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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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년 9 월 13 일에 실시 된 유엔군을 상대로하는 위안부의 등록 안내 기사. 동아 일보 1961 년 9 월 14 일
양공주

양공주(洋公主)는 주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며 돈을 벌었던 한국인 여성을 멸칭하는 말이며. 양갈보라 이르기도 한다. 양(洋)은 서양의- 뜻을 가지고 있는 접두어이다.

1945년 대한민국의 광복 이후 남한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미군기지 주변으로 주한 미군을 상대로한 소매업, 유흥업이 성행 하였고 미군병사를 상대로 한 성매매 또한 한국인들의 중요한 사업 중 일부였다.

한국전쟁이후 한국의 산업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궁핍한 삶 속에서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여성들이 선택했던 생계수단이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와 한국에 배치되었던 미군 병사들과 그녀들은 연인으로까지 발전되어 연을 맺고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삶을 살기도 했으나, 대부분 그녀들은 미군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고 심지어 살해까지 당했던 보호받지 못한 존재였다.

미군의 달러에 기대어 형성된 촌락을 기지촌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형성된 기지촌은 용산, 의정부, 송탄, 오산등 큰 미군기지 인근에 형성되어 있으며 독특한 거리환경을 보여준다.

주한 미군 부대가 밀집했던 동두천시의 경우 성산업에 종사했던 '양공주'의 숫자는 1965년과 1980년 사이 최대 2700여명에 이르렀으며 미군을 상대로 한 기지촌 인근 상인들은 3000여명을 헤아렸다. 당시 6만여명 이던 동두천시 인구에 비교해 보면 엄청난 수의 시민이 미군의 달러에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화 속의 양공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