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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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15세 이상 시청가
懲毖錄
징비록 (드라마) 포스터.jpg
장르 사극
방송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방송 채널 KBS 1TV
방송 기간 2015년 2월 14일 ~ 2015년 8월 2일
방송 시간 토요일, 일요일 오후 9시 40분
방송 분량 50분
방송 횟수 50부작
원작 류성룡
징비록
책임프로듀서 김형일
프로듀서 김신일
연출 김상휘
김영조
조연출 김민경, 한현희, 박소연
극본 정형수
정지연
출연자 김상중
김태우
김혜은
정태우
노영학
고세원
장태성
남성진
최철호
이정용
이광기
조상구
김형일
김영기
임병기
이대로
선동혁
박병호
김규철
이재용
김석훈
임혁
임동진
해설 김도현
HD 방송 여부 HD 제작 · 방송
외부 링크  KBS 징비록 공식 웹사이트

징비록》은 KBS 1TV에서 2015년 2월 14일부터 8월 2일까지 방송된 대하드라마이다.

제작[편집]

2014년 6월 19일 드라마 징비록 제작을 예고[1]하였고 2015년 2월 5일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 주니퍼룸에서 제작발표회가가 이루어졌다[2].

이날 KBS 조대현 사장은 재정 적자를 언급한 뒤 "'징비록'도 사실 '정도전'에 바로 이어서 해야 하는데, 재정 때문에 반년을 건너뛰고 시작한다. 금년부터는 대하드라마를 쉬지 않고 하겠다"고 말했다.

1604년(선조 37)에 류성룡집필완료한 징비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임진왜란발생하기 전부터 1598년 이순신전사노량해전까지의 시기에 조정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이야기의 주요 인물은 류성룡과 선조. 주연 배우는 김상중김태우[3].

각본담당자는 MBC 드라마 상도, 다모 등의 각본을 담당한 각본가 정형수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 보조작가 정지연이다. 제작초기에 백운철이 징비록의 각본을 담당하기로 되어있었으나[4] KBS와의 이견차이로 하차하였다.

내레이션에 성우인 김도현을 기용하고 있다.

2015년 1월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등장 인물[편집]

주요 인물[편집]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천과 실현의 결과를 더 중요시한 행정가였다. 임진왜란영의정에 오르게 되고 4도 도체찰사[5]가 되어 당쟁과 전란 속에서 조선의 조정을 총지휘하게 된다. 온유하고 우직하며 균형잡힌 품성 속에 숨겨진 카리스마가 있다. 당색은 동인이지만 당리당략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인물이다.
(하성군 → 조선 선조)
조선 14대 왕. 방계 출신의 왕으로, 왕위 계승 과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군사에 관심이 많고 당쟁을 잘 다스려 보려고 했으나, 임진왜란 이라는 위기를 맞아 왕으로서의 자질을 끊임없이 시험 받게 된다.

서애 류성룡 관련 인물[편집]

왜구들에게 죽을뻔한 목숨을 류성룡이 구하고 거두어준다. 그 뒤 류성룡의 심복이 된다. 글에 대해서는 천부적으로 무식하고, 무예에만 자질이 있다.
군관. 류성룡을 지척에서 호위한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민첩하다.
내외주점[7]을 홀로 운영하는 여주인.
설희의 계집종.
류성룡의 부인.

조선[편집]

왕실[편집]

선조의 후궁. 우아한 몸가짐과 빼어난 외모로 선조의 총애를 받는다. 중전 박씨를 제치고 내명부의 실직적인 안주인이 된다. 선조의 마음을 쥐락펴락하게 되자 자신의 아들로써 대통을 잇겠다는 야망을 품는다.
선조와 그의 후궁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몸가짐이 신중하다. 아버지의 부끄러움마저 대신 짊어진 듯, 전쟁터에서 한 명의 백성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전쟁을 겪으며 진정한 왕이 되길 결심한다.
제14대 왕 선조의 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의 몸이다. 선조는 그런 중전을 뒤로 하고 귀인 김씨만 싸고 돈다.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왕실에서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광해를 양자로 삼아 친자식처럼 여기고 애정을 준다.
선조와 그의 후궁 공빈 김씨의 맏아들이며 광해의 친형이다. 성질이 난폭하여 인심을 얻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세자로 책봉되지 못한다. 임진왜란때 동북 지방으로 피난 가서 가토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된다.
선조와 귀인 김씨 소생의 아들로 임해군과 광해군의 이복동생이자 신립의 사위이다. 임진왜란 와중에 피난을 가다가 죽게 된다.
선조와 순빈 김씨 소생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이복형 임해군과 동북지방으로 피난을 갔지만 회령 아전 국경인과 백성들에게 붙잡혀 가토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된다

동인 세력들[편집]

동인의 영수. 유연한 말투는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같은 동인의 중요인물인 류성룡을 지원하지만, 그를 적절히 통제하며, 이용한다. 임진왜란의 과정에서 선조를 호종하다가 탄핵을 받고 파직당한다.
류성룡의 지기이자 이산해의 사위다. 임진왜란 당시 청원사로 명나라에 파견돼 파병을 성취시키는 등 전란 중 외교의 전반적인 일을 담당한다. 예리한 통찰력과 날카로운 판단력을 지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이듬해 돌아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한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양으로 압송을 하려다가 류성룡에 의해 목숨을 건져 경상도 초유사로 임명되었다.
동인의 원로. 기축옥사로 귀양을 가게 된다.
우의정 정언신의 형으로서 기축옥사로 귀양을 가게 된다.
동인 재야인사. 기축옥사 때 옥사한다.
선조의 후궁인 정빈 홍씨의 친척으로 왜란 전에 병조판서를 맡으면서 군량미를 챙긴 일로 좌천되었다. 후에 호조판서가 되어 류성룡을 탄핵하게 된다.
임진왜란 당시 왕을 호종하면서 평안도 도체찰사로 임명된 뒤 곧 평안도 관찰사 겸 순찰사로 승진해 명의 이여송과 합세해 평양을 탈환하는데 기여했다.
도승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 겸 부체찰사로서 평안도로 피란가는 선조를 호종하다가 이조판서가 되어 환도한 뒤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다.
좌찬성. 임진왜란 당시 의주에서 올라와 선조를 호종하였고, 이후 분조를 따른다. 이순신이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을 때 그를 변호한다.
사재감정[14]. 1592년 세자익위사의 익위로 제수되어 세자[15]영변(현 녕변군)까지 모셨다.

