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대첩
외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넘어옴)
진주대첩(晋州大捷)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남도를 장악할 본거지이자 전라도 침입의 교두보 역할을 해낼 요충지가 바로 진주성이라고 간주하고 공략을 명령했다. 1592년 11월 7일(음력 10월 4일) 일본군은 군사 3만명을 이끌고 진주성을 포위하였다. 성내에는 진주 목사 김시민을 위시한 관군 3,800여 명과 백성이 합세해 결전을 준비했고, 성외에서는 곽재우가 이끄는 경상도 의병들이 일본군을 배후에서 견제하고 있었다. 하루 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은 진주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물렸으며, 전투 과정에서 조선군과 일본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이 호남 지방을 점령하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진주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부르며 기리고 있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은 사후에 충무공으로 추존되었다.
기념물
[편집]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김시민 장군 전공비는 1619년(광해군 11년) 음력 7월에 진주성에 세워졌으며, 성여신이 비문을 짓고 한몽인이 글씨를 썼다. 진주전상각적비(晉州全成却敵碑)라고도 하고 시도유형문화재 제2호인 촉석정충단비와 나란히 서 있다. 1987년 당시 전사한 영현들을 위로코자 비 후편에 계사순의단을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