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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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공화국
스페인어: República de Guatemala
Flag of Guatemala.svg Coat of arms of Guatemala.svg
국기 국장
표어 스페인어: El País de la Eterna Primavera
(영원한 봄의 땅)
국가 과테말라 국가
Guatemala on the globe (Americas centered).svg
수도 과테말라 북위 14° 36′ 48″ 서경 90° 32′ 07″ / 북위 14.613333° 서경 90.535278° / 14.613333; -90.535278
정치
공용어 에스파냐어
정부 형태 대통령제 공화국
대통령 오토 페레스 몰리나
부통령 록사나 발데티
역사
독립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1821년 8월 21일
지리
면적 108,890km² (103 위)
내수면 비율 0.4%
시간대 UTC-6 (UTC-6)
DST 없음
인구
2005년 어림 12,599,000명 (70위)
인구 밀도 134.6명/km² (55위)
경제
GDP(PPP) 2004년 어림값
 • 전체 $627.8억 (71위)
 • 일인당 $4,155 (143위)
HDI 0.581 (133위, 2012년 조사)
통화 케찰 (GTQ)
기타
ISO 3166-1 320, GT, GTM
도메인 .gt
국제 전화 +502

과테말라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 Guatemala 레푸블리카 데 과테말라[*], 문화어: 과떼말라)은 중앙아메리카의 나라이다.

북쪽과 서쪽은 멕시코, 동쪽은 벨리즈카리브해, 남쪽은 태평양과 접해있다.

역사[편집]

"과테말라"라는 말의 기원은 원주민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혹자는 그 이름이 마야-톨텍(Maya-Toltec)어로 "나무의 땅"이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다른 의견으로는 나후아틀어로 "Quauhtitlan"인데 이것은 "나무들 사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스페인의 정복 기간 중에서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를 수행하였던 틀라스칸테칸(Tlaxcaltecan) 군사들이 이 지역에 붙인 이름이었다. 아마도 그들의 말로 "Quiche"로 번역되며, 이것은 "많은 나무"를 뜻한다.

또 다른 생각은 과테말라라는 이름이 나후아틀어로 "coactlmoctl-lan"가 스페인어로 변형된 것인데, 이것은 "뱀을 먹는 새의 땅"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과테말라의 독수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테말라에 인간이 정착했던 것을 보여주는 최초의 흔적은 적어도 기원전 1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 과테말라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 흑요석 화살촉 등 몇 가지 증거들로 미뤄볼 때 기원전 18,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1] 과테말라 선주민이 채집 및 수렵 생활을 하였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그러나, 페텐 분지(Petén Basin)와 태평양 해안에서 나온 꽃가루 샘플은 기원전 3500년경, 옥수수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보여준다. 고원지대인 엘 키체(El Quiché)주와 중부의 태평양 해안에 위치한 에스쿠인틀라(Escuintla)주 시파카테에서 고고학적 유물(기원전 6500년)이 발견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1821년 과테말라는 벨리즈와 함께 멕시코에 가입된 상태에서 독립을 이루었고 1839년경에 완전 독립을 이루었다.

자연 환경[편집]

과테말라는 동서가 산맥으로 이루어지면서 국토를 세 개의 지방으로 나눈다. 태평양쪽의 좁은 해안평야와 북부의 넓은 저습지(低濕地)는 덥고 건강상 좋지 않은 지방이다. 이를 빼고서는 산악지대가 많은데, 중앙의 산지(山地)나 고원은 상당히 시원하고 쾌적하다. 건계(乾季)와 우계(雨季) 중에서 특히 건계에는 지내기 좋다. 따라서 인구의 태반이 중앙고지에 집중해 있으며, 수도 과테말라시티도 해발 약 1,500m의 고지에 있다. 중앙산지는 멕시코에서 계속되는 험준한 습곡산맥(褶曲山脈)이며, 태평양 연안을 따라 화산이 즐비하다. 화산성 토양은 비옥하므로 이 지역에는 농업이 발달해 있다. 활화산(活火山)이나 지진의 활동도 격심하다. 약 50년 전의 대지진에서는 수도가 거의 파괴되었다.

