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난 코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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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코르테스 몬로이 피사로 알타미라노(스페인어: Fernando Cortés Monroy Pizarro Altamirano, 1484년 ~ 1547년 12월 2일)는 멕시코지역의 아즈텍 문명을 정복한 스페인정복자이다.

생애[편집]

스페인의 시골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급 귀족 출신으로 살라망카 대학에서 수학 후 19세 때인 1504년 대서양을 건너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근무하였다. 1511년 총독인 디에고 벨라스케스 휘하에 근무하면서 쿠바를 점령하였고 이 전투에서 상당한 공적을 세웠다.

아스텍 문명 정복[편집]

코르테스는 유카탄 반도에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탐험대장으로 내정되었다.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를 두려워한 총독 벨라스케스가 이를 번복하자 1519년 병사 508명과 말 16필을 11척의 배에 나누어타고 독자적으로 유카탄 반도에 상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베라크루스라는 도시를 건설하였고 유카탄 반도의 마야족들과 전투를 벌이면서 부족들을 점령해나갔다. 말이나 대포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틀락스칼라인들은 한번의 전투 후 코르테스에게 항복하였다. 코르테스는 원주민을 통해 아스텍 왕국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왕국을 정복하기 위해 진군하였다. 코르테스는 아스텍 왕국에 들어갔으나 아스텍황제 몬테수마2세가 베라크루즈를 기습해 오히려 황제를 사로잡을 구실을 만들어주었고, 황제는 궁에 갇히고 포로신세로 변하게 된다. 그의 행동을 좋지않게본 쿠바총독 벨라스케스가 판필로 나르에바스에게 900명의 에스파냐인과 500명의 흑인노예를주어 코르테스를 토벌하라고 한다. 결국 수비대장 후안 데 에스칼란데가 전사하면서 그는 이일이 보통일이아니라고 판단, 그는 그의 부관이자 친구였던 알바라도에게 100명의 군대를 남겨주고 테노치티틀란을 떠난다. 알바라도는 신중한 인물이 아닌듯했다. 그는 우이칠포로치틀리 봄축제를 즐기는 아스텍귀족들이 반란을 모의한다고 판단, 군대를 이끌고와서 귀족 1만명을 학살했다. 코르테스일행이 승리를거두고 돌아왔을때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그래서 알바라도에게 좌초지종을 물었더니, 그가 대답을하자 그는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도시를 빠져나가려하지만 포위당한다. 그래서 황제로 하여금 설득하라고하지만, 황제는 흥분한 관중들의 돌과 화살을맞고 사망한다. [이 설에는 다양한 설이 있다.] 이게 6월 25일 슬픔의 밤이다. 코르테스는 일행을 데리고 6월 30일 탈출을 시도하지만, 아스텍인들의 공격으로 대부분 사망하고, 석궁과 대포, 철갑옷, 철검, 철투구, 아르퀘버스등의 무기들을 탈취당한다. 군마도 23마리만 남고만다. 동맹국 틀락스칼라까지 150마일의 지옥의 행군을 해야했다. 그들은 7월7일 오툼바에서 테노치티틀란-텍스코코-타쿠바 [아스텍 삼각동맹]군 4만을 보게된다. 모든 병사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입은상태였고, 석궁이나 아퀘버스도 없었다. 에스파냐인 400명과 1~2000명의 틀락스칼라인뿐이었다. 아스텍군은 심지어 탈취한 스페인무기 [물론, 아퀘버스나 석궁은 사용법을 모른다.]로 무장하고 있었다. 코르테스는 단단한 사각진형을짜고 에스파냐인 뒤에 틀락스칼라인들을 배치했다. 틀락스칼라인들은 크게 환영했는데, 그들은 슬픔의밤이후로 아스텍군을 크게 두려워했고, 에스파냐군과 전투를한적이 있었으므로, 그들의 무기의 강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병은 부관에게 맡긴뒤 자신은 23기의 대부분 부관출신으로 이루어진 기병대를 이끈다. 그는 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시우아코아틀[나우나틀어로 군사지휘관]을 눈여겨 보았다. 시우아코아틀은 코르테스에게 갈기갈기 찢겨 살해되고, 나머지 아스텍 부관들은 그의 기병대가 살해했다. 시우아코아틀이 죽은걸안 아스텍군들은 모두 달아나기 바뻤다. 코르테스는 이전투에서 2번이나 아스텍 돌팔매에 맞았으며, 슬픔의 밤때난 손가락상처가 악화되어 2개의 손가락을 쓸수없게되었다. 대부분의 사상자는 부상자들이었으며, 애초에 아스텍군은 포로를잡기위해 상대를 죽이지않아, 보통은 달려들어서 묶기바빠서 대부분 한번에 찔러죽이라는 코르테스의 말에따라 죽었다. 사상자는 정확히 언급되지 않으나, 몇천명에 이를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코르테스와 부관들이 죽인 지휘관들은 몇안되는 나머지 아스텍 귀족들이므로, 아스텍의 피해는 매우컸다. 그이후 9월에 에스파냐의 정복자들에 의해 옮겨진 천연두가 창궐하자 아스텍 인들이 죽어나갔고 심지어 황제마져 죽고 마지막황제 쿠아우테목이 즉위한다. 그는 몬테주마의 직계도 아니었고 몬테주마의 자식들을 죽여 많은귀족들의 반감을사게된다. 쿠아우테목은 틀라텔롤코에서 최후의 항전의지를 보이고 모든국경수비대를 모두 불러들이고, 테노치티틀란으로가는 길목을 모두 파괴하고 한개만 남긴다. 하지만 텍스코코호수를 관장하던 텍스코코가 코르테스에 항복하면서 호수의 소유권도 코르테스군이, 게다가 텍스코코인들도 아스텍에대한 반감때문에 코르테스에 군대를 지원하게되고, 결국 1521년 8월 13일 아스텍은 항복하고, 테노치티틀란은 점령당하게된다.

