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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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미군 | |
|---|---|
부대 깃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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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기간 | 1954. |
| 국가 | |
| 소속 | 미국 국방부 |
| 종류 | 지역 사령부 |
| 역할 | 전시 한반도 방어 및 대한민국 국군 유지 지원. |
| 규모 | 26,000명[1] |
| 명령 체계 | 한미연합사령부 |
| 본부 | 서울특별시 용산 기지 |
| 참전 | 한국 전쟁 |
| 지휘관 | |
| 지휘관 | 제임스 D. 서먼 대장 |
주한미군(駐韓美軍, United States Forces Korea, USFK)은 안보 상의 이유로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미국의 군대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한미군지위협정에 의해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주한미군을 통솔하는 조직은 한미연합사령부이다.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며, 부사령관은 대한민국 국군 대장이다.
목차 |
전시작전권 환수 [편집]
2015년 12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에도(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2]) 미국 8군 사령부는 하와이로 이전할 것을 검토했었으나, 계획을 수정하여 그 대신 '한국 사령부'(KORCOM)로 개편하여 계속 대한민국에 주둔하게 된다.
한미 양국군은 2015년까지 들어서는 경기도 평택시의 주한미군 기지 내에 '한국전투사령부(KORCOM)'지휘소를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차후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국 통일 전에라도 있을 주한미군 감축과 통일 후 있을지 모를 주한미군 철수에 따른 것이다.
미국정부가 주한미군에 쓰는 비용은 일년마다 약 150억 달러라고한다 (1998년 기준).[3] 150억 달러는 1998년 환율 기준으로 약 21조 원이다. 그와 비교해 대한민국 국방부의 1998년 국방예산은 약 14조 원이었다.
한·미 합동 훈련장(Joint Training Area) 2곳이 경기도 북부 문산과 연천에 있다. 이 곳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다.
한편 용산, 평택(험프리스 기지), 오산공군기지, 대구(캠프 워커 외), 진해 소재의 일부 기지는 미국 APO우편번호를 사용한다.
주일미군 사령관이 중장인데 비해, 주한미군 사령관은 대장이다. 2015년 12월 이전까지는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주일미군과 동일하게 3성 장군인 중장이 주한미군의 사령관을 맡게 될 수 있으며,이는 현재의 주한미군 사령관이 주일 미군 사령관에 지휘체계보다 상위에 있는 반면에, 연합사 해체 이후엔 주한 미군사령관과, 주일 미군사령관이 동일한 계급이되지만. 주일 미군에는 미7함대 사령관인 4성장군이 보직 주둔하게되지만. 주한미군에는 4성장군의 보직이 사라지게 됨으로써 이후에 , 독도문제 등 한일관계에서 한국와 일본의 긴장이 고조될시 대한민국이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는 소지가 생긴다.
주일미군이 주한미군이나 한미연합사에 소속된 것은 아니며, 주한미군은 단지 유사시에 빨리 병력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주일 미군은 해군의 비중이크지만, 주한 미군은 상대적으로 미국 육군의 비중이 훨씬 크다. 유사시 대한민국 방위를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는 미군 증원전력은 육·해·공군과 해병대를 포함하여 병력 약 69만 명, 함정 약 160 척, 항공기 약 2,000 대의 규모이다.
미국 육군의 경우 미국 8군예하 현재 미국 2 보병사단 외 4개 사단이 추가로 증원되며, 지금보다 더 규모가 큰 미국 제7함대와 미국 7 공군이 지원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에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언론에서,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10만~20만 명 뿐으로, 나머지 60만여 명은 미국 의회의 통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1~2달 이상 걸리며, 이것도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며,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는 한미연합사의 기능이 각각 대한민국 국군과 미국 고유의 한국전투사령부(KORCOM)로 나뉘어 이관되는 것 뿐이다.
전시에도 대한민국 해군과 대한민국 공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은 계속 미군이 유지하게 된다.
미국 육군인 미국 8군 미국 2 보병사단은 여단전투단 5개가 사단 1개, 사단 5개가 미국 8군을 구성하는 5각 편제를 따르고 있다.[4] 현재에는 사단이 1개로 미국 2 보병사단 뿐이지만, 유사시에는 2015년 12월에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에 맞춰 완공될 평택 육해공 통합 기지에 나머지 사단 4개가 신속하게 전개될 수 있다.
2010년 5월 9일, 제25차 안보정책회의(SCM)에서, 한미 양국은 제4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의 미래 국방분야 협력 방향을 총괄적으로 제시할 문서인 국방지침에, 앞으로도 주한미군을 당시 규모 28,500명으로 계속 유지한다고 명시하기로 하였으나,[5]2011년 10월 11일 당시 정확한 인원은 총 26,000명이다.[6]
또한 이전 2010년, '티 파티'의 대표주자격으로 상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랜드 폴(공화당. 켄터키) 당선자는 11월 7일(현지시간) 미국 ABC방송에 출연, 대한민국, 일본, 유럽에 더 많은 방위비를 분담시키든지 아니면 미군을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7]
심지어 바니 프랭크(민주당. 매사추세츠) 하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7월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주둔 미군 철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주한 미군 전역 군인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하고 남은 다량의 고엽제를 1978년 칠곡군 왜관읍 캐럴 기지에 매립하였다고 폭로하였다.
