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효황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순정황후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Picto infobox prétendant à un trône.png
순정효황후
純貞孝皇后
Empress Sunjeong of the Korean Empire.jpg
지위
황태자비
재위 1907년 ~ 1907년
전임자 황태자비 민씨(순명효황후)
후임자 황조 멸망
(명목상 의민황태자비)
황후
재위 1907년 ~ 1910년
전임자 명성황후 - 왕비
후임자 황조 멸망
(명목상 의민황태자비)
이왕비
재위 1910년 ~ 1926년
후임자 의민황태자비
이왕대비
재위 1926년 ~ 1947년
전임자 효정왕후(명헌태후)
이름
윤증순
별호 황태자비(皇太子妃)
순정황후(純貞皇后)
불교 법명대지월(大地月)
휘호 헌의자인(獻儀慈仁)
시호 순정(純貞)
신상정보
출생일 고종 31년(1894) 음력 8월 20일
출생지 조선의 기 조선 양근군 서종면 문호리(汶湖里) 외가
사망일 1966년 2월 3일 (73세)
사망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서 심장마비로 별세
능묘 유릉
부친 윤택영
모친 경흥부부인 유씨
배우자 순종
종교 불교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년 양력 9월 19일(음력 8월 20일) ~ 1966년 양력 2월 3일)는 대한제국의 황후이자 일제 강점기의 이왕비, 이왕대비였다.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계후(繼后)로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박영효, 이재각 등과 함께 일본 정부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 인사인 윤택영의 딸이다.

1910년 10월 한일 합방 당시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으려고 고집하였으나, 숙부 윤덕영이 빼앗아갔다. 해방 이후에는 창덕궁과 정릉 수인재에서 거주하였다. 시호는 헌의자인순정효황후(獻懿慈仁純貞孝皇后)이며[1], 이는 정식 시호가 아니라 해방 후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올린 사시이다. 순종과 사이에 자녀는 없다. 불교 법명대지월(大地月)이다.

생애[편집]

궁중 생활[편집]

1894년 9월 19일(음력 8월 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출생하였다. 1904년에 당시 황태자비였던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하자 1907년 1월 24일에 12살의 나이로 황태자비로 책봉되었고, 이때 아버지 윤택영과 서시모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풍설이 돌았다. 그 해 부군인 황태자 순종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그녀도 황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國璽)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았는데,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에 의해 피탈되어 멸망을 맞게 되었다.

순종의 지위가 이왕(李王)으로 격하됐으므로 그녀도 이왕비(李王妃)가 되어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에 머물렀으며 1926년 4월, 대한제국 순종 황제가 사망하자 대비(大妃)로 불리며 창덕궁(昌德宮)의 낙선재(樂善齋)로 거처를 옮겼다[2].

광복 이후[편집]

해방 이후에는 1947년 신적강하 조치되어 이왕대비에서 평민으로 전락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하였으며 궁궐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조선인민군을 당시 5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호통을 쳐서 내보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순정효황후는 두려움을 모르는 여걸(女傑)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1년 대한민국의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궁핍한 생활을 전전하던 끝에 1953년 한국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되자 바로 환궁하려 하였으나, 제1공화국의 대통령 이승만이 순정효황후에 대한 민심을 두려워하여 환궁을 방해하였기 때문에, 정릉의 수인제(修仁齊)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59년에는 비구니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얻었고, 이듬해 1960년, 전(前) 구황실사무총국장 오재경(吳在璟)의 노력으로 환궁에 성공하였고,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독서피아노 연주로 소일하였다.

죽는 그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았던 순정효황후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로서, 당당함과 냉철함으로 황실을 이끌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평생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그 실력은 타임지를 읽어낼 정도였다고 전한다. 1966년 2월 3일, 창덕궁 석복헌(錫福軒)에서 심장마비로 73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사후[편집]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유릉(裕陵)에 순종과 합장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본가 해평 윤씨(海平 尹氏)

왕가(王家 : 전주 이씨)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영화[편집]

사진[편집]

각주[편집]

  1. “경향신문”. 《13日에 班次,千餘名動員》. 1966년 2월 10일. 
  2. 1926. 5. 27.자 동아일보 기사 "윤대비전하(尹大妃殿下)는 낙선재(樂善齋)로 이어(移御),(…)"
전임
명성황후
조선 역대 왕후
1907년 ~ 1910년
후임
의민황태자비
전임
-
이왕비
1910년 ~ 1926년
후임
의민황태자비
전임
순헌황귀비
이왕대비
1926년 ~ 1947년 5월 13일
후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