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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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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A]]와 [[CNN]]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생화학무기폐기조약]]에 가입했으나 사실상 필요없는 [[화학무기]]만 조금씩 처분하고 상당량의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집계되었다. 또한 [[미국]]은 [[대한민국]]을 10대 [[생화학무기]]생산국으로 분류했다.
* [[CIA]]와 [[CNN]]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생화학무기폐기조약]]에 가입했으나 사실상 필요없는 [[화학무기]]만 조금씩 처분하고 상당량의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집계되었다. 또한 [[미국]]은 [[대한민국]]을 10대 [[생화학무기]]생산국으로 분류했다.


* 세계 선진군사전문연구소의 자료를 보면“[[대한민국]]은 군사강대국이며 [[한국전쟁]]이후 모든 게 [[전쟁]]위주로 훈련되었고 [[전쟁]]위주로 [[전략]]·[[전술]]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f>[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41489§ion=sectio,막강 육·해·공 '국방과학 특수부대' 추진?]</ref>
* 세계 선진군사전문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은 군사강대국이며 [[한국전쟁]]이후 모든 게 [[전쟁]]위주로 훈련되었고 [[전쟁]]위주로 [[전략]]·[[전술]]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ref>(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41489§ion=sectio, 막강 육·해·공 '국방과학 특수부대' 추진?)</ref>


== 해외파병 ==
== 해외파병 ==

2012년 1월 28일 (토) 20:54 판

대한민국 국군
창립일.1940. .10. 1.(광복군)
1948. 8. 15.(대한민국 국군)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군종상비군(현역), 예비군(현역보충역 출신)과 제2국민역으로 구성
육군, 해군, 공군, 예비군, 이외 행정안전부 예하 대한민국 민방위대 별도 편성
URLhttp://www.mnd.go.kr/
지도부
본부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통수권자이명박
국방장관김관진
인사
충원방식징병제 (일부 모병제)
병력65만여 명 (2010년 11월 기준)[1]
예비군340만 명
군사비
예산29조 5,627억 (2010년)
GDP 대비2.62%
정부재정 대비14.7%
기타대한민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7,904억 (2010년. 전액 원화 부담)

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國軍1948년에 창설된 대한민국군대로,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1월 현재 육군 39개 사단(상비 22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3군사령부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 사단을 4개로 줄일 계획이다.

지휘권

지휘, 통수권

  • 1950년 7월,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미군에 되었으나 1992년에 평시작전통제권 중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는 나머지 평시작전통제권 전부가 국군에 이양되었다.
  • 2012년 4월 12일에는 전시작전통제권도 국군에 이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미국 오바마 대통령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 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군 반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2] 또한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에 맞춰 필요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도록 양국 국방장관에게 지시하기로 하였다.[3]
  • 이것으로 광복 이래 미군이 가졌던 한국전작권은 완전히 국군으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지휘 권한

  • 합동참모의장은 군령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 육군에 육군참모총장, 해군에 해군참모총장, 공군에 공군참모총장을 두며, 각군 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각 군을 지휘·감독하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은 제외된다.
  • 해병대에 해병대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한다.

한·일 연합군

  • 2011년 1월 북한테러에 대응하고 한반도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군일본 자위대의 연합을 강화 하기로 했으며 양국간에 포괄적인 협력을 담은 '뉴 공동선언'을 올해 봄에 발표로 전해 졌다. 한일 병합 100년에 맞추어 이명박 대통령일본 방문시 이때 양국 정상의 서명을 통해 발표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정서, 독도 문제로 인한 한'일 연합군의 체결은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4]

국방 조직

  • 합동참모본부는 국방부장관의 명에 의하여 군령(軍令)면에 있어서 각 군에 대한 지시·조정 및 감독을 하며 각군의 참모총장은 국방장관의 명을 받아 각군을 지휘감독토록 되어 있다. 한편 1992년 한미연합사령부 예하 지상 구성군에 대한 지휘권이 미군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국군에 정식 이양되었다.
  • 국군조직법 제 2조 제 1항은 대한민국 국군의 조직을 "육군·해군.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해병대를 둔다." 라고 정의한다.
  • 육군은 지상작전,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해병대는 상륙작전, 공군은 항공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각군은 이를 위하여 편성·장비되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

역사

국군의 기원

  • 그러나 사실상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당 군의 지휘를 받는 수준이었으며, 1942년부터 귀순공작을 펴서 일본군만주군 출신을 받아들였으며, 미군과의 OSS합동훈련을 기획했고, 귀국 후에는 구 일본군 인맥과 만주군 인맥들이 주축이 되어 국방경비대를 결성, 현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탄생

