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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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신종 만력제
明 神宗 萬曆帝
明神宗.jpg
명나라의 제13대 황제
재위 1572년 ~ 1620년
황후 효단현황후
효정현황후
부황 융경제
모후 효정장황후
이전 황제 융경제
다음 황제 태창제

만력제(萬曆帝, 1563년 9월 4일 ~ 1620년 8월 18일)는 명나라의 제13대 황제이다. 는 익균(翊鈞)이다. 융경제의 3남이다. 1572년부터 1620년까지 48년간 재위하였다. 그의 치세는 역대 명나라 황제들의 통치 기간 중 가장 길며, 명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쯤 지나고 왕조가 서서히 몰락해가는 시기였다. 묘호는 신종(神宗)이고, 시호는 범천합도철숙돈간광문장무안인지효현황제(範天合道哲肅敦簡光文章武安仁止孝顯皇帝)로, 그는 1572년부터 1620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572년부터 1582년까지 장거정(張居正)이 섭정하였고 1582년부터 1620년 붕어할 때까지 친정하였다.

생애[편집]

유왕 주재후의 3남으로 태어났으며 큰형과 둘째 형이 모두 죽자 유왕태자(裕王太子)에 봉해졌다. 1567년 아버지가 황위에 오르자 황태자에 책봉되었고 1572년에는 10살의 나이로 황위에 올랐다. 만력제는 정치를 잘 알지 못했던 등극 초기에는 모든 일을 재상 장거정(張居正)에게 맡겼다. 오랫동안 그의 스승이었던 인연 때문이었다. 장거정의 교육 방식은 너무 엄격해 어린 만력제의 숨통을 조이기 일쑤였다. 공론을 줄이고 명실상부, 기강 확립, 명령 복종, 군비 확충 등을 중시한 그는 ‘철혈 재상’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사심 없이,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국사를 처리했으며 개혁에도 열심이었다. 덕분에 명나라는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만력제가 제위에 오른 지 10년째 되던 해 장거정이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기를 펴지 못했던 반대파들은 입을 모아 장거정의 비리를 들추며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거정을 편들었던 만력제도 그의 재산이 자신을 능가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장거정의 가산을 몰수했다. 이후 그는 30년 간 여러가지 구실을 대며 정사를 돌보지 않아 나라가 깊은 수렁에 빠져갔고, 나라에 아무리 위급한 일이 생겨도 동전 한 닢 내놓지 않는 지독한 구두쇠가 되어 갔다. 반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했다. 황제의 재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 갔으나 국고는 점점 줄어들었다. 황제가 돈을 밝히니 고관과 환관들은 매관매직을 일삼는 탐관오리가 되어갔고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만력제는 아부하는 자를 재상에 앉혀 놓고 오로지 치부에만 열성을 보였다. 거기다 술과 여자까지 밝혔다.

만력제가 죽은 뒤로 3명의 황제가 대를 이었으나 이미 만력제 때 뒤숭숭해진 민심은 이자성의 난을 불러왔고, 그가 죽은 지 24년째 되던 해 명나라는 멸망을 맞이하고 말았다. 역사가들은 한결같이 “명나라가 망한 것은 숭정제 때가 아니라 만력제 때였다”고 썼다.

평판이 매우 좋지 못한 군주이지만, 임진왜란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매우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친 편이다. 그래서 당대와 후대 중국인들에게서는 만력제를 가리켜 ‘고려의 천자(天子)’ 또는 ‘조선의 황제’라고 일컫기까지 했다. 조선에서 명나라에 대한 호감이 생겨난 배경도 이때 만력제가 보여준 적극적인 우호 정책 탓이 매우 크다.

그런 영향으로 조선에서는 송시열이 제자인 권상하에게 만력제와 숭정제의 제사를 지낼 사당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만동묘(萬東廟)이다. 만동묘는 도산서원과 함께 조선의 4대 서원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를 지시할 때 헐려버리고 지금은 묘정비만 존재하고 있다.

