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 레바논 공화국 | |||
|---|---|---|---|
| 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لبنانية 프랑스어: République libanaise | |||
| |||
| 표어: 없음 | |||
| 국가: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 |||
| 수도 | 베이루트 북위 33° 53′ 13″ 동경 35° 30′ 47″ / 북위 33.886944° 동경 35.513056° | ||
레바논(레바논) | |||
| 정치 | |||
| 정치체제 | 단일 국가 의원내각제 공화국 (사실상 군사정부) | ||
| 헤즈볼라 총장¹ | 나임 카셈 | ||
| 대통령 총리 | 조제프 아운 나와프 살람 | ||
| 역사 | |||
| 독립 | 프랑스로부터 독립 | ||
| • 선언 | 1941년 11월 26일 | ||
| • 인정 | 1943년 11월 22일 | ||
| 지리 | |||
| 면적 | 10,452 km2 (161 위) | ||
| 내수면 비율 | 1.6% | ||
| 시간대 | UTC+2 (UTC+2) | ||
| DST | +3 | ||
| 인문 | |||
| 공용어 | 아랍어, 프랑스어 | ||
| 인구 | |||
| 2024년 어림 | 5,364,482명 (117위) | ||
| 인구 밀도 | 513명/km2 | ||
| 경제 | |||
| GDP(PPP) | 2022년 어림값 | ||
| • 전체 | |||
| • 일인당 | |||
| GDP(명목) | 2022년 어림값 | ||
| • 전체 | |||
| • 일인당 | |||
| HDI | |||
| 통화 | 파운드 (LBP) | ||
| 종교 | |||
| 종교 | 이슬람교 54%[3] 기독교 41%[4] 드루즈교 5% | ||
| 기타 | |||
| ISO 3166-1 | 422, LB, LBN | ||
| 도메인 | .lb | ||
| 국제 전화 | +961 | ||
| ¹. 사실상 최고 실권자 | |||
레바논 공화국(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لبنانية 알줌후리야 알루브나니야[*], 프랑스어: République libanaise 헤퓨블리끄 리바네즈[*]), 약칭 레바논(아랍어: لبنان 루브난[*], 프랑스어: Liban 리방[*])은 서아시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는 이슬람교 54%, 기독교 40.5%의 다종교 국가로, 시리아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수도는 베이루트이다.
역사
[편집]좋은 항구를 가진 혜택으로 레바논은 옛날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여 왔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이 해안지대를 근거지로 하여 티루스(지금의 티레)·시돈 등의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그 뒤, 바빌로니아·페르시아 제국·로마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는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했다. 로마 시대에는 티루스에 해군기지가 설치되었으며, 서기 300년대에 기독교가 널리 퍼졌다. 395년에 레바논은 동로마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600년대 초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된 후부터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이 시대에는 산악지대가 이슬람교의 분파인 시아파·드루즈파 등과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1~12세기에는 셀주크 터키와 십자군의 쟁탈장이 되었으며, 1516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정복되어 19세기까지 이 제국의 술탄 밑에서 반독립적인 여러 세력이 레바논을 지배했다.
19세기에 들어서자 오스만 제국은 레바논의 직접적인 지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마론파 기독교도와 이슬람교의 분파인 드루즈교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되었다. 이 분쟁에 프랑스가 개입한 것을 계기로 1861년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함에 따라 1920년 4월 산 레몬 회의에서 베카고원 등의 내륙부도 레바논에 합병되었으며, 1923년에는 시리아 등과 함께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다.
1926년 시리아에서 분리되어 위임통치 아래 자치국이 되었고, 1944년 1월에 완전독립을 달성했다.
독립 뒤 레바논은 복잡한 종파(宗派)의 대립을 배경으로 독특한 종교연합국가를 형성하였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아랍 여러 나라의 물자와 정보 제공의 중간자적 역할로 독자적인 번영을 유지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중동전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 1970년의 요르단 내전 이후 요르단으로부터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유입되어 레바논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후 레바논에서의 기독교인과 무슬림의 수가 거의 유사하게 되어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우위는 무너졌으며, 그 뒤 정세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종종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받았으며, 마론파 기독교인들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반대하는 팔랑헤(Phalange) 민병대를 결성했는데, 이스라엘이 팔랑헤 민병대를 지원하였으며 지금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친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와 헤즈볼라 무장단체 소탕을 위해 계속 팔랑헤 민병대 정당인 카테브당을 계속 지원하고 있는 중이다.
