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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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치퍼리아 공화국
Republika e Shqipërisë
Flag of Albania.svg Coat of arms of Albania.svg
국기 국장
표어 알바니아어: Ti, Shqipëri, më jep nder, më jep emrin Shqiptar
(그대, 알바니아여, 내게 영광을 다오, 내게 알바니아인의 이름을 다오)
국가 깃발의 찬가
Albania on the globe (Europe centered).svg
수도 티라나 북위 41° 19′ 48″ 동경 19° 49′ 12″ / 북위 41.3300° 동경 19.8200° / 41.3300; 19.8200
정치
공용어 알바니아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의원 내각제 공화국
대통령
총리
부야르 니샤니
에디 라마
역사
독립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 독립 1912년 11월 28일
지리
면적 28,748km² (139 위)
내수면 비율 4.7%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인구
2015년 어림 2,893,005명 (140위)
인구 밀도 98명/km² (63위)
경제
GDP(PPP) 2015년 어림값
 • 전체 $32.259백만 (112위)
 • 일인당 $4,900 (105위)
HDI 0.716 (95위, 2013년 조사)
통화 레크 (ALL)
기타
ISO 3166-1 008, AL, ALB
도메인 .al
국제 전화 +355

알바니아 (알바니아어: Shqipëri/Shqipëria; 슈치퍼리/슈치퍼리아), 공식적으로는 알바니아 공화국 (알바니아共和國, 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레푸블리카 에 슈치퍼리스)은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총면적 28,748km²로 2016년 기준 300만 명 가까이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티라나는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이며, 두러스블로러 등의 대도시들이 알바니아에 위치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발칸 반도에 위치하여, 남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남동쪽으로는 코소보,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와 해안선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오트란토 해협을 두고 72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고전 고대 시대 동안, 현대의 알바니아 지역은 여러 일리리아 사람들과 그리스인들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일리리아 전쟁 이후에는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로마의 행정구역 중 달마티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모이시아 주의 일부분으로 쪼개졌다. 1190년,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국가 알바논 공국이 세워졌다. 이후 15세기에 알바니아는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고, 이후 500년 동안 제국의 식민지배 하에 있게 된다. 이후 유럽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발칸 전쟁이 발발하며[1] 알바니아는 1912년 독립을 선언, 이듬해에 국제 사회로부터 독립국의 지위를 인정받는다. 알바니아 왕국은 1939년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고, 1943년에는 나치 독일의 보호령이 되었다.[2] 이듬해, 알바니아는 엔베르 호자와 그가 이끄는 노동당에 의해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시기 동안 다양한 방면의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겪었으며, 이 시기 동안 국제 사회로부터 고립을 감내해야 했다. 1991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해체되고 알바니아 공화국이 새로이 설립되었다.

알바니아는 민주주의 성격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 평균의 기준에서 중상 단계 정도의 소득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이 알바니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과 농업 부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 자유 시장 차원의 경제 개혁이 알바니아 안에서 이루어지며 해외 투자의 문을 개방하였는데, 특히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 부문에 많은 부분을 개방해놓았다.[3] 알바니아는 높은 HDI 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과 무료 초중등교육을 알바니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4]

알바니아는 UN, NATO, WTO, 세계은행, 유럽 의회, OSCE, OIC의 회원국이며, 유럽 연합의 회원국 지위를 신청해놓은 상태이다.[5] 알바니아는 에너지 공동체, 흑해 경제 협력 기구 그리고 지중해 연합의 창립국 중 하나이기도 한다. 알바니아는 남유럽 지역 최대 규모의 호수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들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어원[편집]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천문학자였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가 서기 150년 지도를 제작할 당시 두러스의 북동쪽에 위치한 알바노폴리스라는 도시를 명시할때 알바니 (Albanët)의 일리리아인들을 명시할때 유래된 것이라는 추측이 가장 유력하다.[6][7] 알바니아의 이름은 중세의 아르바논 공국으로 지속되었다고 하나, 두 이름이 명시된 곳이 같은 장소였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8]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가였던 미하일 아탈리아티스는 자신이 1079년에서 1080년 당시 집필한 저서 역사에서 104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대항한 사람들로 알바노이를 처음 기술하였으며 디라키움 공작이 다스리는 사람들을 아르바니타이라고 기술하였다.[9] 중세 동안,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아르버리" 또는 "아르버니"라고 불렀으며 자신들을 "아르베레쉐" 혹은 "아르베네쉐" 사람들이라 지칭하였다.[10][11]