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황후[편집]

후궁[편집]

  • 공각황귀비 정씨(恭恪皇貴妃 鄭氏, 1565년 ~ 1630년)[1] - 남명 초대 황제 홍광제 즉위 후에 효령태황태후로 추존.
  • 공순황귀비 이씨(恭順皇貴妃 李氏. ? ~ 1597년) - 남명 제4대 황제 영력제 즉위 후에 효경태황태후로 추존.
  • 선의소비 유씨(宣懿昭妃 劉氏, 1557년 ~ 1642년) - 천계제 때 태비로 봉숭되어 숭정제 때 사망하기까지 황태후의 인장을 관리.
  • 장정덕비 허씨(莊靖德妃 許氏, ? ~ 1602년)
  • 온정순비 상씨(溫靜順妃 常氏, 1568년 ~ 1594년)
  • 청혜순비 이씨(淸惠順妃 李氏, ? ~ 1623년)
  • 영혜의비 양씨(榮惠宜妃 楊氏, ? ~ 1581년)
  • 단정영비 왕씨(端靖榮妃 王氏, ? ~ 1591년)
  • 현비 위씨(賢妃 魏氏)
  • 단비 주씨(端妃 周氏)
  • 희비 왕씨(僖妃 王氏, ? ~ 1589년)
  • 영빈 이씨(榮嬪 李氏)
  • 덕빈 이씨(德嬪 李氏, 1567년 ~ 1628년)
  • 도빈 경씨(悼嬪 耿氏, 1568년 ~ 1589년)
  • 화빈 양씨(和嬪 梁氏, 1562년 ~ 1643년)
  • 경빈 소씨(敬嬪 邵氏, ? ~ 1606년)
  • 순빈 장씨(順嬪 張氏, ? ~ 1589년)
  • 신빈 위씨(愼嬪 魏氏, 1567년 ~ 1606년)
  • 시어 호씨(侍御 胡氏, 1594년 ~ ?)

황자[편집]

  1. 황태자 주상락(朱常洛) - 효정황태후 소생. 제15대 황제 광종 태창정황제(光宗 泰昌貞皇帝).
  2. 빈애왕(彬涯王) 주상서(朱嫦書, 1585년) - 공각황귀비 소생, 탄생 직후 요절함.
  3. 복충왕(福忠王) 주상순(朱常洵, 1586년 ~ 1641년) - 공각황귀비 소생. 남명 초대 황제 홍광제가 즉위한 후에 황제로 추존.
  4. 원회왕(原懷王) 주상치(朱嫦治, 1587년 ~ 1588년) - 공각황귀비 소생, 요절함.
  5. 서왕(瑞王) 주상호(朱常浩, 1590년 ~ 1644년) - 단비 주씨 소생.
  6. 혜왕(惠王) 주상윤(朱嫦潤, 1594년 ~ 1647년) - 공순황귀비 소생.
  7. 계단왕(桂端王) 주상영(朱常瀛, 1597년 ~ 1645년) - 공순황귀비 소생. 남명 제4대 황제 영력제가 즉위한 후에 황제로 추존.
  8. 영사왕(永思王) 주상부(朱常溥, 1604년 ~ 1606년) - 청혜순비 소생. 요절함.

황녀[편집]

  1. 영창공주(榮昌公主) 주헌영(朱軒媖, 1582년 ~ 1647년) - 효단현황후 소생.
  2. 설화공주(雲和公主) 주헌주(朱軒姝, 1584년 ~ 1590년) - 공각황귀비 소생.
  3. 정락공주(靜樂公主) 주헌규(朱軒媯, 1584년 ~ 1585년) - 단정영비 소생. 요절함.
  4. 운몽공주(雲夢公主) 주헌원(朱軒嫄, 1584년 ~ 1587년) - 효정황태후 소생. 요절함.
  5. 선거공주(仙居公主) 주헌길(朱軒姞, 1584년 ~ 1585년) - 덕빈 이씨 소생. 요절함.
  6. 영구공주(靈丘公主) 주헌요(朱軒姚, 1588년 ~ 1589년) - 공각황귀비 소생. 요절함.
  7. 수녕공주(榮昌公主) 주헌위(朱軒媁, 1592년 ~ 1634년) - 공각황귀비 소생.
  8. 태순공주(泰順公主) 주헌희(朱軒姬, 1592년 ~ 1593년) - 덕빈 이씨 소생. 요절함.
  9. 향산공주(香山公主) 주헌등(朱軒嬁, 1598년 ~ 1599년) - 덕빈 이씨 소생. 요절함.
  10. 천태공주(天台公主) 주헌미(朱軒媺, 1605년 ~ 1606년) - 청혜순비 소생. 요절함.

만력제가 등장한 작품[편집]

출처[편집]

  1. 《명사(明史)》卷一百一十四 列傳第二 后妃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