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사상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오주의에서 넘어옴)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마오쩌둥 사상(毛澤東思想) 또는 마오주의(영어: Maoism)는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중국 공산당의 지도 이념이다. 그 본질은 〈중국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신봉자는 마오주의자로 일컫는다.

개요[편집]

중국 공산당1945년 9월의 제7차 전당대회에서 당규에 "중국 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과 중국 공산혁명의 실천을 통일한 사상,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모든 지침으로 한다."라고의 문구를 추가했다. 여기서 말하는 '마오쩌둥 사상'이란 이념으로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지침으로 하면서, 그것을 중국의 실정에 적용시킨 혁명방식을 말한다.

아시아 일대의 공산당계에서는 마오쩌둥 사상이 제일 영향력 있는 공산주의로 평가되고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러시아어: Ио́сиф Ста́лин) 집권 시기에는 교조주의를 비판하는 쪽으로 발달했으며, 스탈린 사후 1960년대 소련이 니키타 흐루쇼프(러시아어: Ники́та Хрущёв)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탈스탈린화 되고 수정주의 흐름이 생기면서,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고수하는 동시에 소련의 수정주의 노선과 대립한 사상이기도하다. 당시 중국의 산업화는 유럽에 비해 훨씬 늦었었다. 당시 중국은 1차 산업에 의존하여, 공장과 같은 2차 산업의 생산라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본래 정통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주체는 산업 노동자가 되어야하는데, 산업이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중국에서는 산업 노동자 또한 없었다. 이 상황에서 모택동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노농동맹노선에 입각하여 농민들로 인한 혁명을 주로하고 그에 관한 사상을 정립화시키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의 사정에 맞춰서 개조하게 된다.

마오쩌둥이 젊은 시절부터 밀접하게 지낸 농촌사회의 관찰로부터 도출된 중국 발전을 위한 모든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 내용은 대공무사(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복지를 우선한다), 대중노선(농촌대중의 의견에 정치적 지침을 요구하여, 그것을 이해시켜 모두 행동한다), 실사구시(현실로부터 배우고, 이론을 세운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외에도 사회와 협조할 수 있는 개인주의, 성인의 협력, 농촌으로부터 봉기하고 도시를 둘러싼 전술이론, 세계 각국이 각자의 특성에 맞는 공산혁명을 실시하는 것으로,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고 하는 〈중간지대론〉 등도 '모택동사상'에 포함할 수 있다.

군사 이론[편집]

지구전[편집]

『지구전론』은 마오쩌둥옌안에서 1938년 5월 26일 ~ 1938년 6월 3일까지 논의한 『항일전쟁전략』(抗日戰爭戰略)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그는 여기서 공산당 내 존재했던 중일전쟁 성격 논증 이론인 중국필망론(中國必亡論)과 중국속승론(中國速勝論)을 모두 비판하였다. 그는 중일전쟁이 장기화가 될 것이라 예측했으며, 이러한 장기화 된 전쟁에 걸맞는 게릴라전을 구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는 군사력이 열악한 홍군의 특성과, 도시 점령을 위주로 활동하는 일본군과 당시 중국 군벌의 속성을 고려했으며, 대부분의 중국 인민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여, 전쟁에서 자원이 되는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군수물자와 식량만이 아닌, 인심(人心)이라고 하였다.[1]