1975년 2월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지원하는 무슬림들과 이에 반대해 팔랑헤 민병대를 결성한 마론파 기독교인들의 내전이 일어났으며, 1976년 11월에는 시리아군의 개입을 초래했다. 또한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여 PLO 소탕을 위해 서(西)베이루트를 완전히 포위하고, 2개월에 걸쳐서 맹폭격을 가했다.
그해 8월 미국의 중재에 의하여 PLO의 서베이루트 주둔 군대의 철수 합의가 성립되어 약 1만 명의 PLO 게릴라는 아랍 세계 8개국으로 퇴거했다. 이후에도 1982년 9월의 기독교 민병의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사건, 1983년 7~9월의 기독교·이슬람교 각 파에 의한 내전 격화와 미국 해군의 함포사격, 1983년 10월의 미국 및 프랑스의 주둔 본부에서의 폭탄테러사건 등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84년 1월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무슬림 세력과 정부군·기독교 민병대의 내전이 또다시 격화되었으며, 미국 해군은 이슬람교 민병대 거점에 재차 함포 사격을 가했다. 그해 2월 이슬람교 세력이 총궐기하여 서베이루트를 제압했으며, 3월에는 시리아의 주도 아래 정전(停戰)이 실현되었다. 2006년에는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았다.
지리
[편집]
레바논은 북위 33도에서 35도, 동경 35도에서 37도 사이의 서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아라비아판의 북서부'에 걸쳐 있다.[5] 레바논의 면적은 10,452 제곱킬로미터 (4,036 sq mi)로 그 중 10,230 제곱킬로미터 (3,950 sq mi)는 육지이다. 레바논은 서쪽으로 지중해와 접하는 해안선 225 킬로미터 (140 mi)이 있고, 북쪽과 동쪽에 시리아와 접하는 경계 375 킬로미터 (233 mi)이 있으며 남쪽으로는 이스라엘과 79 킬로미터 (49 mi) 길이의 경계를 접하고 있다.[6]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의 경계는 셰바팜스라는 작은 구역을 두고 논란 중에 있다.[7]

레바논은 해안 평야, 레바논산맥, 베카 계곡, 안티레바논산맥 등 네 개 자연지리학으로 구분된다. 좁고 불연속적인 해안 평야가 북쪽 시리아 국경에서 뻗어나가며, 아카르 평야에서 넓어졌다가 남쪽 이스라엘 국경의 라스알나쿠라까지 이어진다. 비옥한 해안 평야는 해양 퇴적물과 하천이 운반해 쌓은 충적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모래 만과 암석 해안이 번갈아 나타난다. 레바논의 산맥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가파르게 솟아 있으며, 석회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능선을 형성해 국토 대부분에 걸쳐 이어진다.
레바논 산맥은 너비가 10 km (6 mi)와 56 km (35 mi) 사이로 다양하며 좁고 깊은 협곡들을 통해 깎여 형성되어 있다. 레바논산맥의 최고 해발 고도는 높이 3,088 미터 (10,131 ft)의 북부 레바논의 쿠르나트 앗 사우다이며 남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졌다가, 다시 솟아 올라 산닌산에서 해발 2,695 미터 (8,842 ft)에 이른다. 베카 계곡은 서쪽으로 레바논산맥과 동쪽 안티레바논산맥 사이에 있으며 대지구대의 일부이다. 베카 계곡은 길이 180 km (112 mi)에 너비 10~26 km로, 이곳의 비옥한 토양은 충적층으로 형성된 것이다. 안티레바논산맥은 레바논산맥과 평행하게 이어지며, 최고봉은 해발 2,814 미터 (9,232 ft)의 헤르몬산이다.[6]
레바논의 산맥은 계절성 급류와 하천들에 의해 배수되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길이 145 킬로미터 (90 mi)의 리타니강으로, 바알베크 서쪽 베카 계곡에서 발원하여 티레 북쪽에서 지중해로 흘러든다.[6] 총 16개의 강이 있으나 모두 항행이 불가능하며 그중 13개는 레바논산에서 발원해 협곡을 따라 지중해로 흐르고, 나머지 3개는 베카 계곡에서 발원한다.[8]
기후
[편집]레바논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띠고 있다. 해안 지역은 겨울에는 일반적으로 서늘하고 비가 내리는 한편 여름에는 덥고 습하다. 고지대에선 겨울에는 기온이 보통 영하로 떨어지며, 높은 산 정상에는 두꺼운 적설이 초여름까지 남아 있다.[6][9] 레바논 대부분 지역은 주변의 건조한 지역과 비교해 연간 기준으로는 비교적 많은 강수량을 받는 편이지만, 서쪽 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만들어내는 비그늘 현상 때문에 레바논 북동부의 일부 지역은 강수량이 매우 적다.[10] 2025년 태풍 아담 (Adam)으로, 강력한 한랭 기단이 레바논에 영향을 미쳐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해발 300미터 정도의 낮은 지역에서도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었다.[11]
행정부와 정치
[편집]레바논은 종파주의를 포함한 의회 민주주의 국가이다.[12] 1943년에 맺어진 국민 협정에서 레바논의 주요 종교 집단의 이익을 조화시킬 의도가 들어간 통치 체제를 마련했다.[13]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인만이 될 수 있고,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이어야 하고,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어야 하고, 부총리와 국회부의장은 동방 정교도만 될 수 있다.[14][15] 이 정치 체게는 종파 간의 갈등을 방지하고 레바논 정부 내 공인된 18개 종교 집단의 공정한 민주적 분배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16][17]