모든 주요 도시는 태평양 연안 지역에 있으며 북쪽의 페텐 지역은 산발적으로 인구가 분포하다. 해발고도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며 저지대일수록 습하고 열대 기후에 가깝다. 반대로 높은 지역은 상당히 건조하다.[2]

과테말라 내를 흐르는 강은 대개 얕고 짧지만 리오둘세 강의 경우 더 크고 깊으며 주요 강은 이웃 국가인 벨리즈를 거쳐 카리브 해멕시코 만으로 흘러들어간다.

과테말라는 오랫동안 벨리즈와 영토 분쟁이 있었다. 이것은 과거 스페인의 식민 역사 때문이기도 한데 현재까지 양국이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다.

정치[편집]

대통령제 국가이다. 1821년 에스파냐로부터 독립, 1823년부터 1839년까지는 중앙아메리카 연방의 일원이었다. 1839년 재독립하였으나, 독재와 쿠데타가 반복되어 오늘날까지 민주주의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2]

행정[편집]

과테말라의 주

과테말라의 주(departamento)들은 다음과 같다.

  1. 알타베라파스 주(Alta Verapaz)
  2. 바하베라파스 주(Baja Verapaz)
  3. 치말테낭고 주(Chimaltenango)
  4. 치키물라 주(Chiquimula)
  5. 페텐 주(Petén)
  6. 엘프로그레소 주(El Progreso)
  7. 키체 주(Quiché)
  8. 에스쿠인틀라 주(Escuintla)
  9. 과테말라 주(Guatemala)
  10. 우에우에테낭고 주(Huehuetenango)
  11. 이사발 주(Izabal)
  1. 할라파 주(Jalapa)
  2. 후티아파 주(Jutiapa)
  3. 케찰테낭고 주(Quetzaltenango)
  4. 레탈울에우 주(Retalhuleu)
  5. 사카테페케스 주(Sacatepéquez)
  6. 산마르코스 주(San Marcos)
  7. 산타로사 주(Santa Rosa)
  8. 솔롤라 주(Sololá)
  9. 수치테페케스 주(Suchitepéquez)
  10. 토토니카판 주(Totonicapán)
  11. 사카파 주(Zacapa)

과테말라 시는 열대고원에 위치하는 과테말라의 수도이자 중미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인구 82만 3,301명(1994). 기온은 연평균 20 로 쾌적하나 지진의 피해가 많다.

대외 관계[편집]

과테말라는 대한민국과 1962년 수교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2007년 수교하였다. 주(駐)과테말라 미국 대사관은 과테말라 시티에 있다. 미국 국무성에 따르면, 미국과 과테말라는 전통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인권, 시민 운동, 군사 문제 등에서 때로 갈등을 빚어왔다.[3]

과테말라는 또한 1948년 대한민국을 독립국으로 정식 승인하였다. 대한민국은 1974년 과테말라에 대사관을 설치하였고, 과테말라 측은 1977년 주한국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경제[편집]

전체 인구의 60%가 농촌에 거주하고 전체 취업 인구의 50%가 농업에 종사하며 대부분이 소작농이다. 1994년 이래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21억 달러의 외채, 인플레이션, 실업 등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면화·바나나·설탕·원유 등이며, 수입품은 소비재 연료·윤활유 등이다.[2]

국민의 생활 수준은 평균적으로 낮은 편이다. 평균 수명은 64세이다.

빈부의 차이는 너무 심하고 인구의 10%가 국민 전체의 소득의 47%를 차지하는 한편, 국민의 57%는 빈곤층에 속해 있다. 도시지역과 농촌부의 빈곤차이도 크고 지방 농촌에서는 빈곤층이 76%에 이른다.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야족 등 선주민은 대체로 영세한 소규모 농업에 종사했고 스페인어를 읽고 쓰는 데에 서툴기 때문에 다른 직업에 종사할 기회도 적다.