인심(人心)은 유동적이며 물과 같다. 때문에 홍군의 주력도 유동적이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인심의 유동성은 곧 대중의 요구에 부여된 유동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전쟁 속에서도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켜서 지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에 속한 인민은 군벌의 손아귀에 있으며, 군벌의 지배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민은 농촌 지역에 있는 농민이다. 마오쩌둥은 이들의 인심을 얻어 그것을 힘으로 사용하는 '고도로 정치화 된 군대'를 조직했다. 그는 아울러 도시를 점(点), 도로를 선(線), 농촌을 면(面)으로 구분한 다음, 일정하게 뭉쳐져 있는 면의 집단을 구(區)라고 칭하였으며, 공산당의 영향력이 확고한 구(區)를 해방구(解放區)라고 칭했다. 여기서 그는 해방구의 단위를 이루는 면(面)의 유동성과 신축성을 조명하며, 해방구는 유동적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면이 유동적인 이유는 적군의 감시가 이뤄지기 힘들며, 넓은 면적을 갖고 있기에 이동 범위가 넓기 때문이다. 또한, 신축성이 높은 이유는, 면의 대부분이 농촌이고, 농촌은 식량을 담당하는 식량기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산당에 대적하는 적이 설사 해당 지역이 해방구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고 쉽사리 그곳 지역을 탈환하기 어렵다. 또한, 농촌은 대가족 사회이므로 인민이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있다. 따라서 작은 탄압도 커다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만약 다른 곳의 해방구가 무너진다면, 즉각적으로 해방구가 아닌 곳을 해방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 외에도 주도성, 계획성 등의 개념이 나오며, 전투 방식으로는 유격전, 진지전, 기동전, 소모전, 섬멸전 등을 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구전론에서 마오쩌둥은 병사 개개의 역량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혁명에 나선 병사는 단순히 전투와 수동적 복종을 위한 병사가 아닌, 매사 스스로 다양한 지식을 학습하고 인민으로부터 배우는 동시에 그들의 혁명 역량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이념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즉, 마오쩌둥 사상에서 병사 개개의 정예주의(精銳主義)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승리는 "인심을 얼마나 얻느냐", 그리고 "유격전을 어떻게 지휘하느냐", 마지막으로 "병사의 지적 역량을 얼마나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달렸다. 바로 이 능력 전반을 지구력(持久力)이라고 하였기에 『지구전론』(持久戰論)이라 한 것이다.[2]

『지구전론』의 특이할 점은, 군사 행위는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닌 고도의 정치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지구전론은 단순히 무력이 총동원되는 전쟁 상황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논리가 아니다. 이는 문화투쟁과 정당투쟁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인식 이론[편집]

모순[편집]

마오쩌둥 사상은 기본적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하며, 스탈린의 공산주의 정립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상은 중국 현실에 맞는 〈발전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우고 있기에 일부 이론에서 스탈린의 이론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특히, 모순론(생산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변증법적 모순에 대한 이론)은 1920년대 데보린 학파에 의해 전개된 유물변증법과 더불어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주의의 기초와 레닌주의의 제문제』에서 밝힌 모순론과 비교되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순과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모순의 본질은 제반경제투쟁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일치하며, 그것은 어떻게 하든 현실에서 계급 투쟁(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의 형태로 발생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의해 지도되는 사회주의 정체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

반면, 마오쩌둥은 모순을 적대적 모순(敵對的矛盾, Antagonistic contradiction)과 비적대적 모순(非敵對的矛盾)으로 나눈 다음, 전자의 모순은 처음부터 끝의 과정까지 모순의 과정을 관통하며,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본질적 모순에 해당하고, 후자는 비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이라고 하였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전자의 경우는 계급 전쟁에서 최일선에 해당하는 모순인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모순이므로, 서로의 계급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또한, 갖가지 양태를 갖고 있는 모순으로 변화하게 된다.[3] 예를 들면, 그것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싸움이 될 수 있으며, 제국주의자와 반제국주의자, 남성 권위주의자들과 여성 사이의 투쟁, 심지어 노동자농민 및 빈곤노동자 사이의 투쟁으로도 양태화될 수 있다. 마오쩌둥은 이것들이 본질적인 모순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구분하기 위해서는 결국 매개 모순의 특수성, 즉, 모순의 진행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정합(整合)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모순의 진행도가 제각각인 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자연변증법』(Dialektik der Natur)에서 논한 자연물 사이에서의 모순을 포함하여 모든 본질적인 모순이 가진 보편적인 것(보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주요 모순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에 따르면, 주요 모순은 모순성의 특수성을 정합성에 따라 인식한 후에 판단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또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러한 입장은 혁명에 현실성을 부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받아들인 기존의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양태를 갖고 있는 모든 본질적 문제를 단적인 경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투쟁으로 환원시키고 그것들의 속성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경험주의적 단견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본질적 분쟁인 사건을 비본질적 분쟁으로 취급하는 결정적 오류를 범했다. 실제로 마오쩌둥의 비판 대상인 교조적인 공산주의자들은 농민은 소부르주아이기에 본질적인 혁명 동력이 없다고 봤으며,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 양분적 대립 등을 비본질적 모순으로 보아 그것들의 중요성을 무시했다.[4]

