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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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KIA 타이거즈 No.7 (영구 결번)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70년 8월 15일(1970-08-15)(53세)
출신지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신장 178cm
체중 73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내야수, 외야수
프로 입단 연도 1993년
드래프트 순위 1993년 1차 지명 (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KBO / 1993년 4월 10일
광주LG
NPB / 1998년
마지막 경기 KBO / 2012년 3월 30일
대구삼성
NPB / 2001년
획득 타이틀
  • 1994년 정규 시즌 MVP
  • 2002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 한국시리즈 MVP (1993, 1997)
  • 미스터 올스타 (2003)
  •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1993, 1994, 1996, 1997)
  •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2003, 2004)
연봉 5,000만원. (2013년)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해설자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WBC 2006
아시안게임 1990 베이징, 2002 부산
아시아선수권 2003 삿포로
메달 기록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남자 야구
아시안 게임
2002 부산 2002 부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 샌디에이고 2006 WBC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2003 삿포로 야구

이종범 (李鍾範, 1970년 8월 15일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내야수외야수, 가수이다. 별명은 종범신, 바람의 아들 등이 있다. 우투우타이지만, 일상 생활 때에는 왼손을 사용하는 왼손잡이다. 원래 왼손잡이지만 어릴때 오른손 글러브 밖에 없어 오른손으로 연습해서 야구를 오른손으로 하게 된다.[1] 2012년 시즌을 준비하던 중 갓 취임한 선동열 감독과 이순철 수석코치 그리고 구단에게 은퇴권고를 받고 2012년 3월 31일 은퇴선언을 하였다.[2] 2012년 5월 26일 KIA의 홈 구장인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 모든 선수들이 7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임하였다. 경기 종료 후 은퇴식을 치렀고, 그의 등번호 7번은 영구 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한화 이글스 주루코치를 담당하였고,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와 계약을 맺고 2015 시즌 해설자로 변신했다.

한국 프로 야구 시절

아마추어 시절

광주일고 졸업 후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등 야구 명문 대학으로부터 거액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으나 장학금을 받고 광주일고 동료 3명을 끼워서 받아 주는 조건으로 건국대학교로 진학한다. 국가대표 유격수 자리를 꿰찼고, 한양대학교 특급 유격수 유지현은 국가대표팀에서 2루수로 자리를 바꿨으며, 이 둘은 역대 최고의 국가대표팀 키스톤 콤비로 불린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1993년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차 지명을 받아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해태 시절인 1994년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 1993년1997년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였다.

입단 첫 해 뛰어난 실력으로 삼성 라이온즈양준혁과 신인왕을 다투었으나 양준혁에게 밀려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그 해 한국시리즈에서 독보적인 활약으로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4년 시즌은 그의 선수 시절 가장 절정에 달한 시즌으로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6안타), 단일 시즌 최다 도루(84도루)에 19홈런을 기록하는 활약을 하였다. 후일 TV 프로그램에서 4할을 못한 것은 배탈로 13타수 1안타에 그친 시즌 막판 세 게임과 4할보다는 200안타를 목표로 했던 것이 큰 원인이었다고 말하였다.[3] 1995년 시즌에 동계 훈련을 불참하고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병행, 광주 홈 경기에서만 뛰게 된다.(126경기 중 63경기) 그럼에도 홈런 9위, 도루 6위에 오르며 호타준족의 대명사임을 증명한다. 이종범이 2루 주자일때 스퀴즈 번트로 홈으로 들어오는 작전조차 자주 걸릴 정도였다 (2루 스퀴즈작전)[4]. . 이후 1993년 첫 우승과는 달리, 당시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하여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많은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2시즌을 연속으로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당시 이종범은 1번 타자 및 유격수로 뛰며, 1996년에는 타율 .332(2위) 25홈런(3위) 58도루(1위)로, 또한 다음해인 1997년에는 .324(5위), 30홈런(2위), 64도루(1위)의 성적을 기록했다.[5] 역대 유격수 포지션을 맡은 선수가 150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 내고, 0.580 이상의 장타율과 1점대가 넘는 OPS를 기록한 경우는 1994년의 이종범과 1997년의 이종범 단 두 번뿐이다.[5] 유격수 수비에서 강견이지만 타구판단, 송구정확도 등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후일 일본 진출 이후와 한국 복귀후에도 유격수 자리를 맡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유격수가 20-20을 기록한 경우는 1996년의 이종범 이후 굉장히 드물었으며, 2012년 광주일고 후배인 강정호가 그 뒤를 잇게 된다. 현재까지 7번의 30-30이 작성되었지만 3할+4할출루율 30-30을 달성한 선수는 이종범이 유일하다.