군대
[편집]레바논은 2007년 2월 10일 레바논 국회의 징병제 폐지안에 따른 헌법 개정으로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전환했다.
2015년 2월 9일 IS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레바논에 25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지원해줬다. 레바논은 미국의 무기지원국 중 5위에 속한다.
외교
[편집]레바논은 유럽 연합과의 협력조약에 관하여 2001년말 협상을 끝내고, 양측은 2002년 1월에 조약을 가조인하였다.
- 대한관계
레바논은 남북한 동시수교국이었지만 종파에 따라 대한관계의 시각도가 매우 다른 나라이다. 우경성향의 그리스도파, 특히 친이스라엘 성향의 마론파 기독교 민병대 정당인 레바논의 카테브당은 남한에 호의적인 관계를 보이고 있으며, 좌경성향의 이슬람파, 특히 친이란 성향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는 북한에 호의적인 관계를 보여서 사실상 등거리 외교노선을 걷고 있다. 1981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함께 동시 수교했다. 2017년 대한민국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레바논을 방문하였다.[18]
인구 통계
[편집]레바논은 2021년 기준으로 추정상 인구가 5,592,631명이었으며, 레바논 국적자는 같은 해 7월 기준 4,680,212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공식적인 인구 조사가 레바논의 다양한 종교 집단 간 민감한 종교 종파의 정치적 균형 문제에 따라 1932년 이래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19] 모든 레바논인을 민족적으로 아랍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범민족성의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운데 레바논인이란 "이 지역에 토착적으로 살았거나, 점령하고 침입하거나 정착해 온 수많고 다양한 사람들의 후손이며" 이 점이 레바논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문화들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진 곳”으로 이뤄지게 하고 있다.[a][22]
출산율은 1971년 5.00에서 2004년 1.75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다양한 종교 집단 간 상당하게 다양하며 2004년 기준, 시아파의 경우 2.10, 수니파의 경우 1.76, 마론파의 경우 1.61이었다.[23]
레바논인들은 19세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이민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부분적인 혈통까지 포함하면 레바논보다 해외에 거주하는 레바논인이 더 많다. 레바논은 독립한 이래로 여러 차례 이민의 물결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18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1975년부터 2011년까지 고국을 떠나 이민을 택했다.[23] 결과적으로, 수백 만에 이르는 레바논 혈통의 사람들이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특히 남아메리카[24]에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는 최대 규모의 레바논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고,[25] 브라질의 경우 최대 레바논인 집단인 5~7백만 명에 이른다.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에도 대규모 디아스포라가 있었고, 캐나다 (약 250,000~700,000명)와 미국 (약 2백만 명)에 집중되어 있다.[26] 오스트레일리아는 270,000명이 넘는 레바논인의 거처이다.[27]
많은 수의 레바논인들이 서아프리카로 이주하였으며,[28] 코트디부아르 (100,000명)와[29] 세네갈 (30,000명)에 집중되어 있다.[30] 페르시안/걸프만에도 다수의 레바논 국외 거주자들이 있으며,[31] 사우디아라비아가 269,000명으로 가장 많다.[32] 레바논 노동력의 3분의 1일에 해당하는 약 350,000명이 일부 출처에 따르면 걸프만 국가들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33] 레바논 디아스포라의 50% 이상은 기독교인들로, 부분적으로 1943년 이전 기독교인 대규모 이주 시기 때문이었다.[34]
레바논은 전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난민 수를 보유하고 있다.[35] 2024년 기준,[36] 레바논에는 160만 명이 넘는 난민 및 망명자들이 있으며 그 중 449,957명은 팔레스타인,[37] 100,000명은 이라크 출신이고,[38] 시리아에서 110만 명이 넘는 가운데,[37][39] 수단 출신이 최소 4,000명이 있다.[40] 국제 연합의 서아시아 경제 및 사회 위원회에 따르면, 시리아 난민 중 71%가 빈곤 속에 살고 있고 80%는 합법적 거주자가 아니라고 한다.[41] 다른 추정 자료에서는 2024년 기준 시리아 난민 인구를 150만 명으로 잡는 가운데,[35] 국제 연합의 2013년 추정 자료의 125만 명과 대조적이다.[42]