서인 세력들[편집]

서인의 주요 인물이다. 선조가 열여섯에 즉위할 때 부터 승정원에서 가장 가까이 보필했던 터라, 선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중압감으로 살아온 선조를 항상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대범하고 호탕한 성격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기용 되어 선조를 호종한다. 동생으로는 월정 윤근수[16] 등이 있다.
서인의 영수. 1589년 기축옥사를 계기로 선조의 마음을 사로 잡아서 서인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직설적인 성격 탓에 늘 동인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어 관직에서 종종 탄핵 되거나 사직 하곤 하였다. 뛰어난 문재(文才)로 인정 받았다.
당색으로는 서인이지만 류성룡과도 절친한 사이이고, 권율의 사위이다. 시원스런 성격에 해학적인 유머와 번뜩이는 기지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벗인 이덕형과 함께 병조판서를 교대로 맡으면서 근왕병 모집과 명에 대한 청병을 주도하였다.
서인의 정신적 지주같은 인물. 당대의 “8문장가[17]”로 꼽힐만큼 뛰어난 인재였으나 노비출신 이라는 한계에 그쳐 과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철, 성혼과 친교를 맺으며 실질적인 책략가 역할을 한 인물이다.
1589년 기축옥사로 서인이 정권을 잡자 이조참판에 등용되었다. 이이·정철·송익필 등과 절친하였다. 서인의 중진 지도자이며 학문이 깊다.
임진왜란 전 통신사 정사로 파견되어 변화된 일본의 모습에 진작 내침을 감지하고, 귀국 후 일본 침략을 강력하게 경고하지만 묵살되고 만다.
강직하기가 대쪽 같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설령 임금이라 하더라도 잘못하면, 부서지고 깨지더라도 상소를 올려 간언한다. 임진왜란 때 승병장 영규와 함께 호서에서 의병을 일으킨다.

무장들[편집]

당대 최고의 무장.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정2품 한성부 판윤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삼도 도순변사[18]에 임명되어 충주 탄금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다.
제승방략을 고안한 무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경상도 순변사[19]상주, 탄금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패배하지만 도망쳐 살아남는다.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명의 원병과 함께 평양을 수복한다.
경상도 관찰사[20].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부산진 수군첨절제사[21].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 전투에서 전사한다.
동래부사.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에서 전사한다.
경상 좌병사[22]. 그는 임진왜란 당시 거듭 도주하였고 임진강에 주둔한 도원수 김명원의 진중까지 도주하다 결국 체포되어 선조는 선전관을 보내 참수시켰다.
일본군 출신 항왜장수로 과거이름은 사야가(沙也加).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귀순해 김충선이란 이름을 하사받는다.
삼도 순변사 신립의 종사관. 과거 의주목사 시절. 축성으로 인해 명의 간섭으로 물러난 인물로 탄금대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지만 패전하여 신립과 함께 자결한다.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 좌수사)[23].옥포해전 및 적진포 해전에선 일본 수군을 이겨 일본 육군의 보급로를 끊었고 한산도 해전에선 학익진으로 와키자카 함대를 침몰시켰으나 정유재란 때 파직 및 백의종군에 처해짐. 칠천량해전 이후 수군통제사로 복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다.
녹도 만호.
도원수. 한강 및 임진강 방어를 맡았다.
부원수. 임진왜란 당시 한강을 방어하다 실패한 이후 양주 해유령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첫승리를 거두었으나 선조의 명으로 처형당한다.
도순찰사.
광주 목사에 임명되어, 이광과 곽영의 지휘 아래 와키자카 군대와 용인에서 전투를 벌이나 패하였다. 이듬해 김명원의 뒤를 이어 도원수가 되었고 이후 우키타 군대와 행주산성에서 전투[24]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전라도 관찰사. 용인 전투에서 와키자카 군대에 의해 패배한다.
진주 목사. 제1차 진주성 전투 때 곽재우, 심대승, 임계영, 최경회와 더불어 진주성을 지키는 도중 전사한다.
황해도 좌방어사.
황해도 우방어사.
경기 수사.
경상우수사[25](후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수군을 이끌고 옥포, 한산대첩 등의 전공을 올렸다. 이에 반해 이순신과의 대립이 심하였다.

의병들[편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곽재우와 함께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두 아들과 함께 전라도 광주 등에서 모집한 7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권율의 진영에 합류하였다. 이후 금산 전투에서 아들 고인후와 함께 전사한다.
조선 승려. 승병장.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을 조직하여, 이여송, 류성룡 등과 함께 평양성 전투에 참전한다. 이후 대일 사신으로 가토 기요마사와 담판을 짓게 된다.
호남 의병장으로 충용장.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 협력하여 장문포 해전에 참전하였다.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게 된다.

그 외[편집]

내수사별좌. 귀인 김씨의 남동생.
선조의 내관.
선조의 내관.
대동계의 수장. 동인 계열.
비격진천뢰를 만든 화포장.
1590년 통신사 당시 서장관.
조선의 백성들.
귀인 김씨의 상궁.
조선의 역관. 이덕형과 함께 고니시와 강화협정을 맺고자 한다.
분조 대신.
사헌부 군관.
성혼의 하인.
이덕형의 하인.
부산진 첨사 정발의 부장.
동래부사 송상현의 부장.
김덕령의 부장.
김덕령의 국문관.
경상감영 판관.
부산진성 소속 군사.
이일 휘하의 군사.
전라좌수영 소속 군관.
전라좌수영 소속 군관.
부산에 머물며 지속적으로 이순신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순천 부사. 전라좌수영 소속.
훈련원 주부.
전라좌수영 소속 군관. 일부 노비들과 함께 정철총통[26]을 제작한다.
권율의 조방장.
조선의 매국노. 1587년 왜구들을 인도해 손죽도를 침략 즉, 정해왜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1590년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왜구 두목들과 함께 송환되어, 처형되었다.
회령 아전. 가토에게 임해군과 순화군을 넘겨준다.
순왜 관리. 왜군에게 협조하다가 발각되어 곽재우에게 참살된다.
순왜 수군. 전쟁 물자를 빼돌리다 발각되 자신을 비롯한 40명의 순왜 수군들과 함께 처형된다.
작미법 반대 양반.
반란 주모자. 지나친 공납과 조세로 인해 불만을 품고 천안직산에서 난을 일으켰다.
송유진의 부장.
흥양 현감.
휴전기에 반란(이몽학의 난)을 일으킨 자.
삼도수군통제영 군관.

일본[편집]

도요토미 가문[편집]

일본태합(太閤, 호칭은 전하[28]). 보잘 것 없는 용모에 비해, 사람과 상황에 대한 통찰력이 날카롭고, 매우 용의주도한 성격이다. 철저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히데요시의 첫 아들로 요도의 소생. 어린 나이에 일찍 죽는다.
히데요시의 정실. 남편의 입신출세에 힘을 다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히데요시나 자신의 친척을 양자나 가신으로서 키웠다. 그 중에서 가토 기요마사와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복도정칙)는 특히 유명하다. 히데요시의 정실부인으로서 '기타노만도코로'(北政所 북정소)라고도 불린다.
히데요시[31]의 부인. 쓰루마쓰와 히로이마루(拾丸 섭환)를 낳는다.
일본의 관백. 1591년 히데요시는 조카 히데쓰구에게 관백직을 수여하였다. 거주지는 주라쿠다이이다.
히데요시의 양자. 친부는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 우희다직가).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 총대장 겸 제8군 사령관으로 참전하여 제8군을 이끈다.