아스텍인을 포함해 그 어떤 원주민도 스페인인들을 신으로믿지 않았으며, 신으로 믿은 부족이 있더라도 금방 깨달은게 보통이었다. 에스파냐인들이 원주민들을 쉽게 이길수있었던것은 원주민들의 총에대한 공포심이 매우 강했으며, 말과 군견, 돼지도 보지못했기 때문이었다.

학살[편집]

1519년, 에르난 코르테스와 600명의 에스파냐 군인들이 아스텍 문명의 땅에 상륙했다. 아스텍 신화 중에서 케찰코아틀이라는 신은 태양력 1500년경에 흰 얼굴의 모습으로 멕시코를 정복하러 온다는 신화가 있었다. 아스텍 신화와 에르난 코르테스가 온 년도, 생김새 등 비슷한 점이 많아서 몬테수마 2세는 두려워하다가 신으로 맞아 주기로 했고, 그로 인해 에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 정복은 쉬워지게 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는 신전에 있는 피를 닦았고, 십자가를 세우게 하면서 아스텍인들에게 기독교를 믿게 했다. 또한 에스파냐 군인들은 아스텍인들은 전혀 걸린 적 없는 천연두를 퍼트렸는데, 이를 알고 에르난 코르테스는 "금을 나에게 주어야 천연두가 낫는다"라고 거짓말을 퍼트리기도 했다.

코르테스는 몬테수마에게 스페인에 왕국을 넘기라고 요구했고, 주민들은 그에 반발해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의 와중에 코르테스의 부하 4명이 사망하고 아스텍과 스페인을 화해시키려던 몬테수마는 돌에 맞아 죽었다. 결국 아스텍 제국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공격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멕시코에는 슬픔의 꽃과 노래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는 땅에 부딪혀 부서졌고, 폐허속에 누워 있다.
당신은 당신의 신하에게 싫증이 났는가?
오, 생명을 주신 이여!
당신의 신하에게 화가 났는가?

결국 아스텍 문명은 3년 뒤인 1522년 멸망했으며, 테노치티틀란은 폐허가 되었다.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스텍 인들이 에스파냐에 패하자 사기가 떨어졌다.

그 후[편집]

1522년 에르난 코르테스는 테노치틀란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1526년 월권혐의로 파면되었고, 본국으로 송환되었으나 왕을 설득하여 재차 멕시코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만(灣) 등을 발견하였다. 1540년 귀국한 후에도 계속 카를로스 1세(카를 5세)의 냉대를 받아 실의 속에 죽었다.

피의 의식[편집]

에르난 코르테스는 피의 의식을 목격하자 경악을 금치 못했고 신전에 대포를 발사하여 이 의식을 다 때려엎은 뒤 의식을 진행하는 사제들과 경호병력들을 모두 총살시켰다. 사제들과 경호병력들을 몰살시킨 코르테스는 피의 의식에 제물로 희생될 예정이였던 1만명이 넘는 아즈텍인들을 살려내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얼마 후 아스텍 원주민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에르난 코르테스는 이후 사재를 털어 자국에서 돼지를 가져와서 피의 의식을 금지시키는 대신 돼지를 길러서 잡아먹도록 명령했다. 또한 여기서 제물로 예정되어 있다가 코르테스에 의해 구조되었던 사람들 중에 몇몇 여자들과 에르난 코르테스 사이에서 마르틴 코르테스 등의 사생아들이 태어나기도 했다.

사실 코르테스에 협력하는 아즈텍인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역시 신의 명령을 빙자하여 인육을 즐겨먹는 사제들이 주관하는 이 비인간적인 피의 의식에 극심한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녀[편집]

인디언 여성과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다. 여러 인디언 부족에 노예로 팔리다가 그에게 팔려온 말린체(도나 마리아나)와의 사이에서 아들 마르틴 코르테스를 얻었다. 말린체는 코르테스의 통역이자 앞잡이로 아즈텍 정벌에 협력하였다. 이때문에 중남미에서는 현재도 말린체를 배신자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코르테스는 말린체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에게 시집보냈다.

아즈텍의 황제 몬테수마 2세의 딸 테추키포에게서도 딸 레오노르 코르테스(Leonor Cortés, 1527년 - ?)를 얻었다. 아즈텍의 황제 쿠아우테목을 살해한 그는 쿠아우테목의 왕비이자 몬테수마 2세의 딸인 테추키포를 노예로 삼아 그와의 사이에서 레오노르 코르테스를 얻었다. 코르테스는 테추키포를 자신의 부하인 알폰소 데 그라도와 결혼시켰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