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
愛國歌 (나라를 사랑하는 뜻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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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國歌) | |
작사 | 미상 |
작곡 | 안익태 |
도입 | 1948년 |
애국가(愛國歌)는 대한민국의 국가다. 1919년 안창호에 의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인 〈작별〉에 삽입해서 부르기 시작하다가 1935년 한국의 작곡가 안익태가 지은 《한국환상곡》에 가사를 삽입해서 현재까지 부르고 있다.
가사의 작사자는 윤치호 설, 안창호 설, 윤치호와 최병헌 합작설 등이 있다. 윤치호의 작사설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애국가를 바꾸려 했으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변호로 계속 애국가로 채택하게 됐다.[1] 이후 1948년의 정부 수립 이후 국가로 사용되어 왔으며, 2010년 국민의례 규정에서 국민의례시 애국가를 부르거나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로서의 역할을 간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다.[2][3]
작사
[편집]애국가의 가사는 1900년대 초에 쓰여졌다. 작사자는 크게 윤치호라는 설과 안창호라는 설 두 가지가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미상이다. 작사자 윤치호 설은 윤치호가 애국가의 가사를 1907년에 써서 후에 그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다는 것이다. 한편 안창호가 썼다는 주장은 안창호가 애국가를 보급하는 데에 앞장섰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08년에 출판된 가사집 《찬미가》에 수록된 것을 비롯한 많은 일제 강점기의 애국가 출판물은 윤치호를 작사자로 돌리고 있는 등 윤치호 설에는 증거가 많은 반면[4] 안창호 설에는 실증적인 자료가 부족하다.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영(尹致瑛)은 윤치호가 대한민국의 애국가 가사의 일부를 썼다고 주장했다.[5] 윤치영에 의하면 애국가 가사의 앞부분은 최병헌 목사가 짓고, 후렴구는 윤치호가 지었다는 것이다. 최병헌은 윤치호가 다니던 정동감리교회의 목사였다.[5] 윤치호와 최병헌이 함께 지었다는 애국가 사본이 2002년 한남대학교 교수 박정규에 의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6] 또한 애국가의 원본은 그가 지었으나,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부 개사했다고도 한다.
그밖에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로 시작되는 협성회 무궁화가 역시 윤치호가 작사를 하였다는 설이 있다.[7] 윤치호가 지은 노래 중 안창호가 가사의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를 문제삼아 가사를 바꾸라고 요청하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고쳤다. 그러나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창호는 윤치호가 지었다가 본인 스스로 수정한 부분 중에서도 우리 대한 만세를 우리 나라 만세로, 이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를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며로 안창호가 다시 고쳤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주요한과, 독립운동가 안태국의 사위 홍재형 등은 그가 지은 협성회 무궁화가를 안창호의 요청으로 개사한 것이 애국가의 기원이 되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한말 독립운동가인 안태국(안창호, 양기탁 선생과 신민회를 조직,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피검)의 사위인 홍재형이 안태국의 말을 회고하는 < 안도산전서(安島山全書) >의 내용에서 살펴 볼 수 있다.[8]
본래 애국가 가사의 첫 절이 '성자 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라고 되어 있었는데, 도산(안창호)이 하루는 서울서 내려 온 교장 윤치호를 보고 이 가사가 적당하지 않으므로 고쳐서 부름이 좋겠으니, 교장께서 새로이 한 절을 지어 보시라고 청하자 윤치호가 도산의 생각을 물었고, 도산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을 보여주자 윤치호가 기뻐하면서 찬성하자 도산이 이를 당시 교장인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8]
또 주요한은 <안도산전서>에서 ´원래 끝 구절의 첫 가사는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임금)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였으나 1919년부터 상해에서 이를 지금과 같이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는 분명 안창호가 고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8]
한편 전택부 역시 윤치호가 애국가의 유력 작사자라 주장하였다.[9] 그 근거로는 첫째로, 1907년 윤치호의 역술로 출판된 <찬미가>중에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애국가가 들어 있다는 사실, 둘째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 양주은이 소장한 국민가 중에 애국가가 윤치호의 작사로 되어 있다는 사실, 셋째로 해방 후 윤치호가 친필로써 ‘윤치호 작’ 애국가(사진 10번)를 쓴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1955년 벌써 밝혀졌던 사실[9]이라는 것이다.