무장들[편집]

임진왜란때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선봉장. 상인 집안 출신으로, 침착하면서도 손익계산에 빠르다. 임진왜란 때 그의 사위인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종의지)와 함께 1만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부산진동래성을 공격하였고, 충주 탄금대 전투 때 신립을 대패시키는 전공을 세운다. 그 후 제4차 평양성 전투에서 명나라 제독 이여송에게 대패하지만 벽제관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34]을 전멸시킨다[35].
제2군을 이끈 장수. 승부에 있어선 영악하고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보통은 단순하고 포악무도하다. 마치 사냥을 즐기듯 전쟁터를 누빈다. 어린시절 네네에 의해 키워지게 된다. 그래서 네네를 친어미처럼 따른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까지 진출해 임해군을 사로잡게 되며, 후일 고니시와 세키가하라 전투 때 싸우게 된다.
대마도주. 고니시의 사위이며 조선말을 잘한다. 전쟁이 일어나자 고니시의 지휘로 참전했고, 조선과의 강화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나 실패한다. 본명은 종의지이나 조선에 올때는 일본 명문가의 성씨인 ‘평'씨[38]를 차용하여 평의지라고도 불렸다.
종의지 이전에 조선으로 온 일본 사절로 통신사 요청을 하다가 거절당했으며, 결국 히데요시에 의해 죽는다.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 오봉행의 한 사람으로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벽제관 전투에선 조명 연합군을 패배시켰으나 행주대첩에서 권율군에 의해 대패하였다.
통칭 마타자에몬, 마타시로 등.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시바타 가쓰이에 군에 소속되어 히데요시와 대립하지만 전투에서 패하여 그와 제휴한 후, 자신의 딸 마아히메(摩阿姫 마아희)를 히데요시의 첩으로 보내는 등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일본군 제3군 사령관.
일본군 제4군 사령관.
일본군 수군 장수. 옥포 해전에서 조선 수군에게 참패를 당한다.
일본군 수군 장수. 용인에서 5천 군사로 5만의 조선군을 궤멸시켰다(용인 전투). 이후 한산도 전투에서 이순신 지휘 하의 조선 수군에 완패한다.
임진왜란 당시 감시역을 맡아 제1차 진주성 전투, 남원성 전투, 울산성 전투 등에 참전했다.

그 외[편집]

일본 승려. 종의지와 함께 조선으로 와서 통신사를 요청한다.
일본 승려.
히데요시의 시녀.
기요마사의 부장.
유키나가의 부장.
야스하루의 부장.
나고야성 대신.

[편집]

황실[편집]

명나라 제13대 황제. 묘호는 신종(神宗).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였다. 그의 치세는 역대 명나라 황제들의 통치 기간 중 가장 길며, 명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쯤 지나고 왕조가 서서히 몰락해가는 시기였다.
만력제의 애첩. 복충왕 주상순(福忠王 朱常洵, 후의 명 공종, 明恭宗)의 모친. 복충왕을 태자로 옹립하려다가 실패하게 된다. 복충왕의 아들인 남명(南明) 초대 황제 홍광제(弘光帝)는 정귀비의 손자이다.

신하들[편집]

명나라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郎).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2차 원군의 총사령관인 경략방해비왜군무로 참전하였다. 병부우시랑은 심유경을 내세워서 조선을 배제한 일본과의 강화협상을 시도하다가 소환되었다.
무역상 출신의 명나라 사신. 달변가이며 일본어에 능통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일본·명 3국 사이에 강화회담을 맡아 진행하면서 농간을 부렸다.
명나라 병부상서. 조선을 지원하는 척, 강화협상을 배후에서 벌이다가 영락제에 의해 옥에 갇히게 된다.
명나라 예부 소속의 신하로서 병부상서 석성과는 라이벌. 사신으로서 조선에 들어와 송응창와 강화협상을 알아채고 그를 소환하기에 이른다.
명나라의 사신으로서 일본에 파견되었다.
명나라의 사신으로서 일본에 파견되었다.
명나라의 사신으로서 일본에 파견되었다.
경락. 정유재란 직후, 명에서 파견되었다.

무장들[편집]

명나라 장수. 당시 요동의 실권자인 이성량의 아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독군무방해어왜총병관으로 명나라의 제2차 원군 4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에 들어왔다. 일본군을 상대로 평양성 전투에서 승전하였으나 벽제관 전투에서 패한 다음에는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 류성룡과 이항복, 이덕형 등은 이여송에게 일본군과 싸울 것을 재촉하였다.
명나라 요동도사사 진무. 류성룡과 함께 일본군 진영을 살피고, 조선에 원병을 지원하도록 협력한다.
명나라 요동군 부총관. 명군 5,000여명을 이끌고 조선에 출병하였으나,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하였다.
명나라 부총병.
명나라 참장. 조선의 신식군사훈련에 도움을 준다.
명나라 도독.

그 외[편집]

  • 불명 - 주균왕 역
명나라 상인.
명나라 대신.
조승훈의 부장.

류큐국[편집]

류큐국왕자.

그 외[편집]

남해안해적 두목.

고증[편집]

본 작품의 고증은 이전의 대하드라마보다 매우 정확하고 진보한 모습을 보였으며, 사회상 및 스토리와 주제의식 전달에서 수준급의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면에서는 시청자간의 역사적 관점의 충돌 및 대립과 폭발적인 시청률로 이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사의 접근방식에서 정책과 국정 중심으로 다루어져 전작들과는 차별성을 보인 점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렸다.[40][41][42] 전반적으로 고증과 작품성에 대해서 수준높은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43][44][45][46][47]

  • 2015년 7월 한국갤럽조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 드라마부문 1위[48][49]
  • 2015년 10월 방송통신위원회 이 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수상
  • 2016년 4월 휴스턴 국제영화제 은상 수상

작품성[편집]

