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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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Chief of Mission Ambassador in Korea)는 1883년 5월 20일 루시어스 푸트 대사를 시작으로 하여, 격동의 대한민국 근대사와 현대사를 같이 지켜본 미합중국 국무부의 주한 대사관의 수장이다.

역대 대사[편집]

대한제국[편집]

대수 직 함 이 름 미국이름 임기
- 특명공사 겸 전권 공사 루시어스 푸트 Lucius H. Foote 1883년 5월 20일 ~ 1885년 2월 19일
- 변리공사/총영사 루시어스 푸트 Lucius H. Foote 1884년 7월 7일 임명 [1]
-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턴 포크 George Clayton Foulk 1885년 1월 ~ 1886년
- 변리공사/총영사 윌리엄 파커 William Harwar Parker 1886년 [6월 12일]] ~ 1886년 9월 3일
- 대리공사 조지 클레이턴 포크 George Clayton Foulk 1886년 ~ 1887년
- 공사 휴 딘스모어 Hugh A. Dinsmore 1887년 5월 ~ 1890년 5월
- 공사 어거스틴 허드 2세 Augustine Heard II 1890년 ~ 1894년
- 공사 존 실 John M.B. Sill 1894년 4월 ~ 1897년 9월
- 공사 호러스 뉴턴 앨런 Horace Newton Allen 1901년 12월 ~ 1905년 6월
- 총영사 에드윈 모건 Edwin V. Morgan 1905년 6월 ~ 1905년 7월

대한민국[편집]

미국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파견한 역대 대사는 다음과 같다.[2] 순서는 공식적으로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한국의 주한 미국 대사를 파견한 1949년을 1대로 계산한다.[3]

한미원조 (1,500만불) 조인식에 참석한 유완창 부흥부장관과 엘리스 브리그스 대사(1955)
무초 대사로부터 트루먼의 사진을 증정받는 이승만 (1949년 4월 20일)

1949년 3월 20일 미국은 이미 한국에 파견되어 있던 무초 특사를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4] 무초 특사는 대사 임명을 받고 1개월 뒤인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 영국, 프랑스 등 우방의 강대국 대사들로부터도 약식으로 신임장을 받아온 이승만은 미국 대사의 봉정식은 장엄하게 집행하도록 국무회의에서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는 이날 무초가 쓰고 있던 반도호텔을 미국 대사관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반도호텔 사무실 증정식도 갖기로 했다. 4월 20일 오전 10시50분 외무부 의전관의 안내로 나온 무초 대사 및 직원 17명이 분승한 6대의 승용차는 반도호텔 정문 앞에서부터 식장인 중앙청 앞까지 도열한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또 경찰 및 군악대의 장엄한 연주로 시작된 이날 신임장 제정식장은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및 전 각료들이 참석하여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 다른 외교 사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신임장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무초 대사로부터 전달받은 이승만은 "우리 정부의 수립과 육성에 힘써온 무초 특사가 대사로 승격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명실상부한 맹방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치하하기도 했다. [5]

대수 직 함 이 름 미국이름 임기
- 총영사 월리엄 랭던 William Langdon 1946년 5월 ~ 1948년 9월
- 총영사 조지프 제이콥스 Joseph Jacobs 1947년 5월 ~ 1948년 10월
제1대 대사 존 무초 John J. Muccio 1949년 4월 ~ 1952년 9월 8일
제2대 대사 엘리스 브리그스 Ellis O. Briggs 1952년 11월 ~ 1955년 5월
제3대 대사 월리엄 레이시 William S.B. Lacy 1955년 5월 ~ 1955년 7월
제4대 대사 월터 돌링 Walter C. Dowling 1956년 7월 ~ 1959년 10월
제5대 대사 월터 매카너기 Walter P. McConaughy 1959년 10월 ~ 1961년 4월
제6대 대사 마셜 그린 [6] Marshal Green 1961년 4월 ~ 1961년 7월
제7대 대사 새뮤얼 버거 Samuel D. Berger 1961년 7월 ~ 1964년 7월
제8대 대사 윈스럽 브라운 Winthrop G. Brown 1961년 6월 ~ 1967년 7월
제9대 대사 월리엄 포터 William J. Porter 1967년 7월 ~ 1971년 10월
제10대 대사 필립 하비브 Philip C. Habib 1971년 10월 ~ 1974년 8월
제11대 대사 리처드 스나이더 Richard L. Sneider 1974년 9월 ~ 1978년 7월
제12대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 William H. Gleysteen, Jr 1978년 7월 ~ 1981년 6월
제13대 대사 리처드 워커 Richard L. Walker 1981년 7월 ~ 1986년 8월
제14대 대사 제임스 릴리 James R. Lilley 1986년 11월 ~ 1988년 1월
제15대 대사 도널드 그레그 Donald Gregg 1989년 9월 ~ 1993년 2월
제16대 대사 제임스 레이니 James T. Laney 1993년 10월 ~ 1997년 2월
제17대 대사 스티븐 보즈워스 Stephen W. Bosworth 1997년 12월 ~ 2001년 2월
제18대 대사 토머스 허버드 Thomas C. Hubbard 2001년 9월 ~ 2004년 7월
제19대 대사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R. Hill 2004년 7월 ~ 2005년 4월
제20대 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 Alexander R. Vershbow 2005년 10월 ~ 2008년 9월
제21대 대사 캐슬린 스티븐스 Kathleen Stephens 2008년 10월 ~ 2011년 11월
제22대 대사 성 김 Sung Kim 2011년 11월 ~

에피소드[편집]

북한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이 파견한 주한미군의 수장으로서, 주한 미국 대사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인물일 수밖에 없다. 제8대 대사인 원드롯 지 브라운은 브라운 각서의 장본이며, 제6대 대사인 마샬 그린 대사는 박정희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으며, 월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저격 사건인 10.26 사건전두환1980년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한 장본이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당시 제10대 하비브 주한대사 등이 개입을 하여, 암살을 막았던 적이 있다.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슨은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상원의 휴회 기간에 위임장을 받았고, 1885년 1월 28일 비준을 받고 다시 위임장을 받았으나, 임무의 등급이 낮아져 임명이 거부되었다.
  2. Chiefs of Mission by Country, 1778-2005 > Korea. 미국 국무부. 2009년 6월 21일에 확인.
  3. 서울 미 대사관
  4. "秘錄 韓國外交<26> : 政府樹立 직후 ⑧ 美中國에 特使館", 《경향신문》, 1975년 3월 12일 작성. "...존 무초씨를 ...그 이듬해 韓國정부를 승인한 뒤 곧 3월 20일 초대 駐韓美 대사로 임명했다."
  5. "秘錄 韓國外交<26> : 政府樹立 직후 ⑧ 美中國에 特使館", 《경향신문》, 1975년 3월 12일 작성.
  6. 임시 임기

바깥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