개관 [편집]
- 주한미군 사령부는 대한민국에 있는 미국 육군(미국 8군 미국 2 보병사단) · 미국 해군(미국 제7함대) · 미국 7 공군 제51전투비행단 및 미국 해병대를 이끄는 합동 군사 본부이다.
- 한미연합사 예하 주한국제연합군(UN군. 중립국 감시단)이 있다. 1978년 이전 1975년 12월 31일까지 한미연합사 대신 이 UN군 사령부가 주한미군을 지휘했다.[8] 휴전협정에는 외국군이 한반도에 주둔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필요성 [편집]
이명박 정부에서는 역사상 최초로 주한미군의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정부의 공식 연구결과가 나왔다. 즉, 이명박 대통령은 사상 최초로 국방부가 아닌 국정원에 남북한 전력비교 보고서를 주문했는데, 사상 최초의 비국방부 보고서에서, 주한미군이 필요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2004년의 국방부 보고서에서는 주한미군과 본토의 미군 증원이 없으면 개전 2주만에 서울이 점령된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2009년 국정원 보고서에서는 주한미군도 본토미군증원도 없고, 한국의 민방위나 예비군 등의 전시동원도 없이, 현재 상비된 현역군인만으로 북한군과 전면전시 10% 우세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그것도 북한군은 최대가정치, 한국군은 최소가정치를 대입한 결과라서, 둘 다 최대최소의 평균가정치를 대입하면 더욱 우세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정부의 공식 보고서는 한국 건국이래 최초이며, 그동안 미군의 전폭적인 안보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던 초고속 경제성장의 성과가 드디어 국방분야에 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의미가 있다.
2013년 현재 남북한은 최대 90배 GDP 격차가 난다고 보도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0배 차이라서, 90배 차이는 한국군 하나 대 미군 9개를 합친 규모이다. 아무리 북한이 과도하게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남한이 극소로 국방예산을 지출하며 미군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미군 없이 2주만에 서울이 점령된다는 분석은 GDP 90배 격차와 너무 맞지 않는 분석이었는데, 이번에 크게 시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남북한만의 전면전이라기 보다는 미중의 전면전 성격이 짙었고, 중국은 지금도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상태라서, 중국군에 대해서는 미군이 없으면 대적하기 힘들다. 그러나 중국이 상호방위조약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면, 미군은 정말 별 필요가 없어진다. 러시아는 한국이 흡수통일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국가보고서를 최근 작성했다.
편성 [편집]
- 2011년 10월 11일 26,000명[9]
- 2011년 1월 실제 전력 : 정확히 28,500명[10][11]
- 2009년 10월 22일 기준 시설 수용 규모 : 27,114명[12]
- 2015년 12월 1일에 전시작전권이 환수되면, 한미연합사가 폐지에 따라 카투사 제도도 함께 폐지된다는 루머가 있다. 그러나 카투사는 한미연합사 소속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군 육군참모본부 직할부대이며, 한미연합사가 창설되기 전에 카투사 제도가 먼저 있었다. 따라서 한미연합사가 폐지됨과 동시에 카투사 제도가 폐지된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이다.
- 2011년 4월 19일, 대한민국 국방부는 "언론이 보도한 미측 보고서에 나오는 병력 규모는 실제 병력이 아니라 시설 수용 규모를 기준으로 집계한 것일 뿐 실제 병력 규모와는 무관하다."라고 밝혔다.[13]
- 과거 계획으로는 2012년 4월에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시점까지는 현 수준으로 동결 하다, 이후 2017년까지 16,285 ~ 16,764명. 그 이후로는 1,000여 명 혹은 수 십여 명만 남기는 방안도 있었다.[3]
주요 무기 [편집]
- 병력 : 약 28,500(26,000) 명
- 항공기 : F-16C/D 블록 40형 60대, A-10 30대(A형 27대, C형 3대), U-2R/S 3대(글로벌호크로 대체 예정)
- 헬기 : AH-64D 블록 2 24대, UH-60A/L 70대, CH-47D 8대. MH-53E 2대
- 전차 : M1A1 120대, M1A2 60대
- 장갑차 : M2A2 58대, M2A3 ??대, M3A2 41대
- 화포 : M270 MLRS 36대, M109A6 24대
- 대포병레이더 : AN/TPQ-36, 37 6대
- 미사일
- ATACMS : 약 40 기
- 지대공미사일 : PAC-3 60기, PAC-2 ??기
주한미군의 Area별 배치 [편집]
- Area I: USAG Red Cloud (캠프 레드 클라우드)
- Area II: USAG Yongsan (용산 기지)
- Area III: USAG Humphreys
- Area IV: USAG Daegu (캐럴 기지, 헨리 기지 등)
- Area V: Osan (오산공군기지)
- Area VI: Kunsan (군산공군기지)
한미 방위비(주한미군 운영경비)분담금 [편집]
-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2011년 기준 8,125억원 이었다.[15]
- 2004년에는 6,601억원, 2005년과 2006년에는 6,804억 원, 2007년 7,255억 원, 2008년 7,415억 원, 2009년 7,600억 원, 2010년 7,904억 원이었다.