윤치호가 지은 찬미가의 개사본이 1910년에 실렸다. 애국가가 수록된 최초의 문헌이 윤치호의 “찬미가”이고 1910년 9월 21일자 신한민보에 애국가의 전문이 윤치호 작사의<국민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어 윤치호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10]
1902년에 윤치호가 지었다는 무궁화 노래가 애국가의 원형과 같다는 자료도 나타났다. 2006년 2월 27일에는 박정규(朴正圭) 한남대 교수가 충북 청원군에서 열린 단재 순국 70주기 추모 학술발표회 발표문 ‘신채호의 국내에서 쓴 글에 대한 고찰’중에서 애국가의 원형이 된 노래도 함께 발표하였다.[6] 신채호가 지은 '광무(光武) 5년 신축(辛丑) 2월 7일 신채호 배(拜)'라고 쓴 노래와 함께 발견된‘애국가’도 있었다. 이 애국가는 현재 애국가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6]
윤치호는 안창호의 노력으로 신학문을 수용하고 체계적 교육이 시행되고 있던 대성학교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느낀 바 있어 자신의 작품격인 찬미가를 저술하며 여기에 도산이 대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애국가를 수록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8] 애국가의 원작자로는 윤치호 설이 유력하다. 한편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을 때 찬성 11표, 반대 2표로 만장일치를 끌어내지 못하여 결정을 유보하였고, 그 이후 애국가에 작사자에 대한 결정은 없었다. 따라서 현재 애국가의 공식적인 작사자는 미상이다.
작곡
[편집]처음 애국가는 가사에 스코틀랜드 가곡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로버트 번스 작사·윌리엄 쉴드 작곡)의 가락을 붙여서 불렀다. 새 곡을 써야 할 필요를 느낀 안익태가 1935년 11월 사 장조로 된 새 가락을 작곡하여 1936년 The Korean Student Bulletin 1936년 10월호에 애국가 악보 광고가 붙기도 하였다. 새 가락을 붙인 애국가의 악보는 1942년 뉴욕한인교회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사용
[편집]애국가는 1940년경에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해졌고 국가로 채택되었으나 한반도에는 전해지지 못했다. 다만 1942년 8월 29일에 개국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애국가 1절을 매일 방송하였다.
한반도의 독립 이후 새 애국가의 악보가 전해졌고, 이후 1948년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의 사실상의 국가(國歌)가 되었다. 애국가의 악보는 교과서 등을 통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다만 대한민국의 성문법에서는 국가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법령상 규정되어 있는 바는 없으나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되어 있어 국가적인 행사 따위에서 연주 또는 가창된다.
라디오 방송은 해방 이후에는 1945년 9월 9일(사실상 1948년 정부 수립)부터, 텔레비전 방송은 1956년 5월부터 1959년 2월까지, 1961년 12월 31일부터 방송 시작맨트와 종료맨트(국명 고지)을 통해 애국가를 매일 방송하고 있다.
1980년 12월 언론통폐합 이후 애국가는 KBS에서 제작한 사장조 애국가가 사용되어 현행 1995년 행정안전부의 KBS 교향악단 음원(의식의 노래) 배포이후에도 2000년대 후반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90년대들어 SBS가 개국한 이후에는, 1993년부터 선명회 합창단이 부른 애국가 사용을 하기 시작하였고, EBS도 마찬가지로 1993년에 제작한 자체 애국가 사용을 한적이 있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SBS가 제작한 국립합창단과 선명회합창단이 부른 방송 애국가가 2010년 12월 31일까지 사용되어 이후 2011년 1월 1일에 제작한 과천시립예술단이 부른 애국가로 바뀌었고, 같은해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KBS 교향악단이 배포한 YBM 서울음반의 "의식의 노래" 애국가를 통해 제작, 현재까지도 방송사와 학교 및 공공기관에서 널리 사용되어 이후 행정안전부의 대표 음원으로 지정되어 이후 모든 방송국에 확대 편성되었지만, 2005년 저작권 기증이후에도 저작인접권으로 인해 국민의례용도로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했었다. 그리고 2018년 12월 18일에 박인영이 작곡한 애국가를 편곡하였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시합창단이 공동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제작 · 배포하였다. 그리고 새 편곡음원 애국가는 국민의례와 더불어 상업적으로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한 편곡음원이다. 2019년 3월에 최초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SBS가 처음으로 사용을 시작했으며, 9월 이후에 기독교방송, 가톨릭평화방송, TBS 시민의 방송으로 확대되었다. 2020년 들어 1월에 한국교통방송, 3월에는 마포공동체라디오, 5월에는, EBS와 YTN, 국회방송이 8월 19일에 금강공동체라디오로, 또 2021년 하반기에는 KTV 국민방송으로 확대 편성되었다.