가령, 블라디미르 레닌이 '혁명의 제2단계'(1917년 4월 ~ 1917년 11월) 시기에도 산업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닌, 영세농 및 소농, 그리고 소영업자들과의 동맹을 추구한 것도 이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 레닌은 당시의 주요 모순이 단순히 프롤레타리아와 모든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전면적 대결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게 아닌, 제국주의의 세계 재분할 과정에서 드러나는 약한 고리에 강한 연관을 갖는 사건들에 있다고 봤다. 그리고 스탈린 집권 시기에는 사회주의 대건설이라는 것이 주요 모순으로 되었기에 모든 농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위한 농업집산화, 그리고 급진적인 국유화 단행이 진행된 것이다.

마오쩌둥은 당시 교조주의 기조가 본래의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취지에 어긋나며, 교조주의자들의 입장을 '혁명에서의 소극주의 경향'으로 규정하고 단죄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 투쟁 관계를 단순히 무산자-임금노동자와 유산자-사업가의 싸움으로 표시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그것의 본질은 사실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라는 간극보다는 혁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력과, 반동으로 나가는 세력 사이의 간극이라고 본 것이다.[5] 마오쩌둥이 혁명의 시기인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농촌에 기반한 농민운동에 중점을 둔 것도 바로 위와 같은 철학적 지론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마오쩌둥의 모순론의 정식대로라면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격화된 양분의 대립은 계급 투쟁의 성격을 갖는 것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립은 모순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사회주의국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사회주의국가 운영의 핵심은 이러한 모순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달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마오주의자들이 더더욱 현실 문제에 깊숙히 관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마오쩌둥 사상은 제3세계 운동, 여성주의와 흑인해방운동을 포함하여 갖가지 해방운동에 기반 이론을 제공한 것이다.[6]

실천[편집]

마오쩌둥에게 실천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 투쟁이 아닌 사고와 사고 사이의 전쟁도 포함한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실천론은 전자의 논리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혁명가가 군중 속에 들어가서 군중의 삶을 직접 겪으며, 군중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그의 게릴라 이론 저서인 『지구전론』(持久戰論)[7]에서도 일관적으로 나오는 입장이다. 또한, 군중 속에 들어가는 주체는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공산당과 같은 혁명적 당도 포함된다. 혁명적 당의 최고 적은 군중과 괴리되는 것이며, 이러한 군중과의 괴리, 즉, 관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당이 군중에 의거해야 하며,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군중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8]

또한, 마오쩌둥의 실천론은 주요 모순과, 그렇지 않은 모순을 유동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 즉, 군중 속에 들어가는 실천은 사회구성체(社會構成體)가 어떠한 향방으로 흘러가는지, 그리고 투쟁에서 어떠한 모순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등,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파악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만약 군중 속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혁명의 객관적 조건을 안다고 자부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란 게 마오쩌둥 실천론의 핵심이다.[9]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계속혁명론(繼續革命論)이다. 당이 관료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공산주의 도달까지 끝이 없는 정치투쟁을 내부로부터 감행해야 한다. 그것은 혁명적 군중에 의한 대규모 켐페인 등과 같은 정치운동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으며, 역사적 사건으로는 문화대혁명이 있다.

