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진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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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진의 난(宋儒眞ㅡ亂)은 1594년(선조 27년) 임진왜란 중의 혼란과 대기근 와중에 불만 백성을 서얼 송유진이 규합해 충청도 천안 일대에서 일으킨 반란이다.

지리산·계룡산 일대에까지 세력을 폈으며 무리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당시 서울의 수비가 허술함을 보고 이를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오원종(吳元宗)·홍근(洪瑾) 등과 함께 아산·평택의 병기를 약탈하여 1594년 정월보름날 한성에 진군하기로 약속했으나, 그해 정월 직산에서 충청병사 변양준(邊良俊)에게 체포되어 사형당했다.[1]

이지함의 서자로 난중 의병으로 활약한 이산겸이 송유진 등의 무고를 입어 고문 받고 옥에서 목숨을 잃었다.[2] 선조가 1593년 일본군 철수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하여 반란을 이용해 전란기의 공신들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기도 한다.[3]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