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 (15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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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李洸, 1541년 ~ 1607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 사무(士武). 호 우계산인(雨溪散人)이다.

생애[편집]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순찰사로 윤선각, 권율 등과 함께 8만 명의 남도근왕군(南道勤王軍)을 조직하여 왜군과 맞서 싸웠으나[1][2][3]용인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이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파직되어 백의종군을 한 뒤 벽동으로 유배되었고 1594년에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계[편집]

  • 조부 : 이행(李荇)
    • 아버지 : 이원상(李元祥)
      • 부인 : 평산 신씨, 신옥형(申玉衡)의 딸
        • 장남 : 이안지(李安止)
        • 차남 : 이안직(李安直)
        • 삼남 : 이안진(李安眞)
        • 딸 : 덕수 이씨, 남철(南澈)에게 출가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각주[편집]

  1. 선조 29권,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8월 26일(계축) 1번째기사 호성감 이주를 인견하고 고경명의 사망, 승군의 활약 등을 묻다
  2. 기재사초
  3. 선조 140권, 34년(1601 신축 / 명 만력(萬曆) 29년) 8월 28일(계사) 2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