지난 30년간, 오랜 기간 지속된 파괴적인 무장 충돌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 레바논인의 다수는 무장 충돌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이 중에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한 경우는 인구의 75%에 이르며, 나머지 다수는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한다. 결과적으로 전체 인구의 대부분 (96%)은 직접적으로 또는 무장 충돌의 방대한 결과로 인해서든 어떠한 방식으로도 영향을 받고 있다.[43]
언어
[편집]1990년 헌법 11조에 "아랍어가 공용어이다. 프랑스어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는 법률로 정해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44] 레바논인의 대다수는 레반트 아랍어라고 불리는 큰 범주에 속하는 레바논 아랍어를 사용하며, 현대 표준 아랍어는 잡지, 신문, 공식 방송 매체에서 주로 사용된다. 레바논 수어는 청각 장애 공동체에서 사용된다.
프랑스어, 영어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레바논인의 대략 40%는 프랑스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여기며, 15%는 부분적으로 사용한다고 하였고, 레바논의 중등 학교 70%는 프랑스어를 제2국어로 가르치고 있다.[45] 이와 대조적으로, 영어는 레바논의 중등 학교에서 30%에서 제2 국어로 쓰이고 있다.[45] 프랑스어 사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레바논 위임통치령을 포함한 이 지역과 프랑스의 역사적 관계의 유산이며 2005년 기준[update], 프랑스인의 20%는 프랑스어를 일상에서 사용했다.[46] 레바논의 교육받은 젊은 층에서 아랍어 사용이 감소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나 영어로 소통하기를 선호하는데, 이 언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한층 세련된 것이라 여기고 있다.[47][48]
영어는 과학 및 사업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49][50] 아르메니아, 그리스 또는 아시리아계 출신 레바논 시민권자들은 일반적으로 조상 언어를 유창성의 정도는 다르지만 대체로 사용한다. 2009년 기준[update], 전체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레바논 내 아르메니아인 약 150,000명이 존재한다.[51]
종교
[편집]레바논은 시리아와 함께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 국가로서, 여러 종파를 인정한다. 무슬림의 수가 많지만 종래 정치적으로 우세를 보인 기독교 정치 세력의 힘이 상당하기 때문에 비이슬람 국가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종파적 다양성은 레바논 사회에 정치적 통일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52]
레바논의 인구 구성은 아랍인이 95%, 아르메니아인이 4%이며, 종교는 이슬람교 54%(수니파 27%, 시아파 27%), 기독교 40.5%, 드루즈교 5.5%이다.[53] 기독교는 마론파가 21%로 기독교인의 절반을 조금 넘고, 동방정교회가 8%,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5%, 그 밖의 기독교 종파들이 6.5%를 차지한다.[53]
마론파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년)에서 그리스도 단의론적 이단으로 낙인찍혔으나, 후에 십자군 관계로 12세기에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600년대 초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이슬람교 세력이 레바논 지역을 정복하면서 서서히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지금의 레바논은 프랑스가 시리아를 독립시킬 당시 마론파 기독교인이 다수 거주하던 프랑스령 시리아의 서남부 해안가를 분리해 독립시킨 곳으로서 독립 당시에는 기독교 비율이 절반을 넘었으나, 현재는 오히려 이슬람 인구가 절반을 넘어 기독교 국가도, 이슬람 국가도 아닌 다종교, 자유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는 무슬림의 수가 많지만 독립 당시의 인구를 바탕으로 마론파 기독교 정치세력이 힘의 우위를 보여왔기 때문에 양측간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기독교계가 대통령을 차지해 왔는데, 최근에는 증가한 인구를 바탕으로 이슬람교계의 입김이 강하져 기독교인인 대통령은 이슬람계의 지원을 얻지 않고서는 국정을 운영하기 어려우며 심지어는 대통령의 선출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레바논에서는 정계에서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이 동등하게 자리를 나누어 힘의 균형을 이루어 종교 간의 공존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러한 정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는 심각한 무능과 부패, 혼란에 빠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54][55][56]
기아문제