  • 국군 창건의 새싹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움트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군·만주국군·중국군 등에 소속하였던 군사 경험자들은 조국의 광복과 때를 같이하여 군사단체를 조직했다.
  • 해병대(1945년 8월 23일)·국군준비대·육해공군 동지회·학병동맹·해방병단(海防兵團)(1945년 11월 11일) 등이 결성되었으나,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 법령 28호로 아놀드 군정장관 지휘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자 앞서 발족한 여러 군사단체들이 서서히 하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 이 국방사령부의 설치는 국군창설의 최초의 시도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한국의 국방을 위한 조직·편성·훈련이 착수되었다. 최초로 국군의 기간장교가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12월 5일에 미군정청(美軍政廳)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11명의 요원을 배출하는 때부터였다.
  • 이 때부터 통위부 밑에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으니, 1946년 1월 15일자로 발족했던 남조선 경비대는 국방경비대로, 그리고 1945년 11월 11일 발족했던 해방병단은 해안경비대로 각각 발전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현행 계급제도가 채택되었으며, 1948년 4월 1일에는 국방경비대 안에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8월 29일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편입되어 9월 5일 마침내 육군(초대 참모총장 이응준) 및 해군(초대 참모총장 손원일)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에서 공군과 해군이 나뉘고, 해군에서 해병대가 창설 되면서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 한편 1948년 4월 1일 국방경비대 안에 창설되었던 항공부대는 9월 13일 육군 항공사령부로 승격하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분리되어 공군(초대 참모총장 김정렬)으로 정식 발족함으로써 비로소 3군 체제의 발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장기

  • 국군은 창건 초기부터 많은 시련을 겪었다.
  • 한국 전쟁 초기의 국군은 비록 북한군보다 적은 병력이기는 했으나, 육군 97,000명(북한군 154,000명), 해군 6,956명(북한군 13,700명), 공군 1,897명(북한군 2,000명)으로 자랐고 휴전 후에도 계속 성장하였고, 지금은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 전쟁

한국전쟁 초기 대한민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8보병사단, 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뤄야 했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 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문산을 방어하던 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도경비사령부(현재 육군 3군사령부 예하수도사단)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됨으로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맡게 된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서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3사단은 7월 5일부로 해체되었으나, 예하 22, 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된다. 상기 4개사단 (1, 3, 6, 8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2, 5, 7사단)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된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제1, 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제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현재 국군의 1개 사단을 지원하는 포병전력은 155mm 자주포 내지는 견인포로 1개 연대 정도다. 물론 편제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며 105mm포는 향토사단 등에서만 사용할뿐 현역 사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민국 모두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대한민국 3군단이 맥없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는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 국군 발전사 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청룡부대를, 10월 22일엔 맹호부대를, 1966년 4월 그리고 8월 30일에 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대한민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월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국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율곡 계획

1970년대에는 M16 소총을 국내 라이언스 생산과 수류탄과 방독면의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또 1984년에는 현재 기계화 전력의 대부분을 이루고있는 K-200장갑차를 차체생산하고 1987년에는 최초 국산3세대 전차인 K1 전차를 도입하였다. 또한 이시기에 F-5 전투기를 국산화하였으며 최신예 F-16 전투기를 도입하였다. 또한 해군 포항급 초계함도입이 이루어졌다.

그 외 해외 파병

국방비

  • 국방비는 2010년 기준 29조 5,627억 원이다. GDP 대비 2.62%, 정부재정대비 14.7%이다.[6]

대한민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 한미 양국은 2008년 12월 2009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적용할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였고, 이 협정은 2009년 3월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발효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이 협정은 연도별 방위비 분담금을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인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7,600억 원(2007년 물가 상승률 2.5% 적용), 2010년 7,904억 원(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이나 상한선인 4% 적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2000년도 기준 18억 9,500만 달러로, 42%이다. 독일의 경우 57억 6,700만 달러 (21%), 일본의 경우 63억 3,200만 달러 (79%)이다.[9]
  • 매년 한국의 분담 비율이 증가되고 있다. 1987년 제 1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이후 1990년 3,000만 달러, 1991년 4,000만 달러, 1992년 5,000만 달러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군사비를 GNP의 6%로 책정하였다.
  • 방위비 분담금 지원 항목 (2010년 기준)
  1. 인건비 :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고용원에 대한 인건비
  2. 군사건설 : 주한미군용 시설 건설
  3. 군수지원 : 주한미군 탄약저장, 항공기 정비 등 용역 및 물자지원

미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기타

해외파병

  • 유엔 평화유지활동으로 파병된 전세계 병력은 2010년 11월 기준 군인 83,118명, 경찰 14,037명, 그 외 전문가 2,353명. 총 99,508명이다.[13][14]
    • 이 중 대한민국 국군은 2010년 11월 기준 17개 지역에 1,195명을 파병하고 있다. 이중 유엔 평화유지활동(UN PKO)로는 640명, 다국적군 평화활동으로는 555명을 파병하고 있다.
  • 국제안보지원군(ISAF) 참여국 현황은 2010년 11월 기준 총 130,930명이다.
    • 이 중 대한민국 국군은 246명을 파병하고 있다.

국군의 명령 체계

  • 군의 명령 체계는 크게 군정과 군령으로 나뉜다.
  • 군정은 행정적인 명령이고, 군령은 작전 명령이다.
    • 군정은 인사 관리(보직, 진급, 근무), 보급 관리 등이 해당된다.
    • 반면 군령은 훈련, 경계, 국지도발, 대간첩 작전 등이다.

군정 명령 체계

군령 명령 체계

구성

국방부

육군

현재 2개 야전군과 1개 야전군 규모의 작전사령부 체제로 유지되고 있다. 주한 미군과의 군사 연계를 위한 한미연합사령부가 있으며, 전시에 대한민국 제1,3야전군과 미국 제 8 군작전 통제를 받는다.