호평
  • 광해군의 분조수행과 성격의 입체적 묘사
전작들은 광해군이 전쟁수행중에는 이상적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보여주다가, 즉위후에 갖은 무리수와 패착을 저지르게되는 원인묘사가 부족했다. 그로인해 시간경과후 광해군의 실정원인과 인격변모의 간극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했었다. 이 작품에서는 광해군이 비정하고 냉혹하게 변모해가는 과정을 전쟁중 내외부 환경과 연결지어 개연성있게 그려냈다. 분조무군사 에서 보인 광해군의 맹활약도 중심축 중의 하나다.
  • 탄금대전투의 이면
전작들은 신립이 천혜의 요새인 조령을 버리고 벌판인 탄금대에 진을 친 것만 패인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신립이 급조된 비정예군사를 데리고 펼 수 있는 전략의 일원이었음을 조명했다.
  • 명과 일본의 강화과정과 할지론
주로 조선과 일본간의 전쟁으로만 보던 종전의 드라마와 달리,동아시아 삼국의 역학관계에 따른 국제전쟁으로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명과 일본이 외견상은 강화협상이지만, 실상은 동아시아패권을 두고 조선을 분할하려는 할지음모를 보여준다. 전작들에서는 강화협상경과가 간략했으나, 여기서는 강화논의, 진행 ,결과가 세밀하다.
  • 임진왜란 전후 배경과 붕당론
전작들은 통신사간 전쟁발발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던 것을 당쟁망국론으로 규정했다. 이 작품에서는 단순구도인 당쟁에만 갇힌 관점에서 벗어났다. 서인동인도 대비하고 경계하는 관점이 다를 뿐 나라를 위한다는 지향점은 하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이 전쟁에 대해 대책은 안세우고 당쟁만 일삼았다는 관점이 왜곡이라는 것을 에피소드에서 조목조목 짚어준다. 축성강화와 수군양성, 군역문제, 거북선 건조, 제승방략체제진관체제 효율성논의에서 일사분란히 진행되지 못한 원인을 규명할 때 국내외사정을 비교해가며 타당성있게 잘 제시했다.
  • 재조산하
이 작품에서 여러 중심축중의 가장 큰 축이자 핵심기둥이다.- 임진왜란을 다룬 전작들은 예외없이 전쟁에 집중했다. 전작들이 등한시했던 전쟁극복과정에서 논의와 실행된 각종 제도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조선후기를 이끌어 간 작미법(41회 후일 대동법), 면천제(36회), 훈련도감속오군(44회)의 시행을 통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외에도 조정내부에서 국가경영에 관한 제도논의와 수행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치열하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해 잘 설명했다.
원균의 인물상, 이산해와 윤두수의 복합적 성격, 정치적인 지략이 뛰어난 선조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 국정사와 재상중심의 사극
전작인 정도전 에 이어 재상이 국정을 수행하는 것을 중심으로 사극의 기조를 이어간다. 국왕중심의 왕실정쟁과 암투비사를 다룬 사극과는 차별화를 보였다.--왕조중심의 사관에서 벗어나 사관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 일본측 의상, 갑주, 무기, 세트, 인물 세부내용 등 고증이 정확하다.
NHK 대하사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 작가의 간결한 문체와 드라마 상의 명언
  • 호평받은 ost
배경음악과 오프닝에서 찬사를 받았다.
  • 배우들의 열연
강직하고 소신있는 흔들림없는 재상 역의 김상중, 치졸하고 의심 많은 선조 역을 탁월히 소화해낸 김태우, 세련되면서도 따뜻함과 냉철함을 동시에 지닌 지장을 세밀히 표현한 김석훈이 빼어난 명연기를 보여주었다.
미흡한 점
  • 방영 예정 1개월 전에 작가가 정형수 작가로 교체되면서 대본작성 및 작품구상과 자료조사의 시간이 매우 불충분하여 제작, 방영하는데 열악한 환경이었다.
    • 임진왜란과 강화과정 및 조정 내부구도에 집중하다보니 정유재란에서 분량이 줄었다.
  • 정통사극 구도와 역사적인 사실에 충실하게 써야 하는 과제에, 제작비도 대폭 삭감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 회당 제작비가 편당 약 2억 2천만 원으로 10년 전 《불멸의 이순신》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제작되면서 전쟁 신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장비류 고증[편집]

조선
일본

실제역사와 극 내용과의 차이[편집]

극 중 각색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였다.