- 환율은 2000년 1,200원, 2001년 1,100원, 2002년 1,300원, 2003년 1,200원, 2004년 1,200원[16][17]
- 2005년부터 국방부 참여하에 외교통상부가 주관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2004년까지 달러와 원화를 함께 지불하다가 2005년 이후 전액 원화로 지불하여 환율 변동의 영향 없이 안정적인 예산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 매년 대한민국의 분담 비율이 증가되고 있다.[18]
- 한미 양국은 2008년 12월 2009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적용할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였고, 이 협정은 2009년 3월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발효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이 협정은 연도별 방위비 분담금을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인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7,600억 원(2007년 물가 상승률 2.5% 적용), 2010년 7,904억 원(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이나 상한선인 4% 적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2000년도 기준 18억 9,500만 달러로, 42%이다. 독일의 경우 57억 6,700만 달러(21%), 일본의 경우 63억 3,200만 달러(79%)이다.[19]
- 방위비 분담금 지원 항목 (2010년 기준)
- 주변 국가 중 미국은 병력 142만여 명, 6,610억 달러, 일본은 병력 22만 9천여 명, 510억 달러, 중국은 병력 228만 5천여 명, 1,000억 달러(추정), 러시아는 병력 103만여 명, 533억 달러(추정)를 지출하고 있다.[21]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편집]
미군 범죄 [편집]
주둔지 [편집]
현재 부동산 침체와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하여 각 지역의 많은 부지를 반환받고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24]
유사시 국가지휘소로 쓰이는 지하벙커 [편집]
- 유사시 국가지휘소로 쓰이는 지하벙커는 알려진 것만 6개다.
- 청와대의 B-1
- B-1 벙커는 수도방위사령부가 관리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전쟁 지휘소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주요 국가훈련 때 이 벙커를 찾았다.
- 마찬가지로 수도방위사령부의 또 하나의 B-1
- 한미연합사령부 지휘통제소(CP 탱고. 암호명 탱고 Tango)
- CP 탱고는 1970년대에 만들었다. 탱고는 군 작전상 암호명이다. 한강 이남의 경기도에 위치한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의 단단한 화강암 터널 속에 몇 개 층이 있다. 외부와 단절된 채 2개월 이상 생활할 수 있다. 스키프(SCIP)라는 최첨단 정보시설이 있는데,첩보위성과 주한미군 U-2 정찰기의 대북감시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받아본다. 미국 중앙정보부(CIA) 및 미국 국방부 정보국(DIA)과 핫라인이 설치돼 있다. 존재 자체가 비밀에 쌓였다가 2005년 3월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이곳을 전격 방문하면서 외부에 이름이 알려졌다. 라이스 장관은 한 · 미 연례 연합훈련에 따라 '워 게임(War Game)'을 하고 있던 100여명의 군인들을 격려했다.
-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는 CC서울(Command Center)
- 오스카 벙커
- 오스카는 지금까지 정확한 장소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 UFG연습(을지프리덤가디언) 시 지휘와 통제는 이들 벙커의 유기적인 연결로 이뤄진다.
- 모든 벙커는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 청와대 벙커는 대형 모니터 10개로 이뤄진 스크린이 있고 국가정보원과 충청남도 계룡시에 있는 대한민국 육군 · 해군 · 공군 작전사령부,경찰청·산림청·한국전력 상황실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뜬다.
- 전국에서 발생하는 안보·재난 관련 비상상황을 가장 먼저 파악할 수 있다.
-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의 주요 군시설 상황 파악도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이곳에서 현장 상황을 점검하며 참모들과 대응책을 논의했다. 철제문 두께가 2m여서 핵공격을 받더라도 끄떡없다.
전투 기지 [편집]
※ 2009년 2월 미 극동공병단 회의록 원문에는 '12~17+' 로 표기하였다.
비전투 시설 [편집]
Northern Presence
- Alamo ASA (Det L)
- 까막산(Kamaksan) ASA (Det M)
- 파평(Papyungsan. 경기도 파주) ATC(항공 훈련단)
- 신북(Shinbuk) Relay
- 콩코드 (Concord)
- 화악산 이븐 리치 (경기도 가평군 북면. Hwaaksan Evenreach)
South West Hub
South East Hub
- 경상북도 예천 항공기지 (Yechon AB. 미국 7 공군)
- 리치먼드 (Richmond)
- 다트 보드 (Dart Board)
- 브루클린 (Brooklyn)
- 창산 (Chang San)
- 비슨 (Beason)
- 하이 포인트 (High Point)
- 메디슨 (Madison)
역사 [편집]
- 미군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함에 따라, 미군은 한반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위도 38도선 이남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1945년 9월 8일 남한 땅에 발을 내디뎠다.
- 1945년 9월 8일, 처음으로 존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국 제 24군단 소속 미군 제 7 보병사단이 인천에 도착하였다.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인천보안대원과 조선노동조합원등이 연합국기를 들고 행진하던 중 일본인 경관들이 아무 이유없이 발포하여 노조위원장 권평근과 보안대원 이석우가 배와 가슴에 총탄을 맞아 현장에서 숨지고 14명의 중경상자를 낸 불상사가 일어났다.[29]그 외에, 9월 29일에는 미국 제 40사단이 부산에, 10월 8일에는 미국 제 16사단이 목포에 도착하였다. 11월말 당시 38선 이남에 주둔한 미국 제24군단 병력수는 약 7만 명이었다.
