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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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Christopher Columbus
사후에 그려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초상화
출생1450년 10월 31일(1450-10-31)
제노바 공화국 제노바
사망1506년 5월 20일(1506-05-20) (55세)
카스티야 연합왕국 바야돌리드
성별남성
경력서회 항로 개척
직업탐험가
서인도 제도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서명
Columbus Signature.svg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영어: Christopher Columbus, 이탈리아어: Cristoforo Colombo 크리스토포로 콜롬보[*], 영어: Christopher Columbus 크리스터퍼 컬럼버스[*], 라틴어: Christophorus Columbus 크리스토포루스 콜룸부스[*], 스페인어: Cristóbal Colón 크리스토발 콜론[*], 포르투갈어: Cristóvão Colombo 크리스토방 콜롬부[*], 1450년 10월 31일 제노바 ~ 1506년 5월 20일 바야돌리드)는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항해 이전 삶[편집]

콜럼버스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제노바 공화국 출신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 외에는 카탈루냐 출신이라거나 유대인이라는 설 등이 있다) 여러 기록에 따르면 젊은 시절 교육을 잘 받지 못하였고 지중해에서 선원으로 활동하였다.

어떻게 포루투갈까지 갔는지는 불확실하다.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콜럼버스가 쓴 전기에 따르면 해상 전투에서 배가 난파되었는데 포루투갈에서 구조되었다고 한다. 이후 포루투갈에서 활동하며 그곳에서 결혼까지 했다. 이 시기에 신항로 개척에 대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콜럼버스의 탐험[편집]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중세 유럽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때문에 그는 대서양을 건너서 서쪽으로 가면 아시아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발상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였으나,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지나 아시아까지 가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엄청난 계산 실수로 이 루트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지구의 둘레 값인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결과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천문학자 알프라가누스의 값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아랍 마일로 적혀있던 알프라가누스의 계산결과를 로마 마일로 잘못 이해한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의 3/4 정도로 생각했다. 거기다 당시 유럽에는 아시아의 정확한 크기를 측정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위치를 실제보다 14,000km 이상 가깝다고 보았다.

1484년 포르투갈의 왕 주앙 2세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제안하고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희망봉 루트를 준비 중이던 왕이 허락하지 않자, 스페인으로 갔다. 당시 스페인은 카스티야아라곤으로 구분되어 있어,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 1세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가 카스티야를 공동 통치하고 페르난도가 아라곤을 단독 통치하는 상태였다. 정치, 지리, 종교적 통일을 이룩하고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과 페르난도 부부는 해외 진출에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콜럼버스가

  1. 기사와 제독 작위
  2. 발견한 땅을 다스리는 총독의 지위
  3. 얻은 총 수익의 10분의 1

이라는 실현 가능성없는 조건을 제시하자 포르투갈에서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 교회의 성직자들은 포르투갈 교회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더 넓은 선교지를 필요로 했고, 때문에 콜럼버스를 위해 여왕을 설득했다. 결국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등용하였다.

이사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하였고, 그가 발견하는 것의 10퍼센트(%)를 콜럼버스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 하에 선박 2척(핀타호와 니나호)을 내주었다. 하지만 워낙에 무모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참여하겠다는 서원이 많지 않았다. 결국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범죄자와 부랑자들 까지 승무원으로 모집하였다. 팔로스항(Palos)에 사는 핀손이라는 선장이 자기 소유의 선박인 산타 마리아호와 함께 참가하였다.

계약 후에도 이사벨 여왕이 계속 지원을 미뤘기 때문에, 실질적인 항해까지 걸린 시간은 6년이나 되었다.(당시 콜럼버스의 나이는 39세였다)

콜럼버스의[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항로

서회 항로 탐험[편집]

콜럼버스가 탐험을 시작한 것은 당대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중요한 사명인 기독교의 전파 혹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이 아닌 각종 향신료의 수입을 위한 인도의 교역으로 얻을 수 있는 금과 보물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를 보면 금과 보물에 대한 언급이 10일 분량에 수백 차례나 등장한다. 또한 이사벨 여왕과의 계약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부의 축적이었다. 콜럼버스는 총 4차례나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항해하였는데, 아메리카에 상륙한 것은 그 가운데 제1차 항해때의 일이다.

제1차 항해의 출범은 1492년 8월 3일이었으며, 같은 해 10월 12일에 현재의 바하마 제도(Bahamas)에서 과나하니 섬(추정)에 도달했고, 이 섬을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구세주의 섬)이라 칭하였다. 이어서 그는 쿠바·히스파니올라(아이티, Haiti)에 도달하여, 이곳을 인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칭하였다. 이후 항해 도중, 산타마리아호가 파손되어 한 섬에 약 40명의 선원을 남긴 후에 에스파뇰라(Española, 후 스페인)라고 이름지었다.

제1차 항해 후 1493년 3월[1]에 귀국하여 왕 부부로부터 ‘신세계’의 부왕으로 임명되었다. 제1차 항해 후 아메리카에서 그가 가져온 금제품이 전 유럽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일화도 생겨났다.[2] 17척에다 1,200명의 대선단에 따른 제2차 항해(1493년 9월 24일)는 그의 선전에 따라 금을 캐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히스파니올라에 남겨 두었던 식민지 개척자는 인디오의 저항으로 전멸해 버렸으나, 콜럼버스는 여기다 식민지 행정관으로서 이사벨라 시를 건설하는 한편, 토지를 스페인인 경영자에게 분할해 주고 인디언에게는 공납(貢納)과 부역(경작과 금 채굴)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금의 산출량이 보잘것없자, 항해자들은 원주민들을 학대·살육·성폭행 하였으며 노예화 하였다. 이 항해에서 스페인으로 보낸 산물은 주로 노예였으며, 이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오자(1496년) 문책당하였다.

제3차 항해(1498년 ~ 1500년)에서 트리니다드 토바고오리노코 강 하구(河口)를 발견하였다. 콜럼버스는 제3차 항해에서 칼데아 신아람어히브리어에 능통한 선원 두 명을 데리고 갔다. 목적지인 남아시아에 다다르게 될 경우, 에덴 동산의 거주자들이 이 두 언어를 쓸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리노코 강 하구를 에덴 동산의 관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신의 명으로 불꽃의 검을 들고 그곳을 지키고 있는 케루빔이 자신의 배들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그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았다.[3] 제3차 항해 도중, 히스파니올라에서 내부 반란으로 그의 행정적 무능이 문제시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제4차 항해(1502년 ~ 1504년)의 허가는 바스쿠 다가마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 때문으로 보이나, 그 사정은 명백하지 않다. 이 항해에서 그는 온두라스파나마 지협(地峽)을 발견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풍관절염으로 수년간 고생하던 그는, 1506년 5월 20일 바야돌리드에서 사망하였다. 사망할 때까지 그는 자신이 도착했던 땅이 인도라고 확신했다.

평가[편집]

긍정적 평가[편집]

그의 서회 항로 개척으로 인하여 아메리카 대륙이 비로소 유럽인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현재의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대가 생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사실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 선사 시대에 아시아인들이 이미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였고, 9세기바이킹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아메리카 대륙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부정적 평가[편집]

원주민을 잔혹하게 학살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각주[편집]

  1. 송동훈 <대항해 시대의 탄생> 시공사 2019.4.25 p200
  2. 그러나 이 일화는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3. 칼데아 신아람어와 ~ : 스튜어트 리 앨런,《악마의 정원에서》(생각의 나무, 2005) 30쪽.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