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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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주력선 판옥선

판옥선(板屋船)은 조선 후기 수군의 대표적인 주력함이다. 조선시대 당시는 판옥선보다는 전선(戰船)이라 불렀다.

개요와 특징[편집]

조선 전기는 맹선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왜란의 속출로 인해 그 실효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6세기에는 삼포왜란, 사량왜변, 을묘왜변 등의 변란이 속출했는데, 이전에 평선을 사용하던 왜구도 2층 구조의 안택선을 사용함에 따라 대응하기가 점차 어려워졌다.[1] 판옥선은 선저가 평평하고 흘수선이 낮아 선회가 빠른 배라서 전투 시 여러 척이 엉킨 혼전에서는 유용했지만 쾌속하게 암초와 파도를 가로질러 대양으로 나아가기에는 단점도 있다.[2]

초기의 판옥선[편집]

그리하여 1555년(명종 10년)당시 남도포 만호였던 정걸장군이 판옥선을 개발해 사용했다. 판옥선은 이전까지 사용되던 와는 달리 2층 구조로 만들어져 있어, 노를 젓는 군사와 전투를 하는 군사를 나누어 효율적인 전투를 할 수 있었다. 《명종실록》에는 50명 정도가 승선한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의 판옥선[편집]

임진왜란의 주력선으로 동원되었는데, 명종 조에 개발된 판옥선보다 크기가 커지고, 탑승인원도 130명 정도로 파격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수군을 늘릴 수는 없었으므로 보유할 수 있는 판옥선의 수는 제한적이었다.[3]

일본의 안택선와 비교하면 승무원의 구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안택선은 노수 90명에 전투원 200명 정도로 전투원이 압도적으로 많으나, 판옥선은 노꾼 110명에 전투원은 지휘관을 포함 54명에 불과하다. 전투원의 구성은 안택선이 상당 수 근접전투원이었던 반면, 판옥선은 포격수 36명에 사부(궁수) 18명으로 포격전과 원거리 공격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4]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566년 3월 13일. “대신과 비변사가 진·포의 판옥선과 경강의 판옥선에 대해 아뢰다”. 조선왕조실록 명종32권 21년. 2008년 11월 15일에 확인함. 
  2. 이상윤 (2010년 2월 22일). 《기술,배,정치-기술배정치는 세계패권을 어떻게 바꿨는가?》. 높은새, 308쪽. ISBN 9788993989021
  3. 부산 사이버해양박물관. “거북선과 판옥선”. 부산사이버해양박물관. 2008년 11월 15일에 확인함. 
  4. KBS 역사 스페셜 200화 특별 기획 2부작 이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