- 남한 지역에는 국제 연합(UN)의 감시하에 치러진 총선을 통하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 반면 북한 지역에서는 같은 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 1948년 소련 정부는 자국 병력을 북한에서 철수시켰고, 미군도 역시 이듬해 1949년 남한의 신생 방위군 훈련을 위한 KMAG라는 자문단 예하 500명만 남겨둔 채 전 병력을 철수시켰다.
- 3년 간의 한국 전쟁에서 500만 명이 넘는 유엔 참전국 군인과 군무원들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53년 7월 27일 남한이 배제되고, 북한을 포함한 중공과 미국이 휴전협정[30]이 이루어질 때까지 33,000명의 미군 전사자를 포함하여 총 14만 명에 달하는 유엔 참전국 군인이 전사하였다.
- 전투의 중단과 함께 휴전협정은 오늘날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이는 근대 전쟁사상 최장기에 걸친 휴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 UN 안전보장이사회의 1950년 결의안에 따라 미국은 유엔 사령부 지휘 등 합법적 임무를 부여 받았으며,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해 양국은 외국의 침략 시 상호 협력할 것을 약정하였다.
- 또한, 미국은 1978년 한-미 양국 정부에 의해 설립된 통합 군사 본부인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의 파트너로서 대한민국 방위 계획과 유사시 양국 군대를 통제할 책임을 지고 있다.
- 주한미군은 냉전 시대 동북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대한민국의 정권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내정간섭이라는 항의에 밀려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1948년 ~ 1949년 1차 철수 [편집]
- 미군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9월 15일부터 철수하기 시작했다.
- 대한민국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가 전쟁을 의미한다고 보아 총력 저지하였다. 국제 연합(UN) 한국임시위원단은 대한민국 정부 요청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하여 1948년 10월 30일 유엔 총회에 제출했으나, 철군 저지에 실패했다.[32]
- 또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외, 군사원조, 경제원조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9년 6월 진해 해군기지를 극동 미해군 기지로 제의했으며,[33] 반공 태평양 동맹체 구성도 제의했지만, 모두 거부되었다.
-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미국 국무부 장관의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이 미국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되었다.
- 1950년 1월 26일 당시 댈러스 미 국무부 고문이 방한했을때, 대한민국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으나 역시 거부되었다.
<1949년 1차 철군 이유>
1. 일본이 항복했고, 평시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미국 군인을 줄인다.[34] 2.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는 별로 없다. 원래는 중국을 민주화시킬 생각이었다.(국공내전에서 중국 국민당 지원)
- 그렇게 때문에 과거 필요 이상으로 많이 주둔하였다는 것이다.
5. 한국인들(당시 극좌파, 중도좌파, 중도우파)이 미군을 싫어한다.
1953년 ~ 1971년 2차 철수 [편집]
이후 약 7만 명 정도가 일정기간 유지되었다.
- 이후 1966년 7월, 625전쟁 당시 체결된 '주한미국군대의 형사재판권에 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정부간의 협정'(이른바 '대전 협정')을 개정, 보완한 '주한미군지위협정'을 체결하였다. 마지막으로 개정된 때는 2002년 12월 28일 이었다.
- 한국 전쟁 이후 4개 사단이 있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1960년대부터 1971년에 걸쳐 2개 사단은 철수하였다.
- 그리하여 1971년 이전 까지 미국 7보병사단과 미국 2 보병사단의 2개 사단만 남아 있었다.
- 1971년 2월 6일,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 미국 대사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3월 미국7보병사단 20,000여 명을 철수했다.
- 이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헌법을 강행한 이유가 컸다.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을 보였고, 대한민국 국군의 월남 파병은 주한미군이 베트남 전쟁으로 배치되는 것을 막기위한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 미국 대사의 공동성명 내용>
- 미국7보병사단을 철수하고 미국 2 보병사단은 후방으로 배치하며 전방은 대한민국 국군이 담당한다.[35]
- 대한민국 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한다.[36]
- 연례안보협의회를 개최한다.[37]
- 1974년 9월 주한 국제연합군(UN군 사령부. 중립국 감시단 운영), 주한미군사령부, 미군 제8군 사령부가 통합되었다. 1976년 1월 1일에 UN군 사령부는 해체되었고,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었다.
1971년 ~ 1979년 3차 철수, 한미연합사 창설 [편집]
- 박정희 대통령은 전시작전권 환수를 처음으로 추진하였다.
- 1968년 김신조 간첩일당 청와대 피습사건때는 미국 국민의 피해가 없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과 달리, 1976년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때 미군 보니파스 대위 등이 순직한 것에 대해 미국이 준 전시태세(데프콘 2)를 선포했기 때문이다.
- 이와 더불어 1978년 이후 부마 사태 등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둘러싼 대한민국과 미국의 갈등은 심해졌고, 그 때마다 미국은 대한민국 정부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웠다.
- 지미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공약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1977년 1월 20일 부터 1981년 1월 20일까지 재임했다.
- 이에 따라 1977년 9월 1,000명, 1978년 11월에는 500명을 철수시켰다.
- 또한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한미연합사)가 창설되었다.
1979년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군 이유 [편집]
- 미국 제7함대·미국 7 공군과 군수지원만 있으면 대한민국 국군은 단독방어가 가능하다.
- 주변 4대 강대국 (중공, 일본, 소련, 미국)들이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는 것을 싫어하며, 미국7보병사단이 일부 철수해도 충분히 북한을 억제할 수 있다.
