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평양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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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평양 전투
임진왜란의 일부
날짜1592년 7월 21일(음력 6월 13일) ~ 7월 22일(음력 6월 14일)
장소
결과 일본군의 승리, 평양성 함락
교전국
조선의 기 조선
일본
지휘관
윤두수 좌의정
김명원 도원수
이원익 이조판서
고언백
김침
허숙
김억추
Japanese crest Hana Kurusu.svg 고니시 유키나가
병력
4000명 1만 7300명
피해 규모
3000명전사 350명전사

제1차 평양성 전투 또는 대동강 전투임진왜란 중의 한 전투이다. 전투의 결과로써 일본군은 평양성을 점령하게 되었다.

전개[편집]

한양을 함락시키고 맹렬한 속도로 진격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는 7월 9일(음력 6월 1일) 개성을 함락시키고 평양으로 출발했다. 이에 7월 19일(음력 6월 11일) 조선선조는 다시 평양에서 의주로 피란하고 평양은 좌의정 윤두수, 도원수 김명원, 이조판서 이원익 등이 지키게 되었다. 성 안에서는 군민 3000~4000명이 을밀대 부근 숲에 옷을 걸치게 하여 군사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7월 21일(음력 6월 13일) 대동강에 도달한 고니시의 부대는 진을치고 양각도를 건너 대동관을 조총으로 사격했다. 이에 윤두수이원익, 김침 등이 동대원의 일본군 진영을 기습 공격해 수백 명을 죽이고 말 수십 필을 빼앗았다. 그러나 다른 일본군들이 석회탄에 진을 쳐 여기를 지키던 조선군이 크게 패해 도망쳤다.

보고를 들은 윤두수허숙김억추를 시켜 대동강을 지키게 하고 7월 22일(음력 6월 14일) 새벽에 고언백을 시켜 400명의 병정을 주어 부벽루능라도로 강을 건너 기습 공격을 하게 했으나 군령을 지키지 못해 오히려 패배해 왕성탄으로 건너왔다. 이것이 치명적인 패배의 원인이 되어 대동강의 수심이 얕은 것을 본 일본군이 강을 건너 평양성을 공격해 왔고 결국 윤두수김명원은 군사들을 내보낸 뒤 무기를 모두 풍월루의 연못에 버리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평양성은 전쟁 개전 60일 만에 일본군에게 함락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