오늘날의 알바니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슈치퍼리" 혹은 "슈치퍼리아"라고 부른다. 17세기부터 지명 슈치퍼리아와 민족 데모님 슈치파레아르베리아아르베레쉬를 대체하였다. 두 단어는 "독수리들의 땅" 혹은 "독수리들의 아이들"로 종종 해석된다.[12][13]

역사[편집]

알바니아의 전 국왕이었던 조그 1세

고대[편집]

오늘날 알바니아인의 조상인 일리리아인이 기원전 2000년 경 발칸 반도 서쪽(일리리아)에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그 주위로는 호전적 성향이 짙은 나라들이 자리를 잡았다. 기원전 7세기경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자치 식민지를 건설했고, BC 4 세기경에는 고유 부족 국가를 이룬 일리리아인과 평화적인 무역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다가 그리스가 알바니아 남부를 점령했는데 그리스는 오늘날까지 이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슈코드라(Shkodra; 현재 알바니아 북부)를 중심으로 발전해 가던 일리리아 왕국을 넘보기 시작하던 로마 제국은 BC 228년에는 군함 200척을 앞세워 침략했다. 로마가 이 곳을 정복하기 전 일리리아는 한 때 도나우 강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나, BC 167년 발칸 전역이 로마의 지배하여 들어가면서 로마 제국에 편입되었다. AD 5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로마가 쇠퇴하자 고트족, 훈족, 슬라브족의 침략이 잇따랐다. 11세기에는 비잔티움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노르만족이 일리리아 북부 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두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편집]

1272년 프랑스 출신의 앙주의 샤를이 알바니아에 왕국을 세웠는데 오래가지는 못했다.

세르비아, 오스만 제국, 베네치아 공화국 등도 알바니아를 거쳐갔다. 1443년 스칸데르베그가 300여 명의 알바니아인들을 이끌고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스칸데르베그는 베네치아 공화국과 나폴리 왕국, 교황령과 동맹을 맺고 알바니아 북부 지역을 통일했다. 알바니아는 1443년부터 1468년까지 25년 동안 자치권을 유지했다.

1479년 오스만 제국이 마침내 이 곳을 손에 넣었고, 그 이후 1912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게 된다. 외세의 침략을 겪으면서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몰락하게 된다. 1878년 프리센(Prizen; 현재의 코소보)에서 알바니아 연맹이 창설되었으며, 자치권을 얻기 위한 분투를 계속하였다. 1881년 오스만 제국 군대는 독립 시도를 무참히 짓밟았다.

독립[편집]

1912년 11월 28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이 나라는 제1차 세계 대전중립을 선언하였지만 동맹국에 점령을 당하여 한 때 나라가 분단되기도 했다.

1928년부터 조그 1세공화정에서 군주제를 선언하였고, 그는 '조그 국왕'으로 등극된다. 그의 권력은 한마디로 전제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1939년, 이탈리아의 점령으로 폐위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독일의 침공을 받자 1941년 유고슬라비아의 원조로 결성된 공산당이 파르티잔 활동을 전개, 1944년 해방 후 호자를 수반으로 하는 좌익임시정부가 수립되어 1946년 군주제는 폐지되고, 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14]

1961년에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가 알바니아 지도층의 스탈린주의를 비판한 후 소련권에서 이탈, 반미반소 친중노선으로 채택했으며, 스탈린주의와 대동구권 고립주의 노선을 견지해 유럽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고립된 나라였다. 1976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신헌법을 제정·공포해 '자력갱생의 원칙'을 강조하였고, 마오쩌둥 사후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나빠져 고립주의 노선이 더욱 강화되었다.[14]

최근 상황[편집]

1991년에 민주화를 통해 대외 개방이 이루어졌다. 1997년에는 정부와 유착 관계를 맺고 있던 피라미드 회사의 연쇄 파산을 계기로 알바니아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2009년 4월 28일에 알바니아는 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했다.[15] 2011년 1월 22일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16][17]