  • 이항복과 이덕형이 서로 반말을 하며 친구로 지낸다. 실제로 이 두 사람은 어릴 때가 아닌 과거시험장에서 처음 만났으며, 이덕형은 다섯 살 위인 이항복을 형이라고 불렀다.
  • 조선 중기 군정의 문란을 조선 말기 세도정치 시대 수준으로 과장해 묘사하고 있다. -- (반론) 세도정치기의 군정비리인 황구첨징, 백골징포, 인징, 족징이 임진왜란 발발 전에 있었다고 드라마상에서 묘사한 적은 없다. 군역의 시행이 이 시기 사대부 층에게 엄격히 집행되지 않고, 백성들에게 전가되었음을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다. 군역제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아 전쟁 초반 병력의 소집과 정예병화가 이루어지지 못해 육상전에서 잇단 패퇴로 이어졌음을 설명했다.
  • 파업 중이었던 만력제가 조정에 나와서 일을 한다.
  •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가덕도 봉수대는 멀쩡히 작동했으나 일본군이 사전 공작으로 봉수대를 무력화시킨 것으로 묘사했다.
  • 동래성 전투는 저녁에 시작되었는데 대낮에 진행되었다.
  • 밀양 전투가 생략된 바람에 대구에 집결한 제승방략군이 단순히 우천과 식량부족으로 와해된 것으로 묘사되었다.
  • 신립이 상주에서 패배한 이일을 잡아 죽이려고 했으나 드라마에서는 관대하게 환영한다.
  • 탄금대 전투의 경과가 생략되었다.
  • 탄금대 전투에서 수백 명에 불과한 일본군 사상자가 8천 수준으로 과장되었다.
  • 조정 대신들이 파천을 죽어라 반대하고 특히 주인공인 류성룡은 선조의 권위까지 부정하는데, 사실관계와 전혀 다르다. 탄핵이 두려워 서로 먼저 말하지 않으려 했을 뿐 한양 포기는 이미 확정적이었고 일단 결정되자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반론) 류성룡이 적극적인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소극적으로 우려는 표했다. 그러므로 파천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선조실록 1592년 5월 2일자에 좌상(류성룡)이 "파천계획은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기는데 이 무슨 말씀인가" 하니 영상(이산해)이 나오면서 "옛날에도 잠깐 피한 적이 있는 데 어찌하여 꼭 만류해야 하는가" 라고 되어있다.
  • 가토가 탄금대 전투 결과를 전령에게 전해듣는데, 실제로 가토는 고니시와 신립이 싸우는 것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기에 굳이 보고를 들을 필요가 없다.
  • 김충선은 경상감사 김수가 아닌 경상좌병사 박진에게 귀순했다.
  • 전라좌수영 장교들이 경상도를 구원해야 하는지 문제로 논쟁을 벌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원균을 구원하라는 승지의 명령이 내려가 있었다. -- (반론) 이순신은 두 명령서[1592년 4월26일 조정유서(명령서)에 '주장되는 장수의 호령에 맡긴다' 4월27일 유서 '원균과 합세해 적의 배를 부수면 적을 평정시킨다 할 것도 없다'] 를 잇달아 받은 후 전함과 무기정비를 하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경상우수사 원균 및 각 관에 출전공문을 발송했었다. 그러나 두 수사에게서 연락이 끊기고 출전예정일인 1592년 4월 30일에서 출전이 지체되었다. 이순신은 당초 이억기와 연합출전을 해서 경상우수영을 구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억기와는 1차당항포해전 때까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에 4월 30일 이후 전라좌수영 제장들간 전라좌수영 관할구역을 넘어 구원을 가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설전이 벌어진 것은 드라마에서 맞게 묘사한 것이다. 17회 내용은 옥포해전 출정을 앞두고 벌인 회의 중 송희립,정운이 벌인 설전을 그대로 극으로 옮긴 것이다.[50] 국조보감에는 전라좌수영 제장들 설전 후 이순신은 "어찌 나라를 지키는 일에 구역이 정해져 있는가" 하며 5월 4일 출전해 5월 7일 옥포에서 승전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국조보감 등에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수군 구원출병에 반대한 자가 직접적으로 신호라고 지목해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 출전을 반대하는 장수와 정운과 송희립이 벌인 설전내용은 출처에 그대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난중일기 1592년 5월 2일자에서 출정관련인 중에 유일하게 신호는 적극적인 출격과 타 수영과의 합류를 피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출전해 관련해 논의한 사항은 임진장초에 첫번째로는 1592년 4월 27일 장계에는 관찰사, 병마사에게 출정관련해 설명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두번째 1592년 4월 30일 장계에는 부하들에게 출전사항을 지시했다고 나온다.
  • 이억기가 관할구역만 지키다가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했으나 이억기는 늦어졌을 뿐 분명히 합류했다.-- (반론) 드라마상에서 이억기가 1592년 5월7일 옥포해전에 합류하지 않은 것은 맞는 묘사이다. 이억기는 1차당항포해전때 처음으로 이순신과 합류했다. 제1차 당항포해전이 벌어지기전인 1592년 6월3일 전라좌수영에 도착했다. 그러나 6월 3일전 이미 이순신은 급박한 사정상 출전해서 전라좌수영에 없었다. 이에 이억기는 이순신과 합류하러 당포로 갔다. 6월4일 이억기는 당포에서 이순신과 처음 합류해 6월5일 제1차 당항포해전에서 승리했다.
  •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진 이후 신각이 김명원과 연락이 끊어져 탈영자로 오해받고 처형당하는데, 드라마에서는 신각이 죽은 뒤에 임진강 전투가 벌어진다.
  • 김명원이 신각을 모함한 것으로 묘사했다.-- (반론) 김명원의 장계(보고서)때문에 신각이 참수당한것은 맞는 사실이다. 김명원은 한강에 배수진을 치자는 신각의 건의를 무시하고 싸우다가 대패했고 도주했다. 이후 신각은 양주 해유령에서 이양원,이흔과 함께 승리했다. 이에 김명원은 한강사수전 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이 두려워 사실과 다르게 장계를 올렸다. 장계에 한강사수실패와 진영이탈죄를 신각에게 떠넘겼다. 이에 대노한 선조는 사실확인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신각을 참수시켰다.
  • 김명원에게 죽은 이각이 한응인에게 죽는다.
  • 드라마에서 민중 소요시 류성룡이 무조건 백성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으나, 실제의 류성룡은 소요들이 가라앉는 대로 주동자들을 색출하여 목을 쳤다.-- (반론) 드라마의 묘사는 기록대로 맞게 한 것이다. 평양파천 때를 비롯해 민중소요때 류성룡이 주동자를 색출하고 응징했다는 기록은 없다. 거병으로 확대된 반란때만 강경히 대응했을 뿐이다.
  • 선조에게 필부의 행위를 한다고 꾸짖은 것은 실제로는 윤두수인데 류성룡이 이 말을 한 것으로 나온다.-- (반론)선조실록(선조 25년 6월 24일)에 해당발언이 누구의 말인지 사관이 명확히 기술하지 않았다. 단지 '대신들이' 라고만 되어 있다.
  • 하천수의 이름이 김천수로 잘못 언급된다.
  • 조선시대 수군 화포의 비거리는 200보 정도였기에 원거리 포격으로 적을 소탕할 수는 없었다. 한산도 해전 당시 사도첨사 김완이 일본 배에 올라 적장을 베는 등 백병전이 분명히 존재했으나 이러한 묘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론) 백병전으로 묘사하지 않은 드라마의 묘사가 맞다. 해전종결후에 퇴각하는 일본의 전함을 통째로 나포한 것이다. 조선의 해군은 수에서 일본보다 매우 적었기 때문에,백병전은 하지 않았다. 화포의 사정거리 안에서 압도적이고 우수한 함포화력으로 적들이 반격을 가해올 틈없이 일본함선을 제압했다. 이순신이 선조에게 보낸 견내량파 왜병장 장계를 보면 김완이 적선에 도선해 수급을 벤 전공을 세운 것은 맞다. 하지만 해전종결 후에 나포과정에서 안택선(일본 전함)에 도선해서 벌어진 일이다. 해전수행 중에 군대를 이끌고 도선해 벌인 일이 아니었다. 장계를 보면 적군과 조선군 다수가 백병전을 벌인일이 아니라, 해전 후 김완이 나포과정서 벌인 전공임이 나타나 있다. 해전 뿐 아니라 적선나포에 권준,배흥립,입부 이순신,어영담도 큰 전공을 세웠다.
  • 금산에서 싸우다 죽은 고경명이 이치 전투에서 죽는다.
  • 선조가 누르하치의 원군 제안을 받아들이려다 윤두수에게 저지당하지만, 실제로는 딱잘라 거절했다. 오히려 선조는 누르하치를 경계하고 있었기에 신충일 등을 간첩으로 파견해 〈건주기정도기〉를 작성하기까지 했다.
  • 정운이 가슴에 총을 맞고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이마에 총을 맞고 죽었다.
  • 의병조직은 전쟁 초기에 와해된 관군을 재규합한 것으로 관군과 별개가 아니며, 전쟁 후기로 가면서 의병장들에게 벼슬이 내려져 고스란히 관군으로 복귀되었으나 마치 의병이 관군과 대립한 별개 조직인 것처럼 묘사했다.
  • 심유경과 고니시의 회담으로 성립된 50일 휴전 기간동안 조선의 조정대신들은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힐 궁리를 했고 선조도 이에 동조했는데 드라마에서는 선조가 훼방놓은 것처럼 묘사했다.
  • 제1차 진주 전투를 비롯한 경상도 전선에서 김성일의 업적이 몽땅 생략되고 그 분량을 류성룡에게 밀어주었다.
  • 신성군은 제1차 선위파동 이틀 전에 죽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선위파동 와중에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
  • 평양성 탈환 이후 명군이 고니시를 그냥 놓아준 것으로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추격해서 500여명을 죽였다.
  • 명군은 평양성 탈환 이후 보급선 문제 때문에 신속하게 남진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명군이 늑장을 부리고 류성룡이 이들을 독촉하는 것으로 했다.
  • 벽제관 전투를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아닌 고니시 유키나가가 지휘한다. 실제로는 고니시는 평양성에서 쫓겨날 때 입은 피해 때문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 명군은 벽제관 전투 이후 식량이 떨어져서 죽은 말의 고기를 뜯어먹을 지경이었고, 류성룡과 송응창 모두 보급 문제로 골치를 썩였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이여송을 비롯한 명군 지휘부의 의지 부족 문제로 처리하고 말았다.