참여정부에 의해 국방부에서 병력 위주의 구조에서 부대 수를 줄이고 기동부대의 전력을 강화하려는 국방개혁 2020 계획에 따라 지상작전사령부와 제2작전사령부, 특전사령부, 항공사령부, 유도탄사령부와 5개 군단, 2개 기동군단 체제로 전환된다. 1군과 3군이 통합되어 새로이 신편된 지상작전사령부에 5개의 군단과 2개 기동군단이 편성되며, 수도방위사령부는 기동군단에 편성될 것이다[17].

현재 육군은 세계 3위로 평가[출처 필요]되며 K1 전차, K1A1, T-80U등 최신예 전차 1,500대 이상 보유하고있다. 그리고 자주포 기술은 세계최강이며 K-9등 최신예 자주포를 500문 이상 보유하고있다. 그리고 헬리콥터UH-60 블랙 호크, AH-1S 공격헬기 등 여러 기종을 보유하고 있고 헬리콥터 전력도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하다.

해군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
항공모함 등 30여 척 함정의 계류가 가능한 부산해군작전사령부

해병대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한다.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놀라온 전과를 올리면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12월 현재 2개 사단과 1개 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외 대한민국 육군은 42개 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에 의해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제주부대, 해병대 사령부 직할 항공단를 신설하고, 사령부 예하로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하기로 했다.[19]

공군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체 중 하나인 F-15K
  • 대한민국 공군은 F-15K 47대, F-16 180여대, F-4 165여대, F-5 110여대를 보유하고 있고 FA-50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자체 개발했다.
  • 또한 대한민국 차세대 전투기 사업(KFX)을 진행할 예정이며, 2010년 7월 15일 약 1년 4개월의 조율을 거쳐 대한민국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차세대 전투기 개발비의 20%를 공동부담하고 차세대전투기 양산시 50대를 구입한다는 전투기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 공군은 노후한 F-4D 전폭기를 교체하기 위해 F-X사업 등을 통해 F-15K전투기를 도입, 39기가 실전 배치되었으며 이로써 작전반경이 독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8년에는 21기가 추가 발주되어 총 60기의 F-15K가 운영되고 있다.
  • 현재 공군은 136대의 KF-16 Block52, 47대의 F-15K, 30여대의 F-16C/D Block32, 약 80여대의 F-4E, 약 200여대의 F-5E/F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F-4E, F-5E/F는 2020년까지 운용하고 퇴역할 예정이다.
  • 또한, AEW&C 737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4대를 2012년까지 순차적 도입 추진을 완료하여 작전능력을 증대시키려 하고있다.[20]

대한민국 예비군

계급 체계

군인사법 제 3조는 "장군은 장성으로 장교는 영관 및 위관으로 구분하고 장성은 원수, 대장, 중장, 소장준장으로 한다. 영관은 대령, 중령소령으로, 위관은 대위, 중위소위로 한다. 준사관은 준위로 한다. 부사관원사, 상사, 중사하사로 한다. 병은 병장, 상등병, 일등병이등병으로 한다." 라고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을 정의 한다. 한편 의 경우 계급별 복무기간은 이등병(기초군사교육 기간 포함)과 일등병은 6개월, 상등병은 7개월, 병장은 단축되는 복무기간의 그 나머지이다. 2010년 8월 23일 입대자 기준 육군 병장 기간은 약 2개월 8일이다. 그 후 병장전문하사가 맡게 된다.

징집병의 경우,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계급보다 통상 2계급이 낮다. 예컨대 국군의 하사미군상등병과 연합체계로 볼때,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부사관의 경우이며 장교의 경우는 어떠한 국가이든 계급이 동일하다. 즉 국군의 대위는 미군대위와 동일하다.

계급장
계급 명칭 원수 대장 중장 소장 준장 대령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NATO 부호 OF-10 OF-9 OF-8 OF-7 OF-6 OF-5 OF-4 OF-3 OF-2 OF-1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하며, 국방부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행한다. (군인사법 제 27조),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군에는 원수로 임명된 군인은 없다.

계급장
계급 명칭 준위
NATO 부호 WO-3
계급장 없음
계급 명칭 원사 상사 중사 하사
NATO 부호 OR-9 OR-8 OR-7 OR-6,OR-5,OR-4
계급장
계급 명칭 병장 상등병 일등병 이등병(기초군사교육 포함. 입대당일부터 이등병)
NATO 부호 OR-5 OR-4 OR-3 OR-1, OR-2

그 외 인사 사항

군사특기

[21]

일반직 공무원, 군무원과의 비교

연령 정년

  • 장성급 장군
    • 원수 - 종신
    • 대장 - 만63세
    • 중장 - 만61세
    • 소장 - 만60세
    • 준장 - 만58세
  • 영관급 장교
    • 대령 - 만56세
    • 중령 - 만53세
    • 소령 - 만45세
  • 위관급 장교
    • 대위이하 - 만43세
  • 준사관
    • 준위 - 만55세
  • 하사관
    • 원사 - 만55세
    • 상사 - 만53세
    • 중사 - 만45세
    • 하사 - 만40세

근속 정년

  • 영관급 장교
    • 대령 : 35년 복무
    • 중령 : 32년 복무
    • 소령 : 24년 복무
  • 위관급 장교
    • 대위, 중위, 소위 : 15년 복무
  • 준사관
    • 준위 : 32년 복무