지리[편집]

알바니아의 전체 면적은 28,748 km²이다. 해안선은 362 km이며, 서쪽으로 이오니아 해아드리아 해를 마주하고 있다. 국경선의 북쪽은 몬테네그로코소보에 접하고, 동쪽으로는 마케도니아와 접하며, 남쪽은 그리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며, 알바니아의 북쪽에는 높이 2,590 m의 노스알바니아알프스가 솟아 있다. 참나무, 느릅나무, 침엽수 등이 울창하게 자라는 중앙 고지는 서쪽으로 습한 해안 평야까지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중앙 고지가 마케도니아와의 국경 산악 지대로 이어져 있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764 m인 코랍산인데, 그 산줄기는 남쪽의 산악 지대로 이어져 있고 아드리아 해로 뻗어 내려가 알바니아(또는 이로니아) 리비레아라고 불리는 휴양지 주변에는 절벽이 있다.

해안 지역은 여름에는 따뜻하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온화하고 습기가 많은 지중해성 기후이다. 수도 티라나의 7월 평균 기온은 약 23.9 °C이다. 전국적으로는 연간 강수량은 1,000 mm ~ 1,500 mm 정도이며, 대부분이 동절기에 내린다. 그러나, 강수량의 분포는 고르지 않아서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한데, 추운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리는 북부 산악 지대는 연간 2,540 mm 이상이며, 중앙 계곡의 적설량은 630 mm 이하이다.

행정 구역[편집]

알바니아는 티라나 주, 두러스 주를 포함한 12개의 주로 구분되며, 이 12개의 주는 티라나 현, 두러스 현 등 36개의 현으로 세분화된다. 수도이자 제1의 도시인 티라나는 면적이 41.8㎢로서 인구는 약 42만 1,286 명(2011년)이다.

주민[편집]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알바니아의 총인구는 282만1977 명이다. 이 중 알바니아인이 98%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부에 그리스인이 약 3만 명(전체 인구의 1%) 거주하며, 그 밖에 세르비아인, 롬족(집시),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터키인 등 기타 민족들도 거주한다.[18]

언어[편집]

공용어알바니아어이다. 알바니아어모어(母語)로 사용하는 주민이 전체 인구의 98.8%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남부에는 그리스어를 모어로 쓰는 소수의 주민들(전체 인구의 0.5%)이 있으며, 그 밖에 마케도니아어, 롬어, 세르비아어, 터키어 화자도 소수가 있다.[18]

종교[편집]

종교 구성 (알바니아)
이슬람교
  
56.70%
로마 가톨릭
  
10.03%
동방 정교회
  
6.75%
벡타시교
  
2.09%
무신론
  
2.5%
기타
  
5.49%
무종교
  
13.79%
샤를리 엡도 테러사건 이후 만난
알바니아의 이슬람 정교회 벡타시 가톨릭 종교 지도자들 (왼쪽부터)

알바니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코소보와 더불어 유럽에서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한때 알바니아는 공산화 이후 사회주의 국가 수립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서 1967년 무(無)종교 국가를 선언하여 모든 모스크와 교회를 파괴하거나 박물관 등의 다른 용도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1991년 민주화 이후 다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2011년 알바니아의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56.70%가 수니파 무슬림이며, 2.09%는 이슬람교에서 변형된 신앙인 벡타쉬교에 속한다. 알바니아의 기독교의 교파로마 가톨릭교회가 약 10.03%, 알바니아 정교회가 약 6.75%를 차지한다. 알바니아 정부는 2011년부터 개신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하였다. 또한 13.79%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으며(무응답/무종교), 2.5%는 확고한 무신론자들이다. 5.49%는 기타 종교라고 대답하였다.

이슬람교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로마 가톨릭교는 주로 북부지방에, 알바니아 정교회는 그리스와 인접한 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한다. 2007-2008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약 63%의 알바니아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종교가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여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상당히 세속화된 나라이다.

