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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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 이씨(德水 李氏)
관향 황해북도 개풍군 덕수리
시조 이돈수(李敦守)
주요 집성촌 충청남도 서천군 화양면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산리
황해도 신천군
평안남도 용강군 금곡면 담부리
주요 인물 이기, 이거, 이행, 이정, 이이, 이광, 이우, 이순신, 이완, 이단하, 이안눌, 이식, 이여, 이집, 이은, 이병모, 이규갑, 이종춘, 이종남, 이주열, 이영렬, 이홍렬, 이창용
인구(2015년) 58,513명
덕수이씨 대종회

덕수 이씨(德水 李氏)는 황해북도 개풍군 덕수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이돈수(李敦守)는 고려 신호위(神虎衛) 중랑장(中郞將)으로 1218년(고종 5) 거란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 거란을 격파하였다.

역사[편집]

시조 이돈수(李敦守)는 고려 때 신호위중랑장(神虎衛中郞將)을 지냈으며, 1218년 거란이 고려에 침입했을 때 거란을 방어하는 공을 세웠다. 고려사 조충전에 따르면 1217년 고려와 거란의 전쟁 때 조충(趙沖)이 서북면 원수가 되어 지방의 군사를 기다릴 때 경상도 안찰사 이적(李勣)이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적을 만나 고립되자 이돈수(李敦守)와 김계봉(金季鳳)을 파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돈수의 아들 이양준(李陽俊)은 고려의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어사대부(御史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 등에 추증되었다.

처음 덕수 이씨는 이순신의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이라는 문헌에서 추밀공(樞密公) 이양준(李陽俊)을 시조로 하고 있었지만, 이율곡의 율곡가전 세계(栗谷家傳世系)에서는 시조가 이돈수(李敦守)라고 언급되었으며, 그 후에는 이돈수와 이양준 부자 관계로 확립되어 기술되었다. 이양준(李陽俊)과 이추밀(李樞密)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양준은 고려사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이며, 추밀(樞密)이라는 이름은 별칭인지 시호인지 확실하지 않다.

실제 중시조는 이양준(李陽俊)의 아들로 알려진 인물은 이소(李召)로서, 고려 고종 때 통의대부(通議大夫)로 전법판서(典法判書)와 지삼사사(知三司事) 세자내직랑(世子內直郞) 등을 역임하고, 그 후손들이 누대로 세거해온 고려 개성의 지역이었던 덕수를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덕수 이씨는 본관이 개성에 있고, 고려 시대 주요 벼슬에 등용되어 공을 세운 가문으로 정치적으로 친 고려적인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덕수 이씨는 거란을 격파했던 시조 신호위중랑장 이돈수 무렵에는 무인 가문이었지만, 조선 중기에 문인파계가 생겨져 무인파계 집안과 문인파계 집안 둘로 나눠졌다는 것이 특색이며, 조선 중종부터 영조대에 이르는 약 300년간 성세를 보였다.

덕수이씨 중 문성공파는 조선시대 문묘종묘에 동시에 종사된 율곡 이이를 배출했고 이외 문과 급제자 102명, 상신 7명, 대제학 5명, 공신 4명, 청백리 2명이 나왔다. 충무공파는 무과 급제자 267명, 삼도수군통제사 13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 인물로는 충무공 이순신이 있다.

본관[편집]

덕수(德水)는 현재의 황해북도 개풍군(開豊郡) 덕수리이다. 고구려 때 덕물현(德勿縣)이었으며 757년 신라 경덕왕 때 덕수현(德水縣)으로 개칭. 1018년 고려 현종 때 개성현으로 통합되었다. 1442년 세종 때 해풍군(海豊郡)과 병합하여 풍덕군이 되었고, 1914년 개성군에 편입되었다가 1930년 풍덕군과 통합되어 개풍군(開豊郡)이 되었다.

인물[편집]

종묘 배향과 문묘 종사를 동시에 이룬 6현 중 한 명인 이이를 배출하였다.

대한민국의 화폐에 오른 인물 가운데 덕수 이씨의 사람은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으로, 두 사람이 오른 가문은 덕수 이씨가 유일하며, 2009년 6월 23일 발행된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인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덕수 이씨와 관련된 지폐의 인물은 총 3명이다. 참고로 동전 5원 앞면 그림은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이 그려져 있다.

항렬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