계급 정년

  • 장성급 장군
    • 중장 - 4년 복무
    • 소장 - 6년 복무
    • 준장 - 6년 복무

초임계급에 따른 임용연령 제한

  • 소위와 준위는 일반직 공무원 7급, 부사관은 9급 임용연령 제한에 따름.
    • 소령 : 최저연령 : -, 최고연령 : 36세
    • 대위 : 최저연령 : -, 최고연령 : 32세
    • 중위 : 최저연령 : -, 최고연령 : 29세
    • 소위 : 최저연령 : 20세, 최고연령 : 27세(예비역일 경우 30세)
    • 준위 : 최저연령 : 20세, 최고연령 : 50세
    • 하사관 : 최저연령 : 18세, 최고연령 : 27세

병사 급여

병사 기준 2011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38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3700원, 일등병은 8만 4700원, 이등병은 7만 8300원이다. [22][23][24][25]

병사의 월급은 2010년(직전 인상 시점은 2008년이다.)보다 6.5% 임금이 올랐다. [22][23] 그러나 이를 한달로 나눌 경우 병장은 하루 급여가 3460원, 상등병은 하루 3123원, 일등병은 하루 2823원, 이등병은 하루 2610원이다. 이는 2011년의 노동자 하루 최저임금 시급 4320원[26]에도 미치지 못하는 하루 일급을 받는다.

인상되기 전에도 병사들의 월급은 일반 노동자 하루 시급 보다 턱없이 낮은 일당을 받아왔다. 2008년의 월급은 이등병 월 7만 3500원, 일병 7만 9500원, 상병 8만 8000원, 병장 9만 7500원[27][28][29][30]이다. 그러나 인상된 병장의 하루 일당이 2008년의 시간당 최저 임금 3,770원[31][32][33]보다도 적은 액수이다. 병사들의 월급은 2000년 이후 매년 꾸준히 인상되어 왔응나, 병사들의 월급은 그 해의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액수의 돈을 월급으로 받고 있다. 하루의 1시간당 최저임금 보다 못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을 두고,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외국 장병과의 비교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07년 대한민국 국군 2,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1%가 월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병장 월급은 2008년 7만 2,000원에서 9만 7,500원으로 34.7% 인상된 뒤 계속 동결되다 2011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3,8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3,700원, 일등병은 8만 4,700원, 이등병은 7만 8,300원이 되었다.[22] 하지만 장병들이 자주 구입하는 냉동식품 음료 과자류 가격은 지난해 초 40% 가까이 올랐고, 통신요금 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민 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군 의 월급 수준은 매우 낮다.[34]

2003년 현역 상등병 기준으로 이스라엘은 210달러, 대만은 207달러였다. 독일징병제를 시행하던 2006년 상등병 기준 2,172달러를 월급으로 지급했다.[34] 반면 대한민국2007년 상등병 기준 84달러였다. 이스라엘대만2003년 기준이고 대한민국2007년 기준[34]인데도 대한민국들은 독일이나 이스라엘보다 적은 액수의 월급을 받고 있다.

논란과 비판

1992년 군사 독재 정권의 붕괴 이후 현재 대한민국 국군 내, 국방의 의무라는 명분으로 개인에 대한 부당한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애 관련된 논란은 꾸준히 계속 진행되어 왔다. 그밖에 군사 정권 시절 군 비리가 문민정부의 감사원을 통해 드러났다.(예: 율곡비리)

군복무 기간 동안의 학업 중단 논란

현행 군복무는 전역 후 어떠한 보상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서 정하고 있는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명시[35]되어 있다. 그러나 군복무 기간동안 학생은 학업을 중단해야 하고, 선수는 전성기에 운동을 쉬며, 특히 국가고시 준비생들은 그 단절된 기간 때문에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36]

또, 남성의 경우 군대기간을 빼더라도 취업이나 학업 등의 경우에 군대를 가기 전 2년 전부터 자신의 계획을 수정해야 하고, 제대한 다음에 사회에 적응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을 더하면 국방의무로 부담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들은 언제라도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피해 또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35] 이에 2008년에 이어 2010년, 그리고 2011년 군 가산점 부활과 군경력 사회 인정 여론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또한 2년간 사회생활에 지체되는 것에 대한 보상도 전무하다. 현재는 공무원 외에는 군대 경력을 경력이나 호봉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병사 월급 현실화 주장

2012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8,000원, 상등병 97,500원, 일등병 88,200원, 이등병 81,500원이다.[22] 우리 경제력이나 국민의 부담능력으로 보건대, 이러한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35] 부담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편 특수한 상황 시에 지급되는 숙박비는 30,000원/1박, 교통비는 100.88원/Km이다.