정치 이론[편집]

반수정주의[편집]

니키타 흐루쇼프 집권 이후 소련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국가와의 타협을 시도했으며,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론적 경향성에 대해서 청산주의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중소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흐루쇼프가 사회제국주의(社會帝國主義)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당을 수정주의로 지도하여 혁명의 퇴조를 가져온다고 비판하였다.[10] 그리고 그는 동유럽 지역에서 소련의 수정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하던 알바니아의 엔베르 호자(알바니아어: Enver Hoxha)와 협력하게 된다. 엔베르 호자는 스탈린 정식을 따르는 철저한 스탈린주의자로, 소련의 수정주의를 비판하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교류가 오가면서 마오쩌둥 사상은 '아시아의 반수정주의'로 거듭나게 되었다.[11] 이는 1964년 7월, 흐루쇼프에 대해 논평한 마오쩌둥의 입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흐루쇼프가 소련공산당과 국가의 지도자가 된 이래로, 그는 수정주의 정책의 모든 과정을 밀어부쳐 자본주의 세력의 성장을 크게 촉진하였고, 소련 내에서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사이의 계급투쟁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길 사이의 투쟁을 또 다시 첨예하게 만들었다. 지난 몇 년간의 소련 신문 기사를 훑어보면, 소련 사회 내에 과거 착취 계급의 수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부르주아 세대의 요소가 거대한 규모로 존재하며, 계급 양극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전 인민의 소유인 소비에트기업 내에서의 다양한 부르주아적 요소들을 살펴보자. "국가 소유의 공장에서 지도적 관리들과 그 무리들은 그들의 지위를 남용하여 공장 설비와 재료를 사적 생산을 위한 '비밀 작업장'을 설치하는 데에 사용하고, 생산물을 불법적으로 판매하고 이권을 나누었다." …(중략)… 이제 집단농장에서 다양한 부농 분자들의 활동을 살펴보자. "몇몇 지도적 위치에 있는 집단농장 관리들과 그들의 무리들은 집단농장 자산을 마음대로 훔치고 투기했으며, 자유롭게 공적자금을 탕진하고 사취했다."

— 마오쩌둥, 『9차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장에 대한 논평』에서[12]

마오쩌둥 사상에서 드러나는 반수정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물질관·운동·양질전환·변증법의 일반적 도식에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정식을 따른다.[13]
  2. 마르크스주의의 계승자는 블라디미르 레닌이며, 레닌주의의 계승자는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것을 공식화한다.[14]
  3. 중앙집중적 계획 경제·관제고지·집산화 등 사회주의경제 원칙을 철저히 수호한다.[15]
  4. 당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정주의를 적극적으로 차단한다.
  5. 자국우선주의에 기초한 외교가 아닌, 국제주의에 기초한 외교 노선을 취한다.
  6. 사회민주주의·유럽공산주의·트로츠키주의 등과 같은 이탈 노선을 철저히 배격한다.

마오쩌둥 사상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재평가가 되었고,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 및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상으로 인식되었다. '공산당 ML파' 또는 'ML당' 등의 명칭을 갖고 있는 정당이 마오쩌둥 사상을 양대 사상으로 내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 반수정주의 국제 단체인 'ML당-ML조직 국제회의'(International Conference of Marxist–Leninist Parties and Organizations, ICMLPO)[16]와 '혁명당-혁명조직 국제협력'(International Coordination of Revolutionary Parties and Organizations, ICOR)[17]이 마오쩌둥 사상을 공식 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신민주주의[편집]