일본 프로 야구 시절

원래 유격수였지만 1998년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하여 주니치 드래건스에 입단하고 유격수에서 외야수로 수비 위치를 바꾸었으며, 대한민국에 복귀한 이후에도 외야수로 출장했다. 56경기째인 6월 23일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 가와지리 데쓰로가 던진 120km대 커브에 팔꿈치를 맞아 골절상을 당한 뒤 9월 복귀하였다. 하지만 67경기밖에 뛰지 못하는 등, 성적 부진을 겪고 급기야 심각한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증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그는 주니치 퇴단을 결심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그는 미국행을 추진했지만 해태 타이거즈 정기주 사장이 일본을 방문하여 그를 직접 만나 국내로 복귀할 것을 설득하였고 2001년 7월 현대자동차그룹이 연고 팀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하여 KIA 타이거즈로 재창단한 시기에 그는 4년만에 국내로 복귀하게 된다.[6][7]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던 시절 투수 가도쿠라 겐과 동료이기도 했었다.

한국 프로 야구로 복귀하다

2001년기아자동차해태 타이거즈 선수단을 인수, 승계하여 KIA 타이거즈가 창단되었고 동시에 KBO 리그로 복귀하여 KIA 타이거즈에 돌아왔다. 2003년에는 20-20 클럽에 가입하였는데(그 해에 20홈런 50도루를 기록하였고, 그의 50도루는 2003년 시즌 도루 부문 최고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당시 최고령 20-20 클럽 가입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양준혁2007년에 경신하였다.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주장을 맡았으며, 대회 종료 후 베스트 9에 뽑히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2006년 정규 시즌 중에는 부진의 늪에 빠졌으며, 2군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그해 시즌 타율은 .242에 홈런 1개, 21타점, 10도루 등 입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러한 부진은 2007년에도 계속되어, 타율이 2할을 넘지 못하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8년 60% 삭감된 2억 원의 연봉에 재계약하여 재기를 다짐했다. 그해 5월 한 달 동안 3할 8푼 9리, 72타수 28안타 15타점의 맹활약으로 월간 MVP로 선정되었고, 1루수로 경기에 출장하여 투수 외의 전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가 되는 등, 타율 2할 8푼 4리로 ‘부활했다’고 평가받았다.

2008년 6월 3일, 1,5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하일성 KBO 사무총장이 수여) 1,500안타 기록은 대한민국에서 8번째이다. 같은 날, KIA의 2루수 김종국은 1,000안타 기념패를 수상했다.

2008년까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여 은퇴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으나, 2009년 시즌이 되면서 괴물처럼 부활하였고, 마침내 2009년 6월 5일 광주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6회말 김상현의 타석 때 도루를 성공하면서 최소 경기(1,439경기) 통산 500도루, 1,000득점 기록을 달성하였다.[8][9] 그 전에 그가 통산 499도루를 기록한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끝난 이후에 광주에서 기록을 세우겠다.”라고 밝히며 기록 달성을 미룬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10] 대한민국 복귀 후 2009년KIA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이자, 자신의 4번째 우승을 이끌었으며, 이용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인 2010년 7월 9일 광주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루타를 쳐 한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 대표팀 활약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대표로 뽑혔고 대한민국 팀 주장을 맡았으며, 대회 종료 후 베스트 9에 뽑히는 등 발군의 활약을 보였다. 특히 미국 현지의 A조 2라운드에서 일본과 2번째로 만난 경기에서는 8회초 1사 2,3루 상황에 후지카와 큐지로부터 승부를 결정짓는 2타점 2루타를 쳤다.

기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그 중 장남인 정후 군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포지션은 내야수, 우투좌타이다.

NC 다이노스2013년 신인 지명을 받아 입단한 윤대영은 그의 외조카이다.

또 그는 1994년 같은 팀 선수였던 투수 선동열과 가수 양수경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Two & One을 결성하여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당시 해태 구단 사정이 넉넉하지 못해 보너스를 주기 위해 이벤트성으로 감독님 몰래 제작했지만 의도와 달리 욕을 먹었다”라고 털어 놓았다.[11]

건국대 시절과 일본에서의 생활만 제외하면 전부 광주에서 일생을 보낸 광주 토박이였으나, 2012년 은퇴 후 딸의 교육 문제로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다. 은퇴 선언 이후 몇몇 학교들을 찾아 야구를 지도하며 조용한 행보를 보였다.