- 대한민국 경제가 북한을 앞질렀다.[39]
- 철군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을 현대화시키면 된다.
- 미국 7 공군은 가장 강력한 억지력이다.
1979년 ~ 1994년 추가 감축, 전술핵무기 철수, 평시작전권 반환 [편집]
- 주한미군은 냉전 시대 동북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데 기여했으며, 대한민국의 정권 격변기 때마다 민주화를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내정간섭이라는 항의에 밀려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 1979년 12.12사태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위컴 장군은 당시 전두환 소장의 신군부에 강력한 항의를 했으나 항의에 그쳤다.
-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한민국 국군 20사단 등 신군부측의 병력이동과 관련, 주한미군의 작전 지휘하에 있는 부대의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주한미군이 간접적으로 신군부를 지원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미국정부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동원한 특전사 부대나 20사단 부대는 광주에 투입될 당시나 광주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는 한미연합사 작전통제권하에 있지 않았으며, 그 기간 동안 광주에 투입되었던 대한민국 국군의 어느 부대도 미국의 통제하에 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40]
-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자도 전시작전권 환수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 1989년, 소련과 동구권 붕괴가 현실로 다가올 때, 이미 미국은 지금부터 주한미군 방위비를 대한민국이 부담하지 않으면, 미군을 7,000명 가량 감축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은 방위비를 50%가량 부담하기 시작했다.
- 1990년대에 들어 소련의 해체, 독일의 재통일, 동유럽의 민주화 등으로 냉전 시대의 논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1970년대 이래 중미 관계의 꾸준한 개선과 한소 수교, 한중 수교로 한반도 주변 강대국 간의 군사적 적대관계도 완화되었다.
- 1991년, 주한미군은 그전까지 있던 모든 전술핵무기를 철수시켰다.
- 1992년 7월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는 한미연합사 예하에 있는 야전사령부를 해체하고, 그해 12월 1일 해병사령부를 창설하였다.
- 1993년 군사 정권 이후 처음으로 김영삼 정부 당시 한국국방연구원에 비공개로 연구하였는데, 대한민국 국군을 충분히 현대화시킨다면 남북 분단이 지속되어도, 군 복무기간을 최소 1년 3개월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 즉, 그때 이미 주한미군의 방향을 비공식적으로 합의하였다는 것이다.[41]
2009년 ~ 2017년까지 예정된 감축 및 재배치 [편집]
2015년 12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관련 사항 [편집]
- 2009년에 이미 아파치 대전차 헬리콥터 2개 대대를 철수하고 1개 대대만 잔류해 있다. 즉 1개 대대는 대한민국에서 철수 후 이라크에 재배치 아파치 헬리콥터는 서해5도와 강화도 인천 등에 북한 호버크래프트와 상륙정을 이용한 기습공격 시 이를 제압할 임무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이 지역에 대한 방어임무가 주한미군 아파치 대대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이관 되었다. 현재는 대한민국 공군 KA-1 전술 통제기가 맞고 있다.
- 2015년 12월 전시작전권이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와 동시에 한미연합사령부대신 미군 고유의 한국전투사령부(KORCOM)가 탄생하며, 미국 2 보병사단은 서울 남쪽 경기도 평택 험프리스 기지로 축소되어 재배치된다.
- 2015년 12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43]나 차후 맺게 될 평화 협정에 따라 UN군 사령부 (중립국 감시단) 자체를 철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이 또한 한미연합사 소속이다.
- 2004년 이후 공동경비구역의 경비 임무는 대한민국 국군이 단독적으로 수행하며, 지휘통제권은 계속 UN군사령부(한미연합사 소속)가 가지고 있으므로, 주한미군 일부 요원들과 중립국 감시단이 주둔해 왔다.[44]
- 한편 주한미군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 판문점 일대의 경비임무를 맡아오다 1991년 이를 대한민국 국군에 인계하고 대성동 주변 지역과 오울렛 초소(Ouellette, 일명 241초소)만을 관할하다 2004년 11월 1일 이들의 경비 임무를 대한민국 국군에 반환하였다.[45]
- 그 후 40여 명의 병력을 캠프 보니파스[46]에 남겨두고, 앞으로 3∼4년간 군사정전위 연락업무 등을 담당하도록 했던 이래 정년에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됨과 함께 이들 역시 대한민국 국군에 모두 인계하게 된다.
- 대한민국의 미 대사관을 포함한 전국 모든 미군 시설은 의무경찰 상설 경비 중대 대원들이 경비하고 있다. 그러나 작전전경은 이미 2011년 12월 26일부터 신규 차출이 중단하여 2013년 9월 25일 폐지하며, 의무경찰은 2015년까지만 선발할 계획이다.
구체적 규모, 통일 이후 주둔 사항 [편집]
아래 명기한 모든 사항은 2010년 부로 공개되었습니다[47]
- 2009년 2월 미 극동공병단 회의록 원문에는 '12~17+' 로 표기하였다.