들의 월급은 2000년 이후 매년 꾸준히 인상되어 왔으나, 들의 월급은 그 해의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액수의 돈을 월급으로 받고 있다. 하루의 1시간당 최저임금 보다 못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을 두고, 급여인상을 요구하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병사들의 월급을 보면, 이병 7만8300원, 일병 8만4700원, 상병 9만3700원, 병장 10만3800원이다. 우리 경제력이나 국민의 부담능력으로 보건대, 이러한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35] 부담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2007년 대한민국 국군 2,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1%가 월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병장 월급은 2008년 7만 2,000원에서 9만 7,500원으로 34.7% 인상된 뒤 계속 동결되다 2011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3,8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3,700원, 일등병은 8만 4,700원, 이등병은 7만 8,300원이 되었다.[22] 하지만 장병들이 자주 구입하는 냉동식품 음료 과자류 가격은 지난해 초 40% 가까이 올랐고, 통신요금 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민 개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보다 한국군 의 월급 수준은 매우 낮다.[34]

2003년 현역 상등병 기준으로 이스라엘은 210달러, 대만은 207달러였다. 독일징병제를 시행하던 2006년 상등병 기준 2,172달러를 월급으로 지급했다.[34] 반면 대한민국2007년 상등병 기준 84달러였다. 이스라엘대만2003년 기준이고 대한민국2007년 기준[34]인데도 대한민국들은 독일이나 이스라엘보다 적은 액수의 월급을 받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들의 월급을 현실화해 달라는 요청이 나왔으나 국가기관의 무관심 및 들은 당연히 희생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일부의 냉소로 사실상 좌절되어 왔다. 물론 들의 월급에서는 소득세를 제하지 않는다.[37] 그러나 소득세를 공제하지 않아도 들의 월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들의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분명하다.[37] 2008년의 국회사무처의 설문 조사 결과 현역병이 매달 쓰는 용돈은 평균 10만원 이하라는 답변 비율이 64·3%로 가장 많았다. 월 30만원 이상을 쓴다는 현역병은 100명 중 2명(1.8%)이었다. 하지만 10명 중 4명은 급여(2012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8,3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7,800원, 일등병은 8만 8,300원, 이등병은 8만 1,700원이다.[22])만으로 용돈을 충당할 수 없어 부모 등으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 송금액은 월 5만8000원으로 조사됐다.[38]

한국 들의 월급은 복무기간 내내 쓰지 않아도, 1분기치 대학 등록금보다도 낮다. 월급을 40만 원으로 인상하면 들은 군 복무 기간에 한 해 대학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 군대가 ‘돈 벌러 가는 곳’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군 입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일 수는 있다. [34] 월급은 하루 일당이, 노동자 한시간 시급보다도 못한 월급을 받으며 이에 대한 현실화 요구가 꾸준히 진행중에 있다.

구타, 가혹행위 논란

일부 군에서 발생하는 구타, 가혹행위 등의 문제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39][40][41]

화기, 탄약 사용 논란

화기, 탄약 유출 사고

부사관 혹은 장교 출신 전역자들이 간부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수류탄과 총알의 탄피, 권총소총 등을 빼돌린 것이 문제가 되어 왔다. [42] [43] 이들 빼돌려진 탄과 총 등은 사냥용 또는 살상용으로 반출되어 위험의 소지가 되기도 했다.

1950년한국 전쟁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도 화기나 탄약 등의 유출 사고는 계속 되고 있다.

연천 GP 총기 사건 사고

2005년 11월 경기도 연천군 중면의 육군 예하 모 사단의 경비부대 예하의 GP소대에서 평소 선임병사들에게 미움, 폭언, 따돌림 등을 당하던 경기도 출신 김모 일병(당시 21세) 병기고에서 시건장치를 여닫는 과정에서 총기를 유출, 내무반에서 취침 중인 동료, 선임 병사들과 숙직실에 있던 소대장, 취사장에 있던 취사병 등을 저격한 사건이다.

저격으로 내무반에 취침중인 병사들 다수가 부상하고, 당시 해당 사고를 일으킨 김모 일병의 선임인 상병 8명과, 숙직실에 근무중이던 소대장 모 중위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러나 사태수습차 부랴부랴 사망자들은 1계급 특진, 부상자들은 의가사 전역 및 후송시키고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당시 김모 일병은 2005년 1월 자대 전입 후 부적응하였으며, 선임들의 구타와 폭언, 욕설, 비하 등이 사고의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종교 상 이유 외 신념에 의한 병역 거부(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놓고 사상의 자유, 신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과 인권 침해에 관련된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주로 여호와의 증인 출신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군대는 제도에 의한 것이라 어쩔수 없이 다녀왔으나, 예비군 훈련 만큼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예비군 집총 거부자를 구타하여 사망케 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의 수용을 놓고 한국 사회 내 논란이 진행중에 있다.

처우 개선 논란

헌법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해도 '의무' 라는 이름으로 아무 일이나 병역의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국방의무에 필요한 행위는 이행하지만, 그에 적합한 범위를 넘어선 행위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군인을 민간의 도로공사, 모내기, 화재진압, 거리청소 등에 강제로 동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국가가 해결 가능한 손해를 들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국가는 그 능력상 가능하다면, 병역의무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요구된다.[44]

병역에 적합한 보상체계를 마련해야[44] 된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국방의 의무로 부담하는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44] 학업이나 취업에서.[35] 제약을 받는다. 우선 복무기간 동안 취직에 제약이 있고,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는 점이다. 취업을 준비할 시간을 박탈당하는 것과, 취직 후 여성이나 미필자, 면제자들은 경력을 쌓는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1998년에는 군 가산점과 함께 일반 기업체에서 군필자의 경력과 호봉수를 인정해 주는 제도가 있었으나 이 역시 남녀차별이라는 여성계의 주장에 의해, 호봉수 인정, 경력 인정 역시 군 가산점과 함께 폐지됐다.