방송[편집]

시청률[편집]

아래의 파란색 숫자는 '최저 시청률'이고, 빨간색 숫자는 '최고 시청률'입니다. 시청률조사회사와 지역별로 시청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년
회차 방송일 TNmS 시청률[51] AGB 시청률[52]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대한민국(전국) 서울(수도권)
제1회 2월 14일 8.2% 8.2% 10.5% 9.8%
제2회 2월 15일 6.9% 7.6% 9.5% 9.2%
제3회 2월 21일 7.7% 8.6% 9.8% 8.9%
제4회 2월 22일 7.6% 8.3% 10.3% 9.5%
제5회 2월 28일 8.1% 8.8% 8.7% 8.0%
제6회 3월 1일 7.9% 8.4% 9.5% 9.1%
제7회 3월 7일 7.4% 7.7% 10.5% 10.9%
제8회 3월 8일 6.9% 7.6% 9.2% 9.3%
제9회 3월 14일 8.7% 9.0% 10.7% 10.9%
제10회 3월 15일 7.0% 7.5% 10.7% 10.0%
제11회 3월 21일 7.6% 7.7% 9.7% 9.2%
제12회 3월 22일 8.3% 8.9% 10.3% 10.2%
제13회 3월 28일 10.0% 10.9% 10.9% 11.0%
제14회 3월 29일 9.1% 9.4% 11.8% 11.7%
제15회 4월 4일 9.4% 8.8% 11.0% 10.7%
제16회 4월 5일 8.7% 8.8% 10.7% 10.6%
제17회 4월 11일 9.4% 9.1% 11.2% 11.4%
제18회 4월 12일 9.5% 10.0% 11.4% 11.1%
제19회 4월 18일 10.0% 9.1% 12.3% 12.3%
제20회 4월 19일 10.4% 10.7% 12.7% 12.3%
제21회 4월 25일 9.4% 9.2% 12.3% 11.6%
제22회 4월 26일 10.4% 10.5% 13.8% 13.8%
제23회 5월 2일 11.1% 12.3% 12.4% 12.3%
제24회 5월 3일 10.1% 10.4% 12.4% 11.0%
제25회 5월 9일 10.8% 10.7% 11.7% 11.4%
제26회 5월 10일 10.7% 11.1% 12.5% 12.1%
제27회 5월 16일 9.1% 9.2% 10.5% 10.6%
제28회 5월 17일 9.3% 9.2% 11.7% 11.9%
제29회 5월 23일 9.4% 9.6% 10.5% 10.5%
제30회 5월 24일 10.1% 10.4% 11.5% 11.8%
제31회 5월 30일 9.2% 9.0% 11.3% 11.3%
제32회 5월 31일 9.6% 9.6% 12.3% 12.3%
제33회 6월 6일 9.3% 9.1% 12.1% 12.1%
제34회 6월 7일 9.8% 10.7% 11.9% 10.9%
제35회 6월 13일 9.9% 9.2% 11.2% 11.2%
제36회 6월 14일 9.5% 10.3% 13.3% 13.1%
제37회 6월 20일 7.2% 7.8% 10.3% 10.9%
제38회 6월 21일 10.2% 10.8% 12.0% 11.6%
제39회 6월 27일 9.3% 9.8% 12.6% 12.7%
제40회 6월 28일 8.7% 9.3% 12.0% 12.5%
제41회 7월 4일 9.1% 9.9% 11.3% 11.8%
제42회 7월 5일 9.8% 10.0% 11.8% 11.9%
제43회 7월 11일 9.4% 9.3% 10.9% 10.4%
제44회 7월 12일 9.0% 9.0% 11.2% 11.0%
제45회 7월 18일 8.7% 9.0% 10.4% 10.1%
제46회 7월 19일 9.1% 9.2% 11.6% 11.5%
제47회 7월 25일 9.4% 9.7% 11.1% 10.5%
제48회 7월 26일 9.7% 10.9% 7.7%(오류)[53][54] 7.2%(오류)
제49회 8월 1일 9.5% 9.2% 10.5% 10.2%
제50회 8월 2일 10.1% 10.1% 12.3% 12.2%
평균 시청률 9.1% 9.5% 11.2%(오류)[55] 11.0%(오류)

엔딩 다큐멘터리[편집]

매주 일요일 방송분(매 짝수 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드라마 징비록 배경의 관련된 인물과 유적이나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간략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한다.

  • 내레이션 : 박형욱
  • 제작 : 미디어K

※ 유적의 주소는 행정동(법정리)을 기준으로 표시. 유적 중에 굵은 글씨는 드라마에서 지도와 찾아오는 길을 표시.

※ 관련인물의 청색은 '시호(諡號) 또는 묘호(廟號)', 적색은 '자(字)', 녹색은 '아호(雅號) 또는 군호(君號), 법호(法號)', ,흑색은 '휘(諱) 또는 이름(名), 법명(法名)'이다.