2018년 12월 박인영이 편곡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제작 · 배포한 애국가를 사용하였으며, 2020년 이후 모든 국경일과 국가기념일, 기념식 실황 중계의 애국가 제창 및 연주 영상으로 나오고 있다.[11]
KBS 교향악단 (현행 대표음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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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편집]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대한민국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의 애국가 연주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홈 경기는 평양이 아닌 중국에서 치러졌었다. 다만 2013년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 대항 역도선수권대회에서는 이례적으로 대한민국의 애국가 연주가 허용되었다.
원문
[편집]東海물과 白頭山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保佑하사 우리나라 萬歲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二
南山 위에 저 소나무 鐵甲을 두른 듯
바람 서리 不變함은 우리 氣像일세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三
가을 하늘 空豁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一片丹心일세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四
이 氣像과 이 맘으로 忠誠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無窮花 三千里 華麗江山
大韓사람 大韓으로 길이 保全하세
한글전용법에 의거한 표기
[편집]1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논란
[편집]표절 논란
[편집]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서울에서 받은 대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상대로 비난 성명을 발표하면서 애국가의 가락이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불가리아어: 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 "도브루자 땅이여")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12] 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면서, "만약 불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일어날 것입니다"(If Bulgarian singers came to Korea and sang O Dobrujanski Krai, Korean audiences would stand up!) 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다만 두 곡은 첫소절이 서로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낮다. 또한 니콜로프의 논리는 1966년 안익태의 전기인 김경래의 『안익태의 영광과 슬픔, 코리아 판타지』(현암사)에서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유학시절 무려 40여 개국의 국가를 수집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민요, 가곡, 성가곡을 모아 애국가 작곡을 위한 기초 자료로 삼았다"는 증언에 맞지 않는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1976년 이유선은 그의 책 《한국양악백년사》에서 위의 표절 문제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독립국가이니만큼 하루 속히 국가를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고 썼다. 이에 안익태기념사업회 측은 반론자료와 함께 정부 각 부처에 진정서를 보냈다. 문화공보부와 국회사무처는 애국가가 30년 동안 국가 역할을 한 점으로 볼 때 “명확한 근거 없이 표절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발표했다.
저작권 문제
[편집]과거에는 애국가의 저작권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익태의 유족이 그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1992년부터 이에 따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3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는 프로축구단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한 두 구단을 고소하였으며, 이에 따라 논란이 불거졌다.[13]
이후 애국가의 저작권을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으며, 결국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유족이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함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14]
기타
[편집]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히 추정되는 윤치호가 말년에 일본 제국의 관료로 일했다는 점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윤치호는 105인 사건 때 수감을 당한 적이 있는 근대 개화 사상을 전파한 지식인으로서 일제 초기에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105인 사건 후 전향하면서 30여년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위해 앞장섰던 것이다.[15] 또한 작곡가인 안익태도 생전에 친일 활동을 했다 하여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한다.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개사하였다는 논란은 192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돌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임시정부의 지도자 중 한 명이던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1]'라며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1]'고 반박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곡의 음악성에 관하여, 그 선율 자체가 처음에 못갖춘마디처럼 들려, 이로 인해 뒷부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다.[16] 실제로 2006년에 YB가 편곡한 애국가에서는 첫마디만 못갖춘마디로 바뀌어 있다.
