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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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저 문제(建儲問題)는 1591년(선조 24년) 왕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동인서인 사이에 일어난 분쟁이며, 건저의 사건(建儲議事件)이라고도 한다. 건저(建儲)는 왕의 자리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던 일을 뜻한다.건저의사건

배경과 과정[편집]

정여립 사건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서인의 영수 정철은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이에 동인은 원한을 품고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선조의 총애를 받던 인빈 김씨신성군(信城君, 1578년~1592년 11월 5일)을 낳자 신성군은 선조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당시 동인의 영수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인빈의 오빠 김공량(金公諒)과 친교하고 있었다. 이산해는 우의정이던 류성룡, 정철과 함께 세자 책봉을 논의한다. 그러나 선조의 마음을 아는 이산해는 병을 핑계로 어전에 나가지 않는다.

이에 좌의정 정철이 광해군을 세자로 정할 것을 주청하자 선조의 미움을 사고 강계(江界)로 유배되었으며, 이에 관련되어 윤두수 등 서인이 파직 혹은 원류(遠流)되어 동인이 다시 세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결과[편집]

동인은 이 기회에 기축옥사의 책임을 물어 정철을 죽일 것을 주장하는 이산해를 주축으로 서인에게 강경 보복하자는 강경파 북인과 그에 반대하는 류성룡으로 대표되는 온건파 남인으로 갈라져 대립하게 된다. 건저문제에서 언급되었던 세자책봉은 정철이 유배간 이듬해, 정철이 건의했던 광해군으로 책봉되었다.

함께 보기[편집]

Heckert GNU white.svgCc.logo.circle.svg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양반관료의 대립과 분열〉"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