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돌리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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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장소였던 바야돌리드 산그레고리오 성당 외벽에 조각된 야생인(wild man) 그로테스크.

바야돌리드 회의(스페인어: Junta de Valladolid 훈타 데 바야돌리드[*])는 1550년에서 1551년 사이 에스파냐바야돌리드에서 아메리카 식민화에 관해 벌어진 신학토론회다. 서양사상 최초의 피식민지인의 인권에 관한 주제가 거론된 자리다. 주된 대화 주제는 미주 식민화가 천주교 개종에 의해 정당화되는지 여부, 그리고 백인 식민자들과 신세계 원주민들간의 관계 같은 것이었다.

도미니코회 수도사이자 치아파스 주교였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가 원주민의 자연권(rights of nature)을 옹호하며 그들이 에스파냐에서 건너간 식민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입장에 섰다.[1] 반대편에서는 저명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가 원주민들의 식인풍습 등을 들어 그것이 "자연에 반하는 죄(crime aginst nature)"임을 주장하며 어떤 수를 동원해서라도, 필요하다면 전쟁을 통해서도 그 짓을 멈추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양측 모두 서로 자기가 이겼다고 주장했지만, 논쟁 자체에서 누가 이겼는지 뒷받침할 만한 사료는 없다. 이 사건은 식민주의와 피식민지인의 인권, 그리고 국제관계에 관한 최초의 도덕성 논쟁으로 여겨진다. 라스 카사스 등은 1542년 엔코미엔다를 규제하는 신법 통과에 기여한 바 있는 인물이었다. 이것으로 인디오들의 상황이 완전히 좋아지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개선이 이루어졌다.[3] 또한 이 회의는 16세기 에스파냐가 이후 후발 식민열강들 역시 겪게 될 도덕과 정의의 문제에 처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서 중요성을 갖는다. 결국 이 논쟁의 결론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로 노동력을 충원하는 것으로 귀결되게 되었다.

각주[편집]

  1. Crow, John A. The Epic of Latin America, 4th ed.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92.
  2. Ginés de Sepúlveda, Juan (trans. Marcelino Menendez y Pelayo and Manuel Garcia-Pelayo) (1941). Tratado sobre las Justas Causas de la Guerra contra los Indios. Mexico D.F.: Fondo de Cultura Económica. 155쪽. 
  3. Bonar Ludwig Hernandez. “The Las Casas-Sepúlveda Controversy: 1550-1551” (PDF). Ex Post Facto (San Francisco State University) 10: 95–104. April 21, 2015에 원본 문서 (PDF)에서 보존된 문서. September 13, 2011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