1977년 한국음악협회의 회장 조상현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이유를 들어 1월 26일 총회에서 새 국가를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다음 통과되면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총회에서 새 국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도 정부가 국가를 새로 제정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부는 앞으로 국가를 새로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애국가의 친일성 문제와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가 교체 청원이 나와도 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애국가 수정·교체 주장은 부당" Archived 2011년 11월 21일 - 웨이백 머신 YTN 2006년 4월 7일자
- ↑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관습상 인정된다고 밝혔다.
- ↑ http://www.mcst.go.kr/servlets/eduport/front/upload/UplDownloadFile?pFileName=%EB%B3%84%EC%B2%A8-%EC%A0%95%EB%B6%80%EC%83%81%EC%A7%95+10%EB%AC%B8+10%EB%8B%B5.hwp&pRealName=20160315125627415164517788_TCS_SCHMNG201603150113475461.hwp&pPath=0302000000
- ↑ 김용운 (2004년 4월 14일). “작사자 밝힌 외국문헌 발견… '애국가 作詞는 尹治虎' 확정되나?”. 조선일보. 2007년 9월 2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6년 3월 7일에 확인함. - 코리아 심볼 자료실
- ↑ 가 나 “"작사자 규명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2005년 11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3월 21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단재 한시·'항일가사집' 첫 공개 조선일보 2006.02.27
- ↑ 애국가에 대한 소고 미디어제주 2008년 8월 28일자
- ↑ 가 나 다 라 애국가 작사자, 과연 누구인가? 공감코리아 2005.11.29
- ↑ 가 나 전택부,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정음사, 1978) 359쪽
- ↑ 문옥배, 《한국찬송가100년사:해설,역사》 (예솔출판사, 2002) 530쪽
- ↑ 간혹 2020년 현충일 및 6.10 민주항쟁 기념식, 2021년 제102주년 삼일절 기념식, 현충일 기념식 한정되었다.
- ↑ 듣기 Archived 2006년 2월 21일 - 웨이백 머신. 이 곡은 민요가 아니지만 흔히 민요로 잘못 알려져 있다.
- ↑ “애국가 틀때도 저작권료 내야돼?”. 2003년 12월 12일.[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애국가”. 2021년 8월 25일에 확인함.
- ↑ 오마이뉴스 기사
- ↑ 양성모. “애국가, 그 선율 참 이상하다”. 서울대저널. 2020년 9월 20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년 6월 17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
[편집]- 김연갑. 《애국가 작사자 연구》, 집문당, 1998. ISBN 89-303-0655-1
- 전정임. 《안익태》, 한국예술연구소총서, 시공사, 1998.
- Wayde, James. 〈Korean Anthem compared with Bulgarian song by James Wade〉
- 강준만. 한국 근대사 산책 4:러일전쟁에서 한국군 해산까지, 인물과사상사, 2007
- 좌옹윤치호문화사업회, 윤치호의 생애와 사상 (윤치호선집 1), 을유문화사, 1998
- 손태룡, 음악이란 무엇인가, 영남대학교출판부, 2006
- 김연갑, 애국가 이야기, 청송, 1998
- 이규희, 울어버린 애국가, 밝은미래, 2005
- 최병현, 강변에 앉아 울었노라 - 뉴욕한인교회 70년사, 깊은샘, 1980
외부 링크
[편집]- 안익태 기념재단
- 김연갑 씨, 애국가 교체론을 반박하다 - 오마이뉴스
- 작사자 밝힌 외국문헌 발견…‘애국가 作詞는 윤치호’ 확정되나 조선일보 2004.08.13
- 일제 친일 청산과 애국가 오마이뉴스 2004.08.23
- 음성
- 동영상
- 애국가 (영상역사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1984년, 1절 연주
- 애국가 (2018년판 합창, 1절 영상)
- 애국가 (2018년판 합창, 1~4절 영상)
- 애국가 (2018년판 합창, 1~4절 영상 (3D 음원)
- 애국가 (2018년판 제작과정 메이킹필름)
- 애국가 (KBS 제공) - 2000년대, 1~4절
-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