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울산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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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울산성 전투
정유재란의 일부
Ulsan waesung attack.jpg
교전국
Flag of the king of Joseon.svg



Toyotomi mon.png
지휘관

조선
류성룡
권율
정기룡
김귀희
장운익
이운룡

명나라
양호
마귀

천만리

주둔군
Jyanome (No background and Black color drawing).svg 가토 기요마사
구원군
Ichimonjimitsuboshi.svg 모리 히데모토
Ume-bachi inverted.jpg 오타 가즈요시
Alex K Hiroshima Asano kamon.svg 아사노 요시나가
Kuroda Fuji(No background and Black color drawing).svg 구로다 나가마사
Nanatsu Katabami inverted.png 조소카베 모토치카
Marunouchinimitsuhikiryo.svg 깃카와 히로이에
Japanese Crest Tachibana Mamori.svg다치바나 무네시게
Japanese crest Hana Kurusu.svg고니시 유키나가
Daki Kasiwa (No background and Black color drawing).svg하치스카 이에마사
Japanese crest Sagari Fuji of Katou Yosiaki.svg가토 요시아키
Wachigai.svg와키자카 야스하루
Japanese crest Maru ni Yahazu.svg모리 요시나리

Japanese Crest Nabesima Gyouyou.svg나베시마 나오시게
병력
조선
12,500명
명나라
36,000명
총병력 57,500명
울산성 주둔군 10,000명
구원군 13,000명(나베시마 나오시게의 병력)
6만 ~ 8만명(구원군 총합)
피해 규모
약 20,000여 명 전사 불명

제1차 울산성 전투(第一次蔚山城戰鬪)는 1598년 1월 29일 ~ 2월 9일조명 연합군과 일본군이 벌인 전투로 흔히 한국에서 알려진 울산성 전투는 제1차 전투이다. 이후 제2차 울산성 전투도 있었다.

울산 공격[편집]

조선의 도원수 권율명나라 부총병 양호순천고니시 유키나가울산가토 기요마사 중 누구를 먼저 쳐야 할 지 의논했는데 울산이 일본군의 본거지라는 이유로 1598년 1월 29일(1597년 음력 12월 23일) 가토 기요마사의 1만 5천명의 군사가 지키는 울산왜성을 공격했다. 이때 조명 연합군은 조선군 1만 1천 5백명, 명군 3만 6천명으로 명 제독 마귀도 합세해 울산성을 총공격했다.

공방전[편집]

가토 키요마사와 일본군이 조명연합군을 격퇴한 수성전이다. 조명연합군은 새벽시간 때에 압도적인 숫자로 사면에서 성을 공격했지만 성을지키는 일본군에게 크게 패배하고 다수의 사상자를내고 퇴각을 했다. 25일 명나라장군은 조선군의 도원수 권율을 불러 오늘은 휴식하지만 내일은 권율 너가 군대를 이끌고 다시 한번 치라고 명령한다. 그러므로 권율은 조선군 단독으로 성을 공격하지만 일본군이 또 한번 조총을쏴서 조선군을 격파 권율이 크게 패하고 다수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한다. 그이후도 계속하여 조명연합군은 공격해오지만 모두 대패하고 이렇게 조명연합군의 계속되는 패배로 인해 조명연합군은 공격을 중단하고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하게된다. 그러나 울산성 군량이 충분하지않앗던탓에 울산성 식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겨울의 추위와 굶주림때문에 쓰러지는 병사들이 많아졌지만 일본군과 가토 키요마사는 배가 너무 고프고 너무 추운 상태에서도 끝까지 싸우며 할복하는 한이 있더라도 싸우겠다며 계속하여 투쟁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명연합군 입장에서도 일본 지원군을 생각하며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일본 지원군이 도착하고 조명연합군은 격파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