- 그러므로, 2015년 12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 늦어도 2020년 이전 주한미군의 수는 대략 16,285 ~ 16,764명이다. 그러나 월터 L.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은 2009년 기준, 2012년 4월 17일에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에도 현 28,500명 정원을 유지할 것이라고 하였었다. 그 이후로는 1,000여 명 혹은 수십여 명만 남기는 방안도 있다.[3]
- 1989년 독일의 통일 관련 4자회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서 소련은 나토군이 구 동독지역에 주둔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통일에 찬성하였기 때문에, 현재까지 구 동독지역은 독일 연방군만이 주둔하고 있다.
- 이로 볼 때, 한국의 통일 시, 중국과 러시아는 적어도 주한미군을 휴전선 이북에 주둔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거나, 나아가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시킬 확률이 매우 높다 하겠다.
- 해외 미군이 제일 많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63,000여 명), 일본(33,400여 명)과 이탈리아 (12,000여 명)의 공통점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추축국)이라는 것도 통일 후 미군이 1개 여단전투단 이상 주둔시키기 어려운 이유이다.
- 주한미군의 대규모 감축 대신 한반도의 비핵화와 미사일 개발 제한 등 비대칭 전력의 억제, 그리고 MD(미사일 방어)로 동북아의 평화 유지와 미국의 이익을 도모할 공산이 크다.
- 감축방안은 아래의 예에 기술한 대로, 2020년 이전까지 15,000명으로 감축 & 2개 여단전투단 상시 순환 배치 후, 나아가 1,000여 명만 주둔, 1개 여단전투단 상시 순환 배치.
- 그 이후 '소수 장비관리 요원만 남기고 병력 전부를 본토로 철수시키고 여단전투단 순환배치도 아예 하지 않는 방안'까지도 될 수 있다.[51]
미국 내의 주한미군 감축, 철수론 [편집]
2004년 미 의회예산국의 주한미군 감축 방안 [편집]
- 그러나 이 보고서는 '럼즈펠드 구상'에 따라 한국, 일본, 하와이 기지들이 통,폐합되는 가운데 태평양 지역의 안보의 주축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는 주일미군의 재배치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51]
26,000명 ~ 28,500명(현 수준) [편집]
※ 실제로 2006년부터 계획되어 추진되고 있다('대추리 사태' 참조).
- 별도의 병력 감축 없이 26,000명 ~ 28,500명(현 병력)을 유지하되, 한강 이북의 모든 미군기지를 험프리스 기지(캠프 험프리)와 오산공군기지로 이동하는 방안이다.
- CBO는 또 '용산기지 이전 비용은 한국측이 65%를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미국 측 부담은 최소 14억 달러, 최대 40억 달러까지 이를 수 있다' 고 밝혔다. 이를 역산하면 한국의 비용부담은 최소 26억, 최대 74억 달러에 달한다.
- 이렇게 되면 카스피해 인근 중앙아시아 구 소련 지역이나 중동으로 미군을 동원하는 속도는 늘릴 수 있으나, 매년 2,500만 달러의 예산이 증가된다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21,500명 ~ 28,500명(현 수준) [편집]
※ 과거 기준 2012년 4월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이후에도, 현재의 28,500명을 계속 유지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2011년 10월 11일 당시 정확한 인원은 총 26,000명이다.[56]
- 상시 주둔 병력 : 13,500명 ~ 19,500명 (약 15,000명).
- '한강 이북의 미국 2 보병사단과 예하 부대를 미국 본토로 철수시키고, 2개 여단전투단을 본토에서 한국에 상시 순환배치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고 하였다.
- 또한 '이 경우 미군 부대가 비무장지대에서 멀어지는 이점이 있으나 한반도 위기발생시 하와이에서 미군이 발진해야 하며, 하와이의 제 25 보병사단이 한국의 여단전투단을 지원하는데 3주일 이상 걸린다' 고 말했다.
- 한편 유럽에는 마찬가지로 주독미군도 거의 철수 후 (63,000명 ⇒ 15,000명 가량) 2개 여단전투단을 순환배치시킴으로써, 초기 운용비용은 두 나라 합쳐 68∼74억 달러가 소요되나, 연간 9억 2,500만 ~ 12억 달러까지의 예산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이 방안이 안보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한국에서만 9,000 ~ 15,000명을 줄일 수 있다.
5,000명 [편집]
- 상시 주둔 병력 : 1,000명
- '먼 미래처럼 보이지만(2004년 기준) 주한 미 육군(미국 제8군) 가운데 1,000여 명만 남기고 모두 철수시킨 뒤 1개 여단전투단을 순환 배치하는 방안이 있다' 고 하였다.
- 그러나“이는 1년에 1억 7,500만 달러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으나 그 전에 미국 본토 기지건설에 총 36억 달러를 먼저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명 ~ 1,000명 [편집]
※ 과거의 보고서와는 방침이 다르다. 종래 보고서는 1999년 제31차 한미연례안보회의(SCM)때 부터 작성되어, 2002년 제34차 SCM에 보고된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공동협의' 이다. 이에 따르면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로 하였었다.
- 상시 주둔 병력이나 추가 순환 배치부대 없이 전원 철수.
- MD 미사일 방어 장비 관리 요원에 한하여 20명 ~ 1,000명.
- CBOS는“한국에 소수 장비관리 요원(수 십 명 ~ 1,000명 미만)만 남기고 병력 전부를 본토로 철수시키며, 여단전투단 순환배치도 아예 하지 않는 방안도 있다고 하였다.