한창 젊은 남성들이 자신의 삶의 구상에서 추진하던 계획을 일단 중단시켜야 하고, 군대를 제대한 이후의 상황변화에 불안해한다.[35]뿐만 아니라 군대 가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여 너무나 심대한 차별적 불이익을 받는다.[35] 이 때문에 일부 미필자나 면제자에 대한 심한 인터넷 마녀사냥이 유행하기도 했다.

위험요소 노출과 중노동

헌법상 국민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해도 ‘의무’라는 이름으로 아무것이나 병역의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35] 국방의무에 필요한 행위는 이행하지만, 그에 적합한 범위를 넘어선 행위까지 감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35]

국가가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위험임에도 그러한 위험에 병사들이 노출되어야 할 이유가 없으며, 병역에 합당하지 않은 일을 할 의무도 없다.[35] 그러나 대민지원이라는 이유로 보상없이 노동인력을 동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인을 민간의 도로공사, 모내기, 화재진압, 거리청소 등에 강제로 동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35] 또 국가가 해결 가능한 손해를 병사들에게 부담시키는 것도 합당하지 않다. 국가는 그 능력상 가능하다면, 병역의무에 따른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 요구된다.[35] 물론 의무라는 것이 보상 없이 부담을 가하는 것이지만, 이때 말하는 의무는 원래의 목적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그러할 뿐이다.[35]

열악한 복무 여건

군대내의 시설의 열악함에 대한 지적도 나왔었다. '수면부족이 아니다. 지저분한 시설이나 여전한 악습도 아니다. 군대생활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시도 때도 없는 작업이다.[38]' 군 장병들은 고된 훈련보다 공사나 작업 동원이 군대생활을 가장 어렵게 한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8년 한 한국 여론의 조사 결과 직업군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고참으로 올라갈수록 없어지는 것으로[38]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국회사무처 소관의 안보경영연구원이 국방부 의뢰를 받아 작성한 ‘군 병영 실상 분석’이라는 보고서[38]에도 나타났다.

이어 예비군은 수면부족(13.6%), 위생시설 불비(10.4%), 병영부조리와 악습(10.1%)을, 현역병은 수면부족(16.7%), 휴가와 휴무 미보장(15.6%), 강도 높은 훈련(9.0%) 등 순으로 꼽았다.[38]

병영 내 일상생활에서 위험요소가 적지 않고, 병사들이 기거할 막사조차 낡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 교체작업도 한없이 더디니, 이런 상황에서 국방의무가 즐거울 리는 만무하다.[35] 국가가 막사를 현대화하고, 질 좋은 의복과 월급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은 국방의무를 핑계로 삼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국민의 부담능력에 비추어 보건대, [[병사 (군인 계급)|병]사]들이 제대할 즈음이면, 그간의 필요경비를 지출하고 저축한 돈이 적어도 한 학기 대학등록금이라도 되든지 해외답사여행 경비 정도는 되어야 한다.[35]

뿐만 아니라 병사들은 언제라도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피해 또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국방의무로 부담하는 손해를 줄일 수 있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사회적인 합의로 도출하고, 그에 적합한 보상체계부터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헌법 제33조에서 정하고 있는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것이 제대로 실천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법치주의다.[44]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국방의무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진정으로 국방의무가 고귀한 것이 되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가 되었다.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문제로 또 허둥댈 것이 아니라 이런 시스템의 문제부터 바로 보기 바란다.[44]는 시각도 있다.

직업군인이 되길 희망하는지를 묻는 항목에 입대자원 4명 중 1명 꼴인 27.6%가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나 긍정적인 답변 비율은 입대 후 이등병 12.5%, 일병 9.4%, 상병 7.7%, 병장 5.6%로 계급이 높을수록 떨어졌다.[38]이는 군 입대 후 직업군인 처우와 복지 수준을 알고 실망감을 느끼는 탓으로 분석된다. 실제 병사나 단기복무 간부들은 복무기간의 절반 이상이 경과하면 전역 날짜를 세아리기도 한다.

숙식제공(?)이라는 이점도 있지만 청춘을 바쳐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들의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분명하다.[37] 2008년의 국회사무처의 설문 조사 결과 현역병이 매달 쓰는 용돈은 평균 10만원 이하라는 답변 비율이 64·3%로 가장 많았다. 월 30만원 이상을 쓴다는 현역병은 100명 중 2명(1.8%)이었다. 하지만 10명 중 4명은 급여(2011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3,8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37,00원, 일등병은 8만 4,700원, 이등병은 7만 8,300원이다.[22])만으로 용돈을 충당할 수 없어 부모 등으로부터 송금을 받고 있으며, 평균 송금액은 월 5만8000원으로 조사됐다.[38]

보급품만으로는 부족하고 분실, 도난이 계속되어 PX에서 의류 등을 구입하고 있으며, 2009년 11월부터는 군 병사들에게 염가에 지급되던 담배 연초 역시 중단되어 시중가와 유사한 가격으로 담배를 구입하기도 한다. 또한 고된 노역 등으로 인한 배고픔 등도 PX를 자주 가는 원인이 되었다.

병사 월급 인상 여론

한국 병사들의 월급은 복무기간 내내 쓰지 않아도, 1분기치 대학 등록금보다도 낮다. 병사 월급을 40만 원으로 인상하면 병사들은 군 복무 기간에 한 해 대학 등록금을 모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로 군대가 ‘돈 벌러 가는 곳’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군 입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일 수는 있다. [34] 병사 월급은 하루 일당이, 노동자 한시간 시급보다도 못한 월급을 받으며 이에 대한 현실화 요구가 꾸준히 진행중에 있다.