코치 경력

2012년한화 이글스 감독이 된 김응용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의 주루코치로 계약하여 본격적인 2013 시즌부터 KBO 리그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한화 이글스김응용 감독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한화 이글스 코치에서 사임하였다. 한화 이글스 코치 사임 이후 KIA 타이거즈의 신임감독 김기태 감독과 친분이 있어 KIA 타이거즈 복귀가 유력하다고 추측하였다. 또한 김기태 감독 역시 한화 이글스 코치시절과 같은 보직으로 제안을 하였으나 거절 하였다.

해설 위원 경력

2014년 인천 아시아 경기대회를 통해 KBS2 객원해설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 11월 6일 MBC 스포츠+와 계약을 맺으면서 정식 해설위원으로 발탁되어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주요 기록

  • 한국시리즈 우승 4회 (1993, 1996, 1997, 2009)

주요 수상 기록 (각종 타이틀 외)

  • 정규시즌 MVP (1994, 역대 유일 유격수 MVP)
  • 한국시리즈 MVP (1993, 1997)
  • 미스터 올스타 (2003)
  • 선발 올스타출전 13회
  • 골든 글러브 6회
    • 유격수 부문 4회- 1993, 1994, 1996, 1997 (1995년은 방위 복무로 홈 경기에만 출장)
    • 외야수 부문 2회- 2003, 2004
  • 진한 바탕은 한국 프로 야구 최초 기록임
기록 날짜 소속 구장 상대팀 상대 투수 경기수 달성 당시 나이 기타 각주
24연속 도루 성공 1994. 6. 1 해태 광주 롯데 종전 : 이호성 (23도루) [12]
최고령 20-20클럽
33세 28일
2003. 9. 12 KIA 부산 롯데 손민한 5회 2사 0-0 상황 1점 홈런
종전 : 이순철(해태, 31세 4개월 28일)
300도루 1997. 8. 24 해태 광주 현대 27세9일 역대 3번째
  • 1993 (16홈런 73도루 0.280- 득점 1위, 도루 2위, 타격 8위, 안타 2위, 홈런 4위, 타점 12위)
    • 단일 경기 최다 도루(6개, 1993)
    • 1번 & 유격수
  • 1994
    • 단일 시즌 최다 안타 (196개, 1994)
    • 100경기이상 시즌 최고 타율 (0.393, 1994)
    • 단일 시즌 최다 도루 (84개, 1994, 참조- 홈런 19개 (4위), 득점 1위, 타점 5위)
    • 1번 & 유격수
  • 1995 (방위복무: 126경기중 절반 63경기출장)(16홈런 (9위) 32도루 (6위) 0.326)
    • 1번 & 유격수
  • 1996 20-20 클럽 (25홈런 76도루 타율 0.332- 득점 1위, 도루 1위, 타격 2위, 안타 2위, 홈런 3위, 타점 3위)
    • 1번 & 유격수
  • 1997 30-30 클럽 (30홈런 64도루 타율 0.324- 득점 1위, 도루 1위, 타격 5위, 안타 2위, 홈런 2위, 타점 8위)
    • 프로야구 최초 3할-30홈런-30도루
    • 1번 & 유격수
  • 2003
    • 단일 시즌 최다 2루타(43개)
  • 2011
    • 포스트시즌 최고령 출전 기록 (41세 1개월 27일)
  • 역대 유일 유격수 OPS 1.0 돌파 2차례 달성 (1994, 1997)
  • 1,000득점 (역대 4번째) (2009)
  • 최소경기 200 도루, 300도루, 400도루, 500 도루 (1,439경기, 역대 2번째, 참조- 전준호(1,705경기)) (2009)
  • 역대 1회 1번 타자 (선두타자) 홈런 1위 (44개)
    • 역대 1회초 1번 타자 홈런 1위 (20개, 참조- 2위 유지현 (8개)) (2009.9.11.솔로 홈런(상대 투수:류현진)
    • 역대 1회말 1번 타자 홈런 1위 (24개, 참조- 2위 이영우 (10개))
  • 투수를 제외한 전체 야수 포지션을 정규게임에서 소화