- 이 경우 한국에서만 연간 12억 달러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나, 한반도 위기 대응이 매우 늦어져 전쟁 발발 가능성이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여기서 말하는 "장비"는 미사일 방어 체제(MD)이다. 기타 국가들도 있는 무관단과는 별개이다.
2010년 해외주둔 미군 감축, 철수론 [편집]
- 재정적자 감축을 주장해 온 미국 공화당의 중간선거 압승이 주한미군 예산 삭감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승리의 1등 공신인 보수주의 유권자 운동단체 '티 파티'에서 주한미군 예산 삭감 주장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 그는 국방비 삭감 문제와 관련, "(유럽 주둔) 미군 일부를 집으로 불러들이든지 아니면 유럽으로 하여금 그들의 방위에 더 많은 돈을 내도록 해야 한다"면서 "일본과 한국도 자신들의 방위에 더 많이 돈을 내야 하고, 아니면 그곳에 주둔한) 군대를 고국으로 불러들여 (예산을) 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직 어떤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예산 삭감을 추진 할지에 대한 티 파티의 명확한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폴 당선자의 이번 언급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나 기지이전 문제 등에서 한국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 이번 선거가 있기 전에도 미 의회 내에서는 해외주둔 미군의 경비감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표출돼 왔다.
주도의 의회가 한미동맹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의 예산 환경 하에서 의회가 주한미군 기지 이전 등에 대한 모든 예산을 제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대 지휘관 [편집]
| # | 사진 | 계급 · 성명 | 취임일 | 이임일 |
|---|---|---|---|---|
| GEN. 카터 B. 매그루더 | 1959. | 1961. | ||
| GEN. 가이 S. 멜로이 주니어 | 1961. | 1963. | ||
| GEN. 드와이트 E. 비치 | 1965. | 1966. | ||
| GEN. 찰리 H. 본스틸 3세 | 1966. | 1969. | ||
| GEN. 존 H. 마카엘리스 | 1969. | 1972. | ||
| GEN. 리처드 G. 스틸웰 | 1973. | 1976. | ||
| GEN. 로버트 W. 세네월드 | 1982. | 1984. | ||
| GEN. 윌리엄 J. 리브시 | 1984. 5. | 1987. 6. 30. | ||
| GEN. 루이스 C. 메네트리 | 1987. | 1990 | ||
| GEN. 로버트 W. 리스카시 | 1992. | 1993. | ||
| GEN. 토머스 A. 슈워츠 | 1999. | 2002. | ||
| GEN. 리언 J. 러포트 | 2003. 2. | 2006. 2. | ||
| GEN. 버웰 B. 벨 3세 | 2006. 2. 3. | 2008. 6. 3. | ||
| GEN. 월터 L. 샤프 | 2008. 6. 3. | 2011. 7. 14. | ||
| GEN. 제임스 D. 서먼 | 2011. 7. 14. | 재임중 |
참조 항목 [편집]
-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압사 사건
- 지위협정
- 주한미군지위협정
- 한미연합사령부(ROK-US CFC)
- 카투사(KATUSA)
- 주일미군(USFJ)
- 대한민국 국군
-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 전시 작전통제권
- 조선인민군
주석 [편집]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http://media.daum.net/politics/cluster_list.html?newsid=20100627090117110&clusterid=175948&clusternewsid=20100627095107994&p=nocut
- ↑ 가 나 다 라 https://www.cato.org/pubs/pas/pa-308.pdf
- ↑ 이론적인 5각 편제는 대대 5개가 여단 1개를 구성하나,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 ↑ 가 나 다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00509103111242&p=yonhap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10901978 한국경제신문`주한미군 예산삭감` 목소리 높아지나. 2010-11-09 03:40
- ↑ 현재 남한에는 스위스, 스웨덴 대표 주재. 반면 북한은 과거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1994년 폴란드가 철수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국가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뉜 이래 더 이상 중립국 감시단의 임무를 이어받지 않았으나 폴란드는 자국 영토에서 여전히 중립국 감시단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http://www.usfk.mil/usfk/Uploads/120/USFKTri-fold(Korean)JAN2011.pdf
- ↑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10419161054769&p=govpress 국방부, 주한미군 28,500명 유지 재확인. '공감코리아'. 2011.4.19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934568 <그래픽> 세계 주둔 미군 현황(종합) :: 네이버 뉴스)
- ↑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10419161054769&p=govpress 국방부, 주한미군 28,500명 유지 재확인. '공감코리아'. 2011.4.19
- ↑ 대한민국 국방부 2010년 판 국방백서 44페이지 <도표 3-5> 주한미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 ↑ http://media.daum.net/politics/dipdefen/view.html?cateid=1068&newsid=20120106184408014&p=segye
- ↑ http://kostat.go.kr/wnsearch/search.jsp통계청 통합검색 통계DB '방위비분담금현황 : 방위비 분담금 지원현황'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2010year/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전체'-제3절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 보장 71쪽'
- ↑ 1987년 제 1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이후 1990년 3,000만 달러, 1991년 4,000만 달러, 1992년 5,000만 달러.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군사비를 GNP의 6%로 책정하였다.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4/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부록'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2/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국방비 홍보책자', SIPRI Yearbook 2010(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Military Balance 2010(런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2009 일본 방위백서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이상호. “돌려받고도 5년째 놀리는 미군기지”, 《경향신문》, 2011년 4월 20일 작성. 2011년 5월 30일 확인.