횟수 방송일 유형유산(장소) 『기록』/【무형】유산 관련인물 비고
1 2월 15일 병산서원<존덕사>(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봉생정(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수락대(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포리)
하회마을<충효당,영모각>(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옥연정사(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징비록(懲毖錄)』 문충공 이현 서애 류성룡
(文忠公 而見 西厓 柳成龍)
2 2월 22일 목릉(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 선조대왕 이연
(宣祖大王 李昖)
3 3월 01일 학봉종택<운장각>(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임천서원(경상북도 안동시 송하동)
학봉 김성일 묘, 학봉신도비(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 문충공 사순 학봉 김성일
(文忠公 士純 鶴峰 金誠一)
4 3월 08일 정송강사(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봉죽리)
송강 정철 생가터(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식영정(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곡리)
송강정(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 문청공 계함 송강 정철
(文淸公 季涵 松江 鄭澈)
5 3월 15일 이산해 사당<아계 이산해 묘, 신도비>(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수당 기념관[56](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이산해 사당 친필』 문충공 여수 아계 이산해
(文忠公 汝受 鵝溪 李山海)
6 3월 22일 부산진지성<자성대공원, 진남대>(부산광역시 동구 범일 2동)
정공단<전망비>(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정발장군 향사】
(매년 5월 초중순)
충장공 자고 백운 정발
(忠壯公 子固 白雲 鄭撥)
7 3월 29일 목멱산[57] 봉수대 터(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 - (시설 유적)
8 4월 05일 탄금대<열두대, 위령탑, 순절비>(충청북도 충주시 칠금금릉동) - 충장공 입지 신립
(忠壯公 立之 申砬)
9 4월 12일 이순신 생가 터(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
현충사<충무공 고택, 이순신 기념관>(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 충무공 여해 (덕곡) 이순신
(忠武公 汝諧 (德谷) 李舜臣)
10 4월 19일 곽재우생가(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충익사<의병박물관>(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중동리)
정암진(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정암리)
【의령 의병제전】
(매년 4월 하순)
충익공 계수 망우당 곽재우
(忠翼公 季綬 忘憂堂 郭再祐)
11 4월 26일 옥포대첩기념공원<효충사,기념탑>(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 충무공 여해 (덕곡) 이순신
(忠武公 汝諧 (德谷) 李舜臣)
12 5월 03일 이치대첩지<충장사, 대첩비>(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이치대첩 기념제】
(매년 음력 7월 경)
충장공 언신 만취당 권율
(忠壯公 彦愼 晩翠堂 權慄)
13 05월 10일 모덕재[58](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월정사[59](경기도 양주시 회천4동)
【임진란 7주갑 기념식[60]
(60년 마다 6월 12일)
문정공 자앙 오음 윤두수
(文靖公 子仰 梧陰 尹斗壽)
14 5월 17일 진주성<창렬사, 국립진주박물관>(경상남도 진주시 성북동)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충무공 면오 김시민
(忠武公 勉吾 金時敏)
15 5월 24일 금당실마을(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정충사(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고평리)
도정서원<약포사당>(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예천 충효관(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포리)
약포 정탁의 묘(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
『신구차(伸救箚)』 정간공 자정 약포 정탁
(貞簡公 子精 藥圃 鄭琢)
16 5월 31일 행주산성<행주대첩 기념관, 충장사, 행주대첩비>(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 충장공 언신 만취당 권율
(忠壯公 彦愼 晩翠堂 權慄)
17 6월 07일 진주성<촉석루, 의암>(경상남도 진주시 성북동)
정렬사, 망화루(전라남도 나주시 성북동)
- 문렬공 사중 건재 김천일
(文烈公 士重 健齋 金千鎰)
18 6월 14일 화산서원[61]<백사 이항복의 묘>(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방축리) - 문충공 자상 백사 이항복
(文忠公 子常 白沙 李恒福)
쌍송재[62]<한음 이덕형의 묘, 신도비>(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 문익공 명보 한음 이덕형
(文翼公 明甫 漢陰 李德馨)
19 6월 21일 광해군 묘(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
선혜청 터(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이현궁 터, 창덕궁(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2,3,4가동)
경희궁(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이혼
(光海君 李琿)
20 6월 28일 순천 왜성(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웅천 왜성(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동)
울산 왜성(울산광역시 중구 학성동)
- - (시설 유적)
21 7월 05일 갑사<표충원>(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영규대사 비(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영규대사 묘(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 기허대사 영규
(騎虛大師 靈圭)
22 7월 12일 충현박물관<관감당, 오리 종택>, 오리 이원익의 묘(경기도 광명시 소하2동) 『오리집』 문충공 공려 오리 이원익
(文忠公 功勵 梧里 李元翼)
23 7월 19일 동묘공원[63]<동관왕묘>(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 2동)
만동묘[64]<만동묘정비>, 화양계곡(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 - (시설 유적)
24 7월 26일 진남관(전라남도 여수시 충무동)
남해 충렬사<이순신 가분묘>(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충무공 여해 (덕곡) 이순신
(忠武公 汝諧 (德谷) 李舜臣)
25 8월 02일 병산서원<존덕사, 만대루>(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류성룡 묘소(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리)
문충공 이현 서애 류성룡
(文忠公 而見 西厓 柳成龍)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편집]

2015년 6월 15일 디지털 음원으로 Part 1과 Part 2로 나뉘어 총 49곡이 발매되었다.

각 곡의 작곡가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게시된 정보를 참고하였다.

Picto infobox music.png
대하드라마 징비록 OST Part 1
Various Artists사운드트랙 음반
발매일 2015년 6월 15일
길이 1시간 12분 52초
레이블 KBS Media
프로듀서 이창희

대하드라마 징비록 OST Part 1[편집]

# 제목 작곡 재생 시간
1. Jingbirok Title A Main Opening   이창희, 김준범 1분 44초
2. Jingbirok Tragic Nobility   여하경 2분 21초
3. Jingbirok The Castle   여하경 2분 4초
4. Jingbirok Hideyoshi   이창희, 여하경 3분 1초
5. Jingbirok Heart 4beat   최명희 4분 36초
6. Jingbirok Title E Main Sub   이창희, 김준범 1분 48초
7. Jingbirok Tension Theme   김준범, 여하경 2분 16초
8. Jingbirok Loyal Subject   김서현 2분 45초
9. Jingbirok Title D Sad Bjg   이창희, 김준범 3분 8초
10. Jingbirok The Japanese   최명희 5분 7초
11. Jingbirok Rush   김준범, 여하경 2분 6초
12. Jingbirok At War   최명희 2분 24초
13. Jingbirok Sacrifice   최명희 3분 51초
14. Jingbirok Battleship   김준범, 여하경 1분 48초
15. Jingbirok Honorable Man   여하경 3분 16초
16. Jingbirok Myung War   김서현 2분 31초
17. Jingbirok Incident   최재우 2분 17초
18. Jingbirok Madness   이창희, 여하경 2분 10초
19. Jingbirok Storing In Secrecy   이창희, 최명희 2분 52초
20. Jingbirok Mow (War)   이창희, 김준범 3분 19초
21. Jingbirok Combat Alert   김준범, 여하경 2분 43초
22. Jingbirok Dispute   이창희, 김서현 2분 31초
23. Jingbirok Party Apparatus   김준범, 여하경 2분 48초
24. Jingbirok Heavy Tension   이창희, 김준범 2분 21초
25. Jingbirok Warmth   김서현 2분 34초
Picto infobox music.png
대하드라마 징비록 OST Part 2
Various Artists사운드트랙 음반
발매일 2015년 6월 15일
길이 1시간 13분 24초
레이블 KBS Media
프로듀서 이창희

대하드라마 징비록 OST Part 2[편집]

# 제목 작곡 재생 시간
1. Jingbirok Great Work   최명희 2분 30초
2. Jingbirok Title C (Tense)   이창희, 김준범 2분 34초
3. Jingbirok New World   최재우 3분 20초
4. Jingbirok Toyotom   이창희, 여하경 2분 13초
5. Jingbirok Golden Land   김준범, 여하경 3분 1초
6. Jingbirok Jingb Tension   김서현 2분 24초
7. Jingbirok Grief   김서현 2분 46초
8. Jingbirok Last Decision   최재우 2분 1초
9. Jingbirok Exercise Vigilance   이창희, 여하경 2분 59초
10. Jingbirok Vanity   이창희, 최명희 3분 51초
11. Jingbirok Myung Tension   최명희 2분 22초
12. Jingbirok Suspicion   최재우 2분 25초
13. Jingbirok The Battle   최명희 3분 38초
14. Jingbirok Without Reason   김준범, 최명희 4분 11초
15. Jingbirok The Enemy   김준범, 김서현 3분 19초
16. Jingbirok Fierce Attack   최명희 3분 55초
17. Jingbirok Bollergo (Tense)   이창희, 김준범 2분 14초
18. Jingbirok Dark Eyes   이창희, 여하경 3분 5초
19. Jingbirok Mu Mystery   이창희, 김준범 3분 2초
20. Jingbirok Resolve   김서현 2분 48초
21. Jingbirok Conspiracy   이창희, 최명희 5분 27초
22. Jingbirok Thol (Mystery)   김준범 3분 24초
23. Jingbirok Japanese Talk   최명희 1분 31초
24. Jingbirok Wounded Heart   김준범 4분 15초

