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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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الإسكندرية
Misr Train Station , Alexandria.jpg
알렉산드리아의 모습
Governadorat d'Alexandria.svg Alexandria Logo.jpg
시기 휘장
 • 별명: 지중해의 진주
알렉산드리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위치
좌표 북위 31° 12′ 00″ 동경 29° 55′ 00″ / 북위 31.2° 동경 29.916667° / 31.2; 29.916667좌표: 북위 31° 12′ 00″ 동경 29° 55′ 00″ / 북위 31.2° 동경 29.916667° / 31.2; 29.916667
행정
나라 이집트 이집트
행정구역 알렉산드리아 주
설립 기원전 331년
인구
인구 4,110,015명 (2006년)
지리
면적 2,679km²
기타
시간대 EST (UTC+2)
지역번호 ++3
웹사이트 http://www.alexandria.gov.eg/default.aspx

알렉산드리아(아랍어: الإسكندرية 알이스칸다리야[*], 그리스어: Αλεξάνδρεια, 이집트 구어체 아랍어: اسكندريه 에스켄데레이야)는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 주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로 이집트에서는 수도인 카이로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도시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처음 세운 이래 헬레니즘 이집트의 수도로 이집트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의 하나였다. 현재도 이집트의 천연가스와 송유관이 지나는 중요한 산업중심지이다.

고대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가 있었고 고대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적으로도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로 아리우스, 아타나시우스 등 교회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고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에는 유대교의 중심지로 많은 역할을 했다.

역사[편집]

알렉산드리아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기원전 331년으로 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의 이름으로 도시의 이름을 붙여 도시를 세울 것을 계획하고 유명한 건축가 디노크레테스에게 도시를 건설하게 했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동방원정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이 도시의 완성을 보지는 못하고 결국 죽었지만 부하인 클레오메네스가 도시건설을 계속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그의 계승자중의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창건하고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았다.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헬레니즘 세계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고 경제적, 문화적 중심지가 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등대"("파로스의 등대"라고도 불림)가 있었고 고대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여 유클리드도 이 도시 출신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또한 유대인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과 함께 알렉산드리아의 중요한 주민으로 유력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으며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번역본인 셉츄아진트본도 바로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왔다.

알렉산드리아
Alexandria egypt.jpg
문명 헬레니즘 문명
건립 연대 기원전 331년 ~ 기원전 200년
건립자 데노크라티스
알렉산드로스 대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계의 자유도시로 존재했었으나 기원전 80년 프톨레마이오스 10세로마 공화정의 영향아래 들어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 내전에 개입하였고 클레오파트라 7세가 옥타비아누스에게 반기를 든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고 아우구스투스 때부터는 로마 제국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

알렉산드리아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기 기독교의 가장 크고 번성한 교구가 바로 알렉산드리아 교구였고 기독교 교리와 신학의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이었다. 유명한 아리우스와 그의 반대자 아타나시우스가 이 도시에서 활동했다.

로마 제국의 이른바 3세기의 위기 이후 알렉산드리아는 무역과 경제가 차츰 쇠퇴해갔고 이집트의 중심은 점차 나일강 유역으로 옮겨갔다. 4세기에 이르러 이단 박해의 광풍이 로마 제국을 휘몰아치자 알렉산드리아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된 것도 이 때라고 한다. 이후 반달족의 아프리카 지배, 616년 페르시아 제국의 침입으로 알렉산드리아는 더욱더 쇠퇴하였고 641년 아랍의 공격에 14달 동안 버텼으나 결국 함락되어 이후에는 아랍의 영향 아래 들어갔다.

1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고 하며 19세기에 들어서야 터키영국의 지배하에 알렉산드리아가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