2011년 기준 병장 월급은 10만 3,800원, 상등병 월급은 9만 37,00원, 일등병은 8만 4,700원, 이등병은 7만 8,300원이다.[22] 2010년 기준 병사들의 월급을 보면, 일병 7만3500원, 이병 7만9500원, 상병 8만8000원, 병장 9만8000원이다. 우리 경제력이나 국민의 부담능력으로 보건대, 이러한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넌센스이다. 그리고 아직도 병영 내 일상 생활에서 위험요소가 적지 않고, 병사들이 기거할 막사조차 낡은 것이 대부분이고 그 교체작업도 한없이 더디니, 이런 상황에서 국방의무가 즐거울리는 만무하다.[44] 국가가 막사를 현대화하고, 질 좋은 의복과 월급도 충분히 지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은 국방의무를 핑계로 삼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의 경제력과 국민의 부담능력에 비추어 보건대, 병사들이 제대할 즈음이면, 그간의 필요경비를 지출하고 저축한 돈이 적어도 한 학기 대학 등록금이라도 되든지 해외답사 여행 경비 정도는 되어야 한다.[44]는 시각도 있다.

2008년 한나라당 남경필 국회의원은 “병사들의 월급을 40만 원 수준으로 올리자”고 제안하였다.[34] 남경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월급 현실화로 병사들 스스로 국방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이 커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직업군인의 확대를 통한 튼튼한 안보구조를 확립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군 전력의 효율화는 단계적 감군을 가능케 하며 궁극적으로 군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4]

비리, 사건 및 사고

1992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군 비리가 감사원과 언론을 통해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다.

  • 2010년 7월, 2급 기밀이 저장된 USB드라이브가 실종되었다[45].
  • 장교부사관을 포함한 장병들의 수류탄, 실탄, 총기 등의 반출이 간혹 드러나면서 총기관리, 탄피관리가 문제가 되고 있다.
    • 1988년 이래 현역이나 예비군의 사격 훈련시에는 실탄을 반드시 회수하여 탄수를 확인하고 있으나, 전직 군 간부에 의한 수류탄, 실탄, 총기 등의 반출 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 해군 링스 헬리콥터의 허위 정비 사건에 관해 군수업체의 군품 로비에 연관되어 있다.[46]
  • 제주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진행중이며, 2010년 12월 29일 해군 기지의 건설을 반대하는 시민 단체외 도의회 직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1명이 실신하였다.[47]
  • 2011년 군납업체에서 4GB용량의 USB 메모리 스틱을 95만원의 가격으로 국방부에 납품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3군 표준 영내장병 일과시간

  • 해군 훈련병들의 일과는 예외.

하절기 (3월 ~ 10월)

06:0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00)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06:0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00)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11:50 오전일과 끝 (UTC 02:50)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11:50 오전일과 끝 (UTC 02:50)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동절기 (11월 ~ 2월)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08:30 오전일과 시작 (UTC 23:30)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08:30 오전일과 시작 (UTC 23:30)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13:10 오후일과 시작 (UTC 03:10)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07:00 기상 및 일조점호 (UTC 22:00)
09:00 오전일과 시작 (UTC 00:00)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13:10 오후일과 시작 (UTC 03:10)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21:30 저녁점호 (UTC 12:30)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지휘제대별 지휘통제의 폭과 참모부서별 관리통제의 폭

  • 지휘통제의 폭
    • 군 급 : 3~5개 군단급 지휘
    • 군단 급 : 3~5개 사단급 지휘
    • 사단 급 : 3~5개 여단/연대급 지휘
    • 여단 급: 3~5개 연대급 지휘
    • 연대 급: 3~5개 대대급 지휘
  • 관리통제의 폭
    • 지휘관 : 3~8명의 참모
    • 참모부/참모실(감) : 3~6명의 처장/과장
    • 참모처 : 2~6명의 과장
    • 과 : 5~25명의 과원

지휘관(자)의 계급에 따른 단위제대 규모

부대명칭의 부여기준과 제정권자

  • 고유명칭 : 제○○(부대번호) 보병(부대성격) 사단(부대규모)
    • 편제표상의 명칭으로서 부대번호와 부대성격 및 부대의 규모를 포함하여 제정
    • 편제표상의 모든 부대를 대상으로 하며 부대의 성격과 규모에 부합되는 표현과 연번을 부여 하되, 각 군별 표준 부대명칭 체계를 적용하여 제정
    • 국방부장관 : 각군 대대급 이상 부대와 국방부 직할부대/기관
    • 각군참모총장 : 각군 중대급 이하 부대
  • 통상명칭 : 제 0000부대
    • 군 외부로부터 호칭시 부대의 규모와 기능등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상의 목적으로 제정
    • 보안상 필요에 의거 4자리의 아라비아 숫자로 제정 사용하되, 해군 함정의 경우는 함정명칭을 통상명칭으로 본다. 다만, 장기간 사용으로 보안유지의 가치를 상실한 때에는 이를 변경할 수 있으며 학교기관, 행정지원부대, 복지근무지원 부대(기관) 및 의무부대 등은 쓰지 않을 수 있다.
    • 각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직할부대/기관장이 정하되, 타 부대명칭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의 조정ㆍ승인 필요
  • 상징명칭 (특별명칭) : 자이툰, 다이만, 동의, 백골 등
    • 부대의 특성, 단결, 사기진작 등을 목적으로 제정
    • 해당 부대의 특성ㆍ단결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명사형"으로 부여
    • 각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직할부대장이 정하되, 임무 및 기능이 특수하거나 중요할 경우, 2개 군 이상의 합동부대, 해외파병 부대 등은 국방부장관의 조정ㆍ승인 필요