- ↑ [인사이드 Story] 대한민국서 가장 은밀한 6곳은? 한국경제 2011.08.08 18:31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3833 [정밀해부] 전작권 전환 연기와 군사비 논쟁의 방정식 신동아 2010-08-25
- ↑ TANGO는 알파벳 T를 의미하는 음표 문자이다. 군사나 통신 분야에서 쓰인다.
- ↑ Gun이라 함은 기갑을 제외한, 자주포 포함 모든 야포 종류를 포함한다.
- ↑ 매일신보 1945년 9월 12일字를 “秘錄 韓國外交<1> : 건국前夜①”, 《경향신문》, 1975년 1월 15일 작성, p. 4.에서 재인용
- ↑ 이승만 대통령이 계속 북진을 주장하여, 결국 중공의 팽덕회, 북한의 남일, 미국의 클라크 장군만이 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 ↑ 최동희, 갈등의 평화론, 도서출판 나남, 1987, 163면; 김학준, 강대국관계와 한반도, 서울:을유분화사, 1983, 153면
- ↑ 최동희, 갈등의 평화론, 도서출판 나남, 1987, 164면; 한국외무부, 한국외교 30년, 서울:한국외무부, 1979, 104면
- ↑ 최동희, 갈등의 평화론, 도서출판 나남, 1987, 164면; 김학준, 강대국관계와 한반도, 서울:을유문화사, 1983, 155면
- ↑ 1945년 8월 일본 항복 즈음, 미국의 군인은 본토 48주를 포함하여, 예비군과 귀휴병까지 친다면 1,200만 명 가량이었다. 이는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 ↑ 현재, 2015년 12월까지 대한민국의 전시작전권 환수에 맞춰 평택으로 완전히 재배치 될 예정이다.
- ↑ 종래 불가능했던 무기와 탄약의 대한민국의 자체 생산을 미국이 허가했다. 또한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설립되었다.
- ↑ 한미연례안보회의(SCM)로서, 지금까지 계속 주최하고 있다.
- ↑ 반면 2010년 6월 24일에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2015년 12월로 3년 미루는 문제로 명시하였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 http://media.daum.net/politics/cluster_list.html?newsid=20100627090117110&clusterid=175948&clusternewsid=20100627095107994&p=nocut 참조
- ↑ 그러나 1970년대 말까지, 핵심 생산지표에서 대한민국은 북한보다 상당 부분 뒤져 있었다.
- ↑ 1980년 5월 대한민국 光州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미국정부 성명서
- ↑ <전시작통권 `말바꾼' 전직 국방장관들> :: 네이버 뉴스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 ↑ 뉴스앤뉴스/이문호의 클릭세상
- ↑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4-11/a-2004-11-01-1-1.cfm?moddate=2004-11-01
- ↑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살인 사건에서 순직한 미군 보니파스 대위를 기념
- ↑ USFK J8 2009 Peninsula Engineer Conference (2009년 2월 4일 자. 기밀 해제)를 참조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韓美, '흡수통일'과 '통일후 미군 주둔'에 합의 - 프레시안
- ↑ 가 나 미국 예비군의 기동전략체제로의 전환 의미에 대해서는 바깥 고리를 보라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주한美육군 1000명만 남을수도 :: 네이버 뉴스
- ↑ 美, `주한미군 완전철수'도 최근 검토(종합) :: 네이버 뉴스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매일경제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A39면 사설 'SOFA 개정문제, 한미정상회담서 논의하길' 김선동 의원 자료
- ↑ 여단전투단은 약 4,000명 이상이다.
- ↑ 여단전투단은 약 4,000명 이상이다.
-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10901978 한국경제신문`주한미군 예산삭감` 목소리 높아지나. 2010-11-09 03:40
바깥 고리 [편집]
- 엔하위키 주한미군
- 주한미군 공식사이트 2011년 1월 소개 브로셔
- 군사력 비교평가 방법론 소개 국방정책연구 1999년 여름호에 게재
- '유용원의 군사세계' 한국국방연구원 주간국방논단 2007년 3월 5일자 '미국 예비군의 기동전략체제로의 전환 의미'
- 2009~2020년 주한미군 재배치 계획 비밀문서 해제 2009년 2월 4일
-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한반도 유사시 지상군 지원은 지연될 것
- 주한美육군 1000명만 남을수도
- 美, `주한미군 완전철수'도 최근 검토
- "주한미군 차출 가능성 논의중"(종합)
- 정밀해부-전작권 전환 연기와 군사비 논쟁의 방정식-신동아 2010-08-25
- (영어) 주한미군 공식사이트
- (영어) 주한미육군 미8군
- (영어) 2009년 12월 31일 기준 전 세계 국가별 현역 미군 배치 현황
- (영어) 주한미군(USFK) - 주한미군 공식 홈페이지
- (영어) U.S. Forces, Korea /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globalsecurity.org)
- (영어) 주한미해군사령부(Commander, U.S. Naval Forces, Korea)
- (영어) 군산공군기지(8th Fighter Wing, Kusan Air Base)
- (한국어/영어) 오산공군기지(51st Fighter Wing, Osan Air Base)
- (영어/일본어) 주일미군(USFJ)
- (영어/일본어) 주일미해군사령부(Commander, U.S. Naval Forces, J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