요한 호이징아, 중세의 가을(현대의지성 35) , 문학과지성사, 1997
  49. 오카다 히데히로, 이진복 역, 세계사의 탄생, 황금가지, 2006
  50. 브라이언 타이어니, 이연규 역, 서양 중세사, 집문당, 1997
  51. 버나드 루이스, 이희수 역, 중동의 역사, 까치, 1998
  52.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이동진 외 역, 케임브리지 중국사(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시공사, 2006. 이러한 시기 구분은 중국사의 변화에 촛점을 맞춘 것으로 서양의 고대-중세-근대 구분과는 의미가 다르다.
  53. 한영우, 같은책
  54. 최관,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일본학총서 02), 고려대학교출판부, 2008, 259쪽
  55. 김진섭,한 권으로 읽는 인도사 , 지경사
  56. 만프레트 라이츠, 이현정 역, 중세 산책, 플래닛미디어, 2007, 39쪽
  57.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유니버설 널러지 라이브러리. (1918). 뉴욕: 아메리카나 백과사전 Corp. 페이지 539 (cf., 유럽의 14 - 16세기 르네상스 [...])
  58. Briffault, R. (1919). The making of humanity. London: G. Allen & Unwin ltd. 371 pages (cf. [...] humanism of the Renaissance [...])
  59. The freethinker. (1881). London: G.W. Foote. Page 394 (cf., [...] scientific revolution began with the Italian Renaissance about 1500 [...])
  60. 니콜라 바르버, 김희진 역, 역사 박물관 1(세계의 역사), 효리원, 2007, 6쪽
  61. 카렌 암스트롱, 장병옥 역, 이슬람, 을유문화사, 2007
  62. 전국역사교사모임, 역사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 휴머니스트, 2008, 207 - 289쪽
  63. 임영태, 인류이야기 근대의 세계1 (중세인들, 근대의 문을 노크하다) ,아이필드 ,2007
  64.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의 근대와 근대성 비판, 역사비평사, 2006
  65. 윤해동,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휴머니스트, 2008
  66. 한영우, 같은 책
  67. 최관, 같은 책
  68.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교과서 2 , 휴머니스트, 2007
  69. 전국교사모임, 같은 책
  70. 임영태, 인류이야기 현대편 1, 아이필드, 2007, 112쪽
  71. 임영태, 같은 책
  72. 전국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73.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부키, 2007, 90 - 91쪽
  74. 임영태, 인류이야기 현대편 2, 아이필드, 2007, 25 - 29쪽
  75. 전국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192 - 193쪽
  76. 존 베일리스 스티브 스미스 편저, 하영선 외 역, 세계정치론, 을유문화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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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유엔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