마오쩌둥태평천국의 난을 시작으로 하여 신해혁명을 끝으로 중국이 반봉건-반자본주의(半封建半資本主義) 정체성(政體性)을 확보했다고 봤다. 그러나 앞선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완전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바로 여기서 마오쩌둥은 확고한 자본주의 사회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신삼민주의(新三民主義)라 칭하였고, 앞서 서술한 반봉건-반자본주의(半封建半資本主義)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구삼민주의(舊三民主義)라고 규정하였다.[18] 그러나, 부르주아의 힘으로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려던 신삼민주의자들의 염원은 열강 세력의 침탈로 인해 이루기 요원한 것이 되었다. 마오쩌둥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민정권을 구상하여 민족자본가와 노동자, 그리고 농민 세력이 연합된 신민주주의정부(新民主主義政府)를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반제반봉건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反帝反封建資產階級民主革命)이라 칭하며, 마오쩌둥은 이것의 최초 격발을 5·4 운동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그의 단계론 해석은 이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던 단계론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그는 바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극좌모험주의적 경향과 당시의 권위주의적 군벌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반동적 의견을 모두 비판하였다.[19] 그리고 이러한 노선은 1930년대 김일성이 이끌던 빨치산파에 의해 수용되었으며, 베트남의 독립운동가인 호치민도 또한, 이 노선을 받아들인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1980년대 민족 해방 학생운동계파가 한국 사회의 성격을 이 노선에 기반하여 해석했으며, 민중 민주 계파의 사회구성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신민주주의론은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인 것과 동시에, 반공주의적 정서가 강했던 당시 중국 현실을 반영한 특수한 형태의 단계론인 것이다. 마오쩌둥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도 해당 시점의 단계를 신민주주의 단계라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 중국 내 정파였던 민주연맹과 같은 자유주의자들과도 연합한다. 그리고 1958년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생산력을 산출하기 위한 대약진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도 역시 신민주주의론에 기초하여 시작된,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생산력 증강 정책이기도 하였다. 국유화, 국가 주도의 산업 자본 투자, 외세의 개입 차단, 민족자본가들과의 통일전선 등을 통한 자력 발전 요소는 종속 이론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마오쩌둥 사상은 자본주의 발전 정도가 높은 국가에 한해서는 신민주주의노선이 아닌 사회주의혁명노선을 취해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마오쩌둥 사상은 신식민지 상태하에서 반봉건-반자본주의(半封建半資本主義)를 강요받는 국가에 적합한 것이며, 마오쩌둥 사상 자체도 이것을 인정하고 있다.

마오주의 조직[편집]

마오쩌둥 사상을 정식 이념으로 채택한 정당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대다수의 마오주의 정당 또는 단체는 제3세계 농업국가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일부는 마오주의 조직은 산업국가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마오주의 정당은 의회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며, 철저한 폭력혁명노선을 따르기 때문에 불법 정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네팔[편집]

네팔 공산당 중앙파가 마오주의 이념을 채택하고 있다. 이들의 지도자인 프라찬다는 오랫동안 공화정 수립을 위한 정치 운동을 벌였으며, 결국 네팔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네팔은 이로 인해 2008년 공화정 체제로의 전환을 성공했다. 그러나 공화정 수립 이후의 정치에서는 내분으로 인해 분열되어 약화된 상태이다.[20] 독자적인 군사 조직으로는 네팔 인민해방군(जनमुक्ति सेना, नेपाल)이 있다.

미국[편집]

미국 진보노동당미국 혁명공산당이 있다. 전자는 이오시프 스탈린레닌주의 해석에 쏠린 경향이 있지만, 마오쩌둥 사상도 또한 받아들이는 추세이다.[21] 1966년에 창당된 흑인해방운동 단체인 흑표당도 또한 마오쩌둥 사상의 일면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22]

인도[편집]

인도에는 '인도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산주의 정당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마오주의를 따르는 마오주의 계열 인도 공산당이 존재한다. 이들은 동북 지대에서 해방구를 몇 운영하고 있는데 인도 정부에서는 이를 붉은 회랑이라고 칭한다. 독자적인 군사 조직으로는 낙살라이트(Naxalite)가 있다.[23][24]

중화인민공화국[편집]

중국 공산당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삼개대표론(三個代表論)을 정식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25] 그러나 마오쩌둥 사후 사실상 수정주의실용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기에 실질적으로 마오주의 조직이라고 하기 어려운 점도 또한 존재한다. 중국 마오주의 공산당의 경우도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주요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정당 역할을 하고 있지 못 하고 있다.

캄보디아[편집]

민주 캄푸치아를 수립했던 크메르 루주가 존재했으나, 1999년에 수뇌부가 현 캄보디아 정부에 항복을 선언하였다. 크메르 루주는 민주 캄푸치아 시기에 극단적인 공산화 추구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하였다.

태국[편집]

태국 공산당이 마오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터키[편집]

터키 마오주의 공산당이 마오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터키 정부는 이들 단체로 테러 조직으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 단체이며, 독자적인 군사 조직으로는 터키 인민해방군(People's Liberation Army)이 있다.

