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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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 해전
임진왜란의 일부
교전국
Coat of Arms of Joseon Korea.png
Toyotomi mon.png
지휘관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  
권준
송희립
무의공 이순신
나대용
배흥립
이운룡
우치적
신호
황세득
김완
기효근
이영남
어영담

이언량

Goshichi no kiri.svg 도요토미 히데카쓰
Japanese Crest Tuta.png 도도 다카토라
Japanese Crest Shichiyoumon.svg 구키 요시타카
Wachigai.svg 와키자카 야스하루
Japanese crest Sagari Fuji of Katou Yosiaki.svg 가토 요시아키
Maru ni Jyuji (No background and Black color drawing).svg 시마즈 요시히로

Inaba crest1.svg 구루시마 미치후사
병력
전선 170여 척
(판옥선 74척, 협선 92척 등)
전선 470여 척
병력 7만 명
피해 규모
정운사망

임진왜란 개전있어서 일본군은 처음 부산에 상륙 점령 한 ( 부산진 전투 ). 이후 히젠 나고야 에서 이키 · 쓰시마 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경로가 일본군의 해상 교통로 가되어있어, 보급 물자는 일단 부산에 하역 된 후 육로 내륙으로 수송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부산은 일본군에있어 보급 연락에 근본이되는 거점이었다.

이에 대해 이순신 이 부산은 일본군의 본기지 이니라. 부산을 쳐서 이긴다면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할수잇다며 당부하며 부산을 점령 탈환을 여러 장수 선언 행동을 시작한다. 이것은 이순신 직속 이억기 휘하의 모든 경영과 원균 휘하의 경상 오른쪽 물 영을 더한다는 실질적으로 조선 수군의 총력을 결집 한 작전이었다 .

경과[편집]

이순신은 결국 함대를모아 부산으로 가지만 일본군의 함대가 계속하여 부산으로 오는것을보고 도저히 이길수없다고 판단하여 퇴각한다

의의와 영향[편집]

계속하여 출격해온 조선 수군이 이 사건으로 인하여 더이상 일본수군에게 역으로 공격하지않앗다 실제로 이순신이 감옥에 간이유도 선조가 부산포를 공격하라고 계속몇번이나 몇번이나 명령하엿으나 이순신이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의 보급로를 차단할려고하거나 역으로 공격을 갓다간 반드시 대패하기때문에 부산에 갈수없다고해서 감옥에 간것이다 결국 선조는 이순신을 감옥에 가두고 원균보고 출격하라고 하고

원균은 어쩔수없이 돌격을햇다가 대패하고만다 그리고 그이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평화협정을하고 돌아가는 일본군을 치다가 시마즈 요시히로의 엎드려쏴 전술에 당해 조총에 맞고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