한국 봉제기업들의 진출로 과테말라 전체수출의 1/6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 한국인들에 대한 납치, 살인이 빈번하다.[출처 필요]

사회[편집]

과테말라는 300∼900년경에 원주민 마야민족이 찬란한 마야문명을 꽃피웠던 곳이나 현재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문맹이며, 의무교육제도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과테말라의 민속악기 마림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곳곳에 마야의 풍속이 짙게 남아 있어, 도시 특권층의 서구 생활양식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과테말라는 마을에 따라 옷색깔이나 머리 장식이 다른데, 하나같이 원색의 기하학적 무늬를 즐겨 사용한다. 그래서 과테말라의 시장은 항상 원색의 물결을 이룬다. 해발 2071m에 자리잡은 치치카스테낭고는 인디오말로 가시가 있는 지치자라는 땅을 뜻하는데 목요일과 일요일에 서는 시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과테말라의 축제는 그리스도교와 마야 토착종교의 제사가 혼합된 것으로 그 수가 많다. 마을마다 수호 성인의 축제일이 있다. 축제일에는 큰북, 피리 등의 민속악기 연주와 정복자의 춤, 무어인과 그리스도교도의 춤 등 전통무용을 볼 수 있다.[2]

주민[편집]

이 나라는 중남미에서 중앙아메리카 원주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다. 중앙아메리카인의 원주민과 라디노(Ladino) 또는 메스티조(아메리카 인디안과 스페인인의 혼혈)과 백인(주로 스페인인. 또한 독일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스칸디나비아인 후손도 있음)이 59.4%를 차지하며, 아메리카 인디안은 키체(K'iche) 9.1%, 카치켈(Kaqchikel) 8.4%, 맘(Mam)족 7.9%, 케치(Q'eqchi) 6.3%이다. 기타 8.6%는 다른 마야인이고, 0.2%는 비(非)마야 원주민, 0.1%는 기타이다.[4] 지배계급은 혼혈이다.

교육[편집]

문맹률은 69.1%인데, 중앙아메리카에서 아이티니카라과 다음이다. 국민들은 대부분 빈곤하다.

인물[편집]

리고베르타 멘추(1959~ )가 과테말라 토착민들의 인권과 권리향상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9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언어[편집]

공용어에스파냐어로 국민의 60%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의 40%는 각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대부분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를 이루는 기독교인 사회이다.

관광[편집]

과테말라는 마야문명의 유적이 많은 곳으로써 대성당과 같은 근대적 빌딩과 전통적 건축물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 중앙공원(Parque Central)은 시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휴식처로 주위에는 북쪽에 정부청사와 공원서쪽에는 성당 등 주요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정부청사는 1939∼1943년에 걸쳐 세운 조각이 정교한 중요건물이며, 메트로폴리탄 성당은 1809년에 완성된 흰색건물이다. 이 주변은 최대의 번화가로 상점가, 영화관 등이 모여 있다. 아틀란호(Lago Atitlan)는 과테말라시티에서 서쪽으로 약 150㎞에 위치, 해발 1,562m에 있는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칼데라 호수이다. 호수 주변에는 산페드로 산(Volcan San Pedro, 3,020m), 톨리산(Volcan Toliman, 3,158m), 아티틀란산(Volcan Atitlan, 3,535m)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또 아티틀란 호반에는 인디오 촌락이 있다. 치치카스테낭고(Chichicastenango, 일명 인디오 마을)는 과테말라에서 두 번째로 큰 종족인 마야 키체 족의 마을이다. 해발 160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고, 교통상 오지에 속해 아직도 많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치치카스테낭고란 "가시가 있는 치치나무가 자라는 땅"이란 뜻의 인디오 말로 그냥 "치치(chichi)"라고도 한다. 이 작은 마을에 일주일에 두 번 목요일과 일요일, 장이 열리면 인근 인디오들이 모여 일용품에서부터 민예품을 매매하는 장이 열린다. 장이 열리기 하루 전날부터 시골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5] 과테말라다운 생활·문화·전통 등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2]

주석[편집]

  1. Mary Esquivel de Villalobos. Ancient Guatemala. Authentic Maya. 2007년 4월 29일에 확인.
  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과테말라
  3. Background Note: Guatemala. US State Department. 2009년 7월 6일에 확인.
  4. Guatemala. 《World Factbook》. CIA. 2009년 2월 18일에 확인.
  5. 채지형. "[세계시장산책] 색으로 살아난 마야의 신비", 《중앙일보사》, 2007년 12월 6일 작성. 2009년 6월 18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