통산 기록

한국 프로야구 시절

경기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희생타 4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타율 장타율 출루율 비고
1993 해태 126 475 85 133 16 4 16 53 73 12 38 35 11 24 0.280 0.432 0.331 득점 1위, 한국시리즈 MVP
1994 124 499 113 196 27 5 19 77 84 5 57 37 2 27 0.393 0.581 0.452 타율,득점,안타,도루,출루율 1위
1995 63 239 51 78 10 2 16 35 32 3 30 20 5 16 0.326 0.586 0.397 방위 복무로 홈 경기만 참가(규정타석 미달)
1996 113 449 94 149 28 1 25 76 57 2 74 39 4 10 0.332 0.566 0.425 득점, 도루 1위
1997 125 484 112 157 28 3 30 74 64 3 90 49 9 27 0.324 0.581 0.430 득점, 도루 1위, 한국시리즈MVP
2001 KIA 45 188 45 64 14 1 11 37 7 5 21 16 5 3 0.340 0.601 0.401 시즌 중 복귀
2002 123 485 93 142 25 2 18 59 35 5 56 63 7 4 0.293 0.464 0.365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 선수
2003 132 524 110 165 43 1 20 61 50 5 66 58 8 4 0.315 0.515 0.389 2루타, 도루 1위
2004 133 493 100 128 29 0 17 52 42 14 70 50 9 8 0.260 0.422 0.350 득점 1위
2005 118 430 69 134 25 2 6 36 28 7 58 49 8 5 0.312 0.421 0.393
2006 93 339 41 82 18 1 1 21 10 11 29 43 3 1 0.242 0.310 0.302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선수
2007 84 253 23 44 6 0 1 18 3 14 15 25 6 1 0.174 0.209 0.217
2008 110 317 38 90 19 4 1 38 9 12 33 26 11 5 0.284 0.379 0.348
2009 123 385 63 105 21 1 6 40 11 18 46 50 9 2 0.273 0.379 0.346
2010 97 265 36 65 16 1 4 29 2 6 18 33 5 2 0.245 0.358 0.293
2011 97 235 27 65 15 1 3 24 3 15 23 35 6 0 0.277 0.387 0.337
통산 16시즌 1706 6060 1100 1797 340 29 194 730 510 137 724 622 108 139 0.297 0.458 0.370 올스타 선정 13회, 골든글러브 6회, 통산 타율 역대 13위, 통산 도루 역대 2위
  • 굵은 글씨는 시즌 최고 성적, 보라색 글씨는 한국 프로 야구 역대 포지션별 최고 성적, 붉은색 글씨는 한국 프로 야구 역대 최고 성적.

일본 프로야구 시절

연도 구단 등번호 경기 타석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도루 도루사 희생타 희생플 4사구 삼진 병살타 실책 타율 장타율
1998 주니치 8 67 290 244 38 69 11 3 10 116 29 18 8 3 1 42 33 4 12 .283 .475
1999 8→7 123 484 424 76 101 20 5 9 158 33 24 7 13 2 45 62 6 7 .238 .373
2000 7 113 465 414 58 114 26 2 8 168 37 11 8 13 2 36 70 6 3 .275 .406
2001 8 13 13 2 2 1 0 0 3 0 0 0 0 0 0 4 0 0 .154 .231
통산성적 311 1252 1095 174 286 58 10 27 445 99 53 23 29 5 123 169 16 22 .261 .406

한일 통산 성적

  • 커리어 통산 2000안타 돌파
  • 커리어 통산 221홈런- 563 도루

각주

  1. 강명석. “[(이종범) 10아시아] <3> (이종범) 10아시아”. 10아시아. 2012년 6월 2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2. <프로야구> 이종범 '아들이 좌타자 한 풀어줘'《연합뉴스》 2009년 10월 17일 15:05
  3. 김형준. “[프로야구 기록추적] <3> 이종범의 4할, 누가 저지했나”. 네이버스포츠. 2009년 10월 2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4. 네이버사사구. “사사구21회”. 코리아볼닷컴. 2012년 6월 3일에 확인함. 
  5. 이정래. “이종범, 1994년을 만들어내다”. 데일리안. 2009년 10월 25일에 확인함. 
  6. 김상수. “[인물 포커스]3년여만에 국내 복귀 이종범 선수”. 동아일보. 2009년 11월 26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7. 김성원. “마침내 온다, 바람의 아들”. 한겨레21. 2007년 7월 25일에 확인함. 
  8. 정철우. '아버지의 이름으로'이뤄낸 이종범의 500도루”. 이데일리.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9. 허상욱. “개인통산 500도루-1천득점 기록한 KIA 이종범”. 뉴시스.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10. 김은진. “이종범‘역사를 훔치고 달렸다’”. 스포츠칸. 2009년 6월 6일에 확인함. 
  11. 김진. '특급 쌕쌕이' 이종범, 과자-앨범 제작 에피소드 공개!”. 아츠뉴스. 2009년 11월 28일에 확인함. 
  12. '홈런 경쟁 - 이종범은 24연속 도루 신기록 겹경사 ', 《동아일보》 1994. 6. 2

바깥 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