정년 체계

2010년 이후 병무 사항 변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헌법 제5조 2항). 영토·국민·주권을 구성요소로 하는 국가는 대내외적으로 그 영역과 권리의 유지·보장을 위하여 국가무장력, 즉 군대를 보유하는데 통상 상설의 일정한 정규군 사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 국제법상 국가는 자위권을 보유하며 침략적 목적이 아닌 범위 내에서는 그 권리의 유지와 보장을 위한 개별국가의 독자성이 인정된다. 한국 헌법은 그 기본원리로서 국제평화주의를 채택하여 모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며 국제법 질서의 존중과 이행을 선언하고 있다. '∼그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는 규정은 제9차 개정헌법에서 신설된 것으로 헌정사의 어두운 경험을 재연치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군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가 하는 이견도 제기되고 있다.

같이 보기

주석

  1. http://www.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2010년판 국방백서
  2.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3. Kbs News
  4. 정성일. "한·일 신공동선언 준비…군사협력 추진". 매일경제. 
  5. “陸軍八中領昇進”. 동아일보. 
  6.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부록'
  7. http://kostat.go.kr/wnsearch/search.jsp통계청 통합검색 통계DB '방위비분담금현황 : 방위비 분담금 지원현황'
  8.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2010year/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전체'-제3절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 보장 71쪽'
  9.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4/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10. https://www.cato.org/pubs/pas/pa-308.pdf
  11.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2/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국방비 홍보책자', SIPRI Yearbook 2010(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Military Balance 2010(런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2009 일본 방위백서
  12. (http://www.breaknews.com/new/sub_read.html?uid=41489§ion=sectio, 막강 육·해·공 '국방과학 특수부대' 추진?)
  13. 2010년 국방백서 부록 296페이지
  14. www.un.org/en/peacekeeping/contributors
  15. 엄기영. “차기전차 XK2 ‘흑표’의 세계 최고 전력 분석”. 쿠키뉴스. 2010년 2월 21일에 확인함. 
  16. 두산인프라, 헬기잡는 장갑차 'K21'...내년부터 공급, 고뉴스 이대준, 2008-10-30
  17.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국방일보. 2008년 2월 28일에 확인함. 
  18. 한국형 이지스함 3대 추가 확보, 세계일보 박병진, 2008-02-12
  19.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국방일보. 2008년 2월 28일에 확인함. 
  20. <한반도 전역 공중감시 E-X..26년 만에 종결>, 연합뉴스 김귀근 이귀원, 2006-11-08
  21. http://www.yebigun1.mil.kr/homepage/ext/html/2012.hwp 2012년도 예비군 실무편람 549~624쪽 '군사특기 및 유사특기 범위'
  22.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01/h2011010420582321950.htm
  23.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105001010&spage=1
  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042122115&code=940100
  25.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1010407492629457
  2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703095627&section=02
  27.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80105008003
  28.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1041107271&code=910100
  29. 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261168.html
  30. http://www.hani.co.kr/arti/politics/administration/261168.html
  31.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7081055267
  3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5211757572&code=940100
  33. http://www.kmobile.co.kr/k_mnews/news/news_view.asp?tableid=IT&idx=170264
  34. http://news.donga.com/3/all/20100804/30299749/1
  35.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821577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dae1"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36. 코나스
  37.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0/03/2010031098235.html
  38. http://www.segye.com/Articles/NEWS/SOCIETY/Article.asp?aid=20100120004456&subctg1=&subctg2=
  39.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10324005178&subctg1=&subctg2=
  4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16175
  41.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931362
  42.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09772 군용 총포류·사제총기…불법 무기 기승
  4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4&aid=0000041824
  44.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525#
  45. 안홍석 기자. “군 2급기밀 담긴 USB 분실…5개월째 '쉬쉬'. 연합뉴스. 2011년 1월 12일에 확인함. 
  46. 박동민 기자. “링스헬기 허위정비 `해군 간부` 로비 포착”. 매일경제. 2010년 12월 12일에 확인함. 
  47. “제주해군기지 반대 '또 충돌'…몸싸움 1명 실신”. 뉴시스. 

바깥 고리

공식 웹사이트

관련 웹사이트

참조 자료, 법령

  • 법에는 각기 그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있다. 앞으로 시행될 예정인 법안도 통과 절차별로 확인할 수 있다. 국방과 관련된 법에는 병역법, 군인사법, 향토예비군 설치법 등이 있다.
  1.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부칙과 별도 서식까지 확인 가능.
  2. 병무청 '행정정보 공개'-신체검사 등위 판정 기준이나 병역처분 기준을 볼 수 있다.
  3. 군사력 비교평가 방법론 소개 국방정책연구 1999년 여름호에 게재

기타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