[편집]레바논의 기아문제는 많이 개선된 상태이다. 아일랜드 NGO인 컨선월드와이드(Concern Worldwide), 독일의 NGO인 세계기아원조(Welthungerhilfe) 그리고 미국의 연구기관인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가 협력하여 매년 발간하는 세계기아지수(GHI)에 따르면, 2016년 레바논의 기아지수는 100점 만점 중 7.1점으로 가장 심각한 기아점수를 기록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46.1점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이다. 이는 조사 대상이었던 118개의 개발도상국 중 26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하지만 꾸준히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여온 다른 나라들에 비해 1992년의 11.4점에서 2016년까지 겨우 4점 정도의 감소를 보인만큼 그 개선 정도가 매우 느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기아종식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57]
참조
[편집]각주
[편집]- 1 2 3 4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October 2023 Edition. (Lebanon)”. 《IMF.org》. 국제 통화 기금. 2023년 10월 10일. 2023년 10월 15일에 확인함.
- ↑ “Human Development Report 2025” (PDF) (영어). 유엔 개발 계획. 2025년 5월 6일. 2025년 5월 6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25년 5월 6일에 확인함.
- ↑ 수니파 26%
시아파 25% - ↑ 마론파 22%
그리스 정교회 8%,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교회 5%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4%
개신교 2% - ↑ Egyptian Journal of Geology – Volume 42, Issue 1 – Page 263, 1998
- 1 2 3 4 Etheredge, Laura S (2011). 《Syria, Lebanon, and Jordan – Middle East: region in transition》. The Rosen Publishing Group. 85–159쪽. ISBN 978-1-61530-414-1.
- ↑ Philps, Alan (2000년 6월 19일). “Israel's Withdrawal from Lebanon Given UN's Endorsement”. 《The Daily Telegraph》. 2009년 2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월 17일에 확인함.
- ↑ “National action plan for the reduction of pollution into the mediterranean sea from land based sources” (PDF). 《studies.gov.lb》. REPUBLIC OF LEBANON MINISTRY OF ENVIRONMENT. October 2005. 2026년 1월 20일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2026년 1월 20일에 확인함.
- ↑ (Bonechi et al.) (2004) Golden Book Lebanon, p. 3, Florence, Italy: Casa Editrice Bonechi. ISBN 88-476-1489-9
- ↑ “Lebanon – Climate”. Country Studies US. 2013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월 17일에 확인함.
- ↑ “With Storm Adam, snow up to 300 meters above sea level” (영어). 《L'Orient Today》. 2025년 2월 19일. 2025년 2월 20일에 확인함.
- ↑ Bureau of Democracy, Human Rights, and Labor (2003년 3월 31일). “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 – 2002: Lebanon”. US Department of State. 2021년 2월 2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월 17일에 확인함.
- ↑ Cohen, Saul Bernard (2015). 〈Chapter 12: The Middle East Shatterbelt〉 3판. 《Geopolitics: the geography of international relations》. Lanham Boulder New York London: Rowman & Littlefield. 402쪽. ISBN 978-1-4422-2349-3.
- ↑ “Lebanon's Confessionalism: Problems and Prospects”. United States Institute of Peace. 2009년 3월 22일. 2009년 3월 2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월 17일에 확인함.
- ↑ Marie-Joëlle Zahar. “Chapter 9 Power sharing in Lebanon: Foreign protectors, domestic peace, and democratic failure”. 2011년 6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3년 1월 17일에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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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 안보리, 레바논에 새 대통령 선출 촉구…레바논 의회, 정족수 미달로 또 파행 연합뉴스, 20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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