페루[편집]

페루의 반군 조직이자 공산주의 정당인 빛나는 길(Sendero Luminoso)이 마오쩌둥 사상을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들은 페루 정부를 전복시키고 사회주의국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페루 인민유격대(Ejercito Guerrillero Popular)라는 독자적인 군사 조직도 갖추고 있다.[26]

필리핀[편집]

필리핀 공산당은 마오쩌둥 사상을 당의 정식 이념으로 채택하고 있다. 필리핀 공산당은 유격 근거지 및 점령지를 해방구로 선포하고 이들 관리 지역을 묶어 필리핀 국민민주전선이라는 통일전선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필리핀 신인민군(New People's Army)이라는 독자적인 군사 조직도 갖춘 상태이다.[27]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99 - 113(지구전론)
  2. 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139 - 171(지구전론)
  3. 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74 - 80
  4. 하지만, 오히려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은 농민에게 혁명성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5. 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85 - 90
  6. 허만원 저, 주혜란 역, 『생각의 역사』(이른아침, 2005) 참조
  7. 인민전쟁론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8. 마오쩌둥 저, 김승일 역, 『실천론 모순론외』(범우사, 2001) pp. 31 - 39
  9. 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18 - 33(실천론)
  10. Scalapino, Robert A. (1964). “Sino-Soviet Competition in Africa”. 《Foreign Affairs》 42 (4): 640–654. doi:10.2307/20029719. JSTOR 20029719. 
  11. Marku, Ylber (2019년 5월 30일). “Communist Relations in Crisis: The End of Soviet-Albanian Relations, and the Sino-Soviet Split, 1960–1961”. 《The International History Review》 0 (0): 1–20. doi:10.1080/07075332.2019.1620825. ISSN 0707-5332. 
  12. 마오쩌둥, 흐루쇼프의 거짓 공산주의와 그 역사적, 세계적 교훈에 대하여: 9차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공개장에 대한 논평, 1964년 7월, 노동자정치신문 98호
  13. Chambers Dictionary of World History (2000), B.P. Lenman and T. Anderson, Eds., p. 769.
  14. Graham Young, On Socialist Development and the Two Roads, The Australian Journal of Chinese Affairs, No. 8 (July 1982), pp. 75–84, doi 10.2307/2158927.
  15. Mirsky, Jonathan. "The China We Don't Know." New York Review of Books Volume 56, Number 3. February 26, 2009.
  16. “国际毛主义运动历史与现状” (중국어). 新民通讯. 2014년 10월 15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2에 확인함. 
  17. [1] Archived 18 August 2011 - 웨이백 머신. ICOR Founding Conference – Documents US: Founding Resolution of the ICOR
  18. 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193 - 198(신민주주의론)
  19. 마오쩌둥 저, 이등연 역, 『마오쩌둥 주요 문선』(학고방, 2018) pp. 213 - 227(신민주주의론)
  20. 《Prachanda: The Unknown Revolutionary》 참조
  21. Harvey Klehr, "United States of America," in Richard F. Staar (ed.). Yearbook on International Communist Affairs, 1977. Stanford, CA: Hoover Institution Press, 1977; pp. 500-501.
  22. Austin, Curtis J. (2006). Up Against the Wall: Violence in the Making and Unmaking of the Black Panther Party. University of Arkansas Press. p. 170
  23. Deepak Kapoor, AVSM PVSM, SM VSM Chief of Army Staff (India) (2009). 《South Asia Defence And Strategic Year Book》. Pentagon Press. 62–63쪽. ISBN 8182743990. 
  24. “CPI (Maoist) commander Hidma promoted to Central Committee”. 《thehindu.com》. 2019년 4월 27일에 확인함. 
  25. 中國共產黨第十九次全國代表大會. 《中國共產黨章程》總綱. 中國北京: 中國共產黨全國代表大會 (中文(简体)‎). 中國共產黨以馬克思列寧主義、毛澤東思想、鄧小平理論、『三個代表』重要思想、科學發展觀、習近平新時代中國特色社會主義思想作為自己的行動指南。
  26. Maske, Mahesh. "Maovichar", in Studies in Nepali History and Society, Vol. 7, No. 2 (December 2002), p. 275.
  27. “Saligang Batas ng Partido Komunista ng Pilipinas”. January 7, 2009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August 11, 2017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