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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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그룹
형태기업집단
창립1945년 10월 3일
해체2001년 8월
본사 소재지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
매출액2조 7,157억원 (K-GAAP) (1996년)
영업이익
1,930억원 (K-GAAP) (1996년)
자산총액3조 3,974억원(K-GAAP) (1996년)
모기업해태제과

해태그룹해태제과모기업으로 하여 형성된 기업 집단이었다. 1977년 박병규 창업주 타계 후 박 창업주의 아들이자 해태제과의 대표사장이었던 박건배 제 2대 회장 취임 뒤 인켈 인수인계, 건설분야 진출등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근이 되어 1997년 IMF외환위기 여파로 부도 후 해체되었다. 박건배 2대 회장도 분식회계[1] 및 위장계열사를 통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2]

개요[편집]

성장의 역사[편집]

  • 1945년 10월 3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에서 창업주 4인이 해태제과 합명회사를 설립.
  • 1959년 7월: 해태그룹 최초의 계열사인 해태산업을 설립
  • 1960년 7월: 해태제과합명회사에서 해태제과공업(주)으로 상호를 변경
  • 1961년 1월: 자회사인 해태산업(주)을 해태제과공업(주)에 흡수·합병하여, 본사와 공장을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영동보문동에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으로 이전
  • 1972년 5월: 해태제과를 기업공개(자본금 273억원) 하였으며,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상장
  • 1973년: 해태식품공업(주)을 설립하였고, 한국감귤냉장판매(주), 한국산토리(주)를 인수하였다.
  • 1974년 1월: 미국의 베아트릭스사와의 5:5로 합작, 투자한 회사인 메도골드코리아(1973년 인수)를 해태유업(주)으로 상호를 변경
  • 1974년 4월: 해태제과는 덴마크로부터 기술제휴를 받아, 아이스크림 생산 라인을 도입하였다.
  • 1974년 8월: 해태관광(주) 설립
  • 1975년 11월: 해태제과가 천연 오렌지 주스를 생산.
  • 1976년 12월: 해태제과는 대단위에 종합 껌생산 공장(1326평)을 준공하여 생산
  • 1977년 12월: 해태그룹의 창업주이자 1대 회장인 박병규가 52세의 나이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해태제과의 대표사장인 박건배 사장이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 1978년: 해태상사(주)를 설립하여 무역업에 진출.
  • 1979년: 신방전자(주)를 인수인계함.
  • 1981년 5월: 창업주 3인 동거체제가 끝나고 박건배 회장이 상사, 제과 회장에 취임.
  • 1981년 7월: 광고대행업체인 (주)코래드를 설립.
  • 1982년: 프로야구단인 해태 타이거즈(현재의 KIA 타이거즈의 전신)를 창단했는데 박건배 2대 회장의 아버지인 박병규 해태그룹 창업주가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에서 태어났다.
  • 1983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에 최초로 현지법인을 설립.
  • 1983년: 미진금속공업을 인수인계.
  • 1987년 1월: 해태제과공업(주)에서 해태제과(주)로 상호변경.
  • 1988년 3월: 일본 현지법인 해태 재팬 설립, 79년에 인수인계한 신방전자(주)의 상호를 해태전자(주)(현 인켈)로 변경.
  • 1988년 7월: 해태음료가 해태농수산을 흡수합병.
  • 1989년: 해태그룹 유업부분에 속하는 해태유업을 해태그룹의 계열사에서 분리.
  • 1990년: 해태제과 내에 건설사업본부를 설립하여 건설업에 진출.
  • 1994년 12월: 오디오의 제조업체인 (주)인켈인수[3]
  • 1995년 9월: 무선전화기 제조업체인 나우정밀을 인수[4]
  • 1996년 11월 1일: 해태전자가 (주)인켈과 나우정밀(주)을 흡수합병[5]
  • 1997년 1월 1일: 미진금속공업을 해태중공업(주)로 명칭변경

이로써 해태그룹은 계열사에 해태제과(주), 해태산업(주), 해태가루비(주), 대한포장공업(주), 해태음료(주), 해태전자(주), (주)인켈오디오월드, (주)에어로시스템, 미진금속공업(주), 해태상사(주), 해태유통(주), (주)해태I&C, 해태텔레콤(주), (주)코래드, 해태 타이거즈 등으로 1996년 말 15개의 계열사를 둔 재계순위 24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쇠퇴의 역사[편집]

  • 1997년 10월 16일: 해태그룹 경영혁신안 발표[6]
  • 1997년 11월 1일: 해태제과(주)와 해태전자, 대한포장공업이 부도.[7]
  • 1997년 11월 6일: 해태그룹의 채권단인 29개 종금사는 종금협회에서 임직원 회의를 열고, 1500억원 협조융자에 합의.
  • 1998년 6월 1일: 해태그룹 해제 발표[8]
  • 1998년 6월 18일: 55개 퇴출기업 대상에 해태제과와 해태상사, 해태음료가 선정.
  • 1998년 11월: 해태중공업이 철도차량부문을 디자인리미트에 매각하였다.
  • 1999년 해태산업의 제과사업 부문과 해태가루비 (현재 합작 설립으로 부활)는 해태제과에 흡수·합병되었고, 이후 대한포장공업, 해태텔레콤, 해태I&C, 인켈오디오월드, 해태중공업은 폐업했다.

그룹의 정리[편집]

  • 1999년 12월 해태그룹의 계열사인 해태상사(주)는 법원으로부터 법정관리에 따른 청산을 명령받아 회사 정리계획에 따른 재산 보전 처분으로 해태그룹의 15개 계열사를 청산하기로 확정함
  • 2000년 2월 (주)코래드의 지분을 매각하였다.
  • 2000년 6월 핵심 계열사인 해태음료가 히카리 컨소시엄에 인수인계되면서 해태그룹에서 분리되었다.
  • 2001년 3월 해태산업(주)을 매각하였다.
  • 2001년 8월 프로야구단인 해태 타이거즈기아자동차에 매각하였고, 해태제과의 중국현지법인인 해태불산을 매각하면서 해태제과만 남고 해태그룹은 완전히 해체되었다.[9]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김준현 기자 (2000년 12월 6일). “해태제과 분식결산 '박건배 前회장 고발'. 《한국경제》. 
  2. 옥철 기자 (2000년 8월 31일). “해태그룹 박건배 전회장 구속”. 《연합뉴스》. 
  3. “해태그룹, (주)인켈 인수”. 《연합뉴스》. 1994년 12월 9일. 
  4. “해태그룹, 나우정밀 인수”. 《연합뉴스》. 1995년 9월 29일. 
  5. “해태전자, 인켈 및 나우정밀 공식 합병”. 《연합뉴스》. 1996년 10월 30일. 
  6. 朴昶昱기자 (1997년 10월 16일). “<대체> 해태그룹 경영혁신안 발표”. 《연합뉴스》. 
  7. 양찬승 기자 (1997년 11월 1일). “극심한 자금난 겪던 해태그룹 부도,해태제과 등 3개 계열사”. 《MBC뉴스데스크》. 
  8. 김종명 기자 (1998년 6월 1일). “해태그룹 해체”. 《KBS》. 
  9. 윤진식, 차병석 기자 (2001년 6월 22일). “[해태제과 매각] 제과부문 고용 승계..건설부문 처리 남은 과제”. 《한국경제》. 
  10. 박진형 기자 (2016년 5월 11일). “해태제과식품 증시 복귀…15년간 ‘빛과 그림자’”.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