경제[편집]

과거 사회주의 계획 경제 국가였던 알바니아는 민주화 이후에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도입하였으나 1997년 금융 피라미드 사건으로 인해 내전에 휘말리기도 했다. 현재 알바니아의 경제 규모는 약 134억 달러(2011년) 규모로서 세계 115위이다. 2008년 조사 당시 알바니아의 산업구조는 20.6%가 농업 등 1차산업이며, 19.9%가 제조업 등의 2차 산업이며, 59.5%가 서비스업 등 3차 산업이다. 하지만,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노동력에 있어서는 약 58%가 농업에 종사하고, 약 15%가 제조업, 27%가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알바니아의 실업률은 13.3%(2010년) 정도이다. 전체인구의 12.4%(2008)가 빈곤층에 속한다.

알바니아의 수출량은 약 18억 8,600만 달러(2011)이며, 주요 수출품은 직물, 신발, 아스팔트, 크롬 등 금속과 채소, 과일, 담배 등이다. 주요 수출거래국으로는 이탈리아, 그리스, 오스트리아, 중국이 있다. 알바니아의 수입량은 약 50억 2,200만 달러(2011)이며, 주요 수입품은 기계 장비나 화학 제품과 식료품, 직물 등이다. 주요 수입거래국은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독일, 중국이다.

알바니아의 전력생산 규모는 약 52억 100만 킬로와트 시이며, 이는 세계 113위 규모이다. 알바니아의 전력 대부분은 댐에 의한 수력 발전에 의해 생산된다. 또한 알바니아에서는 소량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며 대부분이 국내에서 소비되게 된다.

대외 관계[편집]

공산정권 시절에는 다른 공산권 국가처럼 소련,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지만, 스탈린 사후 소련과, 마오쩌둥 사후 중국과 차례로 갈등을 빚으면서 외교관계가 끊어졌고, 1990년까지는 서방 국가와의 관계도 거의 없는 매우 고립된 국가였다. 그러나, 1991년 민주화 이후 대외개방에 나서서 현재는 미국, 유럽 연합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2009년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편집]

1948년 11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하였고, 1988년에는 당시 유럽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서울 올림픽에 불참했다. 그러나, 1991년 8월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92년 10월에 알바니아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였다.

1995년 5월에 대한민국과 과학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고, 1998년 11월에는 알바니아 외무장관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였으며, 2001년 2월에는 국회의장이 대한민국을 비공식 방문했다. 주 그리스 대한민국 대사관이 알바니아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공산주의 정권 시절 초기에는 소련과 매우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에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탈퇴했다. 1990년대에 외교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러시아보다는 서방 국가와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편집]

중국과는 소련과의 관계가 단절되면서 가까워졌으나, 마오쩌둥 사후에 양국 관계가 악화되어 외교관계도 끊어졌다. 1990년대에 관계가 회복되면서 현재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편집]

미국과는 1990년대 초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각주[편집]

  1. “The World Factbook —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영어).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2. Zolo, Danilo (2002년 8월 27일). 《Invoking Humanity: War, Law and Global Order》 (영어). A&C Black. ISBN 9780826456564. 
  3. “Strong GDP growth reduces poverty in Albania-study - Forbes.com”. 2012년 1월 17일.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4. “| Human Development Reports” (영어).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5. “BBC NEWS | Europe | Albania applies for EU membership” (영어). 2017년 5월 21일에 확인함. 
  6. Madrugearu A, Gordon M (2007). 《The wars of the Balkan Peninsula》. Rowman & Littlefield. p. 146쪽. 
  7. “isbn:069103169X - Google 검색”. 2017년 5월 24일에 확인함. 
  8. “isbn:9780631198079 - Google 검색”. 2017년 5월 24일에 확인함. 
  9. Robert Elsei. 《The Albanian lexicon of Dion Von Kirkman. Earliest reference to the existence of the Albanian language》. p. 113–122쪽. 
  10. “www.pinocacozza.it”. 2017년 5월 24일에 확인함. 
  11. Casanova. “Web*Radio*Skanderbeg” (이탈리아어). 2017년 5월 24일에 확인함. 
  12. Kristo Frasheri (1964). 《History of Albania (A Brief Overview)》. 
  13.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2010년 11월 9일). “The Albanian Language”. 
  1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알바니아 인민공화국
  15. 알바니아, EU 가입 신청
  16. 알바니아 반정부 시위로 3명 사망
  17. 알바니아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 外
  18. CIA The World Factbook CIA, 2017년 5월 14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