수상[편집]

각주[편집]

  1. '정도전' 다음은 '류성룡'..KBS, '징비록' 내년 1월 방송
  2. 조대현 KBS 사장 "'징비록'부터 대하드라마 블랙아웃 없앤다"
  3. 김상중·김태우 ‘징비록’은?…‘하늘이 내린 재상’과 ‘비운의 왕’ 그리다 News1 2014년 12월 29일
  4. 안진용 (2015년 1월 20일). “KBS ‘징비록’ 작가 교체… 배경 관심”. 문화일보. 2017년 8월 16일에 확인함. 
  5. 전시의 최고군직
  6. 정태우, '징비록' 합류..김상중 충신으로 연기호흡
  7. 주인이 얼굴을 보이지 않는 술집
  8. 한가림 ‘징비록’ 캐스팅, 유쾌 발랄 '동동 역' 뒤늦게 합류
  9. 정소영, '징비록' 합류..김상중 아내 인동장씨役
  10. ‘징비록’ PD “국난 어떻게 극복했는지 다룰 것”
  11. 150214 대하드라마 징비록 티저1
  12. 남성진, '정도전' 이어 '징비록' 이덕형 캐스팅
  13. ‘징비록’ PD “국난 어떻게 극복했는지 다룰 것”
  14. 1593년에 제수
  15. 광해군
  16. 지조가 있으며, 조정대신 중 중국어에 가장 능통하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간다.
  17. 조선 중기 팔문장계 : 이이, 송익필, 최립, 하응림, 최경창, 이달, 백광훈, 이산해
  18. 충청, 경상, 전라도 군총사령관
  19. 지방의 변란을 진압하기 위해 중앙에서 보내는 군사령관
  20. 경상감사
  21. 정3품 절충장군
  22.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경상좌도(낙동강을 경계로 경상도의 우측 즉, 지금의 안동, 경주, 대구, 부산 일대)의 육군 사령관
  23. 전라좌도 수군절도사.1593년 8월 이후 전라좌수사 및 삼도수군통제사겸임. 1593년 10월 통제사와 좌수사를 겸하라는 정식 제수(임명)교지를 받음
  24. 행주대첩
  25. 경상우도 수군통제사
  26. 조선식 조총
  27. ‘징비록’ 3종 포스터, 블록버스터급 사극 탄생 예고
  28. 당시 일본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 1591년까지의 관직은 관백이었다
  29. 2014년생 아역 배우
  30. ‘구가의 서’ 손가영, 이번엔 ‘징비록’ 요도役 캐스팅
  31. 친부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 천정장정)는 오다니 성 전투(小谷城の戦い)에서 기노시타 도키치로(木下藤吉郞 목하등길랑)에 의해 전사하였고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으로 인해 외백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직전신장) 사후 양부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 시전승가)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우시수길)의 권력 다툼인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에서 히데요시가 승기를 잡음으로서 가쓰이에와 모친 이치(市 )는 자결. 히데요시가 아자이 3자매인 자차(후의 요도), 하쓰(후의 죠코인, 교고쿠 다카쓰구의 부인), 고우(후의 스겐인으로서 사지 가즈나리, 도요토미 히데카쓰,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부인, 에도 막부 초대 미다이도코로) 등을 거두고는 결국 자차를 제2정실로 들인다.
  32. 김리우, ‘징비록’ 합류..도요토미 히데요시 양아들 역
  33. 이광기 '징비록' 출연, 조선 침략한 日 장수役
  34. 조선측 장수:고언백
  35. 실제 전투에선 선봉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활약이 컸다.
  36. 우현·이정용, '징비록' 캐스팅 확정 '명품 조연 합류'
  37. 2005년 불멸의 이순신 이후 10여년 만에 같은 배역을 하게 되었다.
  38. 다이라 우지/헤이시
  39. 서윤아, '징비록' 명나라 황제 애첩 역으로 합류
  40. 명품사극으로 배우는 역사
  41. 인기드라마 징비록에서 착안한 메르스징비록 작성
  42. 징비록의 원동력
  43. 징비록을 읽고 명작인 그 드라마를 보니
  44. 현실에의 경계 빛난 수작 징비록
  45. 국사와 지역사의 관심을 확장시킨 징비록
  46. 소설가 4인이 본 징비록
  47. 극적구성과 역사적 사실사이
  48. 징비록과 이순신
  49. 2015년 5월 한국갤럽조사에서는 드라마부문 2위를 차지했었다. 그러다가 지속적으로 호응과 지지를 받아 드라마부문 1위까지 상승했다.
  50. 출처 :{이충무공 행록} {국조보감}
  51. TNmS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52. AGB 닐슨 미디어리서치 홈페이지
  53. 닐슨코리아가 2015년 7월 26일에는 KBS1 채널 전체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모두 잘못 집계했다. 이에 대해 KBS측에서 강하게 이의 제기를 했고, 닐슨코리아는 이에 대해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당일 자료가 폐기되 바로 잡지 못했다
  54. 닐슨코리아 KBS1채널 및 징비록시청률 오류인정
  55. 48회 시청률이 오류이므로 드라마 전체 평균시청률도 집계할 수 없다. 잘못된 기록인 48회를 포함해서 평균시청률울 집계하는 것은, 오류를 발생시키는데다 타 드라마하고도 형평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특정 횟수를 빼고 평균시청률을 집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는 평균시청률울 내는 작업자체가 오류가 나올 수 밖에 없다.
  56. 이산해의 10대손 수당 이남규의 기념관
  57. 지금의 남산
  58. 윤두수의 손자 윤경지의 사당
  59. 윤두수의 동생 월정 윤근수의 사당
  60. 2012년 6월 12일, 임진왜란 공신 아홉 분을 모시기 위해 60년마다 치르는 행사
  61. 백사 이항복의 사당
  62. 한음 이덕형의 사당(영정각)
  63. 관우를 모신 사당.
  64. 만력제숭정제를 모시기 위한 사당.

경쟁 프로그램[편집]

외부 링크[편집]

한국방송공사 대하드라마
이전 작품 작품명 다음 작품
정도전
(2014년 1월 4일 ~ 2014년 6월 29일)
징비록
(2015년 2월 14일 ~ 2015년 8월 2일)
장영실
(2016년 1월 2일 ~ 2016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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